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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깐느를 거닐며.., 프랑스 ( 1 )

by 이다인 2023.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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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느를거닐며..,  프랑스 ( 1 )


산과 바다, 대륙과 섬, 한냉과 폭서 이런 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해양성 기후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여름은 선선하고 겨울은 따뜻하고 연교차가 적고 강우량 차이가 크지 않는 곳을 하느님이 만들어 주어 올해같이 더울 때는 어딘가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위로받는 것 같다.

거기다가 소위 예술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인간의 활동과 열정이 이루어 놓은 공간에만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쾌적할 수가 없다. 내가 처음 그런 곳을 가 본 것은 프로방스 대학 유학 시절이었다. 논문 쓰기에 시달리다 보면 머리는 무겁고 괜히 짜증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럴 때는 같은 처지의 두서너 친구들과 두어 시간 드라이브를 해 아침식사를 거기 가서 하면 아주 상쾌하고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특히 그때 같은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던 하와이에서 학위 하러 온 Y라는 친구 커플은 프랜치 리비에라는 지상의 파라다이스라고 가끔 말했다. 낙원까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도 힐링 드라이브 코스였음이 분명하다. 아침 식사라고 해봐야 순 프랑스 식으로 바게트 한 조각 혹은 크르와쌍 한두 개, 커피 한잔이 고작이다. 계란 혹은 햄 소시지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우리가 늘 아침식사를 하던 장소는 약간 오만스럽기까지 해 보이는 깐느 중앙로의 ≪까페 로마≫였다.
 

깐느
깐느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가 봐도 별 변화는 없지만 단지 간판이 더 커졌고 번쩍거리며 인도를 많이 차지해 옥외 테이블 수가 식당 내부 보다 더 많아진 것이 다를 뿐이다. 낮과 밤 시간에 이 자리를 차지하기는 운이 꽤 좋아야 한다고 할 만큼 손님이 밀어닥치는 곳이다. 하기야 365일 하루도 문 닫는 날이 없다 할 정도로 아침부터 새벽 2시까지 논스톱으로 열리는 식당이다.

이 도시에는 반세기 이상 같은 자리에 같은 메뉴로 이름 있는 식당이 몇 개가 있다. 꼬따쥐르는 모나코를 포함한 남불 연안을 말한다. 저마다 특색을 자랑하는 크고 작은 도시들이 눈부신 쪽빛 바다를 끼고 있다. 당당하다 못해 거드름 피우는 모양새가 있나 하면 귀엽게 교태를 부리며 우아한 몸짓과 요염한 미소로 우리를 왕창 흔들리게 하는 개성 있는 작은 마을과 항구들도 있다.

체류 비용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꼬따쥐르에서 바캉스를 지내려고 그중에 꼭 한 곳만 찍어 보라고 하면 많은 세계인들은 주저 없이 깐느를 선택한다고 들었다. 겨우 8만여 명이 산다는 이 도시에 사철 내내 몰려드는 방문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각종 국제회의 참석자 수가 약 25만 명이 된다 하니 그 이름값을 충분히 상상할 수가 있다. 8만여 명이 사는 곳 치고 깐느는 다양한 시설과 국제 프로그램들이 많은 곳으로 알려진다. 한마디로 지중해의 여왕이다.
 

야경
야경

 

나는 이 도시 이곳저곳 두루 돌아보면서 모든 것이 균형 있게 꼭 제자리에 놓여 유대감 있는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쪽빛 바다 산언덕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 따라 "예술"이 되어 주기도 한다. 이름 없는 한 치의 공간이라도 사람의 발길이 지나간 곳은 어디고 간에 나름의 역사가 있음을 알기에 나는 이 도시의 뒤안길이 몹시 흥미롭기만 하다.

2,500여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는 하지만 중세에 들어가면서 앞바다에 떠있는 쌩뜨 마그리뜨쌩 또 노라섬과 인연을 가지게 된다. 기도하고 농사짓던 성직자들과 정어리, 멸치 잡던 낚시꾼들의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되는 소박한 어촌으로 존재했다고 한다.

기록에 남는 것들 중 특기할만한 것은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서 귀향 살이 중 배 7척에 1,200명의 장병들을 끌고 상륙한 곳이 바로 6킬로미터 지점의 골프쥐앙 백사장이었고 그들은 깐느를 거쳐 파리로 갔기에 지 금도 그들의 흔적의 길을 나폴레옹 도로라 하고 깐느 대성당 벽에 팻말을 붙여 놓았다.

 

 

 

 

본격적으로 깐느가 세인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영국 귀족 엘레오노르 (Eleonore) 부녀가 이태리를 가는 도중 콜레라가 한창 전염병으로 돌고 있어 국경에서 되돌아오는 중 우연히 깐느를 들리게 된다. 그들은 첫눈에 반하고 바닷가 언덕바지에 땅을 사고 아름다운 별장을 지었다고 한다. 그것이 동기부여가 되어 영국 상류사회에 입소문이 시작되고 점차 전 유럽에 겨울 휴양지로 각광을 받은 것으로 기록된다.

또 기억되는 한 사람은 사진작가 '쟝 질레따'이다. 이미 이 도시는 어촌에서 휴양 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해변에는 탈의장이 생기고 오리쯤 되는 해안을 따라 크루아제뜨라고 부르는 멋있는 대로가 생겼다. 거기에는 지금도 수려한 종려나무와 우산 소나무들이 열병하듯 늘어서서 이곳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환영하고 있다. 그리고 보행자들에게 두꺼운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또 파리에서 출발하는 철로도(1863) 개설되고 호텔도 건축되었다. 이런 변화를 이 사진작가가 처음으로 깐느를 찍기 시작했고 사진에 담긴 도시는 또 포스트 카드로 세상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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