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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外

하와이 기행

by 이다인 2023.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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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하늘에는 불꽃을 쏟아 내는 공습기가 독기로 윙윙거리고, 바다에는 엄청나게 거대한 배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사람들은 엎치락 뒤치락하다가 영락없이 출구 없는 불더미 속에서 타 죽어 가야 하는 생지옥의 참담한 장면을 화면을 통해서 여러 번 보았다.

바로 그 장면은 유명한 진주만 폭격이란 것을 역사에서 잘 익혀 왔지만 너무 어처구니 없는 전쟁놀이 같아 사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나의 묘한 심리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Pearl Habor (진주만)'라고 똑똑히 써진 도로 표시를 따라 옛 지옥의 시대를 확인하러 가고 있는 중인 셈이다.

도로 표시대로 길을 돌아 한참 들어가니 방문객을 위한 큰 주차장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믿기 어려운 사실 확인이라도 하듯이 어떤 사람들은 해변 가까이 세워 둔 설명대에 붙어 서서 읽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망원경을 통해서 멀리 그 당시 불바다를 보고 있었다.

일요일, 새벽 6시(1941년 12월 7일) 진주만 하늘에 나타난 일본 저공 전투기들이 삽시간에 2,341 명의 생명을 앗아간 사실로 된 너무나 명확한 역사의 장소이다. 그러나 지금은 태평양에서 가장 평화롭고 하와이의 해맑은 햇빛이 쏟아지는 아름답고 비단 같은 바다가 한치의 분노와 원망도 없이 유유히 출렁이고 있다.
 

'Pearl Habor (진주만)'공습
'Pearl Habor (진주만)'공습


영원한 불구가 되어 버린 애리조나 호의 녹슨 거구의 전함만이 물속에 머리를 삐죽이 내민 채 엎드려 있고 거기에 걸쳐진 기념관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박물관, 성공실 등은 비극의 증인으로 버티고 있을 따름이고 애리조나 함 위에서 죽은 수병과 해군의 이름이 새겨진 넓은 대리석 벽 앞에는 여러 사람들이 침묵으로 서성거리며 '역사'라 는 것을 골똘히 철학하고 있는 것 같았다.

1962년 기념관 건축 이후로 수백만 명의 방문객이 그곳을 다녀갔다고 하니 아직도 진주만의 불행이 얼마나 세계인들의 관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지 알 만하다.
 

기념관
기념관

 


애리조나 함 전사자 헌화
애리조나 함 전사자 헌화

 

하와이는 일본인들이 오래전부터 탐내고 침을 흘리던 곳임은 말할 것도 없고 무슨 값을 치르고라도 소유하고자 했던, 한마디로 욕심의 땅이다. 영국 해양 탐험가 쿡 (Cook)이 처음으로 이 섬을 발견(1778 년)한 이래로 미국, 프랑스, 스페인 등 여러 종족들이 눈독을 들이고 원주민을 위협했으나 결국 미국인의 것으로 넘어간 땅이다.

그 당시 하와이 원주민들의 왕실과 왕궁을 몰아낸 미국인이나, 애리조나 함대를 급습하고 이 섬을 고 싶어 했던 일본인이나 심리상 별로 다를 것이 없지 않나 싶다. 단지 솜씨가 약간 달랐을 뿐이라고 생각 된다.
 

기념관 전경
기념관 전경

 


이제 진주만은 바다와 하늘의 물빛을 형제처럼 같이 하면서 언제 그런 비극이 있었던가 하는 식으로 말끔히 다듬어진 표정으로 누구에게나  미소 지으며 손짓한다. 애리조나 기념관은 하와이 손님의 발길을 끌고 있는 제1의 관광 코스가 되고 있다. 오아후 섬 지도 위에는 호 놀룰루 비행장에서 약간 서북쪽에 표시되어 있다.

내가 투숙하고 있는 와이키키 해변가, 호텔들이 운집되어 있는 칼라카우아(Kalakaua) 긴 중심가 주변은 그야말로 현대인의 휴양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있고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다. 진주만에서 느껴졌던 진지한 상념 과는 아랑곳없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과 감각적인 쾌락이 웅성웅성거리는 별천지다.

여기는 비록 성조기가 주인인 땅이나 나와 같은 피부를 가진 황색 사람들이 진짜 주름잡는 주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거리마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과, 그 수많은 기념 가게들의 물건 파는 사람들은 거의가 동양인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호텔 수영장 야자수 그늘 밑에 번 듯이 누워 몸을 요리조리 뒤집어 가면서 굽고 있는, 마치 석쇠 위 생선을 노르스름하게 구워 가는 동작을 연상시키는 그들 대부분은 백인 들이었다.
 

하와이 beach
하와이 beach

 
그러면 하와이의 백인은 휴양을 즐기며 돈을 뿌리는 측이고 동양인들은 그것을 챙기는  것에 열을 올린다는 이야기 인가?  일본은 패전으로 하와이를 점령하지 못했으나 인구 분포나 경제적으로 하와이에 상당한 영향력 을 미치고 있는것 같았다.

첫날밤 나는 호텔 방 발코니 등의자에 앉아서 다이아몬드 헤드 (Diamond Head) 산언덕 중천에 크게 떠 있던 유순하고 수줍어하던 달을 오랫동안 선량한 정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이아몬드 헤드 (Diamond Head)
다이아몬드 헤드 (Diamond Head)

 

뜬 구름처럼 돌아다니다가 바람 따라 내려온 철새 등에 업혀 온 한 아이처럼, 아무 계획도, 기대도 없이 이렇게 불쑥 아름다운 화관과 레이를 건 홀라 여인들이 향을 진동시키는 땅에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것이 꿈만 같은 밤이었다.

이따금 지나가는 오색등으로 장식된 밤 유람선은 칠흑같이 검은 밤바다 위에 꽃바구니처럼 떠 있다. 검고 긴 머리를 마음대로 풀어헤친 훌라 아가씨들의 요정 같은 자태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섬 구석구석에 그들이 근사한 밤잔치를 벌이고 있을 것 같아 마치 초대된 손님처럼 나는 주섬주섬 가벼운 옷을 입고 숄 하나만을 들고 방문을 나서 본다.

아니나 다를까 야시장의 남녀들, 그 많은 다국적 식당, 해변가 벤치의 속삭임, 어디선가 이따금 들 려오는 절규하는 듯 트럼펫이 목을 푸는 소리, 일체감과 분열감이 동시에 교체되는 섬의 자정이다.

 

해변
해변

 

 

해조(島)의 발자국들만이 모래 위에 남아 있는 이른 아침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마음에 드는 좋은 아침 식사를 일찍이 본적이 없다. 뷔페로 차려진 테이블 위에는 서양인들을 위한 메뉴가 다양하게 있고, 두부를 띄운 미소국과 김밥이 있는가 하면, 열대의 진귀한 과일들이 풍성하게 쌓여 있었다.

거기서 먹은 망고나 아보카도의 맛 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고, 하와이 과육의 향기도 내 미각에 오래 남는다. 태평양의 파도가 쉴 새 없이 몰려와 아침 인사를 하고, 옥외 수영장 주변 식탁에서 아침을 먹는 기분은 그대로 아담과 이브 때 놀이의 재현이다. 소금기 섞인 미풍이 스쳐 가는 아침 시간은 이 섬의 특별 한 축복이다. 몇 달이라도 이런 풍요로운 자연의 품에 안겨 사치스러운 시간을 누리고 싶었으나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무지개 해변가
무지개 해변가

 

 

작은 차를 하나 세내어 오아후 섬 주변을 돌아 보았다. 오하후 섬은 1903년 우리나라 최초로 102명의 이민자들이 첫 발길을 내 디딘 곳이다. 사탕수수밭에서 열악한  중노동에 시달리며 이국만리에서 언어와 문화적 어려움으로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고달픈 이민 생활을 했다. 당시 수년간에 걸쳐 약 7천여명이나  이주하였던 약소국가의 우리동포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 졌다.

하와이 대학과 시쇼 (Sea Show)로 유명한 ' 라이프 파크(Sea Life Park)'의 물의 미녀들을 보러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자연에서 고기들과 노는 일이 직업인 원주민 처녀들이 엮어 내는 자연공원의 프로그램은 매연과 소음에 찌든 도시인의 정신에는 신선한 즐거움이 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너무나 잘 훈련된 물개나 돌고래의 날렵한 동작에 모두 환성을 올리지만 한편 훈련 뒤에 숨어 있는 아픔이 측은했다.
 

(Sea Life Park) 돌고래쇼
(Sea Life Park) 돌고래쇼

 


돌아오는 길에 자주 보게 되는 골프장의 잔디들과 목조로 된 일본 재래식 집들은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이렇게 며칠을 열려 있는 자연과 인간 속에 있으면서 내 안에서 들려오는 것은,  여기는 일할 장소는 아니다. 젊은이들이 꿈을 키워 나갈 공간은 못 된다 라는 소리였다.  역시 하와이는 휴양인 들이나 노년에겐 천국이다. 일할 사람은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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