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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세이

수정 목걸이

by 이다인 2024.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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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목걸이

 

주고받는 것에서 정이 싹튼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이 순수할 때 우리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악취 고인 마음에 향수를 뿌리고, 탐욕덩어리로 굳어진 얼굴에 분을 발라도 이미 순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고받는 것은 언제나 불쾌한 후감(感)이 남는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빌딩이나 보석을 주렁주렁 받지는 않았으나 누구보다도 많은 교육 유산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유난히 교육열이 많으셨던 나의 부모님은 남아 여아를 가리지 않고 나 하고 싶은 만큼 교육을 받는 데 조금의 불편도 없도록 최상의 배려를 해주셨다.
 
지금 나도 내 아이들이 공부를 끝낼 때까지 어떤 어려움도 주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나의 이 정신이 어디에서 왔는가 가끔 생각해 보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내 부모님의 정신 유산이다. 이런 종류의 주는 행위는 순수함의 정수(精髓) 같은 것이다. 한 송이 목련을 피우기 위해서 스스로 좋은 거름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비록 내 경우만이겠는가. 그런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잊을 수 없는 선물 기억이 나에게 하나 숨어 있다.

내가 중학교에 처음으로 입학하고 난 뒤 어느 날, 어머님은 장롱을 정리하시다가 동그란 예쁜 상자 하나를 내 앞에 내놓으시면서, 이제 너는 여학생이 되었으니 이것을 너에게 주겠다고 하시면서 뚜껑을 여셨다. 새털 같은 하얀 솜이 깔려 있는 위에 아주 예쁜 수정 목걸이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것을 내 목에 걸어 주시고 젊은 흰 살에 참 잘 어울린다고 하시면서 나를 거울 앞에 가 보라고 하셨다. 나는 영문을 몰랐으나 우선 예쁜 것을 주셔서 좋아했다.

그 후로 여름이면 집에서 원피스 같은 것을 입을 때 가끔 목에 걸어보았다. 특히 대학에 들어가면서 나는 자주 그 목걸이를 걸었다. 참으로 정교하게 깎여졌고, 요즘 많이 나오는 모조품과는 다른 것이 목에 걸면 차디차서 여름에 시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님은 어째서 그 수정 목걸이가 나에게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 연유를 설명해 주셨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여행을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혼자 금강산에 가신 적이 있었는데, 그곳 어느 곳에 가니 천상에서 내려온 것 같은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할아버지가 돌을 손으로 일일이 깎으셨고 그 구슬을 모아 목걸이를 만들어 팔았다는 것이다. 그것을 구경하다 말고 어머니 생각이 문득 떠올라 하산 전에 자전거를 팔아 가지고 그 목걸이를 사서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있다가 나의 젊은 어머님께 금강산 기념 선물을 하셨다는 것이다.
 
이따금 아버지 살아 계실 때 그 목걸이를 걸어 보고 싶어 하셨지만 층층시하 젊은 며느리 생활에 어울리지도 않았고, 또 혹시 할머님의 눈에 거슬릴까 겁도 나고 해서 이래저래 한 번도 마음 놓고 목에 걸어 본 적이 없으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목걸이를 장롱 깊숙한 곳에 남편의 순수한 애정의 상징으로만 간직해 오신 모양이다. 그 시대에는 남녀 간의 애정이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금물이었다고는 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한 번도 목에 걸어 보지 않은 그 목걸이를 생각하시고 아버지는 얼마나 서운하셨으며 시대를 원망하셨을까 싶다.
 
그런 곡절 있는 목걸이가 내 시대에 와서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주인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도 그 가치를 백분 발휘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는 중에  또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나의 과년 해 가는 딸 이 탐을 내는 눈치다. 그러지 않아도 나는 딸에게 줄 것을 오래전에 마음먹었다. 그 의미 있고 귀중한 유산을 가질 만한 자격(?)을 가질 훈련이 되어있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딸에게 이 모든 설명과 더불어 물려주었다.
 
나는 가끔 내 딸이 그것을 잘 보관하고 있는지, 또 그것을 걸고 나갈 만한 장소와 때를 맞추어 그 귀중함에 걸맞은 감각을 살려서 소화시키는지 보지 않는 척하면서 관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애는 나의 속마음을 일찌감치 눈치채기라도 한 것처럼 다행히 그것을 소유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되어 가고 있어 여간 마음이 흐뭇하지 않다.

사실 목걸이는 반지나 팔찌 같은 것에 비해 여성의 미적 감각을 더 까다롭게 요구한다. 반지와 팔찌는 손과 팔의 동작에 따라 숨겨질 수도 있으나 목걸이는 얼굴과 가장 가까운 거리와 몸체 중앙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항상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장소와 때, 의상과 몸가짐이 두루 어울리지 않으면 안 한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까다로움이 있다.
 
내 어머니는 나에게 물려주시는 것까지만 신경을 쓰셨던 편안하고 마음 좋으신 엄마였으나, 나는 그것을 주고도 혹시 소홀히 취급될까 봐 늘 눈여겨보는 까다로운 엄마가 되어 버린 셈이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나의 이 까다로움의 태도를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것은 값 비싸고 예쁜 물건이기 이전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로부터 내려온 귀중한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팔찌의 기원이 노예 시대에서 시작되었고, 반지가 결혼과 약혼이라는 두 사람의 약속에서 비롯되었다면, 목걸이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모르지만 나는 '자유의 상징'이 있는 장신구로 생각해 본다. 나의 아버지의 수정 목걸이는 빛깔과 돌의 성격, 모양이 너무나 청초하고 아름다왔으며 꼭 목에 걸으라는 강요의 뜻이 없었던 한 남성이 사랑하는 부인에게 준 선물이었다.
 
그리고 철저한 유교 가정에 시집온 나의 젊은 어머니가 오랫동안 인습의 굴레에서 무서운 시집살이를 하던 긴 세월 동안도  '밤이 어두워지면 새벽은 더 가까이 올 것이다' 라는 희망을 가지고 장롱 속에 꼭꼭 숨어서 자유를 기다렸던 목걸이였다. 금강산에서 태어난 그 수정 목걸이는 이제 3대째 주인인 딸에게 가서 세상이 좁은 듯 세계인에게 과시하고 다닌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질긴 나이론 실이 없었던 시대라 명주실로 구슬이 꿰매어졌기 때문에, 어느 날 실이 삭아서 구슬이 떨어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깨지고 잃어버릴 뻔한 수난을 겪었다. 구슬을 주워 담은 딸과 나는 파리 보석상에 가서 수선을 시켰고, 혹시 원형에 이상이 없나 조바심을 가졌던 딸이 깨끗하게 꿰어진 목걸이를 목에 걸면서 그것의 주인이 된 우쭐하고 행복한 기분을 영문도 모르는 그 서양 보석상 남자에게 금강산 자랑과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신나게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목걸이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나에게 잔잔한 행복의 영역으로 남는다. 그리고 자유의 상징이 되는 여성 장신구로 생각된다.

나의 목걸이가 손상되지 않고 3대 아니라 3천대까지라도 남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 물건의 주인이 될 생명들은 한결같이 나의 어머니처럼 멋있는 한 남성에게 일생 동안 사랑받는 여인이 될 행운이 있어 주기를 빌며, 수정의 무색 투명하고 우아한 모습처럼 순수하고 품위를 지닐 것이며, 그 세공의 정교함처럼 세련된 감성을 소유할 것을 바란다. 우여곡절의 시대를 겪으면서 반세기나 버티어 온 것처럼 참된 인내와 지혜가 있는 주인이 되어 줄 것을 당부해 본다.



 
 

수정 목걸이
수정 목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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