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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外

동경의 우에노 공원, 일본

by 이다인 202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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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의 우에노 공원, 일본

 
먼 듯 가까운 듯, 알 듯 모를 듯, 큰 듯 작은 듯…이런 묘한 감정이 일본인과 일본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수십 년 전 나는 그렇게 많이 들어만 왔던 동경에 처음으로 발을 디뎌 보았다. 그때 나는 젊었고, 이미 유럽에서 1년 반을 지내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경을 보았기 때문에 어릴 때 들어오던 것만큼 야단스럽고 놀라운 것은 없었다.
 
택시 운전사들의 예의 바른 태도와 상점 아가씨들의 상냥한 표정들을 빼놓으면, 내가 이미 익숙해 있는 동양권의 한 대도시라는 느낌 이외에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외국을 오가면서 가끔 들렀지만 한 번도 진득이 눌러앉아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곳이 동경이다.
 
시간이 있으면 한적한 농촌이나 북해도쯤 한번 가 보았으면 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이번에는 지극히 사랑하며 온정성을 다해서 모시던 어머니 상을 당한 나의 친한 친구로부터 연말에 너무 쓸쓸하다면서 자기와 며칠만이라도 같이 지내자는 간절한 편지와 전화를 받고 유럽을 가는 길에 4일간을 동경 근교 서북쪽에 위치한 이찌가와 시의 한 전형적인 일본 가정에서 지냈었다. 
 
내가 처음으로 일본 사람을 사귀게 된 것은 일본 땅도 한국 땅도 아닌 파리대학에서 이었다. 그도 외국인이요, 나도 외국인인 신분으로 한치의 기울어짐이 없는 동등한 입장에서였다. 누가 누구를 선망한다든지 우월감을 가진다든지 하는 것이 적어도 국적을 가지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도 일본인이 우리보다 물질적으로 잘 산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우리 문화가 저들 것보다 과거엔 훨씬 우수했는데... '라는 긍지 같은 것이 늘 따라다니는 묘한 심리가 내게 존재했다.
 
사실 그 당시 어떤 면으로는 경쟁의 상대도 되지 않으면서 일본은 언제나 우리에게 질투나 경쟁자로 머무는 것 같았다. 솔직히 나는 일본을 잘 모른다.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짧은 기일이었으나 조금이라도 알려고 하는 노력을 해본 셈이었다.
 
친구는 나에게 동경 체류 중의 관심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동경이나 그 근교에서 가장 문화적인 공간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동경 시내에서 약간 서남쪽에 있는 우에노(上野) 공원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우에노라는 곳에 원로 한국인 예술 세대들이 동경했던 학교들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당시 60세 된 고모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바이올리니스트이다(이화여대 제1회 바이올린 전공 졸업생).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음악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K 선생님은 우에노 음악학교 출신이며, 또 아무개는 우에노 시험 준비를 했다”느니 하신 말씀을 가끔 들어서 '우에노'라는 이름은 내 귀에 대단히 익숙해 있었다.
 
연유야 어쨌든, 나는  바로 그 음악학교가 있는 아름다운 공원에 와 있었다. 이 공원의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비원의 2~3배 규모는 되는 것 같았다. 그 땅이 크고 작은 것도 문제가 되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건물과 기능적 구성을 보고 나는 첫눈에 일본인의 안목을 평가할 수 있었다. 우선 우에노 공원 안내도에 붙은 표지판의 수가 63개이다. 건물 양식은 일본 전통양식과 서양식이 반반 정도로 섞여 있었고, 먹고 자고 일하는 것을 누구나 반복하는, 소위 일상에서 떠나 보고 싶을 때 필요한 욕구를 이 공원에서 채울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동경 예술 대학

그 유명한 동경예대 음악학교미술학교가 있고, 미술관·박물관이 6개, 자료 도서관·행정 연구관이 6개, 사찰· 동물원·수족관·수상 음악당 · 문화 회관, 동상. 탑·문, 여러 개의 벚나무가 가지런히 도열해 있는 정돈된 산책길이 있다. 언제부터 만들어진 공원인지는 모르지만 대단한 안목으로 계획, 설계되어 있었다.
 
내가 방문한 날은 12월 27일이다. 성탄일 뒤이고, 또 정초 전이라서 모든 관람실이 정상 운영되지 않았다. 국립 박물관은 수리 중이었고,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우에노 음악·미술학교는 방학 중이라서 출입이 금지되었는데, 여러 명의 수위들이 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나는 건물 내부의 보물들을 감상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시기임을 금방눈치채고 끝없이 건물을 돌고 돌면서 공원을 걸었다. 대체로 그 규모의 감이나 잡자는 식으로 겉모양이라도 열심히 눈여겨보았다.
 
이곳은 벚꽃이 활짝 피는 계절에 와야 보고 또 보고 싶은 맛이 나는 곳이다. 동경의 기후가 마음에 들었다. 참 온화하다. 내가 머물던 친구 집 길목에 있는 집집마다 나무들이 잘 손질되어 있는 모습, 예쁜 소나무가 대문이나 담 밖으로 삐죽이 나와 있는 모습을 보며 참 평화스럽게 느꼈던 것도 좋았지만, 우리나라 시골집에서 볼 수 있는 빨간 감나무 대신 많은 집에서 노란 오렌지와 레몬이 달린 나무들을 보았을 때 이상하게도 지중해적 작은 행복감 같은 것이 스며오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성공한 재일 교포 사업가와 결혼한 나의 친지 J가 우연히 점심 약속을 우에노 공원 내의 '정양헌'이란 곳에 해 놓았다. 음식이 아주 좋았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식당은 동경에서 제일 먼저 생긴 프랑스 식당이라서 오랫동안 유명세를 치르고 있었던 곳이었다. 지금은 더 좋은 곳이 동경 여기저기에 꽤 있지만 과거에는 가장 훌륭한 식당으로 알려진 곳이었다고 한다.
 

관영사

친구 J는 얼마 전에 남편을 잃었다. 그러나 워낙 단단한 사업체를 남겨 놓고 갔기 때문에, J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한다. 점심을 끝내고 J는 공원 내에 있는 '관영사'라는 절에 남편의 시신을 모셨기 때문에 가끔 들른다고 하며 우에노 예술학교 모퉁이에서 나와 헤어졌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내 일본 친구가, “J는 굉장히 돈 많은 부인인가 봐. 그 절에 사후 처리를 맡기는 것은 동경 부호들 아니고는 꿈도 못 꾸는 비싼 곳이야”라고 말했다.
 
우에노 공원은 죽은 자들에게도 매력 있는 장소임을 알게 되었다. 하기야 어느 날인가 벚꽃이 만발하는 날, 혹은 낙엽을 밟으며 인생이 무엇인가 한 번쯤 되돌아보고 싶은 날, 또는 안개 자욱하고 부슬비 내리는 날 누군가와 함께, 말 통하는 사람과 함께 우산을 받다가도 잠깐 조문을, 혹은 사랑했던 사람을 찾아볼 수 있는 그런 공원에 사자(死者)의 처소가 있다는 것도 결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어진다.
 
공원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큰 분수 근처를 산책하던 많은 사람들이 거의 떠나 버려 공원 벤치는 비어 있고, 연말 겨울 햇빛이 엷게 남아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런 다양한 문화 공간이 집산되어 있는 우에노 공원을, 내가 사는 지역 여기저기에 끼워 넣어 보는 상상을 하면서 걸어 나오는데 발 앞에 수백 마리의 비둘기들이 모이를 쪼고 있었다. 마침 밀라노의 두오모 (Duomo) 광장이나 베니스의 산 마르코 광장의 비둘기처럼 겁 없이 사람들 사이로 걸어 다니며 꾸꾸거리고 있었다.
 


 
 

우에노 공원 벚꽃
우에노 공원 벚꽃
우에노 공원
우에노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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