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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뉘른베르크와 독일인

by 이다인 2023.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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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 Nürnberg ) 와 독일인

 

나는 독일의 아름다운 도시 뉘른베르크 (Nürnberg)에 가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기대를 이 도시에 걸어보았다. 추운 겨울날씨에 독일의 고도 뉘른베르크를 방문한다는 게 격에 맞지 않는 일이었지만 계절을 따지기에는 내게 너무 여유가 없었다.

뉘른베르크 역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목이 긴 털구두를 하나 사는 것이었다. 털구두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혹한이었다. 눈이 발목까지 차 왔다. "이런 계절에 여기를 오다니... " 이렇게 생각하며 혼자서 한심해했다. 그러나 뉘른 베르크를 돌아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자체가 민망스러워졌다.

뉘른베르크에는 계절을 초월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뉘른베르크 하면 누구나 나치 전범자들의 재판본부를 연상한다. 그래서 이 도시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그 역사적인 사건 하나만을 기억하고  이 도시의 수많은 다른 아름다운 점들은 자칫 놓쳐버리기 쉽다.

 

뉘른베르크
뉘른베르크


뉘른베르크는 2차 대전 이전에는 독일의 가장 고풍스러운 중세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많은 독일인들의 역사공부의 장소이며 건축 미술등에서 예 것에 대한 향수 어린 사랑을 듬뿍 받는 도시였다. 자그마하지만 나무랄 데 없는 미모와 매력을 지닌 성숙한 여성 같은 이 도시가 전쟁 때 폭격으로 90%가 파괴되는 비극을 치렀다.이 사실은 뉘른베르크를 사랑하는 유럽인들에게  충격이고 큰 슬픔이었다.  다행히도 나치가 연합군 공격을 두고 중요예술 작품은 지하벙커에  보관해 놓았기에 옛 신성 로마제국의 보물창고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도시는 나치의 시작과 마지막시간의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뉘른베르크는 남부 독일의 중요 산업도시인 뒤르트를 옆에 끼고 있다. 현실적인 모든 벅찬 것을 책임진 믿음직한 남성 같은 뒤르트시는 아름답고 섬세하며, 문화적인 창조에만 열중하는 뉘른베르크를 음으로 양으로 도우고 있는 셈이다.


구석구석마다 낭만이 젖어있는 뉘른베르크의 거리를 걷고 있으면 전쟁 때 이 도시가 불덩어리와 죽음이 뒹굴었던 지옥이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패전 후 독일인들은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지만 그들은 뉘른베르크에 대한 슬픔을 지울 수 없었다. 옛 뉘른베르크를 재건하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다. 우선 그들은 옛 뉘른베르크의 도시 설계도를 찾아내는 일에 착수했다. 마침내 그들은 설계도를 찾아냈다.

 

그 설계도를 놓고 원형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준엄한  재건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도시를 샅샅이 구경하면서 새로운 도시라는 인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고도 바로 그것이었다. 나에게 이 도시를 안내해 주는 독일인 오로씨는 재건의 자부심 이전에 전쟁의 어리석음과 죄의식을 겸손하게 얘기해 왔다.

 


이 도시의 자랑인 화가 뒤러 (Albrecht Dürer /1471~1528)의 5백 년 된 고가를 안내하는 설명자의 목소리에는 예 것을 그대로 보존하는 능력을 가진 독일인의 긍지가 묻어 있었다. 국립 독일 박물관,  인형 박물관 ,성로당 성당, 성 세발드 성당등을 둘러 보았다. 일찍이 바그너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들>(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리하르트 바그너 작곡하고 대본을 작성한 3막의 오페라로 1868년 초연)이란 작품을 쓰고 바로 가까이 있는 도시 바이로이트에서 영원히 잠자고 있다.

 


예술품, 자연, 자유, 사랑... 이런 종류의 것들을 내 것으로 하여 그 가치를 누리는 자가  진정한 소유자라고 믿기 때문 나는 오늘도 뉘른베르크의 아름다움과 사귀며 참으로 부자로 사는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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