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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外

카나리 군도 기행 (1) - 그랑 카나리섬

by 이다인 2024.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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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 군도 기행 (1) - 그랑 카나리섬

 

오래전부터 계획된 여행이라 지도와 역사를 내 나름으로 충분히 익혀 놓았기에, 빠리에서 비행기를 탈 때부터 시험 준비를 착실히 해 놓은 학생처럼 마음 든든한 기분을 느꼈다. 거기다가 스페인어를 잘하는 딸아이와 떠나는 기회라 여유 있는 즐거움 그 자체였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런던이나 프랑크푸르트 같은 유럽 대도시로 가는 승객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늘이 늘 무거운 표정으로 짓누르고 눈이 펑펑 내리기도 하는 긴장감이 도는 중북부 유럽의 1월 중순인데도 불구하고 기내의 승객들은 가벼운 흥분과 고삐에서 풀어진 듯한 자유분방한 6, 7월 바캉스철의 밝은 얼굴들을 짓고 즐거운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하기야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접어두고 여정에 오른 공부하는 엄마와 학생 딸이다. 심각한 것은 다 접어두자. 지겹고 어려운 것, 보기 싫은 얼굴들은 잊어버리자. 도시의 각박하고 얄팍한 마음들을 피해, 일상에서 좀 떠나보자... 이런 생각으로 나는 가슴이 부풀었고, 처음 가는 카나리 섬들을 비행기 속에서 4시간 동안 얼마나 마음대로 상상했는지 모른다. 미지의 공간으로 가는 사람들은 우선 그곳의 바람, 흙, 냄새, 빛 같은 것을 머리에 떠올려보며 사람들의 표정이나, 언어, 의상, 음식들을 상상해 보는 것이 보통이다.

 

카나리 군도는 스페인령이지만 북아프리카와 더 가까이 있는 사하라 사막과 100km 지점에 있는 7개의 작은 섬이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니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 푸른 대서양 가운데 무슨 작은 요람처럼 사랑스럽게 가지런히 떠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220만이란 인구가 살고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거기다가 사철 평균 기온 17도~24도인 이 낙원으로 수없이 날아오는 유럽 후조인들까지 합치면 굉장한 숫자가 될 것이다. 그러니 깊은 침묵과 섬적인 우수와 고독성에 몸과 영혼을 내던지고 나그네의 방황을 꿈꾸는 자에게 무엇을 채워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맛보는 자유는 때때로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나는 그런 자유의 공간과 시간을 좋아한다.

 

카나리 군도
카나리 군도

 

섬이 갖는 미학은 나에게 언제나 참이며, 생명이며, 사랑이다. 나는 대륙 속에서 섬을 그리워한다. 나의 상상의 세계에서 공기와 같은 것이 된다. 사노라면 신진대사의 기능이 떨어지듯 마음이 비워지지 않고 채워지는 듯 답답하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섬으로 간다. 그러면 영기(靈氣)처럼 하늘과 바다를 헤엄치고 때로는 이름 없는 들꽃들의 이야기도 듣고, 공중을 나는 새들의 노래도 들으며 곱게 물드는 하늘에 마음을 열고 늙을 줄 모르는 자신을 보게 되는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카나리 섬들을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다. 처음 도착한 곳이 간도(Gando) 비행장이었다.

북쪽 라스팔마스와 스페인의 독일이라는 유명한 남쪽의 쁠라야 델 인그래스 ( Playa Del Ingles ,영국인의 해변 )의 중간 지점에 비행장이 있어 택시로 거의 1시간쯤 가야 어느 곳이든 가게 되어 있어 일단 라스팔마스에 먼저 머물렀다. 지도를 들고 여기저기 명소를 돌아보았다. 15세기에 스페인의 정복자 Juan Rejón 이 해변 어느 야자수 아래 정착하면서 그랑 카나리 섬의 정치, 경제, 군대의 중심지를 이루며 발달된 도시로 기록되어 있다. 지리상으로는 누가 보든지 마로크에 가장 가까워 이 섬들이 북아프리카에 속해야 할 것 같은데, 15, 16세기 뱃길에  밝은 강대국들이었던 포루투갈과 스페인이 그냥 둘 리가 없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토착민들은 스페인 사람들과 생사를 같이 하기로 주사위를 던진 모양이다.

이곳에는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 콜럼버스가 세 번이나 체류했고 그가 머물던 집이 잘 보존되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중심지격인 트리아나(Triana) 구역에서는 오래된 건축과 섬사람들의 일상의 진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지만, 역시 여기서는 바다로 빨리 떠나야 한다. 택시로 20분쯤 되는 거리에 있는 깐떼라스 해변에 도착했을 때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해변로 가로등에 이미 불이 밝혀지고 있었다. 백사장 위에는 조깅을 하고 있는 한 늙은 남자가 눈에 띄었고, 몇몇 젊은 여인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으며, 하루 종일 무엇을 팔았는지 노래를 흥얼거리며 좌판을 거두는 한 아프리카 아이의 느슨한 모습까지도 풍요로운 섬 풍경을 이루는데 손색이 없다.

대륙에서 황폐해진 정신을 바닷물에 마음껏 적시고 싶어라. 나는 낯선 거품과 뱃사람들의 소금 냄새에 서서히 취해 가고 있었다. 난파가 있을지도 모르는 부두의 거창한 작별 같은 것은 이제는 향수로 남는 풍경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오래전부터 한국 신문에서 가끔 한국 원양어업의 전초지니 부산수산대학 출신들이 거기에 많이 간다느니… 하는 것에 한순간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이곳 해변가에서 권 오정 한국 목사님과 박 집사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그렇게 놀라지 않았어도 되었으련마는 나중에 안 일이지만 라스팔마스에 한국인이 수천명 이나 살고 있고 한국 교회가 여러개가  있다고 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의외의 정보였다. 그들은 대부분 중류 이상의 생활기반을 갖고 있고 성공한 가정에서는 자녀들을 런던, 미국, 마드리드에 유학시키고 있었다. 여기서 알게 된 권목사님 초대로 하루는 Plaza de Augustin에 있는 교회에 가서 일요 예배를 보고 돌아오기도 했다. 이 교회는 라스팔마스의 온 전경이 다 내려다보이는 부촌 언덕 제일 높은 곳에 있고 건축도 멋쟁이로 지어져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건물은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나이트클럽이었는데, 사업 실패가 원인이 되어 결국 한인(韓人) 손에 넘어왔고 그것을 사는 과정에 여러 기적이 일어났다고 교인들은 입을 모아 얘기했다. 단기 체류자의 안목으로 보아도 이런 훌륭한 위치의 건물이 우리 손에 넘어왔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예배 중 한국 목사님 설교가 스페인어, 영어로 동시 통역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라스팔마스의 일부는 이미 한국인의 영토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부산사람이 경영하는 강촌이라는 식당에서 맛있는 한식을 먹으면서 '섬'에 온 것이 아니라 부산에 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속으로 웃음 지었다. 이번 체류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박 집사라는 40대의 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거기서 뱃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큰 술집을 경영해서 교인들 사이에 사업가로 알려졌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기독교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사업을 다 정리해 버리고 한 교회의 무보수 전도사로 완전히 변신해 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전도 모습과 생활을 볼 기회가 있었다. 일요일에 빈 버스를 가지고 부둣가로 가서 정박하고 있는 뱃사람들을 호객하듯이 불러 모아서 교회로 데려와 예배를 보게 하고,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월 수백 불을 받고 배를 타는 노예나 다름없는 중국 혹은 아프리카 선원들이 많다고 한다. 그녀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그리고 찬송한다. 참으로 놀라운 변신이다. 과거에는 돈깨나 있는 뱃사람들의 주머니를 후려내는 것이 목적이었고 지금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는 선원들을 위로하고 도와주는 일에 혼신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놀라운 일이다.

라스팔마스에서 우연히 한국인들을 만나는 통에 내가 여기온 목적과 며칠이 빗나가버린 셈이라 다시 남쪽  '영국인의 해변'으로 내려갔다. 라스팔마스와는 전혀 다른 휴양지다. 수천수만의 빌라, 호텔들이 끝없이 해변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마치 흰 벌집 떼같이 붙어 있다. 호텔을 정하고 거리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았다. 이상한 것은 영어가 아니라 가게, 호텔, 거리에 독일어가 군림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거구의 사람들이 오간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내가 묵는 호텔, 수영장, 식당에서도 거의 80% 가 독일인이고, 스웨덴, 노르웨이 북구인들이 꽤 있었다. 새로운 발견이다.

 

Playa Del Ingles ,영국인의 해변
Playa Del Ingles,영국인의 해변


해변가의 수많은 식당에서는 빠리의 2분의 1 가격으로 싱싱하고 올리브유에 튀긴 생선요리를 만끽할 수 있되, 독일 사람들 양에 맞추어서인지 우리는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푸짐했다. 그래서 그런지 길모퉁이에서 쉽게 몸무게를 다는 큰 저울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껏 먹고 마시고 몸무게를 달아보고 눈금이 오르면 바닷가 수영장, 식당(보통 수준의 식당까지도 춤추는 코너와 음악 시설이 있음)으로 가서 체중을 줄이라는 경고로 해석된다. 기후, 천연의 아름다움, 남국 과일 이런 것들만으로도 태양이 아쉬운 북구인들에게는 파라다이스임에 틀림없다.

 

이곳에 오는 외국인들이 꼭 들리는 곳이 있다. 빨미또즈 공원이란 곳인데 ‘영국인 해변'에서 영화에서 보던 인디언들과 싸우던 서부의 건조한 산과 계곡 같은 곳을 버스로 1시간쯤 구불구불 올라가면 앵무새들이 갖은 재주를 다 보여주는 야외 쇼와 수천 종류의 선인장과 야자수, 새들 그리고 수백 종의 나비공원을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이 섬의 매력 포인트다. 이렇게 일상에서 잊고 살던 생물들을 직접 접하면서 이미 내 정신이 살찌고 여유로워져 탄력이 생겨진 것 같았을 때, 책에서만 읽어오던 예술섬으로 이름 높은 란자로떼로 떠나려고 나는 다시 짐을 꾸렸다.


 

 

라스팔마스
라스팔마스, 그랑 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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