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회
음악회라는 말 한마디에는 행복한 시간, 우아한 공간, 향기로운 사람들, 그리고 후감이 좋은 정화된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음악회장에 가는 시간만큼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지저분한 감정으로 어지러워졌을 때 혼자 혹은 정신이 우아한 사람과만 가는 것으로 정하였다.
일요일 예배 보러 가는 것과는 또 다른 경건함과 호젓한 즐거움이 있다. “신에게로 가는 길은 설교가 아니고 음악의 날개를 타고 간다"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확실히 음악은 아름다운 심성으로 가는 길로 인도하는 것 같다.
우리는 유성기 시대, S.P. 레코드, L.P. 레코드 시대를 거쳐 CD 레코드와 On Line 시대에 까지 와 있다. 그러니 나의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음악 감상하는 방편의 변화란 엄청난 것이다. 나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무엇이든지 알고 싶어 하는 지적 호기심이 컸던 여학생 시절에 음악에의 갈증이 가장 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여학교 때 바이올린을 좀 배워 보았지만 좋아했던 만큼 시간 예술인 음악에는 별재주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용기 있게 물러서 버렸다. 그러나 음악에의 갈증은 쉽게 가셔지지 않아서 가끔 즐겨 듣는 것으로 위로를 받는 형편이다. 그런데 이젠 내가 젊었을 때와는 달리 음악을 어디에서나 아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음악의 종류도 다양하며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저마다의 일가견을 가진 수준 높은 애호가들도 많다. 이렇게 편리해지고 풍성해진 덕으로 집에서, 연구실에서도 음악을 듣고 즐길 수 있지만 이따금 음악회에 가는 맛은 전혀 다르다.
아직도 음악회에 가는 날은 마음이 설렌다. 무대 위에 오른 음악가가 비록 유명 레코드에 취입된 일류 연주가들보다 어림없이 서투른 솜씨라 할지라도 음악회장의 분위기 하나만은 물씬한 매력이 넘친다. 연주가가 훌륭하고 음악이 아름다울 때는 내 몸에 날개가 솟아나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소박한 시골학예회 같은 것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음악회를 보러 다녔다. 아름답고 공명이 가는 음악을 들었을 때 그 행복한 후감은 “인생은 살아야지, 이야기하면 모든 것이 변질한다”라고 한 것처럼 가서 직접 보고 듣고, 느껴야 하는 행복임을 알게 해 준다.
그리고 음악이 어느 정도 인간의 마음을 지고한 경지로 끌어올리고 선하게 만드는 지도 알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우리 사회를 순화시키는 길은 무엇일까라고 물어 온다면 병원, 교회나 절, 음악회장이 각각 3분의 1의 비율로 잘 배려되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형무소가 줄어들 것이다.
핀란드의 국회가 시벨리우스에게 종신 연금을 수여할 것을 가결하고 그의 악상을 방해할까 봐 그의 집 문 앞을 지나는 자동차는 클랙슨을 누를 수 없도록 하였는가 하면, 또 그 부근 상공에 비행기의 통과를 금지시켰다는 것을 읽은 나는 핀란드 국회가 그 이상 멋쟁이로 보일 수가 없었다.
음악회에서 눈으로 보면서, 귀로 듣고 있으면 평소 때 생각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그중에는 쇼팽과 죠르쥬 상드, 슈만과 클라라의 이야기, 우정, 사랑, 죽음, 그리고 내 삶과 필연적 관계를 맺은 얼굴들이 줄지어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 친구 중에는 음악을 매일 4,5시간이나 듣는다는 적극적인 애호가도 있다. 그의 인간됨됨이는 틀림없이 깊고 선량하며, 영혼은 어란처럼 투명하고 맑으리라 믿는다. 좋은 음악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우리 인간 심성의 여과역을 맡아 영혼을 정화시키고 고상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유럽의 중요한 대성당, 성 오페라좌에서 열심히 들었던 그 소리들과 그 우아했던 분위기들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으며, 어느 한여름밤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같이 들었던 연못 속에 가설된 무대 위의 Jorge Bolet의 연주 또한 무성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세계적인 예술가 초청 연주가 거의 서울에서만 행해지는데 이제 지방에서도 이런 문화적인 혜택을 함께 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초대가 두 종류 있다. 좋아하는 친구 화가들이 베르니사주(Vernissage, 전야일)에 초대해 주었을 때 감격한다. 또 괜찮은 사람이 음악회에 초대할 때 기쁘다. 물목(物目)은 그리 변변치 못하나 이것저것 입어 보고 장신구도 걸어 보고 화장, 향수 뿌리는 것도 잊지 않는 처녀 같은 설렘이 그럴 때 일어난다.
그것은 단순한 여자로서가 아니라 예술과 예술을 사랑하는 격이 높은 사람들이 모이는 품위 있는 공간에 대한 예우의 심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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