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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外

태평양의 진주, 타이티 ( 2 )

by 이다인 2023.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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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의 진주, 타이티 ( 2 )

- 뽈 고갱 기념관을 찾아서

 

뽈 고갱 (Paul Gaugain,1843~1903) 기념관파페에테 (Papeete)에서 잘 닦인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거의 50Km 지점 구역에 있다. 달리는 동안 나는 써머셋 모옴의 소설 "달과 6펜스"에서 나오는 고갱의 모델이라는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떠 올랐다. 그는 일생동안 여기에서 3년 동안의 생활이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그곳은 열대식 나무들이 우거진 꼬불꼬불 구부러진 길을 따라가면서 만난다는 생나무로 만든 방갈로식 오두막집이다.

 

바로 그런 모습의 집들이 띄엄띄엄 도로변에서 조금씩 떨어진 곳에 자주 보인다. 금방이라도 "바나나 나무가 마치 비운을 한탄하는 어느 여왕의 낡은 예복처럼 찢어진 큰 잎을 펴고 서있는”곳에서 스트릭랜드의 14살 된 젊은 타이티부인 아타가 나타날 것만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인가가 점점 보이지 않고 아보카도, 코코나무, 망고, 야생 오렌지나무들이 우거져 엉킨 푸르름 속에 정열적으로 새빨간 하이비스커스와 하얀 티아레꽃들이 남국의 멋과 향기를 유감없이 발하며 마치 도전이라도 하듯이 유쾌하고 당당하게 피고 있었다.

 

이 섬이 온 세계 방방곡곡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뽈 고갱에 의해서다. 결혼 10년 후 아름다운 덴마크 부인 메트 소피 가트와 다섯 아이들을 다 버리고 어느 날 그림도구들을 챙겨 들고 훌쩍 떠나버린 그는 스페인 혈통의 격정적인 모계의 영향과 이미 유년시절에 페루에서 4년을 지냈던 삶의 뿌리가 무의식 속에 연유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보헤미안적 본능이 눈떠지면서 프랑스의 과격하게 문명화된 환경을 도피하고 싶은 충동이 꿈틀거리면서 “야성과 미개"의 가시적인 미를 강렬한 태양과 원색의 자연과 더불어 꿈꾸면서 영원히 대륙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작심했을 것이다.

 

그의 이곳 생활을 다시 생생하게 보여주는 듯한 그 유명한 고갱 기념관은 마치 비엔나 중앙묘지에 있는, 시신이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허총을 연상케 하듯이 중요한 진품이 거의 없는 곳이어서 좀 서운했다. 이곳은 미국인 헤리슨 스미즈가 1919~1921년 사이에 설립했다는 굉장히 넓은 열대식물원 한쪽에 편안한 단층의 반듯한 사각 기념관이 바다와 나란히 앉아있다.

 

고갱-기념관
고갱 기념관

 두어 시간쯤 없는 것이 없는 열대꽃들과 나무들 사이를 시인처럼 산책하다가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세계 각국어가 웅성웅성하는, 관광객이 있는 현실의 장소를 만나게 된다. 수문장 격인 돌조각 "티키"가 해변 쪽에 세 개가 놓여있다. 투박한 표정은 그들의 가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연간 5만 명 이상의 외국방문자들이 몰려온다고 하는 이곳 첫 번째 홀은 가치비중이 약한 원화들이 진열되어 있고, 다음 홀부터는 고갱의 생애와 관계되는 사진, 글, 복제화, 그리고 그의 마지막 아틀리에를 환기시키는 것으로 되어있다.

 

화가이며 동시에 조각가, 작가, 기자로서의 그의 변모가 테마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특히 그의 여정을 그려 넣은 세계지도를 보고 있으니 이상한 인간적인 존경심이 무게를 가지고 나타났다. 싱거 폴리냑 설립재단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으며 세계 각국에 흘러가버린 원화를 모으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이 환쟁이가 살아생전에 물감, 캔버스 살 돈이 없어 궁핍했던 생활을 되새기면, 그의 모든 애호가들이 슬퍼진다. 나도 마음이 이상하게 저려지는 것 같았다. 그의 그림에도 나는 관심이 있었지만 그의 글도 못지않게 좋다. 그가 마티스처럼 일본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많이 했다는 사실도 그곳에서 확인했다. 일본 유명그림에서 영향받은 것들은 나란히 비교해 보도록 같이 진열해 놓아서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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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 작품 슬라이드 사진 4매

 후세의 역사가나 학자들이란 끈질긴 추격을 통해 1세기 전 사람의 숨겨진 생각마저도 찾아내는 위력을 보는 것 같아 신기했다. 또 고갱이 그들의 종교에 대해서 많이 언급했던 것을 기억하니 마치 여기저기가 다 신들의 은신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타이티 시녀에게서 그들 신의 이름을 배우던 고갱을 그려본다. "타아로아는 대기의 여신 오히나와 잠자리를 같이 했더란다. 거기서 무지개와 달빛이 태어나고 붉은 비와 붉은 구름이 태어났더란다."

이렇게 원시적인 물신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섬을 한 바퀴 도는 동안에 곳곳에서 십자가가 높은 작은 교회가 많은 것에 놀랐다. 그들은 대부분 개신교라고 했다. 그것은 정치적인 부산물인 것 같다. 카톨릭 국가인 프랑스식민지였지만, 18 세기말 영국이 먼저 더프(Duff)라는 배를 타고 와서 18명의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을 타이티에 내려놓은 것이 원류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유아 살해, 개방된 성생활, 인간제물이 가능했던 곳이었다. 성생활이 개방되어 있었으니 피임법이 개발되지 않았던 시대에 섬에 먹을 것은 제한되어 있고 아이는 늘어나고... 등등 아마 그들의 미봉책이 어린애들을 죽여버리고, 신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미명 아랫사람들을 죽여 바쳤을 것이 뻔한 노릇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타이티에서는 조기결혼을 하고 있고, 또 엄마는 딸아이가 13~14쯤 되면서부터 성교육을 시킨다고 있다.

 

성교육이라는 것이 선진국처럼 생리나 위생교육 피임법 같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관계를 즐겁게 하는가, 또는 남성들을 행복하게 하는가 하는 쪽의 교육 같은 것이라고 한다. 놀라운 일이지만, 사실이라고 한다. 그래서 타이티 처녀들은 섹시한 것으로 이미 세상에서 이름이 높다. 그들은 사랑을 잘할 줄 아는 여성들로 남자들에게 군침을 흘리게 하는 대상들이다.

 

이미 대륙의 유명인사들이 그 섬에 한번 들었다가 그 자연과 타이티 처녀들에게 함락당한 경우가 많다. 고갱을 제하고도 항해사였던 "세계 주변여행"을 쓴 프랑스 항해사 부갱빌,  "분티의 폭도들"이란 영화를 찍으러 가서 거기 처녀와 결혼도 하고 산호섬도 하나 사서 살았던 것으로 유명한 말론 브란도, 1978년에 죽은 샹송 가수 자끄 브랠도 거기서 살았다.

지금은 고갱과 같이 마르케사스제도아뚜오나 (Atuona)에 있는 히바 오아(Hiva, Oa) 해변 가까이 같은 묘지에서 세계 적인 두 예술가가 누워있다. 아마 한 예술가는 그 변화무상한 바다의 음률을 들으면서, 또 한 사람은 그 아름다운 쪽빛 바다를 눈을 감은 채 영원히 보고 있을 것이다. 그 이외도 마티스, 멜빌, 스테스트븐스, 론던, 모옴... 등이 있으며 한결같이 그들은 타이티 폴리네시아란 곳에서 그림과 글이란 보물들을 건졌으며 행복한 낙원임을 강조한다. 이 다인도 이번 타이티 체류로 어느 날 유명해질 수 있을까... 스스로 비웃듯이 나직이 웃어본다.

확실히 여기 처녀들은 여자가 보기에도 매력이 있다. 우선 젖가슴 윗부분을 다 들어내놓아서 그런지 파래오를 걸치고 있는 몸매가 그렇고 늘어뜨리고 있는 머리며 귓전에 꽃은 꽃, 속삭이듯이 말하는 작은 음성, 움직이는 동작들이 조용하고 얼굴에 웃음을 늘 간직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대단히 기분을 좋게 한다. 거기다가 대부분 여성들의 장식은 누런 금이 아니라 소박하고 예쁜 조개들과 아주 섬세한 세팅이 된 흑진주들이다.

 

하나쯤 가지고 싶었으나 흑진주는 여행객인 나에게 과한 것이다. 하지만, 나도 어느 날 가게에 나가서 손바닥만 한 검은 녹색빛이 도는 조개껍질을 잘라서 만든 목걸이 하나를 사서 걸고 다녔다. 참 멋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하나쯤 더 사 와서 내 멋쟁이 친구 Y에게도  하나 선물할걸 하는 생각을 했다.

몇 년 전에 하와이를 둘렀을 때 남태평양의 여러 종족들의 춤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사모아나 통가의 것들보다  타이디 인들의 춤이 유난히 선이 곱고 율동이 우아하며 더 예술적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전형적인 타 우레라는 타이티춤은 여성들의 하반신을 쓰는 동작으로 이어지는데 허리를 적절하게 좌우로 앞뒤로 흔들고 돌리는 춤으로 남자는 처녀들의 피우피우(갈대의 일종)로 된 치마의 나풀거리며 떨리고 있는 앞에서 끼어드는 동작을 해 보여 누구나 보면 선정적인 춤을 느끼게 된다.

 

타이티-전통춤
타이티 전통춤


원래 민속무용이란 어느 나라 어느 종족을 막론하고 그들 자연환경과 역사라는 삶의 뿌리에 근거를 두면서 희로애락을 표현한 일종의 신체언어이다. 가령 마오리인들의 남자춤인 학카 같은 것은 두 눈을 굴레굴레 굴리면서 혓바닥을 길게 내어 뱀처럼 날름거린다. 그것은 적을 모욕하고 저주하며 위협하는 춤이라고 한다. 이런 춤을 추는 데는 특별한 무대가 필요 없다. 특별한 조명효과가 필요 없다.

 

이런 춤단체들이 관광객을 위해서 여기저기 호텔 수영장이나 해변 모래사장에서 달과 별빛 아래서 북을 두드리고 춤판을 벌이면 동네아이들까지 와서 구경하고 즐기면 된다. 그래도 격식은 있다. 그들 춤꾼의 해변가 도착장면은 장관이었다. 낮에는 공작새처럼 그렇게 화려했던 순풍도 초호의 물 빛깔도 밤에는 별수 없이 칠흑 같은 검은 호수일 뿐인 그 위에 서서히 청사초롱으로 장식된 것 같은 2척의 배가 해변으로 다가온다. 마침내 모래사장에 기항하더니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희들과 남자춤꾼들이 도착사인을 하는 것 같은 동작으로 내렸다.

 

군중들도 그들도 한동안 축제 전의 깊은 침묵의 맛을 보는 순간이었다. 나도 덩달아서 나중에는 신이 나서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춤꾼들이 모두 싱싱하고 젊은 미남미녀인데 비해, 한쪽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코러스 멤버들이 모두 뚱뚱하고 늙었으며 퇴기 같은 여자들인데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춤판이 끝날 무렵이 되면 그들은 관중을 초대해서 같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프로그램으로 엮어진다. 세계의 대 화합의 장면 같다. 아! 이런 것이 진정 평화인가 하는 소리가 내 속에서 들린다.

흔히 타이티 사람들은 게으르고, 여행과 잡담을 즐기고, 걷기를 싫어하고 아침 먹고 오막살이를 대강 치우고, 점심을 먹고 또 해먹이라는 큰 나무들 사이에 달아 매 놓은 그물 그네 침대에서나 집에서 미풍을 타고 오수를 누리는가 하면 오후에 들어오는 고깃배를 기다려 천천히 저녁식사를 하고 사랑을 하는 일의 반복이라고 한다


파페에테에서는 나는 주로 상식적인 관광을 한 셈이다. 즉 이곳저곳 명소를 보러 다니거나 이곳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을 확인하는 일로 바빴을 뿐이다. 한가롭게 해변을 거닐거나 여유 있게 자연과 요리를 즐기는 바캉스꾼이 되지 못했다. 이유 중의 하나는 수영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해변 모래사장 색깔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이미 언급 한 바 있지만, 화산과 역풍 때문에 모래빛깔이 새까맣다. 검은 모래에 익숙하지 않아서 어쩐지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반대로 순풍도인 보라보라의 모래가 희다 못해 은빛이라 하니 거기서 모양새 갖춘 휴식을 즐기려고 마음먹었다.


 

타이티
타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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