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의 대륙, 남극으로/ 아르헨티나 ( 2 )
다음 정박지는 마젤란이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름인 남파타고니아 지역 푸에고섬에 있는 '세상의 끝'인 불모의 땅으로 6만 명의 인구를 가진 우수아이아 (남위 55도) 마젤란 해협과 비글수로를 지나며 배는 속도를 줄이며 작은 항구에 들어섰고 승객들은 관광지를 선택하고 일단 시내로 올라간다.
내 시선을 제일 먼저 끈곳은 아르헨티나의 시골 빈민촌 사생아 출신인 젊은 퍼스트레이디였던 에비타 에바 페론의 작은 공원과 그녀의 흉상이었다. 나는 잠시 노동자와 서민을 위해서 이룩해 놓은 그녀의 엄청난 귀한 업적을 되새겼고 뮤지컬 영화 <에비타>에서 들었던 노래 'Don't cry for me Argentina' 를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숙연해져서 옷깃을 여몄다.
한나절 시내를 기웃거리면서 돌아다녔다. 도시를 보호하듯 건장한 사내 같은 웅장한 산, 그리고 호수 같은 비글, 그 청정한 자연을 보고 있노라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1906년에 시작했다는 유명한 박물관을 겸한 빵 가게인 Ramos Generales에 들러 내부를 구경하고 빵을 사고 점심 식사는 식당에 들러 이곳의 특산물인 메뉴아사도(양고기구이)를 꼭 맛보라는 권유를 따랐다.
이 도시 성장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인 죄수 유형지인 "교도소 박물관'을 보러 갔다(1948년까지 운영), 샌프란시스코의 엘커트래즈섬, 남아공의 로펜섬과 함께 이곳 교도소에는 악명 높은 범죄자들만 600여 명을 380개의 방에 수용했다고 한다. 한 건물은 원형을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었다. 2차 대전 때 유대인 포로들처럼 노랑, 파랑 줄무늬 복장을 한 죄수 사진들과 실제로 사용했던 그들의 도구와 소품들은 시간을 멈추고 있었다.
그 혹독한 땅에서 철로를 깔았고 잠잘 감옥을 그들 손으로 지었고 벌목하여 땔감을 준비하며 탈출도 시도했다는 수많은 눈물겨운 일화를 들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진 다음 일정을 위해 버스에 올랐다. 다행히 교외로 나가 자연 속에 걷기 경관체험으로 정신이 좀 맑아졌다.
뿔뿔이 흩어졌던 승객 모두 선상에 다시 돌아오고 승객들의 일상은 재개되었다. 12시 정각에 혼 곶(Cape Horn)을 경유하는 기념행사가 갑판에서 벌어졌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샴페인 잔을 나누고 있었고 선장의 간단한 스피치와 더불어 "The Cape Horn and Antarctica Certificate"라고 쓴 기념 증명서 한 장을 주었다. 파나마 운하(1914)가 개통되기 전 까지는 탐험꾼들과 무역선들은 모두 변덕스러운 날씨와 난폭한 파도를 무릅쓰고 이곳 혼 곶 '죽음 바다' 를 꼭 거쳐야 했을 것이다.
이제 Celebrity호는 태고의 비밀을 안고 시간이 퇴적암으로 머무는 비경의 공간으로 가고 있다. 거친 물결만큼이나 내 정신은 송두리째 긴장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털모자 장갑 옷들을 모두 끼어 입고 해풍을 머금은 갑판으로 하루에도 몇 번이고 나가 배 양끝을 오가며 벌써 지구촌 이웃이 된 사람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매일 선상 산책을 즐겼다. 그러나 문득문득 육지의 사소한 일상과 가족들이 그리웠으나 좋은 통찰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인간을 거부하는 설원의 대지 여기에는 밤과 낮의 경계가 없고 빙산, 빙봉, 빙하, 유빙, 빙원이란 이름으로 차별화되는 설국일 뿐이다. 2주 간동안 배에 갇힌(?) 승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배에서는 매일매일 이벤트가 다양하다. 밤마다 극장의 화려한 쇼, 선상 댄스파티, 음악, 독서, 골프스윙연습, 카지노, 마사지 등이다.
내가 가장 많이 이용했던 프로그램은 아침 명상, 요가 클래스였다. 낮에는 탁구대가 있어서 탁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땀을 흘리면서 즐겼다. 내가 소녀시절에 반에서 탁구선수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들은 한국 여성들은 공을 다 잘 치는 것 같아요 라며 칭찬을 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박 세리와 후진들의 활약이 강하게 각인되었나 보다.
특히 자연생태학 은퇴교수 초청 강좌는 아주 알차고 유용했다. 아문젠의 성공적인 큰 족적과 스콧과 새클턴의 남극점을 찍지 못한 억울한 사연, 그들의 죽음과 생존자들의 눈물겨운 귀환 같은 것을 그때 상기하기도 했다.
해안을 돌면서 몇 번 상륙하여 자연생태를 관찰할 기회를 주었다. 둥둥 떠다니는 빙산들이 가까이 지날 때는 혹시 부딪치지는 않을까 당황하고 두렵기도 했다. 전 세계 얼음의 86%, 한국의 60배 되는 면적 연평균 마이너스 34도, 바이러스도 끼어들 수 없는 청정함, 천연석유 가스를 비롯한 자원에 대한 지식을 익히며 초등학생처럼 신기하게 유심히 재미있게 관찰하고 다녔다. 다행히 가지고 온 원거리 쌍안경을 써먹을 일들이 많았다.
비록 장보고와 세종 과학기지가 있고 12개국에서 경쟁적으로 남극 연구기관이 설치되어 있지만 원주민이 없다 하여 여기서는 인간이 주인이 아니다. 여기의 모든 생명체는 다양한 펭귄, 바다표범, 고래, 바닷새, 활공하는 앨버트로스, 대형 오징어, 큰 고래 한 마리가 단 번에 4톤을 먹어치운다는새우크릴등 수백 종의 생물들이 살고 있는 이 생태계에서는 인정사정없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에 의해 가장 강인한 자만 살아남을 뿐이다. 신비스러운 순백의 대지의 매서운 눈보라까지도 미적 감동으로만 바라보던 나의 감상적인 생각은 그 치열하고 강인한 생명력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후 남극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먹을 것을 사냥하러 간 어미를 기다리는 2달 동안이나 새끼를 품고 사는 황제펭귄의 부성애와 흑등 숫고래의 긴 구애의 노랫소리를 멀리하고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품어 기르는 일에만 열중한다는 암고래의 특별한 모성애였다.
또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나에게는 보들레르의 앨버트로스를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50일 동안 쉬지 않고 창공을 날 수 있고 자면서도 난다는 새, 4미터나 되는 날개를 달고 사람처럼 90살까지 살 수 있고 새우크릴을 주 먹이로 삼고 10년에 알 한 개를 낳는다는 이 새는 갖은 힘을 다해 천적으로부터 새끼와 둥지를 보호한다고 한다. 앨버트로스는 지상에서는 꼭 바보처럼 보인다. 꿈을 먹고사는 현실성 없는 천재시인 보들레르는 진정 앨버트로스의 형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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