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동쪽 제일 끝 발칸반도의 꼬리에서 피어난 비잔틴제국의 국력은 현존하고 있는 성(聖) 소피아 성당 하나만 보고도 누구나 가히 그것이 어떤 것이었나를 짐작할 수 있다.
로마제국이 5세기말에 완전히 멸망하지 않았다고 함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면서 330년에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에 도읍을 정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1000여 년이나 더 로마제국의 명맥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바로 그 고도에서 나는 비잔틴 문화의 꽃이라는 성(聖) 소피아 대성당을 몇 번이나 둘러보았다. 터키의 가장 흥미로운 것은 한 나라 속에 보스포르스 해협(Bosphorus Straits)을 중심으로 유럽 터키와 동양 터키로 나누어져 있고 그 문화가 공존하며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한 나라 속에서 유럽과 동양을 왕래하고 산다는 것을 나는 그곳에 가서야 알았다.
중요한 유산인 비잔틴 유럽권 문화(5C-15C)와 터키의 오토만 제국의 전성기(15C-17C)의 동양권문화가 저울질할 수 없을 만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아직도 당당하게 뽐내며 버티고 있다. 당시 태양신을 믿는 이교신전이 로마시에만 400여 개나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로마인들이 점령하자 이스탄불에 대성당과 개선문을 지어 기독교의 분위기로 몰아가면서 전성기에는 1500여 개의 교회가 있었다고 하니 이스탄불의 기독교 세력이 가히 짐작된다.
아직도 남아있는 세계의 최고 성당, 회교사원들 그리고 궁전들 대부분은 유럽터키 쪽에 산재되어 있다. 성(聖) 소피아 성당도 마르마라 해 와 보스포르스 해협과 코른도르강으로 둘러싸인 유럽 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오토만 제국 때 건축한(15C이후) 소리망 르마니피끄 , 블루 모스크들과 톱카프 궁 등은 성(聖) 소피아와 옹기종기 모여있다. 주변의 넘실거리는 푸른 물결과 완만한 언덕이 강 건너 둘러싸여 있는 풍치가 수려하기 그지없다.
정복사업으로 지중해를 ‘로마의 호수’로 만들었고, 로마법 대전을 편찬했다는 치적이 높은 유스티니아누스의 가장 큰 문화적 업적은 바로 성(聖) 소피아 성당을 이스탄불에 세운 점이라고 후세인들이 인정한다. 당대 훌륭한 수학자, 엔지니어, 건축가였던 앙테미우스 드 트랄르(Anthemius de Tralles)와 동료 이지도르 드밀레(Isidore de Milet)에 의해서 이 성당이 설계, 건축되었다.
이 건축물은 325년에서 563년 제2차 낙성식이 있기까지 화재와 지진으로 붕괴되는 비운을 겪었고 비잔틴 제국의 멸망과 오토만 제국의 정복으로 15C부터는 회교사원으로 되었다고 하니 지하에서 로마의 기독교 황제들이 후손들을 원망하며 얼마나 분해하며 울고 있을까? 1935년부터는 박물관으로 쓰여 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쉴 새 없이 모으고 있으며 모두가 그 건축 기술과 아름다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우선 외형을 보면 중앙의 우뚝 솟은 몸과 4개 첨탑, 곡선으로 이어지는 주변건물들과 하나 눈에 거슬리는 점 없이 정원으로 되어 있으며 어느 편안한 조화를 얻고 있다. 천년을 넘는 세월 속에 묻힌 광영의 얼굴들, 서슬 퍼런 권력들, 혹은 한숨과 눈물로 지새우던 할렘의 여인과 노예들의 뒤안길까지도 소상히 보았으며 너희들의 부귀영화가 얼마나 덧없는 뜬구름인 줄 아느냐고 묻는 것 같아서 나는 그 앞에서 어떤 생명체 같은 것을 느껴야 했다.
우선 안에 들어서면 로마, 밀라노, 런던의 것 다음으로 세계에서 4번째로 크다는 꾸뿔(둥근 지붕내부)과 중앙 예배 홀에 아기예수를 무릎에 안고 있는 마리아를 나타내는 모자이크는 그들 예술의 극치다. 뭐니 뭐니 해도 모자이크로 된 수많은 성화(聖畵)에 깊은 미적 감동을 느끼게 된다.
또 모든 선이 곡선으로 처리된 가운데 40개나 되는 빛이 흘러내리는 창으로부터 나는 마치 공중에 떠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면서 “추억의 이스탄불”이라는 노래가 갑자기 생각나면서 순간적으로 빛이 흐르는 감상적인 이스탄불의 달밤을 느껴야 했던 것이 웬일이었는지 모르겠다. 메카방향으로 놓은 제단 양쪽의거대한 촛대는 헝가리에서 만들었고, 제단 왼쪽에 있는 황제의 공간은 스위스 건축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니 왜 헝가리와 체코에 유명한 터키 목욕탕이 많은가를 이제 충분히 이해가 된다.
특히 오스만 제국이 동구로 국토를 확장했을 때 문물교환이 활발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조공받은 혹은 약탈한(?) 보물들과 예술품을 보면서 나는 세계 제1의 보물국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 났으며 Tokapi궁전에서 49개의 다이아몬드로 테를 두른 86캐럿의 하트모양의 어마어마한 다이아몬드를 보고 '알리바바의 동굴' 이야기가 나올 법한 곳이라고 상상되었다.
서쪽 입구를 통하여 작은 홀에 들어서면 십자가로 장식한 5개의 청동문을 만나게 되고 황금빛 나는 모자이크와 대리석장식들에서 터키인들의 매운 손끝과 땀방울이 묻어 있음을 보게 된다. 건축 때 쓰이는 나무 발판대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당시에 쓰이는 보통 도구로만 지었다는 것이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 시대의 이 걸작은 동원된 1000명의 지혜와 땀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거의 초인적인 신앙심과 황제에 대한 충정이 아니면 철저한 노예정신의 결과가 아닐까?
가느다란 기둥하나 바치지 않은 77m의 기장과 71.20m의 넓이로 된 장려한 꾸뿔을 상상해 보라. 나는 20C를 망각하고 그 옛날 예수와 마호메트의 표정들과 하늘을 찌를 듯한 눈에 익은 고딕 대성당들과 여기 돔으로 된 것들을 번갈아 생각하며 모자이크에 대한 관심이나 조예가 없으면 이들의 예술과 터키의 영혼을 깊이 이해할 수 없음을 확인하고 언젠가는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 2023.02.06 - [비유럽] - 동양의 관문 이스탄불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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