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의 물, 인터라켄 (Interlaken)을 통해서 / 스위스 ( 2 )
인터라켄은 서부 유럽에서 독어권으로 들어가는 첫 대문 같은 물의 도시이다. 여기서 북으로는 독일이 무겁게 거창하게 얹혀 있고 동으로는 아직도 너무 클래식하여 때로는 약간 촌스러운 냄새까지 느껴지는 오스트리아가 길게 엉거주춤 엎드려 있다.
내가 처음 그곳을 갔을 때는 잔설이 산 언저리에 꽤 남아 있었고 뚠 호수 옆 산 골짜기에 모인 물들이 얼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으며 여름에도 스키를 탈 수 있다는 해발 4,000미터 가까운 용담을 맞춘 융프라우 (Jungfrau) 산이 뿌옇게 멀리서 보였다.
미끈미끈한 산들이 호수 주위를 싸고 있고 오른쪽 호수가에는 운터젠 (Unterseen)이란 옛날 교회가 있는 동네에는 전형적인 스위스식 예쁜 집들이 그림처럼 들어서 있다. 역시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니 지붕의 경사가 많고 소박한 건축 양식에 전원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바로 이 교회에서 보면 온 베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융프라우는 오른쪽에, 묀쉬 (Mönch) 산봉은 왼쪽에 베른을 보호하듯 솟아 있다. 호수에는 유람선이 정기적으로 오고 가고 돛단배들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나를 안내했던 쌰쏘 씨는 돛단배를 살 만한 꽤 실력 있는 가정인데도 배를 물 위에 세워 놓는 소위 파킹값이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 낸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유람선에 좌석을 예약해 놓고 날씨 좋은 날이면 선상에서 아침을 먹으며 두어 시간씩 즐긴다는 것이다.
레만 물과 노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놀면서도 바쁜 것 같고 도식적인 놀이 같은 것이 보였는데 인터라켄 물을 즐기는 사람들은 비축한 여유가 있어 보였다. 평안한 자세의 건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여유란 확실히 아름다움이다. 사람들에게서도 품위와 향기가 도는 듯한 친절이 몸에 배어 있다.
나는 독일 제국주의 역사의 흔적 때문에 그것이 싫어서 학생 때 독일어를 배우다가 집어치워 버렸는데 나의 편협했던 생각을 지금 와서 후회한다. 한 외국어를 안다는 것은 단지 의사소통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 나라의 문화를 익히고 그 문화권 속에 산다는 뜻이기 때문에 외국어를 많이 알면 알 수록 삶의 폭을 넓게 살고 있다는 뜻이다.
외국어는 한 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은 것이다. 문을 열어 봐야 그 속에 내가 필요한 보물이 있는지 돼지만 우글거리는지 알 수가 있다. 문을 열어 보지도 않고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 같이 땅이 좁고, 큰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같은 곳과 지리적으로 유리되어 있는 나라 사람들은 열쇠가 많이 필요하다.
현대란 한 문화권 속에서만 살면 살수록 손해다. 지구 문화권 속에 사는 것이 여러 면에서 이로울 것 같다. “우물 안 개구리"로 독선이나 아집에서 벗어나는 데는 다국어(多國語)를 익히는 것 이상 명약이 없다. 유럽에서는 대여섯 개의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지식인들을 가끔 많이 만나게 되는데, 대개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우선 편견이나 이상하게 촌스러운 고집이나 쇼비니즘 같은 것은 없는 사람들로 인정하고 안심해도 된다.
즉 여러 문화권 속에서 영향받으며 자기 언어를 포석으로 지키면서 스스로 형성해 왔다는 증거이기에 그들은 섣불리 거드름 피우며 높게 쌓아 올린 유아독존의 궁전에서 살지 않는다. 지혜로우며 누구나와 더불어 사는 법을 익힌 사람들이다. 바로 스위스 사람들이 그런 국민들이 아닌 가 싶다. 스위스의 대통령 관저 앞 광장은 서민의 노천 시장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장바구니 들고 시장 나온 대통령을 옆 집 아저씨처럼 만나서 “봉주르” 하고 인사한다는 얘기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
관련하여, 나에게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남아 있다. 모두가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항상 그들은 입에 발린 말만 잘하고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려는 진지한 노력은 부족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잘 경청하지도 않으려 한다. 자기 발언을 관철시키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싸우는 사람들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 그들이 두서너 개의 외국어를 습득했고 외국어 신문을 자주 읽을 수 있다면 훨씬 더 나아 질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살다 보면 에밀 졸라가 한 유명한 한 구절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무지는 괴물이다.” 때로는 무지하고 무식한 약자가 강자가 되고 횡포를 부릴 때가 있다. 아무리 큰 실수를 하고도 "몰라서 그랬다. 못 배워서 그런 걸 어떻게" 하고 큰소리치면 지성층은 꼼짝 못 하고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모른다는 것이 최상의 무기이니까. 스위스에서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 속임수가 없다. 횡포가 없다. 그 좁은 땅에 네 개나 되는 언어로 나오는 신문들이 번득이는 눈길로 보초를 서고 있으니 사회도 경제도, 호수까지도 조용할 수밖에 없다. 참으로 부러운 삶이다.
역사상 파리가 자국에서 몰이해로 박해받는 시인, 작가, 화가, 망명 지식인이 숨 쉬고 살 수 있는 서식지 라면 스위스도 그와 같은 중요한 장소이다. 파리와 스위스의 다른 점은 파리에 정착했던 사람들은 그대로 눌러앉아 “큰 나무”로 자라든가 생활하는데 비해서 스위스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신천지를 찾아 떠난다. 그러니 쉬어 가는 주막 같은 역할을 했다. 피카소와 미로는 스페인에서 릿츠는 헝가리, 쇼팽은 폴란드, 샤갈은 러시아, 하이네가 독일에서, 실향의 미술을, 음악을 실향의 문학을 하던 중 파리가 길러낸 거성들이다.
그런데 스위스는 어떤가. 특히 세계대전 중 반 나치스 지식인들 중에 "서부전선 이상 없다” “개선문” 등으로 잘 알려진 레마르크, 아일랜드의 가난뱅이 조이스, 룻쏘, 볼테르, 릴케, 모두 스위스에 머물었을 뿐이다. (헷세만은 46세 죽기 전 스위스국적을 가진 경우이다)
제일 재미있는 일화는 볼테르 경우다. 프랑스 국민에게 가장 사랑을 많이 받는 작가 중의 하나인 그는 그 기질 자체가 프랑스적인 천재이다. 그러나 그는 강한 개성과 작가적인 비판력 때문에 정치적으로 항상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1758년에는 적어도 자기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쥬네브 레만 호수가까이 쥬라 (Jura)산 기슭에 페르네 (Fernay) 란 곳에 큰 성을 하나 샀다.
그곳은 스위스, 프랑스, 독일을 빨리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국경지대였다. 또 나중에 거기서 바로 옆인 뚜르네 (Tournay)에 땅과 성을 샀다. 그 땅들은 절반은 프랑스, 절반은 스위스 소속의 땅이어서 프랑스 정부가 귀찮게 굴면 걸어서 잠시 자기 스위스 성에, 스위스에서 귀찮게 굴면 프랑스 자기 집으로 편안히 피난했다는 꾀를 썼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 나라는 머리 좋고 감각이 예민한 예술하는 후조 인간들이 서식하는 장소로 아주 적당하다. 정치가들의 피난지이기도 하다.
이란의 호메이니 옹을 비롯해서, 한때 인근에 살았던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가족들, 수도 없는 나라들의 정치 패잔병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쌘느강은 흘러내려가면서도 실향인들을 거기서 머무르게 하고 스위스의 호수는 흐르지 않고 머무르는데도 실향인들이 짐을 다시 꾸려 흘러나간다. 바로 이 이율배반적인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땅덩어리가 작기 때문이겠지만 가장 민주적이고 너그러운 것 같으면서도 1971년에 처음으로 여성에게 선거권을 주었다는 사실과 누구든지 5년 정도의 기간을 한 나라에서 체류한 외국인에게는 시민권을 신청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 대부분의 국가들의 상례일 것 같은데 스위스 만은 예외이다.
외교관, 학생 이런 특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을 하러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노골적으로 인 태도로 배타적이다. 그래서 외국인이 뿌리를 내리기에는 적당한 토양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기야 그들이 그렇게 애써서 만들어 놓은 낙원에 누구든지 발을 들여놓으면 나라 꼴도 말이 아닐 것이고 자국보호정책이라고 이해가 가는 일이다.
내가 스위스를 갔을 때마다 참으로 부러웠던 것은 호수를 산책하는 유람선의 사람들도 아니었고, 중동 석유왕자나 세계 각국의 부패사회 권력가들의 파란만장했을 뒷얘기들과, 그곳 안전지대까지 오게 한 경로들에 대하여 충성을 다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베른 은행 지하에 누워있는 지폐들도 아니었다. 그것은 구르텐 (Gurten) 산등성이에서 입신하는 안느라는 시골 아주머니의 넘쳐흐르는 자연 속의 삶이었다.
그 오르는 길 쪽에 도공들이 만들어놓고 파는 간이 가게 하나가 있다. 거기에는 큰 슈퍼마켓이나 시내 고급가게에서 볼 수 없는 그릇, 화병, 향수병, 인형 그런 사소한 것들이 차려져 있었는데 시내에서 올라오는 손님이나 그것을 파는 사람들이나 모두가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 사는 쪽도 만들어서 파는 사람의 재주에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고 파는 쪽도 사는 쪽의 격조 높은 선택이나 좋은 취미를 칭찬하며 한 마디의 홍정도 없이 이루어지는 거래를 보고 있으니 은근히 그곳 작은 도공들의 생활이 부러워졌다.
즉 자기 취미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어도 의식주 해결이 되는 모양이다. 굉장한 예술가도 아닌 그들의 하루가 부럽기만 했던 날이다. 중부 유럽에는 세평이나 네 평 정도의 작은 가게들이 초라하거나 기가 죽지 않은 채 예쁘게 언제나 거리에 건재한다. 유럽 사람들의 강한 개성과 다양한 취미, 미적감각이 존재하는 한 슈퍼마켓이나 백화점 체인에 완전히 함락당하지 않을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독어의 첫 대문 격인 인터라켄 주변을 오래 서성거리다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로 가게 되면 문화적인 급회전이 아니라서 좋다. 이질감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라틴의 밝고 재기에 넘친 재잘거림을 비켜 세우고 앙드레 지드의 "전원 교향악"의 잔설이 남은 너샤뗄 (Neuchatel) 근방의 푸른 산들이나 "무기여 잘 있거라"의 케서린(Catherine)이 마지막 건너던 호수를 한 번쯤 상상하면서 스위스 국경을 넘어 보라. 거기가 게르만의 정통 후예들이 사는 뮌헨이나 비엔나에 접어 들어서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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