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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外

카나리 군도(2) - 란자로떼섬

by 이다인 2024.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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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 군도(2)  - 란자로떼섬

 

몇 차례의 스페인 여행으로 곳곳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지만 이번만큼 나의 개인적인 취향에 감명과 만족을 준 적이 일찍이 없었다고 할 만한 곳이 카나리 군도이다. 마치 스페인이 아무에게나 보여주려 들지 않으며 꼭꼭 숨겨놓은 보석 같은 섬으로 느껴졌다. 아프리카 대륙과 1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7개 섬 중에서 그랑 카나리, 떼네리프, 란자로떼 등 세 개의 섬은 각각 독특하게 그 지형과 분위기를 달리하면서, 수많은 유럽인들을 불러들인다. 각 인종과 국민들의 취향에 따라 선택이 다르다. 가령 그랑 카나리는 독일인, 떼네리프는 불란서인, 란자로떼는 스위스와 불란서인들이 들끓는다.

 

 

섬과 섬 사이는 쾌속선과 비행기 모두 교통편이 아주 잘 되어 있었다. 승객들은 대부분 다른 섬 한두 개를 둘러본 외국 여행객들 아니면 비즈니스 가방 한 개 만을 주로 들고 다니는 당일치기하는 스페인 사업가들이었다. 라스팔마스에서 30여 분 만에 하강하는 비행기 속에서 내려다보이는 이 섬 절반이 검은색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 누구든지 의문을 품게 되지만, 780 평방미터란 땅에 300개나 되는 화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 이유를 곧 알게 되고 이 섬의 특성을 짐작하게 된다.

 

란자로떼섬
란자로떼섬


섬사람들이란 어느 곳에서나 친절하고 정직하고 소박하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들끓기 시작하면서 인심이 변해간다고들 불평하는 것이 보통이나, 이곳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교양 있고 자기 고장에 대하여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며 당당해서 여간 보기 좋지 않다. 우리들의 안내자였던 호세라는 운전기사는 시를 쓰는 청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는 것이 많았고 설명이 명료하고 유창해서 놀랐다. 이번 여행에서 스페인어를 잘하는 딸아이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지만, 역시 내가 직접 알아듣고 표현하는 맛이 없어진 상태의 생활을 오래 견디기는 힘들었다. 스페인 본토 어디를 가나 불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언어 불편을 몰랐는데 역시 섬이란 그렇지 못한 것이 유감이었다.

 

이곳은 바람, 모래, 태양이 극심하게 한몫을 하는 곳이다. 미친 듯이 바람이 소용돌이치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아프리카 사막의 모래들이 끝없이 바람을 타고 밀어닥쳐 수많은 화구에서 쏟아지는 시커먼 재와 거스름으로 뒤범벅이 되어 마침내 온 섬은 검은 땅으로 정착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고 한다. 이렇게 황폐하고 쓸모없는 땅을 수세기를 통해 지혜와 인내로 일구어낸 농부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들은 이제 아름다운 전설로 남아 있다.

여기 농부들은 이제는 가난하거나 슬프지 않다. 2~3세기 전부터 농부들은 화산 용광로로부터 나오는 돌들을 옮겨내어 밭과 밭 사이에 아주 작은 담을 쌓아 바람을 막았고 좋은 흙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서 포도 그루를 묻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나버릴 정도로 혹심한 가뭄이 계속될 때도 화구에서 나오는 잿더미를 30cm 정도로 밭에 뿌려서 야간 동안의 습한 공기를 흡입시켜 포도나무들을 살려냈다고 한다. 여기 사람들의 중요 생업의 근간은 감자, 양파, 이집트콩, 토마토, 포도를 경작하는 일과 올리빈느라는 준보석을 깎는 일과 관광업이다. 이렇게 끈질기게 생사를 걸고 땅에 도전해 온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자기 땅에 강렬한 애착이 생기는 법이다.

 

이런 조상을 가진 란자로떼섬을 얘기할 때 농부로서가 아닌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자기의 고향을 지키고 가꾸어 온 천재 예술가 한 사람을 꼭 알아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그를 알기 전에 연상되는 것이 멕시코 만류에서 작은 배를 타고 84일 동안 날마다 바다로 나갔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노인이나 멜빌의 “모비딕”에서 나오는 외다리 아샤브 선장의 대양에서의 흰 고래잡이의 집념이다. 그리고 쌩떽쥐베리의 “전시 조종사”같은 소설의 그 특이한 바다와 하늘이란 공간의 정복자들을 한 번쯤 조용히 머리에 떠올리면서, 진지하게 삶과 예술, 종교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명상해 볼 좋은 기회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 살아 있는 스페인의, 아니 세계 건축의 거장 만리끄 (César Manrique. 1919년 4월 22일. Arrecife 태생)는 바로 이 섬에서 태어났다. 나는 그의 작품 “화산시리즈”를 책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기장의 공간에 내가 스며들어 올 수 있었다니… 스스로가 감격스러웠다. 나는 우선 만리끄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두꺼운 책을 한 권사서 차 속에서 짬짬이 읽었는데, 우선 크게 2종류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림과 건축이다. 그의 전 작품을 통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질문은 란자로떼에 화산이 없었다면 만리끄의 상상력과 예술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만리끄 César Manrique
만리끄,Cesar Manrique

 

그림에서나 건축에서나 그의 고향땅이 표상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검은 모래, 화산에서 굴러다니는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재료들로 이용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당신이 란자로떼를 창출했지요?" 라고 하는 질문에 "란자로떼가 나를 만들어냈습니다" 라고 만리끄가 대답했듯이, 그는 이 섬과 떼어놓을 수 없는 진정한 이 땅의 아들이다. 이런 표현은 한 번이라도 이곳을 방문한 자라면 누구에게나 구구절절이 이해될 것이다.

 

이 섬 절반은 화산 지역으로 사람들이 전혀 살지 않으며 관광객을 위해 국가에서 특별히 자동차 길을 닦아놓고 지정버스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실어 나르고 있다. 이 지역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전쟁 중에 수많은 폭격을 맞고 인간과 자연이 멸종된 폐허나 지옥으로 가는 길 같이 느껴진다. 또  '불의 산'에 구멍이 뚫린 메마른 화산암의 잿더미 위를 걸어 다니는 낙타의 행렬을 보고 있으면 지상의 모든 음(音)이 그 속으로 다 흡수되어 버린 듯, 죽음 같은 침묵과 고독이 겹겹이 깔려 있다.

 

란자로떼섬 ' 불의 산'
란자로떼섬 ' 불의 산'

 

대예술가 만리끄의 기상천외한 상상력은 이미 소년시절부터 이런 자연조건에서 점화되었을 것이다. 80년대에 그린 그의 대표작품들 중에 "화산 시리즈"들을 보면 갈라 진 땅, 용광로에서 녹아내리는 광물질, 혹은 세월 따라 차가워져 가는 화석화되는 땅... 이런 것들은 캔버스 위에 더덕더덕 붙은 검은 모래와 지피물 같은 온갖 색채에 드러나는 재료들 속에서 느껴볼 수 있다. 만리끄 작품의 진수는 그림에서 보다 는 역시 그의 건축물에서이다.

스페인 왕 요한 칼로스 내외와 같이 서 있는 사진으로 보면 만리끄의 키는 160cm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도처에 산재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가치의 작품 모두가 이 작은 남자의 업적이라니... 그는 교역을 하는 평범한 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나, 어릴 때부터 고모들과 장난감 배를 만들 때나 자기 집을 개축할 때 아버지께 문 위치에 대해서 남다르게 조언한다든가 휴일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지을 때, 여러 면에서 벌써 공간에 대한 센스가 비상하게 나타났다고 했다.

 

이미 그의 재능은 20대 초부터 카나리 군도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30대에 본토(마드리드)에서 인정받았고, 1954년 Clan 화랑에서 최초의 전시회를 시작해서 베니스 비엔날레 28 에서 수상하는 것으로부터 1961년부터 스페인, 유럽의 여러 도시, 일본, 미국에서 본격적인 전시회를 가졌고, 1963년 18년 동안 동거했던 여자의 죽음으로 대단한 고통에 시달렸던 것이 동기가 되어 그는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었다 고 한다. 그곳이 미국 메디슨가 57번지의 캐드린 비비아노(Vi- viano) 화랑과의 계약이었다.

 

만리끄 작품

그의 예술가로서의 국제적인 좋은 운세는 뉴욕과 더불어였으나, 1968년에 결국 다시 고향으 로 돌아와서 정착한다. 맨해튼과 란자로떼는 같은 섬이고, 맨해튼의 고층 빌딩들과 란자로떼의 화산은 심리적으로 같은 미적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뉴욕의 끝없는 자유와 모든 종류의 삶의 자극과 도전은 그의 상상력 속에서 고향 화산의 뜨거운 열기와 흡사했을까? 그의 귀국 후 국가는 이 섬의 모든 건축 설계, 기획의 권리를 이 천재에게 전적으로 일임했다고 했다.

 

약 25년 동안 그는 이 섬 전체를 예술작품 그 자체로 변신시켜 놓았다. 별 쓸모없고 대륙인들에게 거의 버려진 가난하고 유적지 같은 작은 이 섬이 유럽과 아프리카 변방에서 고가(高價)의 '흑진주'로 되기까지 만리끄의 정신은 화상이나 익사의 위험까지도 거쳤으리라. 마치 신이 스위스나 프랑스 같은 예쁜 작품을 만들 때 쓰다 버린 불량품 재료 같은 것으로 이루어졌던 이 섬의 구석구석을 오리지널 그대로 어떻게 이렇게 잘 살릴 수 있었을까 감탄하게 된다.

어느 날 신이 지상을 내려다보고 만리끄의 란자로떼란 작품에  트로피와 풍성한 상을 하사할 날이 올 것 같다. 용광로의 괴암 속에서 이루어내는 조각, Las Salinas 호텔, Arrecifest 문화센터, 4,000종의 선인장이 자라고 있는 공원의 풍차집, 그 의 타이체 집과 교회, 마리네로 관광촌, 아레씨프의 현대 국제 미술관의 식당과 전시장, 모두 아름답고 훌륭하여 우리로 하여금 환상의 별천지로 돌입시키지만, 그의 두드러진 결작은 역시 수백 미터 괴암절벽 위에 들어앉은 Mirador del Rios 바Los Jamens del Augua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모든 건축 등의 특징은 하늘과 바다의 푸른 배경색에 검은 땅과 흰 건물의 대칭과 다양한 남국의 꽃과 식물들의 녹색 삽입으로 이루어진 '그림' 자체이다. 그리고 4층 이상 건물 짓기가 불허된 편안한 공간이다. 목 뒤 근육이 곧잘 당긴다는 도시민들의 긴장이 절로 이완될 수 있는 맑은 공기와, 물, 인심이 늘 기다리고 있는 땅이다.

 

4,000종의 선인장이 자라고 있는 공원의 풍차집
4,000종의 선인장이 자라고 있는 공원의 풍차집

 

Los Jameos del Augua에 들어가기 위해서 표를 사는 사람 들은 역시 독일어, 불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상 건물이 아닌 지하 동굴 속의 낙원이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표를 쥐고 안내표지를 따라 검은 충계를 좀 내려가면 저 눈아래 터키석 같은 파아란 아주 작은 인공호수가 있고, 주변에 남국의 상징인 종려나무들과 사람 키의 다섯 배쯤 되는 선인장들이 서 있었다. 이 호수 주변에는 통로가 있으며 동굴의 요철을 이용하여 카페가 있고, 오디오로 들려오는 음악은 동굴의 요철 그 자체가 스피커의 효과를 내고 있었다. 이와 같은 그의 음과 건축 혼합도 멋지지만 그의 조명 예술도 정평이 나 있다. 동굴 구석구석에서 들리던 림스키 (Rimsky)의 인디아송은 여느 때와는 달리 나를 미로에서 헤매는 듯 어리둥절한 여자로 만드는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Los Jameos del Augua 동굴 카페
Los Jameos del Augua 동굴 카페

 

검은 용암의 작은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 약 500석을 이루고 있는 극장 하나가 숨겨져 있다. 놀라운 발상이다. 여기서는 오페라 공연과 음악회가 주로 열린다고 한다. 신비스럽기까지 한 공간이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고 독창적인 공간을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구심밖에 없다. 감탄하다 못해 정신을 빼고 여기저기 서 있는 멍청한 사람들이 눈에 띌 뿐이다. 나는 귀국하는 대로 이런 것을 알려 우리 건축가들의 발전을 위한 참고 공간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지하건축은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가령, 캐나다 몬트리올의 그 어마어마하고 현대적이고 편리한 구조와 건축 설계에 모두 놀라지만, 만리끄의 동굴 건축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캔버스와 한지의 촉감 차이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 란자로떼에서의 체류는 나에게 오랜만에 새로운 경험이며 메말라가는 듯한 정신에 윤활유를 부어 넣은 듯 유연성을 돌려주었다.

만리끄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예술가다. 피카소, 샤갈, 그리고 그 어느 훌륭한 예술가에게도 국가가 한 도시를 전적으로 한 작가에게 작품 공간으로 내 준 적이 일찍이 없었던 것을 기억하면 스페인 왕 칼로스도 역시 멋있는 분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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