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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外

뉴질랜드의 초원 (草原)

by 이다인 202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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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아노"와  "반지의 제왕" 이 상영되면서 뉴질랜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자아내었다. 예술의 힘이 굉장하다는

반지의 제왕 촬영지
반지의 제왕 촬영지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최근 뉴질랜드와 호주에 한국관광객이 부쩍 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많은 줄은 몰랐다. 놀라왔던 것은 뉴질랜드 비행기를 탔는데 기내 300여 석 대부분이 한국인들이었다. 이제는 기내식으로 고추장은 물론이고 김치까지 먹는다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때가 정월이니 겨울 방학 이용자도 많고 대학 입학을 치른 학부모들도 많은 것 같다.

 

시드니 전경
시드니 전경

 

영하의 대지에서 기온 15도 전후의 초가을의 땅을 향하고 있었다. 오클랜드에  도착하여, 타우포, 와이도모 등 뉴질랜드를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세상 어디를 가나 그 나름의  산천이 있고 아름다움과 이국적인 풍물이 있기 마련이다. 뉴질랜드는 한국의 2.7배로 된 섬나라이며, 적도를 넘어서 한국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여기가 겨울이면 여름, 여름이면 겨울인 땅으로 목축국과 농업국가임은 잘 알려져 있다. 인구 500만 명에 소가 900만 마리이고, 양이 한창때이었던 80년대 초에는 7000만 마리이었다는데 지금은 그 절반정도 수준이라 한다. 

 

 

기계화된 농업경영에 보리, 귀리, 옥수수, , 토마토, 오이, 강낭콩, 과일 등의 일체 밭농사로 풍성한 목가적인 이 풍물은 도시공해에 찌든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부러운 삶이 되고 있다. 자동차로 달려가노라면 그 맑은 하늘아래 푸르다 푸른 광활한 녹색대지 위에 드문드문 낮은 언덕 같은 더 얹혀있는 예쁜 집들은 어릴 적 읽었던 동화에서나 나오는 행복이 그득한處所같다.

 

어느 날 해질 무렵 갑자기 한 백마와 멋지게 생긴 흑갈색 말을 타고 가는 두 남자가 우리들 시야에 들어왔다. 달리지도 뛰지도 않으며 유유히 승마산책을 하는 것 같은 그 모습들은 우리들에게 삶의 여유 그 자체를 느끼게 했다. 모든 면에서 여유만이 진정한 멋이라고 늘 생각했던 나는 참으로 그들이 부러웠다.

 

과거 많이 보아왔던 케리쿠퍼나 서부영화에서 보던 그런 명배우들의 말타기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서부인들은 사느냐 죽느냐 라는 생존과 승부가 걸린 것이라면, 이들은 바쁠 것도 늦을 것도 없는 여유로움과 건강함의 말타기다. 19세기 불란서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남녀들의 낭만적인 전원산책까지는 아니라도 그와 흡사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디를 가나 목초가 있는 곳이면 양 떼들이 방목되어 평화롭게 놀고 있다. 나는 일찍이 이런 푸짐하고 초원을 직접 본 적이 없다. 수십 마리, 수백 마리 양들이 자유롭게 먹고 거닐고 있다. 목동들은 어디서 낮잠을 즐기든지, 아니면 어디서 한잔 마시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나에게는 양 떼라고 하면 참으로 마음 아픈 기억이 하나 숨어있다. 프랑스 친구의  할머니네 집으로 추운 겨울 며칠을 쉬러

양떼들

간 적이 있다. 그곳은 유명한 소설가 지오노가 살던 마노스크 근처의 한 작은 마을이었는데, 그야말로 첩첩 산골이었다. 내가 그 산골에서 지나던 밤은 크리스마스 때라 눈은 뿌리지 않았으나 나무, 들판, 산들이 혹한에 시달리고 사람들의 마음도 꽁꽁 얼어붙었던 때였다.

 

아침에 내가 눈을 떴을 때, 옆 침대에서 자던 내 친구 샹딸이 이미 없어져서 부엌으로 나가보았더니 눈이 퉁퉁 부어 울고 있었고, 그 댁 할머니는 혼백을 잃은 것 같은 슬픈 표정으로 중얼중얼하며 앞마당을 왔다 갔다 하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댁에 초상 아닌 초상이 났던 것이다.

 

알퐁스 도데의 ""  이란 유명한 단편소설에서 읽었듯이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는 양을 기르는 농가가 많다. 이 댁 샹딸 할머니도 20여 마리의 양 떼를 기르고 있었고 양유를 짜고 치즈를 만들어 먹는 지극히 평범한 소농가였고 365일 하루같이 양 돌보는 일이 이 할머니에게는 자식 양육하는 것 같은 일과였다. 마르세이유 큰 도시에 사는 딸이 며칠을 초청해도 양들 때문에 잘 못 움직이시는 할머니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 추웠던 해에는, 저 아래 양울타리에 연결되어 있던 홈이 파여 항상 산의 물이 졸졸 흐르게 만들어졌던 水路가 얼어붙어 물이 끊겼다는 것이었다. 어느 해도 흐르는 물이 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그 댁 식구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유난히 그해 혹한은 그 할머니를 비극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물을 먹지 못했던 그 순하고 착한 양들이 한꺼번에 시름시름 쓰러져 버리고 만 것이었다.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픈 죽음이었다. 어린애처럼 순박 무구한 양들은 강인한 생명력이 없었고 누군가 보호자가 없이는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한 생명들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와이토모 은하수동굴, 타우포 호수, 후카 폭포, 번지점프의 묘기, 로토루아, 마오리 민속촌, 와카레와레와의 마오리 집회소, 진흙 열탕, 아그로돔의 양털 꺾기쇼등 많은 자연의 기현상들과 그 자연에 가장 잘 어울리게 순응하는 토착민들을 보고 즐겼지만, 역시 뉴질랜드는 초원과 양 떼들의 모습이 가장 뉴질랜드 적인 것이라고 느꼈다.

 

뉴질랜드 초원의 양떼
뉴질랜드 초원의 양떼

 

뉴질랜드는 호주와는 다르다. 1788 1, 11척의 범선에 551명의 유형수와 감시원, 해병대원을 거느린 필립 영국총독이 시드니에 영국 국기를 올린 것과는 전혀 달리 존 로건 캔벨경(1843년 오클랜드에 최초의 그의 목조집을 세움)과 같은 귀족이나 영국선교사, 개척자에 의해서 형성된 국가이기에 이미 출발점이 아주 다르다.

 

그러나 호주와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지로 형과 동생처럼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발전의 관계로 이루어지고 있다. 유럽인들의 진출로 원주민들에게 수난의 시대가 있었지만 뉴질랜드에서는 마오리 보존을 위해서 국가가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 29만 명이 멸종의 위기는 모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스스로 마오리 회복운동을 추진하여 백인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특히 많은 여성국회 의석수로 여성지위가 대단한 것은 저으기 놀랄 만했다. 그리고 럭비는 온 국민이 광적으로 좋아하며, 국민전부 스포츠 수준이 대단하다고 한다.

 

마오리 원주민
마오리 원주민

 

 

나는 이런 많은 것에 눈을 뜨고 귀국하려 했던 날, 뉴질랜드의 나라새인 키위" 에 대한 설명을 듣고 너무 재미있었다. 키위는 과일 키위의 껍질처럼 생겨 그런 이름이 생겼고, 부리가 길고 병아리만 한 크기에 야행성이며, 날개가 없어 날 수 없는 새였다. 처음부터 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는 이 새를 해치는 생물들이 없었기에 날라도망갈 필요가 없어 날개 부분이 퇴화되어 버려 지금 모습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키위

이 국민들이 키위를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함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대초원과 작은 키위의키위 삶은 모두 같은 평화로운 삶이란 해석의 맥으로 이어진다. 날 수 없는 새를 나라새로 지정해놓고 있음은 마치 삶이란 것이 항상 논리적이지만은 않다는 표본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 같아 그들의 에스프리 (Esprit)가 묘하게 재미있었다.

 


 

시드니 전경
시드니 전경

 

마오리족
마오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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