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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外

카리브해의 詩情, 서인도 제도

by 이다인 2023.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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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詩情, 서인도 제도 과들루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생존 뻬르스의 고향을 찾아서)

 
프랑스의 시인이자 외교관이었던  생존 뻬르스(Saint-John Perse)가 196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나는 꿈 많은 학창 시절 그 생소했던 詩人의 詩 한수를 소개받아 읽고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는 17C 말부터 서인도제도로 조상들이 이민을 갔기 때문에  과들루프(Guadeloupe) 섬에서 Alexis Leger라는 본명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아열대의 그 풍성한 자연으로 정신과 몸이 살쪘고, 섬 곳곳의 꽃과 짐승들 생태의 깊은 비밀까지 다 배울 기회를 누렸다. 19C 말 온 집안이 다시 프랑스로 귀국하여 Pau에 자리 잡자 그곳 고등학교와 보르도대학을 거쳐 작품  찬가(Eloges)를 출간하였지만, 그는 늘 果肉처럼 싱그럽던 카리브해의 축복을 못 잊어했다.
 

쌩종 뻬르스
Saint-John Perse

 
이 카리브해에 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는 깊은 매력을 느꼈고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 이유는 많은 문학도들이 숙제쯤으로 생각했던 헤밍웨이"노인과 바다"를 읽었을 때부터 마음 깊숙이 비밀처럼 숨겨온 꿈의 공간이 바로 카리브해의 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멕시코 만류에서 배를 타고 4일 동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던 산티아고 노인, 마침내 3일간의 사투 끝에 대어를 잡았으나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난 노인이 끝내 고기의 뼈만 끌고 오던 장면을 읽었을 때 나는 내 책에서 퍼져 나오는 비린내 때문에 이틀쯤 밥을 먹지 못한 채 고생해야 했다. 나의 맑고 순수한 코가 상상적 후각현상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멕시코와 대서양 그리고 카리브해의 물들이 함께 어울려 철썩거리는 서인도제도에 가기로 작정하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한국에서 20시간 동안 비행기를 세 번이나 바꿔 타가면서 도착한 곳은  프랑스 영토 과들루프이었다.
 

과들루프
과들루프

 
과들루프는 동네 밖에 있는 프랑스인들의 정원쯤 된듯하다. 특히 바캉스 시즌이 그렇고 연중 프랑스에서 몰려오는 인파가 비행기마다 그득하다. 과들루프는 이름난  7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되어 있다.

그랑메르(585km)
바쓰떼르(850km)와 같이 덩치가 큰 것들이 있는가 하면 쌩뜨(13km) 같은 앙증맞게 작고 예쁜 섬도 있다. 지상의 열기가 내리고 별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하면  "날벌레들 오케스트라 반주에 개구리와 두꺼비의 이중창" 만이 밤의 정적을 깬다.

과들루프는 사철 꽃으로 덮인다. 어디를 가나 꽃동산이다. 어느 비 내린 다음, 환한 모습으로 우아하게 늘어뜨린 수많은 잎을 끼고 있던 키가 훤칠하던 그곳 화염목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가 없었다. 피어오른 노랗고 빨간 꽃들은 마치 큰 촛대 위에 작은 불꽃들처럼 아름다웠다.
 

열대과일

열대 분꽃과 빨간 부용화로 꽃길이 되어 있던 거리며, 아보카트, 파파야, 마라뀌아스, 망고, 꼬로쏠, 파인애플 .… 등 울긋불긋 시장 좌판 위에 널려있던 그 열대시장 풍경은 아직도 허물허물한 인간들의 정이 오가는 듯했다. 발빠르게만 돌아가는 산업사회의 공해를 등지고 있는 것 같아 좋았다. 그리고 오수를 즐길 수 있는 여유, 금빛 태양과 모래, 푸른 숲과 새들, 창파에 떠다니는 배들은 모두 詩情으로 넘실거린다.
 

 
명랑하고 친절하며 몸짓 하나하나에 "Paris"가 깊숙이 묻어 있는, 행복해 보이는 검은 여자들이 바짝 올라붙은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가는 뿌앵뜨 아 삐뜨르(Pointe-a-Pitre, 주도는 섬 이름이자 도시 이름인 바스떼르이며, 인구와 교통의 중심은 그랑테르의 뿌앵뜨 아 삐뜨르 이다.)  항구 앞 빅뚜와르 광장은 낭만으로 가득하다.
 

Pointe-a-Pitre
Pointe-a-Pitre

 
1843년에 있었던 이 도시의 대지진도, 1865년의 지옥을 연상시켰다는 콜레라의 시달림도, 1899년에 대화재, 1989년 온 섬을 휩쓸었던 태풍과 같은 비극의 흔적 그리고 1493년 콜럼버스가 이 섬을 발견한 이래로 있었던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사람들의 군침 흘리기에 피로 얼룩졌던 일들도, 사탕수수밭의 농노생활도 말끔히 사라진 정말 아름답고 풍요로운 섬이다.

생존 뻬르스 기념관


거기다가 시내 한가운데 있는 생존 뻬르스 기념관을 들르게 되면 식민지 시대의 백인들의 생활이 상상된다. 건평 200평쯤이나 될까 하는 큰 삼층집인데 1층 넓은 분홍색 거실에는 생전의 모습대로 롱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인과 단정하게 신사복을 입은 모형 소년이 있다. 탁자, 흔들의자, 작은 쿠션들이 몰려있는 긴 의자들, 쌍들리에, 페르샤식 카펫 등 가구 화분 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현관 입구 방에는 그 지방 화가의 작은 수채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3층에는 그의 삶을 다시 볼 수 있는 과들루프의 가족, 사탕수수밭, 중국 외교관 시절 등의 사진들이 확대되어 기록과 함께 진열되어 있고 개인 필적, 문서 등 유품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문학도인 나로서는 감회가 깊었다. 이 시인을 위한 전시장은 南 엑상 프로방스에도 하나 있는데 다른 점은 엑스에는 그의 현대판 저서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 집의 특징은 열대지방의 건축이 다 그렇지만 지붕이 가벼운 양철 같은 것이었고, 2층에 사방 넓은 발코니가 근사했다. 그의 詩에서 왜 "발코니"란 말이 그렇게 자주 나오는지 이제알 것 같다. 발코니란 열려있는 공간이며 집 밖과 안의 중간에 있으면서 공기, 소리, 시각 등의 통로이기도 하니, 사랑, 그림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통풍과 빛의 차단 때문이겠지만 1층부터 3층까지 덧문들이 약 40개 정도나 붙어있다.

이 집을 두루 둘러본 다음 10분쯤 걸어서 어린 시인이 태어나고 자랐다는 생가에 가보았지만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가서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육중하게 보이는 집이었는데 2층 벽에 에 대한 간단한 글귀만 높이 붙어있을 뿐이었다. 詩人의 동네에서 5분만 걸어도 파도가 하나하나 걸어오고 범선들이 놀고 있는 詩적 공간이 끝없이 펼쳐진다.
 

시인 쌩존 뻬르스 가 살던 집
시인 생존 뻬르스가 살던 집

 
외롭도록 키가 커버린 해변의 종려나무 위에서 남국의 달은 묻어둔 옛날 식민지 시절 사랑 이야기라도 들려주고 싶어 한다. 낮에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던 검은 남자들의 투박한 근육, 럼주공장에서 맛보기를 권하던 흑인 처녀, 만선으로 돌아오던 늙은 어부, 이 모두가 그 섬의 소중한 삶의 현장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되면서 나는 풍요로운 남국의 "詩"를 느끼고 있었다.



 

노벨문학상수상 시 (1960년) 詩에 대한 담화 발췌

 


 

과들루프
과들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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