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보석, 우루과이 (Ralli 미술관과 Casapueblo 미술관을 찾아서)
떠나기전
몇 년전 어느 날 저녁 비시 (Vichy, 프랑스 중부 소도시)에 사는 프랑스 친구 Anne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다음 주 우루과이로 떠나니 한참 동안 못 보겠다는 소식과 안부에 관한 전화였다. 그녀의 설명을 들어보니 그것은 그녀에게는 꽤 중요한 인생변화 이었다.
어느 여름 그곳에 살고 있는 먼 친척 한 분의 초대를 받고 바캉스를 떠났다가 첫눈에 반해 집을 하나 샀고 프랑스와 우루과이를 반반 오가며 은퇴 후 노후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녀는 동경 프랑스 대사관에서 10년간 근무했고 여러 나라를 경험한 프로 독신 외교관 출신이다.
그녀의 축적된 고도의 안목으로는 무엇을 쉽게 결정하지 않을 텐데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 후 가끔 보내주는 소식은 아주 긍정적인 내용과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가면서 거대한 땅 브라질과 만만찮은 아르헨티나 사이에 끼어 있는 대서양 쪽 아주 작은 이 나라에 나도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일찍이 브라질을 2번이나 여행했지만 바로 아래 몬테비데오에 가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볼거리 알 거리가 별로 없는 하찮은 남미의 작은 나라로만 내 머릿속에 잘못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여행도 남미의 파리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목적이었지만 이번에는 꼭 몬테비데오를 들리기로 했다.
16세기 초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스페인은 수세기를 거치면서 이들 몬테비데오를 건설했다. 막상 이 나라를 정복해 보니 당시 그들이 찾고 있던 절대 가치인 '금과 은'이 부재하여 실망을 안겨준 곳이었다. 산과 숲이 없는 땅이니 광물이 있을 리 없었다. 평평한 초지가 광활하고 강들과 석호가 있어 농업과 축산업에 적합한 땅임을 눈치챈 정복자들은 말과 소, 양 떼들을 유럽에서 실어 날랐다.
그것이 오늘날 'Estancia La Rabida'의 유명한 카우보이 (Gaucho)의 자랑스러운 삶을 가능하게 했다. 축구장 3600개 크기 땅에 600마리 말을 다루는 카우쵸들의 현장을 가이드는 말 타는 시늉을 하면서 그곳과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되어 있는 Colonia 방문을 권유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라틴 미술관인 랄리 미술관( Museo Ralli)과 카사푸에블로 미술관 (Casapueblo/스페인어로 대중의 집)를 보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푼타 델 에스테 (Punta del Este)로 가는 길
버스로 약 2시간이 소요된다는 두 미술관을 보러 가기 전에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것들을 거쳤다. 시민 광장 주변이 모두 볼만한 것으로 몰려 있었다.살보 궁전, 공원, 솔리스 극장, 국회의사당, 이 나라의 독립의 영웅 호세 헤르바시오 아르티가스(Jose Gervasio Artigas / 1764~1850)의 기마상과 영묘, 이 모두가 도시 심장부에 보란 듯이 당당하게 버티고 있었다. 특히 솔리스 극장 건축양식에서 풍기는 자태가 과거 누렸던 자들의 풍요했던 삶의 질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 그 리고 유일하게 남미에서 백인혈통이 88퍼센트가 되는 나라이기도하다.
미술관이 가까이 있는 남미 최고의 휴양도시 중의 하나 푼타 델 에스테 (Punta del Este)로 가는 길은 지중해 어느 멋진 해안도로처럼 풍광이 아름답다. 소나무 유칼리나무들이 보이고 해변 모래사장에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남녀들, 고급 호텔, 예쁜 부호들의 별장들, 항구에 메어놓은 요트, 카지노, 깨끗하고 세련된 이모저모가 눈에 들어왔다.
길이 반듯하고 나무들이 우거진 고급 주택가에 우리를 내려놓으면서 띄엄띄엄 우거진 나무들에 가려진 집들을 구경시키며 이 집은 아르헨티나의 재벌 아무개의 별장, 저것은 브라질의 유명 정치인 누구누구의 것이네 하면서 "우리나라 은행법은 스위스처럼 세계 어느 누구든 돈을 예금하면 실명 비밀보장을 철저히 해줍니다.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의 신뢰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불안정한 주변 이웃 나라들의 검은돈 흰 돈이 함께 많이 흘러 들어옵니다라고 농담조로 설명했다.
랄리 미술관( Museo Ralli)
드디어 우리는 목적지 인 랄리 미술관( Museo Ralli)에 도착했다. 그때가 2월 초였는데 혹한도 혹서도 없는 기후라 했는데 하늘은 쨍쨍하고 꽤 더운 날이 계속되었다. 한적한 교외 분위기 지대에 얹힌 하얀 벽 붉은 기와의 스페인 풍의 나지막한 건축물, 미술관이 친숙하기 그지없다. 파리나 런던 같은 대도시의 미술관 앞에 밀려드는 관람객들 틈에서 숨이 막힐 것 같은 분위기와는 달리 자유롭게 여유를 가지고 관람할 수 있어서 한여름에 순면이나 모시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전시 내용은 달리, 모디글리안, 보테로, 벨기에의 마가레트 같은 20세기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것들이었다. 그날 나에게 새로운 화가는 젊은 나이의 다니엘 카플이었고, 그의 작품 '탱고'는 쉽게 다가오는 가장 라틴적인 정체성이 요동치는 그림이었다. 그들마다 특이한 이미지 표출 혹은 강열한 색채 그리고 의도적 왜곡과 변형 등으로 논리 이성 철학 모두가 어떤 사조나 체계에 도식적으로 처리하기가 힘든 작가들의 강한 개성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작품 이해가 어려운 작가들이 아닌가 싶었다.
무질서 속의 내면의 질서, 부재 속에 존재 가능한 철학, 미학 그리고 꿈과 무의식 저변의 환상적인 경지, 이런 사유와 이미지로 채워진 미술관 내부가 긴장되거나 전혀 섬뜩하지 않고 뚱보 그리기 배테랑 보테로, 사슴처럼 목이 긴 여자 그리기에 이력이 난 모디글리안, 멀쩡한 인물화에 사과, 보자기, 파이프 등으로 얼굴을 가리기 좋아하는 마가레트를 보아온 관객들이라면 이 미술관이 차라리 익살스럽고 광대의 이면의 얼굴을 찾아보게 하는 재미있고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임을 체험할 것이다. 나는 한없이 행복했다. 특히 야외 조각상들은 저마다의 몸짓으로 나만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뒤안길의 고뇌 상처 갈등 그리고 희망을 소곤소곤 들려주지 않았던가.
이 미술관은 1988년 개장되었고 설립자는 이태리와 스페인의 상류층 가계의 혈통을 이어받은 Herry Recanati와 그의 부인 Dr. Martine Recanati이다. 그는 그리스에서 태어나서 부친 사업을 물려받아 승승장구 성공하여 세계 여러 도시 스위스 런던 파리 뉴욕 이스라엘 남미에서 활동한 은행가, 미술수집가였다. 1980년대 사업을 정리하고 랄리 미술 설립을 목표로 첫 삽을 뜬 것이 바로 이곳이다.
지금은 이곳을 포함하여 칠레, 이스라엘 2개, 스페인 도합 5개의 라틴미술관을 본인 타계 후에 재단에서 운영하며 모든 사람에게 입장은 무료이다. 누구에게도 재정적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창설자의 이념이고 상업적 성격을 철저히 배제한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서적코너, 커피숍, 식당이 없고 방문객들의 사진 촬영이 허가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이런 멋진 분들이 가끔 있다. 우리나라의 삼성, 엘지 등의 오너들도 이런 일을 한 번쯤 할 것이라고 기대 했었는데 전혀 현실성이 없는 것은 아닌것이 우리의 문화 수준도 이제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Casapueblo 미술관
여기 또 하나의 해변 쪽 미술관은 우루과이의 세계적 예술가 Carlos Paez Vilaro의 작업실 겸 전시관인 Casapueblo가 각계각층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이 미술관을 직접 설계한 건축가요 여러 아프리카 나라를 여행하여 그림 조각 도자기 벽화 영화 문학 전반에 창작과 출판에 열정을 퍼부었고 피카소, 달리, 칼터 같은 유럽작가들과 교류하며 1968에는 프랑 스에 다히아라는 영화사까지 세워 'Batouk'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여 칸느 폐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나는 일찍이 'Casapueblo'같은 기상천외한 건물을 세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거기다가 단순 미술관이 아니라 작가가 살면서 거기서 작업을 하고 일부는호텔의 도서 출판 각종 문화행사를 하며 년간 1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기록하는 명소이며 매일 일몰에 작가가 지는 해에 대해 고별인사를 하는 '태양 의식'에서 작가의 해에 대한 육성 시 낭송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들어있다.
그의 작가 생활 50년간의 작품 소장소이며 삶 전부를 한 자리에 축약해 둔 대 예술가의 궁전 그 이상과 그 이하도 아니다. 이 미술관 앞에서 나는 독일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축제극장이 문득 생각났다. 그도 역시 생전에 자기 작품을 공연할 극장을 짓지 않았던가. 그리고 당대의 인물들인 톨스토이, 니체, 차이콥스키, 빌헬름 1세까지 개관 공연에 참석시켰다고 하니...
살아생전에 자신의 성공을 누리는 예술가가 그리 많지 않건만 출렁이는 바다를 눈 아래 두고 동화나 어느 전설의 공주가 사는 것 같은 곡선으로만 이루어진 하얀 이 특별한 미술관 Casapueblo 에 흠뻑 취해 발길을 돌릴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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