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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세이

장미와 신사

by 이다인 2024.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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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신사

 
 
5월이다. 꽃 중에 꽃이 군림하는 5월이 왔다. 그리고 6월이 또 기다린다. 나는 연중 이 두 달은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래서 생각나는 일도 많고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많은 두 달이다. 5월이 가까워지면 또 무슨 변이라도 생길까 혹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을까, 무의식 저변에 잔잔한 흥분과 초조함이 깔려 있음을 스스로 느낀다.
 
지금 나는 감기로 다른 일정을 하루 미루고 집에서 쉬고 있다. 낮에 약을 먹고 잠깐 잠이 들었는데,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서 장미 한 다발을 받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던 꿈을 꾸었다. 눈을 뜨고 몹시 서운했지만 그 여운을 깨고 싶지 않아서 침대에 그대로 한참 누워 있었다. 그랬더니 꼬리를 물고 장미 이야기가 내 기억의 창고에서 튀어나온다.

어느 해  5월 말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2주일쯤 입원했다. 의식이 돌아오고 눈을 떴을 때 어머니의 얼굴과 예쁜 화병에 꽂힌 한아름 연분홍 장미가 희미하게 보였다. 우선 살아났구나 생각하면서 "누가 왔다가 갔어요?" 하고 물었더니, 이 병원 간호과장 선생님이 가지고 오셨다고 했다. 그 장미들이 마지막 질 때까지 내 눈길은 거의 장미들에게서 떠나지 않았고, 어머니께서는 아침마다 저녁마다 물을 갈아주셨으며, 또 오래가도록 얼음을 넣기도 하셨다. 항상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그 다음에도 친구들과 학생들이 꽃을 가지고 와서 많이 찾아 주었다. 내가 퇴원할 때쯤은 창가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병실은 꽃으로 둘러싸였다. 나는 꽃의 아름다움과 가지고 온 꽃 주인들의 마음을 음미하면서 사랑받고 있는 스스로를 확인하고야 유치한 안심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수년 전 6월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남프랑스 조그만 뷔리까르라는 마을, 깨끗한 가톨릭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고 한 달 동안 입원했었다. 그때도 같은 경험을 했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오르면  6월 1일 내가 결혼하던 날, 6월 19일 내 딸이 세상에 태어났던 날,  6월 3일 아들이 태어났던 날, 이런 길일들이 전부 6월이라 나는 자주 장미를 받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 사람들이 호의를 표시할 때 장미를 보내어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장미는 나에게 '삶'의 징후가 있는 꽃이고, 아픔의 치유와 생명을 다시 얻는 소생의 의미요, 하느님이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하는 아이들을 선물해 준 사람의 상징이다.
 

장미
장미

 
그 누가 장미를 싫어하랴만, 특히 나 개인으로는 5월  6월 장미 계절에 많은 사건이 있었기에 더 그렇다. 흔히 장미라는 테마는 중세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청춘을 비유할 때 시인들이 자주 사용했던 진부한 테마이다. 특히 13세기에 살고 간 페르시아의 유명한 싸디(Saadi)는 장미에 대해서 가장 많이 쓴 시인이고, 롱싸르(16세기)나 발모르(17세기)의 장미의 시들도 유별하다.

특히 롱싸르는 아름다운 장미꽃의 생명이 너무나 짧은 것에 서럽도록 탄식하여 인생의 짧음을, 자연의 법칙이나 청춘과 생명을 영원히 머물게 하지 않고 앗아가는 것을 경고했다. 자연법칙에 반항하는 인간의 육체미는 바로 그리스 유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예술가들은 번번이 시간에 잘 도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장미는 짧게 피고 간다. 장미는 단연코 꽃 중에 가장 사랑받는 꽃 임에 틀림없다.

독일 북쪽 함부르크의 핀즈버그라는 곳에 유명한 장미원이 있고, 프랑스 남쪽 지중해 연안 그라쓰(Grasse)라는 곳에 유명한 장미원이 있다. 한쪽은 장미나무를 재배해 팔고, 그라쓰에서는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장미 향수를 만들어 판다. 나는 장미꽃에 항상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거리에서 장미 꽃다발을 들고 걸어가는 신사, 혹은 꽃가게에서 장미를 사고 있는 남자를 보면, 나는 그들의 우정을, 그들의 사랑을 마음속으로 빌어 준다. 꼭 장미가 아니라도 꽃을 누구에게 주려고 들고 있는 남자를 보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다. 그 남자는 바로 행복을 창조하고 있는 사람 같다.
 
 
유럽에서는 크고 작은 도시의 인도에서 주말 저녁이나 퇴근 시간 후면 깔끔하게 차려입고 꽃다발을 들고 걸어가는 남자를 쉽게 볼 수 있다. 저들은 조금 후에 행복한 만남을 가질 것이고, 어느 여성은 몹시 행복해할 것이다. 그리고 촛불이 켜지고 예쁜 식탁보가 덮여 있는 로맨틱한 식탁에서 즐거운 식사를 나눌 것이고,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갈 것이라는 상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아니면 누구의 생일, 누구를 위한 축하연이 벌어지고 포도주 잔이 부딪치는 축제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다.

즉 남자가 꽃을 바치는 장소는 틀림없이 웃음의 징후가, 행복의 보장이 있는 공간이지 결코 한숨이나 눈물의 장소가 아님이 확실하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서울에서, 부산에서 저녁이 어둑어둑해지는 거리에 꽃을 들고 가는 신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왜일까? 금방이라도 서운해진다. 여성들이 그렇게 행복해하는 작은 제스처에 왜 한국 남성은 유달리 그렇게 인색해야 하나?
 
꽃을 선물할 만한 신사는 그의 운전기사를 시키거나 누이동생쯤 시켜서 보내야만 사회적 지위, 남성적 인격 손상이 가지 않는 것일까? 장미를 선물 받고 싶어 하는 인구는 어림잡아 2천만이나 되는데, 그것을 바칠 만한 용기 있는 신사는 거의 없을 지경이니 하느님은 대한민국 인구에 비례한 신사의 수자에 무엇인가 크게 착오를 하신 것 같다.
 
5월과 6월은 장미가 승리한 달이다. 긴 줄기째로 예쁜 셀로판 종이 속에 싸인 한 송이의 장미 선물도 아름답다. 갖가지 색깔로 있는 대로 멋을 부리는 장미원의 꽃봉오리들, 그 향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느 날이고 멋진 신사들이 든 장미꽃들이 거리에 물결칠 때 행복이 덩달아 술렁일  5월과 6월을 나의 인생을 걸어서라도 기다려 보는 것이 어떨까?

 


2024_08_17 01_17.mp4
18.76MB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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