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없는 놀음, 마카오 카지노
어느 나라에서든지 부지런하게 쉬지 않고, 진지하게 일하는 사람을 칭찬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우리는 늘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유희 심리가 있는 법이다. 놀기 위해서 일하는가, 일하기 위해서 놀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질문과도 흡사하다.
다 같은 선진국이라도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멋있고 근사한 바캉스를 보내는데 불편하지 않기 위해서 일한다는 대답을 할 사람이 많을 것이고,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바캉스를 잘 지내야 능률을 올릴 수 있다고 것으로 안다.
대답할 사람이 많을 우리나라는 아직 그 대답이 정착되었다고 할 만큼 아직 일과 휴식의 가치관이 뚜렷하게 확립된 것 같지 않고 휴식의 중요성을 그렇게 인정하는 것 같지 않다. 일을 좀 더 해도 그뿐, 휴식을 좀 과하게 취해도 그뿐, 그런 것 같다. 점점 젊은 층으로 가면서 그 균형을 주장하는 쪽이 많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선진사회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일과 휴식을 밤과 낮의 필요성만큼 그 균형이 잡혀 있는 사회제도와 국민의식에 있다고 흔히 말한다.
날로 다원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도 이제 많은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가 점차 형성되어 가고 있는가 하면, 과거의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서서히 서로 동화되어 가고 새로운 사회 형태로 너그러워지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다. 선진 제국들은 일과 휴식의 균형이 깨어지면 어느 날 갑 자기 병마나 무서운 전쟁 같은 불행이 도사렸다가 나타날 수 있다는 위협을 철저히 개인이나 사회의 경험을 통해서 느꼈는 것 같다.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홍콩 경유 마카오에 들러보았다. 마카오는 16세기 때부터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식민화된 중국땅이다. 홍콩이 1997년에 중국으로 다시 환원되었던 것처럼 마카오도 1999년 다시 중국에 반환되었다. 사실상 홍콩과 마카오는 가장 서양문물화된 동양의 두 도시로 꼽을 수 있다. 60여만 명의 인구를 가진 이 조그만 땅은 불행하게도 1557년부터 포르투갈의 영토가 되었다. 속국이 된 홍콩과 마카오의 슬픔이 엄청난 것이겠지만, 제3자에게는 국제 정치라는 한 놀이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 나는 홍콩의 선창가에서 같이 갈 외국인 몇 사람들과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홍콩에서 1시간 배를 타고 가면 그 유명한 마카오의 카지노에 이르게 된다. 마카오는 동양에서 제일 유명한 카지노를 가지고 있다. 오전 중에는 선창가에 대기하고 있던 미니버스를 타고 몇몇 관광지를 둘러본 다음에 오후에 카지노에 들렀다.
우선 나는 건물부터 구석구석 돌아보기 시작했다. 원래 카지노라는 말은 이태리어로 집이란 뜻에서 유래된 것인데 놀음, 식당, 스펙터클의 세 요소가 행해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된 건축이라야 한다. 정문 앞에는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파노라마 그런 것이었다. 그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홍콩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았다.
얼마나 카지노에서 돈을 많이 벌어들이면 국민들은 세금 일전 내지 않고산다고 했다. 우리들의 안내양은 "카지노는 hungry tiger (굶주린 호랑이)이니 알아서 노세요"라고 경고성? 멘트까지 있었다. 같은 차에 탔던 한 남자는 입구에서 경비원에 의해 반바지 복장 때문에 출입저지를 당해 시내 싸구려 가게에서 긴 바지를 사 입고 들어갔던 일이 있기도 했다.
우선 홀 안에 들어서니 동전 쏟아지는 소리가 좌르륵 좌르륵 요란해서 속으로 아마 돈 따는 사람이 꽤 많은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소리가 빠찡고 기계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라 손님들이 계산대에서 지폐를 내놓으면 동전으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기계로 자동 계산되어 광주리에 떨어지도록 되어 있어 그 소리가 요란했던 것이다. 홀 안의 사람들에게는 그 소리가 마치 돈 따는 사람의 수 가 많은 것 같은 심리적인 착각을 일으키기에 적당한 효과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수백 명으로 보이는 군중들이 군데군데 놀이판을 벌이고 있으며, 앉아 있거나 둘러서서 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들이 그렇게 정신을 빼고 있는 그 놀이에 대해서 잘 모르는 문외한이라 그 종류가 다양함을 그때 알았다. 포카, 룰랫, 블랙잭, 슬롯머신, 바카라, 마작… 없는 것이 없었다. 어떤 노름판에는 울긋불긋 지폐들이 재수 좋아 보이는 번호판에 수두룩 놓이기도 하고 전기불이 여기저기 번호에 불이 켜지기도 하며 놀이꾼들은 패를 손에 쥐었다가 던졌다가 심각한 동작을 하고 있다.
노름판마다 중국 아가씨들이 보라색 유니폼을 입고 한 두 명씩 있었다. 그 여자들이 놀음꾼들을 상대해 주고 있었고 모든 기계 조작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젊은 미인들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표정한 것이 특징이다. 철저한 중립을 지키고 인간의 감정을 배재해야 하는 직업인지는 몰라도 미소도 짓지 않고, 짜증도 내지 않고 피곤해하지도 않는 마치 석고 같은 분위 기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녀들의 재빠른 동작과 감정이 없는 무표정한 그 들의 얼굴을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원래 중국 도박꾼들은 밑천이 떨어지면 자기 부인까지 건다고 할 정도로 광적인 것으로 유명하다더니 정말 도박에 열중하고 있는 3층까지 꽉 들어찬 도박 인구에 저으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국가가 경영하는 도박장이라고는 하지만 나 개인 취향으로 그 공간의 분위기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서비스며 건축물의 고급스러움, 진행의 치밀성, 부대 시설의 현대성, 거의 카지노로서는 완벽하건만 그 분위기가 기분에 들고 멋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유학했던 도시와 가깝게 있던 모나코의 카지노를 같이 생각해 보았다.
세계에서 똑같이 유명한 도박장이나 모나코를 구경한 후 그 느낌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의 정신자세에 관계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가령 어떤 운동경기를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될 것 같다. A라는 한 테니스 선수는 경기에 임할 때 반드시 이겨서 일등 하는 것이 생명만큼이나 중요하고 삶의 목적이라고까지 생각한다면, B라는 선수는 훈련한 역량만큼 최선으로 실력을 발휘하고 그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로 경기에 나서는 두 선수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A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땀을 흘릴 것이고 공을 날리는 멋있는 폼 같은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며, 만일 지고 나면 얼굴은 찌그러지고, 화를 내지 않으면 얼굴은 불그락 푸르락 거리며 남을 원망하거나 불평을 하며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할 것이 뻔 한 노릇이다.
B의 태도는 이기면 기분 좋고 즐거우며 모든 사람들의 축하를 당당하게 받을 것이고, 지면 이긴 자에게 축하하고 더 실력을 닦아서 다음의 도전을 준비할 결심을 할 것이다. 인간의 행위는 이상하게도 행하는 자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따라서 그 결과와 평가가 전혀 다를 수가 있는 것에 묘미가 있는 것 같다. 인간 사회에서 가장 죄악시하고 있는 절도나 살인, 스파이, 미인계 같은 속임수까지도 경우에 따라서는 이해되거나 환영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비록 작가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들이기는 하나 장발장, 홍길동, 조조... 이런 주인공들과 실제 인물들로 안중근, 논개 이런 분들을 꼽을 수 있다. 모나코와 마카오의 도박인 들은 똑같이 돈을 걸고 놀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두 곳을 구경한 사람들의 후감은 너무 틀리는데 웬일일까. 전자에서는 삶의 여유를 느꼈다면 후자에서는 오히려 쫓기는 감을 느낀다. 저쪽은 표정 장난 끼와 유모어를 찾을 수 있는데 이쪽은 긴장감과 심각성이 전부다.
한쪽은 돈을 좀 잃어도 따도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 다른 한쪽은 잃으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생긴다. 그리고 그들의 동작, 옷매무새 하나하나, 액세서리까지도 고급 취향이 배어 있고 스케일과 섬세성이 보기 좋게 공존하고 있는 모나코의 도박꾼과는 다른 마카오의 놀이꾼들의 비교, 일일이 꼬집어낼 수 없으나 아주 내면적인 대조 분위기를 느꼈다. 아마 우리 인생살이도 그럴 것 같이...
인생이란 것이 계획대로, 마음대로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도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삶도 크게는 모나코와 마카오의 도박인들처럼 두 편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연하고 여유를 보이며 멋을 부리고 사는 모나코 스타일과 빡빡하고 물고 늘어지는 듯한 마카오 분위기로 구별될 수 있을까.
여유는 멋이다. 그 여유란 하루아침에 어느 날 갑자기 생겨지는 것이 아니다. 멋있게 놀이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 람은 곰곰이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실상을 사는데도 모든 면에 실력 있고 열심히 노력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같이 여행을 하거나 같이 놀아보면 상대방의 인간적인 역량과 취향을 거의 알 수 있다. 역시 멋있고 품위 있게 높은 질의 놀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괜찮은 사람으로 간주해 봐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한 개인이나 한 집단은 좋은 역사, 전통, 문화, 철학… 이런 것이 튼튼한 배경이 되어 있을 때 비로소 머금고 있는 것이 새어 나오듯 필요할 때 시시각각으로 인간의 실력이란 것이 새록새록 배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진지하게 좋은 것을 찾아서 꾸준히 삶에 임하는 길밖에 없다.
이 평범한 진리를 한 번 되새기며 나는 카지노 문을 나섰다. 모나코의 카지노 정문을 나오면 아름다운 꽃들의 행렬이 기다리고 구석구석 시선에 들어오는 풍경 전부가 다 정하다. 비록 수많은 돈을 잃은 도박꾼이 실의에 빠져 있어도 거리의 생명 있는 꽃들과 나무들이 위로하는 표정을 짓고 있어 죽고 싶은 마음을 돌린다고 한다.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은빛 비늘되어 반짝이는 지중해 수면을 모나코의 카지노는 뒤로 보고 앉았는가 하면, 마카오의 것은 정문에서 20m만 걸어가면 그 넓은 바다가 누워 있다. 주머니를 다 털어버린 도박꾼이 아직 바다에 뛰어들었다 는 얘기는 없는 것을 보니 물불 가릴 것 같지 않은 그들도 하나님이 주신 생명만은 아직 소중하게 여기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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