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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세이37

미모사 피는 날 미모사 피는 날 이 다인 시베리아 지층 같은 무거운 겨울을 밀어재끼고 바쁜 걸음으로 비집고 들어서는 찬연한 작은 얼굴 꽃가마 기별이 강물 따라 내려오면 미모사 자욱이 노란 길에 열다섯 살 사미스님 반고무신도 누그러지고 땔감 찾느라 터진 손등 꽃 숨결 약되어 씻은 듯이 고와져라. 2024. 5. 21.
장미와 신사 장미와 신사 5월이다. 꽃 중에 꽃이 군림하는 5월이 왔다. 그리고 6월이 또 기다린다. 나는 연중 이 두 달은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래서 생각나는 일도 많고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많은 두 달이다. 5월이 가까워지면 또 무슨 변이라도 생길까 혹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을까, 무의식 저변에 잔잔한 흥분과 초조함이 깔려 있음을 스스로 느낀다. 지금 나는 감기로 다른 일정을 하루 미루고 집에서 쉬고 있다. 낮에 약을 먹고 잠깐 잠이 들었는데,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서 장미 한 다발을 받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던 꿈을 꾸었다. 눈을 뜨고 몹시 서운했지만 그 여운을 깨고 싶지 않아서 침대에 그대로 한참 누워 있었다. 그랬더니 꼬리를 물고 장미 이야기가 내 기억의 창고에서 튀어나온다. 어느 .. 2024. 5. 18.
나비에게 나비에게                               이 다인 풍전등화같은 목숨을 타고도그렇게 즐거우냐평생을 춤추며꽃을 넘나드는 나비야전생의 지은 업보무엇이기에빛고운 날개펴고 꽃이슬 먹고 사느냐   나비야 나비야꽃향기 거느리고겨울꿈에 왔던 나비야  돌아오는 봄엘랑 도수 맞는 안경 끼고 오너라  초가에 거미줄은 없어졌지만  콘크리트 벽에 걸린 유리창에  날개 다칠까 무섭구나. 2024. 5. 10.
三月에 띄웠던 편지 三月에 띄웠던 편지 이 다인 금지환을 끼워준 남자와 구름 한 점 없었던 세월에 만상이 죽었는가 하면 또 기어이 살아나기 거듭하던 三月이 오던 날, 마흔이 넘어서니 호강에 겨워 잣죽 쑤던 일도 무료하여 예사롭지 않는 일 한 번 하고 싶다고 간절히 써 보낸 친구에게 月 火 水 木 金 戀愛로 살던 淑이었다면 그 짓도 이력이 생겼을 텐데. "이 친구야, 너 정 그렇다면 永生을 누릴 일 보장된 독신남자 소개하마. 나이도 좋구먼 설흔 세 살이던가... 아랍 남자, 예수 어떻니? 知足禪帥 삼십 년 불도를 버리고 黃真伊에게 함락당한 걸 보면 너 熱愛에 한쪽 눈이라도 팔고 질투도 없는 수많은 여자들의 흠모에 끼여 그 사나이의 제일 여자로 승격될지 누가 아느냐." 아직도 答이 없는 걸 보니 마음이 없다는 건지 수줍은 건지.. 2024. 4. 16.
3월 일기 3월 일기 3월은 차갑고 두꺼운 지층을 소리 없이 뚫고 온 생명을 다시 내보내 주어 고마운 달이다. 그런 축복의 달에 태어난 나는 3월은 언제나 '만남'의 달로 생각될 때가 많다. 그리고 오랜 학교생활을 통해서 늘 3월에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 왔다. 그래서 신학기가 되면 잔잔한 설렘이 일었고 희망 같은 것이 내 속에 은근히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이런저런 병치레를 하느라고 참으로 우울했고 외로움을 몹시 탔다. 구름 낀 날씨처럼 기분도 상쾌하지 않았고 3월 초에는 더구나 병원 신세까지 졌다. 극진히 보살펴 주었던 주변 때문에 영혼은 춥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 씀씀이를 반추하듯 되씹으며 싸늘한 병원 침대 위에서나마 나는 행복한 몽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전혀 현실성 없는 그 .. 2024. 4. 8.
겨울밤 겨울밤 이 다인 콩알처럼 보송보송 꽃눈을 多產하는 저 나무를 위해 잉태의 번뇌를 인고하는 너. 흰눈이 펑펑 내려 시간을 떠밀고 삭풍이 불어 바늘 끝처럼 아픈 대지 위에서 조심스레 지키고 섰는 허공의 파수병. 눈물이 뒤섞이는 어슴프레한 분만의 새벽 고고한 울음없이 태어나는 노란 새순을 보며 혹한 속에 서성거린 유령같은 걸음이 이적의 시간 속에 눈을 감는다. 2024. 3. 22.
눈 이 다인 겨울 처녀되어 오시네 시린 발 감추고 흰 천에 들르시고 바람 비껴 세우고 오시네 이만큼 가까이 오시네 보름날 달무리 놀고 간 자리에도 오시네 새털 달고 오시네 낯익은 천사 되어 오시네 연인 떠나보낸 슬픈 길에도 오시네 봄을 해산하려는 동정녀의 나들이 마을 구석구석 오시고 있네. 2024. 2. 15.
12 월에 12 월에 차가운 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 들어온다. 사랑하는 친구를 만난 환희도 사라져 버렸다. 꽃도 잎도 모두 부산하게 떠나 버린 빈자리에 나는 나목처럼 서 있다. 12월이 다가오면 인간은 누구나 숙연한 시간 앞에 서는 것 같다. 멀고 아득한 뒤안길도 한번 되돌아본다. 지난 현란했던 여름 축제가 밀물처럼 밀려와 가슴을 치고 달아난다. 프로방스 아파트 앞 휘어진 노송(老松) 위에 걸렸던 유순하던 그 달도, 공원의 나무들도, 바람이 실어 오던 땡의 향기도, 여름 풀벌레 소리도 이제 물기 없는 대지에 슬픈 노래되어 여름 제(祭)에 묻어가 버린 지 오래다. 허허로운 밤에 깡마른 언어만 깨어 원고지에 즐비하다. 이것들도 결합되었는가 하면 해체되고, 해체되었는가 하면 다시 모여들어 수시로 들쭉날쭉해서 나를 혼란.. 2023. 12. 23.
나의 연서(戀書) 나의 연서(戀書)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사랑의 편지를 한 줄도 보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싶다. 그래서 나도 연서를 써 본 경험이 많다. '많다'라는 말은 보다 인간적이라는 말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무엇을 소유하면 꽁꽁 뭉쳐 깊은 곳에 숨겨 놓지 못하고 써 버리는 헤픈 성격,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형, 느끼는 대로 무엇을 표현해 보고 싶어 하는 천성 등으로 풀이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래서 누구에게 정을 느끼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표현했던 것 같다. 물론 그중의 어떤 부분은 안 했어야 좋았을 걸 하는 후회도 따르지만. 특히 답장이라는 메아리가 제격이 아니었을 때 허탈하고 하나밖에 없는 자존심이 설 자리가 없이 당황해하고 속상 해 했던 기억도 있다.. 2023. 10. 30.
오리 오리 이 다인 나는 사지 불실로 뒤뚝뒤뚝 걸어다닙니다. 나는 비늘 대신 털이 있어 헤엄을 잘 못칩니다. 그런대로 땅과 물속을 왕래하는 자유 旅券을 가진 셈입니다. 잘 보셨겠지만 손발 가죽 사이에 살가죽이 있어 그러합니다. 병신이지요, 신체 불구이지요. 시치미 떼고 배신하는 사람을 "오리발 내민다"고 한다는데 죄없는 몸뚱이를 그런 뜻에 쓰지 말아 주십시요. 누명을 부둥켜안고 통곡합니다. 2023. 10. 20.
몽마르트 언덕묘지 몽마르트 언덕 묘지                          이 다인  자정은석관을 열고 빠져나온무덤의 뼈들이  축제를 벌이는 시간이다.엘리제궁에 벌어지는 어전 파티나샹젤리제 구석구석화려한 주연에는사람값, 옷감, 나잇값 술값...값이 매겨져 있어틀렸다 틀렸어.싸크래꾀르성당앞 언덕 묘지에밤마다 열리는뼈들의 축제에 가보라.무대도 없이  박수도 없이덩실덩실 뼈들이 춤춘다.하얀 잔을 서로 권한다 독이 없는 술을 마신다 팡테옹의 위고도 와서 한마디 페르라세즈의 뮈쎄도 한가락 낯익은 목소리들이  정감을 자아내던 멋쟁이들이 옳고 그럴 것도 없이 이기고 질 것도 없이  한바탕 살고 있는 뼈들의 잔치에 한 번쯤 가보라. 2023. 10. 8.
편지 편지 이 다인 전화 전보가 진을 치고 있는 콘크리트 숲 속에서 우리는 詩를 빼앗겼다 합성수지같이 편리하고 더러운 목숨같이 질긴 통화는 마침내 비단 같은 말(言)을 밀어재꼈다. 편지 쓸 줄 모르는 식자들이 우글거리는 도심 고지서 선진 인쇄물만 수두룩한 빈 우편함을 동지섣달까지 원망하다가 외로워 죽어 가는 女心 하나 저기 모퉁이 전봇대 아래 가슴을 토하며 쓰러져가네. 2023.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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