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아프리카 최대의 로마 유적지, 렙티스 마그나 (Laptise Magna) /리비아 ( 1 )
밤은 꿈을 낳을 수 있어 감미롭다. 꿈이 없는 밤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는 가끔 아름다운 꿈을 꾼다. 무서운 꿈을 꾼다. 슬픈 꿈을 꾼다. 꿈꾼다는 말처럼 아름다운 말도 드물 것이다. 꿈은 혼자 꾸는 것이지 같이 꿀 수 없다. 내 꿈과 너의 꿈은 섞이지 않는다. 꿈은 혼자 꾸어야 아름답다.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나라에 태어났으면서도 바다라는 것은 항상 나에게 꿈과 신비로운 공간으로 다가왔다. 바다를 건넌다는 말은 탈출이라는 말과도 무관하지 않다. 탈출이 이루어지면 자유라는 것이 기다려준다.
바다, 바다하고 조용히 발음하고 있으면 밀물처럼 스며드는 행복 같은 것이 밀려온다. 이런 글을 나는 어딘가 쓴 적이 있다. 도시성 일상에 함락당할 위기감을 느끼면 나는 곧잘 내 작은 꿈이 이루질 것 같은 바다를 찾아가곤 한다. 나는 경쾌한 리듬으로 지중해 바다를 가로지르는 프랑스 선박 "클럽 메드 2"를 타고 "아프리카의 로마"라는 랩티스 마그나에 가고 있었다.
꽤 오래전에 명장 한니발의 고장 튀니지의 카르타고에 고대 문화유적을 보러 갔을 때 여러 가지 출입국 제약에 묶여 멀지도 않았던 리비아 (Libya)에 있는 로마제국의 가장 아름다운 유적 중의 하나라는 랩티스 마그나에 가보지 못한 것을 몹시 아쉬워하며 귀국한 기억이 난다.
랩티스 마그나는 수도 트리폴리에서 130킬로미터 떨어진 동쪽 해안에 있는 콤스 지역 (District of Khoms)에 있다. 기원전 1000년에 페니키아의 항구도시로 시작되었으나 뺏고 빼앗기는 시간을 거치는 동안 로마인들이 주 둔하게 되고 결국은 아프리카 로마제국의 한 지방으로 자리 잡히게 되는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되었다.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트 (BC 63~ AD 14)가 건설한 도시였으나 이 고장의 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145~211)가 20대 황제가 되면서 도시는 새롭게 단장되고 고도의 로마적 건축 계획으로 걸출한 도시로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 이후 현재 리비아라는 이름으로 한 독립국가가 되기까지 여러 아프리카 해안 도시들이 그랬듯이 4세기부터는 빈번한 약탈에 시달렸고 비잔틴제국, 아랍제국, 오스만튀르크, 이탈리아 식민지 그리고 2차 대전 후 영국과 프랑스 통치를 받게 된 아픔과 수모를 겪고 태어난 나라임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다행히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덕분으로 2차 대전 후 리비아 왕국이 1951년에 수립되었으나 국왕 이드리스 1세가 해외순방차 잠시 터키 방문 중 당시 27세 육군 대위였던 무아마르 카다피 (Muammar Gaddafi / 1942~2011)가 쿠데타를 일으켜 42년간 사회주의 독재 체제 후 마침내 실각하여 비참한 종말을 맞은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카다피 정권 붕괴 후 오랜 기간 동안 내전으로 외국인 납치 테러 등 치안 부재로 인하여 여행 금지 국가로 지정되어 있어 현재는 관광 목적으로는 입국이 불가능하지만, 당시 필자는 이 기간을 피하여 북 아프리카의 찬란한 문화 유적지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가 그들 역사적 배경에 잠시 관심을 둔 것은 랩티스 마그나를 처음으로 발굴한 연구진이 이탈리아 사람들이란 것이었고 이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들은 이미 이 지역에 엄청난 미래의 보물이 묻혀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던 유리한 정치적인 입지에 놓여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명예박사 학위를 거부하고 박사논문을 직접 쓴 경험이 있는 이탈리아의 최고 엘리트 권력자였던 무솔리니 (Mussolini /1883~1945)도 랩티스 마그나에 관심이 많았다 고 한다. 로마가 직접 건설한 도시, 로마의 한 지방이 되었고, 이탈리아인들이 1920년에 발굴하여 그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아랍 친구들로부터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우연히 이 두 나라 독재자들의 죽음의 공통점이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밀라노 광장에 거꾸로 매달린 무솔리니의 시체와 리비아 어느 정육점 냉동시설 진열장에 눕혀 놓고 잠들어 버린 독재자 카다피의 최후를 시민들에게 관람시켰다는 사실이 이천 년 전에 사라져 버린 이 '죽은 도시'에서 한순간 떠오르는 것이 우연만이 아니리라.
당시 인구 10만으로 추정되는 도시가 모래 속에 매몰된 천년의 시간을 뒤로하고 찌그러지거나 머리 혹은 손발이 잘린 채로 아니면 지붕도 담도 없는 주랑의 행렬들로 옛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으나 작업 속도가 너무 느려 아직도 절반 이상이 모래 속에 묻혀있다.
나는 일찍이 모로코의 보루비리스, 튀니지의 카르타고, 프랑스 아를르의 것들을 돌아본 적이 있다. 이런 곳들을 걸을 때마다 로마 최초의 도로라고 하는, 수작업으로 이루어졌고 닳아 반질반질한 돌길 아피아 가도 (Via Appia)가 유난히 생각났다. 비록 당시에는 제국의 국토 확장을 위한 군사 목적으로 생긴 것이 라 하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의 속뜻과 은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속 2편 링크; 2023.05.16 - [유럽 外] - 북 아프리카 최대의 로마 유적지,렙티스 마그나 (Laptise Magna) /리비아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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