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의 튤리 스미스 하우스, 미국
시카고에서 애틀랜타로 향하는 비행기 속에서 두어 시간 반 동안 나는 수십 년 전에 읽고 영화로도 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스칼렛 오하라의 고향으로 가는 길이다. 내가 애틀랜타에 도착하면 그 정열적이고 매력적인 여성이 불쑥 나타날 것 같은 착각을 하면서 마가렛 미첼의 소설을 그려 보고 있는 동안 벌써 하츠필드(Hartsfield는 5년 전에 건축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 공항은 미국 남부에서 가장 중요한 국제공항답게 초현대적인 시설로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
미국의 역사적인 장소로 등록되어 있는 애틀랜타 역사협회에 소속되어 관리되고 있는 스완 하우스(Swan House, 1928년 건축)와 튤리 스미스 하우스(Tullie Smith House, 1840년경 건축)를 꼭 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미첼 소설의 인물들을 그런 집과 관련시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의 스칼렛의 묘사 중에, “...... 그 위에 검고 짙은 눈썹이 올라갔다 싶게 목련과 같은 흰 살결에 선명한 빗발을 긋고 있었다. 이런 흰 살결은 남부 여자들이 소중히 하는 것으로 보자기나 베일로나 장갑 같은 것으로 저 뜨거운 조지아의 햇볕으로부터 매우 조심스럽게 보호하고 있는 터였다”라고 씌어 있다. 이 대목은 주인공의 미모를 설명하고 있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애틀랜타의 강렬한 태양을 묘사하고 있는 점이다.
8월의 애틀랜타는 정말 덥다. 특히 지하철과 버스 승객들의 대부분은 흑인들이었는데, 그들을 보고 있는 내 눈에는 모두가 태라의 오하라 대농장의 목화 따던 후예들로 여겨졌다. 저들의 검은 조상들이 조지아의 여름 불볕 아래 흘린 피땀으로 철없는 목화꽃들이 평온히 미소 짓고 피어 있었을 거의 1세기 전 땅을 상상하며 나는 이제 흑인 천국이 된 애틀랜타 중심가에서 북쪽에는 남북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땅에 들어섰다. 이 도시의 상징인 '복숭아'의 이름을 띈 피치트리 로드(Peachtree Road) 왼편, 가장 좋은 주택 구역, 주지사 관저 근방에 격조 높게 지어진 스완 하우스, 허름한 튤리 스미스 하우스, 맥엘리즈 홀, 이 세 개의 건물이 한 울타리 안에 모여 있으며, 원시림같이 쭉쭉 뻗은 장신의 나무들이 빽빽이 둘러 있었다.
깨끗한 현대 건물로 된 맥엘리즈 홀(McElreath Hall)은 바로 애틀랜타 역사협회 본부여서 모든 사무실, 전시실, 자료실, 소극장, 연회실 등이 고루 갖추어져 있고, 일단 이곳에서 표를 사고 이곳을 통해서 입장하게 되어 있었다. 마침 점심때가 가까워서 나는 식사를 곁들인 표를 샀다. 이 건물을 지나고 50미터쯤 걸어가니 '스완 하우스'란 팻말이 붙어 있고 사람들이 여기저기 몰려 있었다. 유럽식 저택이 잘 정돈된 입구 정원에서 보였다. 안내자 한 사람에 20명의 관람자만 입장시키는 규칙이 있었고, 집의 내력과 집기 하나하나를 설명해 주었다.
이 집은 1926년에서 1928년에 이르기까지 2년간에 걸쳐 지어졌는데 영국 바로크 스타일이며, 22 에이커나 되는 정원 대지는 로마 팔라조 코르시니 (Palazzo Corsini)식으로 꾸며져 있다. 흑백 대리석 바닥의 각 방은 20세기 초엽 미국 부호 이민 가족의 유럽에 대한 향수나 취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는데, 바로 이런 집은 당시 수십 명의 노예와 말을 가진 백인 부호들만이 살 수 있었던 것임이 짐작된다. 아직도 집 어느 구석에선가 허리가 잘록하고 대리석 바닥까지 질질 끌리는 폭넓은 치마를 걸친 우아한 차림의 미녀가 도도하게 걸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곳이다. 건축 규모나 정교함은 지금도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 집 안주인 마님이 백조를 좋아하여 스완 하우스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집을 구경하고 곧장 안쪽 주차장 앞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미국 각처에서 온 관광객 사오십 명이 앉아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음식은 별로 선택할 것이 없었고, 더운 지방이라서 그런지 미국 다른 지방과는 조금 틀리는 것 같았다. 거기 식객들의 거의 대부분이 여자 들 만인 데에도 좀 놀랐다. 식당 바로 옆에는 선물 가게가 있었고 또 조그만 화랑이 하나 있었는데, 그림이 30여 점 전시되고 있었으나 모두 세잔의 흉내를 내는 그림들이었고 빛처리에 대한 수련 작품이었다.
스완 하우스가 남북전쟁 이후 유럽 복고풍의 건축으로 사랑을 받는다면, 바로 옆의 튤리 스미스 하우스는 거기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40여 평 남짓한 2층 목조 건물이나 145살이라는 나이를 먹은 이유 하나만으로도 미국 역사의 '장수상'을 받으며 축복을 받고 있는 셈이다. 마치 전쟁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온 사회로부터 사랑받는 어느 고아의 입장과 같다고 하면 어떨지.... 가구들은 모두가 소박하다. 특히 안내원의 옷차림이 재미있었는데, 이 집에 어울리도록 노력하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서부 영화에서 흔히 보아왔던 옷차림으로, 남자들이 말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거나 일을 하러 나가는 동안 잔잔한 무늬가 있는 옥양목 원피스에 널따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빵을 굽는다든지 빨래를 하는 세기초 미국 가정부인의 모습이었다.
이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물레에서 실을 뽑고 천을 짜던 베틀이 그대로 놓여 있는 방이었는데, 그 옛날 우리 시골집 할머니가 툇마루에서 사용하시던 물레나 베틀과 똑같았던 것이 재미있었다. 집도 목조 건물이었지만 내부의 모든 장식과 집기들이 나무로 만들어졌다. 미국인들이 이 보잘것없는 145살 된 집을 역사적인 유물로 생각하고 보호하고 있는 데 비해 유럽 각지에서는 이삼백 년 된 근사한 돌집들이 길거리 아무 데나 서 있고 또 누구나 주거할 수 있는 것을볼 때, 확실히 미국은 젊은 나라라는 것을 또 한 번 절감했다.
오래전에 한국에 온 한 독일 친구가 "한국은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나라이지만 사회적인 나이는 아직 젊군요" 하면서, "우리 독일도 산업 개발 의욕이 대단했던 20세기 초반기에는 지금의 한국과 꼭 같이 온 길은 파헤쳐지고, 공장을 짓는 해머 소리가 온 나라에 그칠 날이 없이 들렸지만 이제 늙은이처럼 조용하며 안정되어 있습니다. 젊을 때는 힘이 넘치고, 힘이 넘치니 부수고 짓고, 허물고 쌓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하면서 아파트와 지하철 공사로 인한 난개발과 교통 체증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며 나를 위로해 준 적이 있다.
당시 한국은 늙은 나라이면서 동시에 모든 면에서 타국인의 눈에 미성년아로 비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이런 생각들을 떠 올리며 이 집이 가지고 있는 부대시설을 둘러보았다. 앞마당에 있는 헛간에는 목수일을 하다 남은 것 같은 것이 있고, 뒷마당에는 재래식 우물과 지하실이 붙은 빵 굽는 부엌 같은 것이 있기도 했다. 튤리 스미스 하우스는 미국 역사의 일면을 눈으로 공부시키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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