프랑스의 노천 문화 예술
프랑스에 여름이 오면 세계 문화 예술의 센터인 파리를 익히려고 세계의 지식인들 예술인들 혹은 관광객들이 거금을 들여서 몰려온다. 오페라가(街)나 샹젤리제에는 돈 많은 석유국 부호나 가족 단위로 나들이 나온 영어군(群)이 많아 외국 말이 상점마다 귀에 들린다. 그러나 이구동성으로 그들은 실망하며 여름에 온 것을 후회한다.
라틴 쿼터(學生街)에는 흰·노란·검은 젊음들이 어학 코스를 밟으며, 카페마다 우글거리고, 프랑스를 배우고 있으나 이들도 철새처럼 파리를 떠나 버린 프랑스 일선 예술가들을 알현(?) 하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 투덜거린다.
그렇다. 본격적인 파리의 문화 활동은 랑트레(신학기 시작)부터다. 9월이 되면 모든 학교가 문이 열리면서 어수선해지고, 10월이 되면서 정상적인 리듬이 생기며, 다음 해 5월 말까지 무르익어 간다. 프랑스의 여름 방학이 유난히 긴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3~4개월). 그렇다고 예술 활동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으나 무대를 남불(南佛)로 옮겼을 뿐이다. 성의 있는 관객들은 프로방스 지방으로, 지중해 꼬따쥐르(남빛해안)로 그들을 쫓아가야 한다. 그러면 거기서 그들은 그들의 천부적인 재주들로 우리들을 반겨 줄 것이다. 여름 프로그램 배부와 매표활약은 이른 봄부터 세계 여러 곳에서 벌어진다.
가령 뉴욕이나 런던에서 몇 개월 전에 아를르 원형 극장에서 8월에 공연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를 보려고 표를 사둔 관객들은 공연 일자의 그 시간에 전혀 혼잡함이 있을 수 없고, 뮌헨의 한 음악 애호가가 엑스의 오페라 공연 날 자기 좌석을 찾는 데 불편함이 없다. 그들의 표 판매 조직력은 대단하며 질서 정연하다.
역사적으로 프랑스의 옥외 예술 활동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면 교회가 라틴 문학의 온상이 되었던 시대를 지나서, 중세 때 성당 내에서 민중 교화의 목적으로 성서의 장면이 극으로 상연되던 것이 성당 마당으로 나오면서 옥외 연극이 성행했고, 마침내 16세기에는 2만 명이나 수용되는 옥외 광장에서 성사극(聖史劇)이 있었는가 하면, 12~13세기의 프랑스의 음유시인들은 그들의 시를 민중과 더불어 장터 · 가로ㆍ주막ㆍ성당 주변·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읊거나 노래했다.
프랑스의 옥외 이동 예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라틴 문화의 제 맛을 알려면 파리의 우아한 옥내뿐만 아니라 노천 문화의 이해가 필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바캉스 동안에 모든 예술 활동이 가장 활발한 몇 지방을 들어보면, 아를르의 연극·오페라 공연, 아비뇽의 오페라·국제 음악 세미나·강습, 오랑즈의 무용·음악, 생레미의 무용, 프레쥐스의 재즈, 엑상프로방스의 오페라·음악 페스티벌·전통 음악 공연, 그리고 지중해 연안 도시 생 트로페 해변의 화상과 화가군, 니스에 상설되어 있는 샤갈, 마티스 미술관, 안티브의 피카소 미술관, 엑스의 바즐러리 전시관, 생 뽈 드 방스의 마그트 현대 미술관 등 바로 예술의 보고와 같은 공간들이다.
그리고 6월이면 작고한 프로방스의 소설가 지오노 애호가들의 모임 같은 곳에 가면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문학가들의 대화가 있는가 하면, 여기저기의 시낭송회는 플로베르 · 자끄 브랠 · 브라생의 시를 노래하는 프로그램이 있고, 이런 공간에서는 쉽게 세계의 대가들 혹은 문학·음악·무용·미술에 미친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참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이런 이동 예술이 성행해질 수 있는 프랑스는 여름 내내 비 한줄기 내리지 않는 지중해 기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지붕 없는 공간의 매력 때문에 나는 젊은 유학 시절에 해마다 수십 킬로미터 혹은 수백 킬로미터를 가야만 하는 노천 극장의 프로그램을 찾아서 낭인처럼 헤매었다.
그 후로도 나의 오랜 프랑스 체류기간 중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을 느낀 공간은 매그 현대 미술관이 있는 조그마한 동네 쌩 뽈 드 방스다. 거기서 나는 모든 종합 예술을 가장 절실하게 느꼈고, 프랑스 문화 · 예술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는 행복감에 도취했다. 조만간 간략하나마 매그 재단 미술관에 대한 소개 글도 별도로 올려볼까 한다.
관련 글 링크/ 2024.06.04 - [유럽] - 프로방스의 숨은 진주, 매그 미술관 /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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