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고향 뉴 올리언스, 미국
아주 오래되어 정확하게 어느 해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길고 검은 머리채는 윤기를 내고 있었고 흰 피부는 탄력이 넘치던 때였었나 보다. 그때 많은 젊은이들은 모두 “아메리칸드림”을 꾸고 있을 때이었다. 미국 유학이 먼 내일을 영원히 보장이라도 해 줄 것처럼 나도 믿고 있었던 시절, 새로운 미국 영화, 소설이 나오면 곧잘 보고 읽고 단숨에 해치워버렸다.
그때 바로 테네시 윌리엄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라는 작품이 나왔다. 뉴올리언스의 "이상향" 이란 이름의 거리가 첫 장에 소개되면서 쓰러질듯하고 빛바랜 건물이 서있지만, 미국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묘한 매력이 있다고 묘사된다. 그리고 1890년대에 원류를 두고 있는 뉴 올리언스 재즈 음악이 배경으로 깔려있고 주인공 블랑슈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의 그 순수함이 그렇게 좋게 그려질 수가 없었다.
거의 30여 년 전부터 나는 뉴 올리언스에 가 보고 싶어 했다. 미국을 몇 번 갔지만 늘 이런저런 이유로 南쪽까지 내려갈 수가 없어서 미루어 두었던 곳이다. 뉴올리언스의 풍물을 나는 마음대로 상상하며 늘 꿈꾸어 왔다. 영롱한 꿈을 너무 오래 안고 있으면 멍으로 변하여 영원히 시들어 버릴까 더 늙기 전에 용단을 낸 것이 이번 방문이었다.
미시시피 하구, 멕시코만 안의 항구 도시, 미국의 면화, 목화씨, 쌀의 시장, 바나나 커피의 수입항이며 水運의 중심지다. 그리고 프랑스령, 스페인령, 미국령이 된 정치적 경로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곳을 말할 때 한마디로 쪽 미국 도시 중의 하나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독특한 곳이며 현지에서 그들의 시간과 일상을 피부로 느껴 보아야 진가를 알 수 있다.
1월이라고는 하지만 늦가을 같은 기후라 걸어 다니기에 마냥 상쾌하고 즐거웠다. 市 중심부 약 20 제곱 블록
“불란서 구 (French Quater)”가 노른자 같은 名物이다. 그 많은 관광객들은 주로 그 구역 안에서 논다. 한 거대한 도시 속에서도 그런 재미있고 깨끗하고 정돈된 예쁜 부분이 있다는 것은 外地人들에게는 더없이 흥미롭고 즐겁다. 거기다가 블루즈니 딕시랜드니 하는 귀에 익은 순수 흑인 음악, 재즈의 음률이 구석구석 살아있는 버번街에 내가 묵는 호텔이 가까이 있어 신대륙 內 유럽의 정취를 쉽게 만끽할 수 있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그 많은 재즈 클럽 중에서도 가장 많이 찾는 두 곳의 재즈 음악홀이 있다. 하나는 맥스웰이라는 곳이다. 입구에 바가 있는 보통 술집 같은 곳을 현관처럼 들어가면 작은 무대와 200여 개의 의자가 있다. 무대에는 대부분 백인 악사들과 가수가 재즈를 부르는데 현대풍의 재즈다.
뉴욕이나 다른 대도시의 것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러나 “Preservation Hall"이라고 부르는 성 피터街 726번지의 것은 달랐다. 입장하기 위해서 적어도 30분쯤 전에 들어가야 확실하다고 하는 안내자의 말을 듣고 저녁은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웅성댄다. 7시 정각에 투박하고 어수룩한 통나무로 된 문이 열리며 바구니를 든 아주머니가 3$ 씩 받고 불빛이 약해 어느 헛간 뒤꼍 골목 같은 분위기를 거쳐 Hall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말이 홀이지, 무슨 창고 같은 곳이며 좁고, 긴 나무의자 대여섯 개 놓여있어 스무 사람 정도만 그 의자에 앉을 혜택을 볼 수 있고 그 이외는 모두 땅바닥에 앉거나 서서 봐야 했다.
실내공간은 전부 50평쯤이나 될까 하는 작은 홀이었다. 무대는 다섯 평 정도이고 아주 낮았다. 악기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있고 낡은 피아노 한 대가 옆에 있었다. 무대 쪽 벽면에는 초기 이곳 악사들의 초상화, 사진 같은 것들이 몇 개 붙었을 뿐 Preservation 홀이라는 이름처럼 손대지 않은 보존 그 자체의 공간이었다. 아마 깨끗하게 도색하여 보통 다른 음악 연주장들처럼 정리 정돈되어 있다면 이 홀의 가치는 아무 의미를 못 가질 것이다.
거기다가 연주자 6명 중 5명은 모두 흑인 노인들이었다. 입장할 때 걸음도 반듯하게 제대로 걷지 못하며 검은 피부는 주름 투성이었고 웃음을 띄울 때 이빨만이 하얗게 빛났다. 그렇게 허약해 보이는 늙은 악사들이 다루는 악기들이 토해내는 음률이 어쩌면 그렇게 싱싱하고, 열정적일까? 또 그렇게 나긋나긋하고, 때로는 흐느끼고 때로는 폐부를 찌르고 두들기는가? 음색들은 흑인들의 인생 역정과 애환이 그대로 배어 있어 듣는 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예술의 극치였다.
그날 무대 위에 피아노를 두들기는, 적어도 70세 이상 되어 보이는 백인 할머니의 모습이 참 이채로웠다. 무슨 연유로 그 무대에 서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물에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았고 그의 거동에는 백인 우월성 같은 것이 알게 모르게 비쳐 나와서 보는 이로 하여금 다소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피아노 소리만은 과거 그 자리에서 연주했을 Jelly Roll Morton을 연상케 했다. 트럼펫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또 피아노가 높은 산을 넘듯 오르고 내릴 때, 그 홀 안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최면에 걸린 것 같았고, 금방 싱글벙글하는 가수의 노래에 따라 모두가 행복한 시간 속에 몰입되면서 박수는 그칠 줄 몰랐다.
뉴올리언스의 진수는 바로 이런 소박한 분위기에 있다. 바로 이 홀이 그 유명한 루이 암스트롱의 초기 연주홀이 아니었던가. 그는 유명해진 다음 이 홀을 한 번도 되찾아 온 적이 없다고 했다. 마치도 열렬하게 첫사랑을 하고 떠나버린 남정네를 애타게 기다리다 지쳐버린 한 여인의 정절이 담기고, 영혼이 서린 듯한 이 홀은 지금 너무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보기 좋았다.
재즈의 역사적 공간은 여기에서 시작하여 1차 대전 후 뉴 올리언스가 軍港이 되면서 흑인 유흥가 스트리트 빌이 폐쇄되고 흑인 인구 이동에 따라 미시시피강 상류 시카고에 재즈가 정착된다. 당시 미국의 경제, 산업 구조가 공업 중심으로 변해 갔으므로 거기에 南部 농업 인구 적응의 결과라고 말한다.
바로 루이 암스트롱이 시카고 재즈를 화려하게 만든 장본인이 되고 있다. 다시 시카고가 흑인들에게 살기 어렵게 되자 뉴욕 할렘으로 이동한 것이 오늘의 뉴욕의 재즈가 된다. 재즈는 가장 미국적인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밤늦게 재즈 홀을 빠져나오면서 찰스大路를 지나갈 “욕망"이라는 이름을 달고 다닌 전차 속의 블랑슈와 흑인 재즈인들의 무대 뒤의 고독 같은 것들을 상상해 보면서 나는 오랫동안 쌀쌀한 바람을 마다하지 않고 걸었다.
"사치스러운 울음과 웅얼거림이 점점 커지는 블루스 음악과 약음기를 단 트럼펫 소리에 눌려 점점 작아진다."라고 재즈 음악을 언급하면서 작품이 끝나던 것이 기억났다. 이렇게 뉴 올리언스는 흑인 음률이 서서히 어디서나 녹아내리는 도시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사가지고 온 재즈 CD를 틀어놓고 밤낮 즐기곤 했다. 내 영혼에 향유를 부은 것같이 탄력이 생겨지는 것 같아 잔잔한 기쁨을 지금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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