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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세이

애인

by 이다인 2024.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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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인

프랑스 소설을 여러 해 강의해 왔다. 많은 작품에서 남녀의 애정문제를 다루고 있다. 책을 읽어 나가며, 주석을 달고 사회, 경제, 정치, 심리 등 여러 각도로 분석을 해보면 대개 소설에 나타나는 '사랑'은 일반적 또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특수 경우의 사건들로 메꾸어져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문학 교수가 정신과 의사, 사회학자가 되었다가 애정 문제 전문가가 되기도 하여 강의해야 할 때도 있다.

불문학에서 꼬린느, 끌레브 부인, 레날 부인, 보바리 부인… 이런 여성 주인공들은 세상이 잘 아는 사랑의 챔피언들이다. 우리 독자들은 그들의 운명에 찬반론을 펴기도 하고, 동정·비판·박수로 애정을 퍼붓기도 한다. 대부분 애정물을 다룰 때는 누구나 재미있게 읽어나가고, 학교 공부를 착실히 하지 않는 학생들까지도 자기 나름대로 한 마디쯤은 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경험하고 있는, 경험했던, 혹은 꿈꾸어 온 문제들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사랑받고 싶지 않은 사람,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사랑의 활력성, 유연성, 무한성, 생명력... 이런 본질적인 것을 누구나 인정하기에 그것의 존재 가치를 인생의 최고 값으로 매겨 둔 것 같다.
 
그렇게 중요하고 섬세한 남녀 간의 문제를 강의실에서 노골적으로 질문을 당하고 대답해야 될 경우 당혹감을 느낄 때도 없지 않다. 어느 날,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불어 단어와 언어 감각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그것을 번역할 경우, 다양한 우리말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것은 연인, 애인, 소첩, 애첩 이런 정도였다. 다시 나는 애인, 연인을 갖고 싶은 심리와 애인, 연인이 되고 싶은 심리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거의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감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런 입장을 원한다고 했으나 소첩, 애첩에 대해서는 모두가 픽 웃거나 경멸로써 극구 싫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다 같이 남녀가 사랑한다는 뜻인데 한쪽은 대환영이고 다른 한쪽은 극구 싫다고 하니 논리적이지 못한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되도록 설명해 보라고 했다.

아주 매끈한 논리는 아니었어도 비슷비슷하게 한 마디씩 하는 대강의 뜻은 '소첩', '애첩'이란 말은 여성이 비인격화되었던 시대의 남자가 사랑을 느끼면 지불하고 소유해 버리던 구시대의 낡은 인습이 멍에를 짊어지고 있는 척박한 땅의 산물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애인', '연인'은 서로 동등한 인격적인 만남이며 여성이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있다는 언어 감각의 차이점을 들었다. 전반적으로 한국 역사 속의 사회 제도, 의식 구조, 경제 구조를 들어서 설명을 해오고 있었다. 사실이다.

현재 한국 여성 중에 제대로 정신 있는 사람이면 아무리 미남이고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남성이라 할지라도 그의 소첩, 애첩이 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예속 관계이며 굴욕과 자멸로 엮어지는 노예 상태의 입장이다. 더더구나 과거에도 상류 사회나 좋은 가정의 여성이 남의 첩이 된 적은 거의 없다. 비록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 사랑했다 할지라도 경제적으로만은 남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던 시대의 역사적인 증명들이 비일비재하다.

반대로 '연인', '애인'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애틋한 그리움 같은 것으로 머물며, 축복하고 싶은 행복한, 감격스러운, 감미로운... 이런 긍정적 형용사군들이 에워싸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다. 애인, 연인이란 단어는 독립된 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이며 두 사람 이외 어떤 제3자나 순수하지 않은 제요소들이 끼어들 수 없는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애인은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선택하는 적극적 관계이기 때문에 '상호 보완' 내지 '상호 상승’ 관계로 발전해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 안주나 정지 상태의 안일하고 소비적인 행복에 머물 수 없으며 서로 계속 노력해야 한다. 정지는 죽음이다. 삶이란 '전진 아니면 후퇴'의 운동이기 때문에 머무를 수 없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내가 가르치는 많은 젊은이들은 모두가 '애인이고자', '연인이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여인이면서, 인간이고자 한다.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독립된 자유인으로서 주체이고자 하는 의지이다. 나는 그들의 사랑의 꿈이 비바람이나 맹수들을 만나 꺾이지 않기를 빈다.
 
시끄럽지 않게, 지혜롭게 살되 무덤 같은 조용함이 아니라 자유자재로 왕래하는 삶 속의 평화를 영위하기를, 사랑은 현실이며 꿈이어야 하는 이중성을 지니며, 사랑은 불변하고자 하나 가변하고 마는 이율배반성을 지닌 묘한 것임을 터득할 줄 아는 성숙하고 아름다운 '애인'이 되기를 빌어 본다.

'어'와 '아'의 뉘앙스가 다르듯이 애인과 첩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은 같은 것이나 천국과 지옥만큼 다르다. 사랑은 수천 년 전부터 문학에서 취급된 진부한 테마이나 언제나 흥미롭고 새롭다. 사람의 얼굴이 틀리는 만큼 사랑의 색깔, 소리, 동작, 형태, 느낌이 다 틀리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장 멋있는 애인을 만나기를 바라며, 멋진 애인이 되는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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