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세계 문화 예술 기행
  • 세계 문화 예술 기행
  • 셰계 문화 예술 기행
유럽 外

태평양의 진주, 타이티 ( 1 )

by 이다인 2023. 8. 7.
반응형

태평양의 진주, 타이티 ( 1 )

 

"바다에는 통나무배가 떠 있고, 그 속에 반벌거숭이의 여인이 있다. 바닷가에는 거의 벌거숭이 남자가 있다. 그의 곁에 시들은 야자수가 있다… 전보다 행복으로 가득 찬 생활이 시작되었다. 행복과 작업이 해와 더불어 솟아오르는 듯했으며, 생활은 그렇게 빛났다… 우리들은 정말 순수했다. 아침이면 둘이서, 마치 최초의 남녀였던 아담과 이브같이, 근처 냇가에서 물에 잠긴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타이티의 천국이여, 기쁨의 땅이여…"

 
폴 고갱의 이런 글귀를 읽었을 때부터 나는 타이티섬을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섬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사진, 포스터, 엽서를 두루 모았으며, 이 섬에 대한 글도 이것저것 많이 읽어보았다. 아마 거기 살고 있는 토착민들보다 어떤 부분은 더 정확하게 더 많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충분한 지식이 쌓였으니 더 이상 참고 기다릴 수 없다는 작은 목소리들이 내 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던 어느 날, 나는 태평양 한복판에 연꽃처럼 떠있는 상하의 땅에 갈 간단한 짐을 꾸리고 비행기 예약을 했다.
 
한국에서 약 15시간 이상 비행을 거쳐야만 되는 곳이라 그리 만만한 거리는 아니다. 오세아니아(Oceania)는 월남전쟁에 참여한 많은 한국인들이 종전 후 호주에 이주하기 이전에는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거리가 먼 지역들이었다. 넓고 넓은 남태평양의 지역에 미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로 구분되는 대양주에는 8,000여 개의 섬들이 흩어져 있다고 한다. “네시아”는 그리스어로 “섬들"이라고 한다. 바로 섬들의 세계를 나는 늘 꿈꾸어 오던 터이라 이번 여행은 참으로 행복할 것 같았다.
 
5개의 제도들이 모여있는 118 (35개의 섬과 83개의 산호섬)의 섬으로 된 타이티 폴리네시아 중 소사이어티 제도는 역풍도와 순풍도로 구분되어 있음을 거기 가서 알았다. 역풍도의 대표적인 섬이 타이티이고 순풍도의 것이 보라보라이다. 나는 바로 이 두 곳을 겨냥하고 떠났다. 특히 타이티 폴리네시아는 16C초 스페인에 의한 최초의 태평양 탐험시대가 시작되면서 포르투갈의 마젤란이(1520년) 이 항해 중 순풍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평온한 바다, 즉 태평양이라고 명명한 이래로 많은 유럽국가들이 교역에 관심을 가지고 진출했고, 18세기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영국과 프랑스인들의 탐험시대가 열리면서 오늘에 이른다.
 

타이티-섬
타이티 섬

 
인류가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피 흘렸던 전쟁의 역사가 뒤안길에 움츠리고 있는 법이듯 원주민들의 과거 속에 백인들의 어처구니없는 횡포와 무례함도 많았으련마는 오늘날 그들의 생활감정이나 표정에서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듯 그야말로 태평스럽고 순박하며 아직도 대륙문명의 찌들어진 냄새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식민지 정책의 명수였던 영국의 힘을 잃고 비틀비틀 물러설 때 불란서는 반대로 이 태평양제도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태세를 취하면서 식민지란 이름이 아닌 해외 자치령 같은 형태로 과들루프, 레위니옹들과 같이 세계 11개 지역을 불란서에 속하도록 정치, 외교, 문화, 경제 모든 면에 엄청난 투자를 해오며 잘 운영하고 있다.
 
나의 관심은 그들의 정치도 경제도 아니다. 차라리 허리가리개인 타라와를 두른 청동빛 남자들과 열대꽃 들고 풍경들이 그려진 얇은 무명천인 파래오 한 장을 몸에 두르고 그 밑으로 풍요롭게 솟아오른 두 젖무덤과 긴 머리타래를 늘어뜨린 윤기 흐르는 흑갈색 피부의 여인들의 신비스러운 미적 탐색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연이다.
 
대양의 거센 파도와 바다까지 삐쭉삐쭉 밀려 나온 험준한 산들과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동시에 습한 기온 이런 것들과는 전혀 무관한 듯 태평시대의 낙원으로 보이는 이유는 수면 속에 수없이 깔려있는 산호초의 덕분이라는 것을 거기 가서야 알았다. 얼마나 그 깊고 넓은 바다가 의외로 순조로웠으면 초기 탐험가들에 의해 “태평양”이란 이름을 짓게 했을까. 산호초들은 밀려오는 물길의 난폭함을 막고 고기들의 처소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들에게 유익한 일역을 크게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과거 뱃길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에 산호초에 걸려 파산된 배들도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흔히 실내수영장에 가면 원색 플라스틱으로 된 레인 줄로 여러 사람이 부딪치지 않게 쳐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서로 부딪치지 않는 경계선도 되지만, 친 것과 안친 것의 차이는 물파장을 좁혀 수면을 잔잔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바로 산호초의 유익함은 그런 원리인 것 같다. 바다의 일부가 육지로 휘어들어가 있는 부분을 우리는 만 혹은 해만이라고 부르며 강한 해풍과 풍랑으로부터 보호되어 있어 사람들이 몰려들고 해변의 인간생활에 이용도가 높은 지형인 것쯤은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고리모양으로 형성된 환초에 의한 석호(潟湖)니 초호(礁湖)니 하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바닷속의 얕은 호수인 이 아름다움을 보고 나는 신의 솜씨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아직 이런 곳을 다른 해변에서 본 적이 없다. 지중해의 쪽빛 물빛이 눈물겹도록 고왔지만 남태평양 초호의 것에 비하면 그것은 이류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 물빛깔을 표현하기에 나에게는 어휘가 부족하고 묘사능력이 없다. 역시 물감으로 그리는 수밖에 없다. 그 투명도는 아무리 때 묻은 사람들이라도 어란 같은 맑은 영혼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을 발했고 인간의 모든 죄업이나 자연의 공해가 함께 정화하겠노라고 줄항복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그런 강도의 맑은 아름다움이다.
 

산호초
산호초


초호는 현실의 물이 아니라 꿈의 물이다. 어린 시절, 한여름 밤하늘에 그리도 높게 총총하던 별들을 거기서 다시 만났고, 새벽녘 수평선에 불그스레 떠오르던 햇살은 마치 어느 고성의문이 열리면서 나타나는 신비스러운 한 여인의 치마폭처럼 눈부셨다. 10만 핵타가 조금 넘는다는 타이티는 결국 작은 섬에 지나지 않고 거기다가 경작할 수 있는 평지가 아닌 악산이 섬가운데 많이 있어서, 타로토란, 바나나, 생강, 열대과일과 생선을 먹고살며 그 외는 거의 85%가 수입이라니 생필품 모두가 아주 비싼데 놀랐다.
 
비행장에 내릴 때부터 예약된 하이얏트호텔 직원이 걸어주던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변조해다는 아름다운 푸아로 된 꽃목걸이와 누구나 세관을 통과하면서 금방 만나게 되는 열대식물로 프린트된 녹색 윗도리와 화관을 쓴 악사들이 밴조와 기타에 맞춰 노래로 환영하던 파페에테(타이티의 수도)파(Faaa) 비행장은 짙은 꽃향기와 더불어 이국정취의 시작임을 실감하게 해주는 곳이다. 나는 일찍이 꽃의 사치를 이렇게 누리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이 섬에 내리자마자 받은 꽃목걸이를 두르고 비행장 화장실에라도 볼일 보러 들어가면 세면대 앞에 적색의 안세륨, 하이비스커스, 극락조화 같은 남국의 꽃들이 화병에 꽂힌 것이 아니 라그대로 한아름씩 꺾어다 놓았다. 아마 매일 바꾸어놓는 모양이다. 손을 씻는 동안 내 눈길은 꽃으로만 가 있었고 즐겁기만 했다. 또 호텔에 들어섰을 때도, 침대와 화장대 앞에 또 꽃송이들이 기다려주었다. 짐을 나르딘 무쇠같이 건장하던 남자도 화관을 쓰고 있었고, 카운터의 가무잡잡한 얼굴의 아가씨도 길게 늘어뜨린 머리 타래 귀위에 빨간 꽃 한 송이를 꽂고 일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른쪽에 꽂고 있으면 “나는 찾고 있어요", 왼쪽에 꽂으면 "이미 결혼했습니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참 재미있는 풍습이었다. 이곳 어디를 가나 풍성한 꽃과 섬을 덮을 듯이 자라고 있는 울창한 나무들의 향연으로 이어진다. 뗏목에 탄 기분을 느껴야 했던 좁고 작은 카누를 타고 고요한 초호를 한 바퀴 돌고 있으면 큰 빌딩만 한 크기의 작은 섬이 가끔 나타난다. "저기에 사람이 삽니까 ?" 하고 물어보았더니 아니라고 한다. 다만 부잣집 아이들이 결혼할 때 초대 손님들이 거기까지 모두 배를 타고 가서 피로연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참으로 로맨틱한 파티가 될 것 같다.

이런 나이에도 문득 분홍빛 꿈을 싱그럽게 갈망시켰던 그런 섬이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자연이 순수하여 마치 범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느 처녀 앞에서의 떨림 같은 기분이어서 눈을 감지 않고는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매일 이 푸른 해원을 거닐 듯이 오가며 깊이 묻어 둔 보물을 찾듯이 여러 날을 헤매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일찍 눈을 뜬다. 파페테 해변가 중앙시장 구경을 가기 위한 호텔 측 미니버스 출발이 새벽 6시라고 해서 기대를 가지고 새벽잠을 설치고 나가봤으나 규모나 상품구색이나 모두가 나를 실망시켰지만 점심 먹고 낮잠을 자거나 쉬고 빈둥빈둥 놀고먹고 사는 사람들처럼 보였던 그들의 일 시간을 알게 된 것이 큰 소득이었다.
 
시장에는 중국계 얼굴들이 많았고 가는 도중 우리나라 자동차 광고판이 크게 붙어 있어서 반가웠다. 한국 어부들이 사모아 주변에서 들어와 가끔 배를 댄다고 한다. 그리고 시내 큰 행길에 한국 전란 중에 사망한 무명용사의 조그만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어, 이들에게는 충분히 한국과 한국인에 대하여 어둡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었다. 하지만, 거기에 그렇게 많은 관광객이 있었지만 한국인은 만나지는 못했다.
 
파페에테 시는 아직도 식민지적인 후진 분위기에 때로는 경박하고 때로는 어설픈 대륙의 모방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침식시키면서 필요악 같은 유익한 현대성으로 위장된 주범처럼 느껴졌다. 중심지 이외도 오늘날 인간의 삶은 어쩔 수 없이 자연손상에 훗날 얼마나 큰 피해를 입게 되는가를 알면서도 그 우매함을 계속 저지르고 있음이 안타깝다. 가령, 삐에르 로띠 “The marriage of Loti"에서 묘사된 사랑의 장소에서 작가의 흉상 하나 이외에 그 아름다운 얘기들이 건축으로 소멸되어 버리고 “로띠의 목욕”으로만 이름을 남기고 있는 것에 그곳을 찾는 자들에게 얼마나 큰 실망을 안겨다 주는지 모른다. 드디어 나는 고갱의 전시장을 찾는 날을 잡고 차 예약을 해두었다.

 


 

 

타이티 여인
타이티 여인

 


 

방갈로
방갈로

 

 

 


후속 글,  태평양의 진주 타이티 ( 2 ),  ( 3 ) 도 곧 포스팅 예정임


후속 글 링크 / 2023.08.14 - [유럽 外] - 태평양의 진주, 타이티 ( 2 )

 

태평양의 진주, 타이티 ( 2 )

태평양의 진주, 타이티 ( 2 ) - 뽈 고갱 기념관을 찾아서 뽈 고갱 (Paul Gaugain,1843~1903) 기념관은 파페에테 (Papeete)에서 잘 닦인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거의 50Km 지점 구역에 있다. 달리는 동안 나

daainn.tistory.com

 


후속 글 링크 / 2023.08.21 - [유럽 外] - 태평양의 진주, 타이티( 3 )

 

태평양의 진주, 타이티( 3 )

태평양의 진주, 타이티 ( 3 ) - 지상의 특급낙원 보라보라 섬에서 지상의 특급낙원이라는 보라보라에 가려고 45분 동안 경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예약에 며칠 전부터 신경 쓰지 않으면 언제나 만

daainn.tistory.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