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시티
미국 세인트 루이스에서 출발하여 달라스를 거쳐 거의 5시간 비행 끝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멕시코 시티 상공에 이르렀을 때, 끝없이 넓고 질펀한 도시로 팽창한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파리에서는 늘 숨어있던 태양이 속살까지 드러내고 반겨주는 듯해서 우선 기분이 좋았다.
호텔에 짐을 풀고 걷기 편리한 가벼운 신발을 하나 사러 거리에 나갔다. 모퉁이를 걸어 다니기에는 아직 이곳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에 익숙하지 않아서 얼굴을 덜 씻은 것 같은 남자들이 크게 떠들며 지나다닌다든가 돈을 달라고 거지아이들이 불쑥 손을 내밀거나 금니를 한 인디언 중년들이 입을 벌리고 쳐다본다든가 할 때마다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내가 알고 있는 멕시코에 대한 지식들이 한꺼번에 머리에 반사적으로 와닿았다.
멕시코는 우리나라의 10배가량 되는 면적에 인구는 두 배이상이고 스페인 혹은 흑인과의 혼혈이 80퍼센트, 인디언이 10퍼센트, 백인이 10퍼센트이다. 그리고 인구의 90퍼센트는 가톨릭 신자이며 수백만 명이 정식으로 미국에 이민을 갔고 매년 엄청난 수의 국민들이 미국으로 밀입국을 한다. 국경지역에는 마약 밀매로 인한 큰 사회문제로 트럼프 대통령 때는 국경을 만리장성에 버금갈 정도의 장벽으로 쌓아 올리는 공약을 추진하기도 했다.
또 자동차의 공해가 가장 심하고 인구 2천만이 북적대는 수도 멕시코 시티가 있고 팬데믹 이전에는 해마다 4500만 명의 관광객이 입국을 하며, 세계 제일의 은을 생산하는 나라이다. 세계에서 네 번째의 석유보유국이며 현재의 국민소득이 1만 불 선인데 우리나라보다 20년 먼저 1968년에 올림픽을 치른 나라이다.
1519년 페르난도 콜츠(Fernand Cortz)라는 선장이 탄 스페인 배 한 척이 골프해안에 나타나면서 피비린내 나는 아스텍족(현재 멕시코 시티의 인디언 원주민)과의 11년간의 전쟁으로 300년간을 스페인에게 예속되었고 1810년을 9월 16일에야 독립한 나라이다. 독립의 기쁨이 채 식기도 전에 유럽의 열강국들이 개입되는 끝없는 내란을 치르면서 여러 독재자들에 의해 고통을 당해가면서 겨우 국가의 존립이 가능했던 나라.
지금은 선거에 의한 민주주의로 가고 있지만 과연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단기간 여행자인 나에게도 깊은 의구심이 일어나는 나라이다. 나는 일주일 동안 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열심히 멕시코를 공부하고 많은 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여기저기 폐허로 널려있는 인디언들의 피라미드와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의 인류박물관과 국민궁 (Palacio national)이라고 불리어지는 대통령과 고관들의 집무실이 있는 건물의 벽면을 Diego Rivera가 34년 동안 그렸다는 벽화였다. 그리고 멕시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Teotihuacán 이란 인디언들의 옛 도시였던 폐허(수도에서 48킬로미터 지점)는 이미 2천 년 전 꽃 피웠던 흔적을 남겨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두는 그들의 보고였다.
특히 후세 아즈텍 인디언들이 발견했다는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 사자(死者)들의 길, 수많은 돌조각들의 생생한 표정, 또 Cochinilla라는 작은 동물에서 빼낸 피로써 생의 상징으로 돌을 붉게 염색하여 건축자료로 쓰는 기술이 있었는가 하면 이미 시멘트 이용기술과 수학적인 이론 위에서만 가능했을 돌건축 능력에 모든 사람들은 입을 모아 경탄할 뿐이다.
현대의 미끈미끈한 대리석, 철근 콘크리트, 두꺼운 대형 유리 같은 재료
로 올라간 대도시의 현대건물에서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테르 같은 질기고 구겨지지 않는 천의 질감 같은 것을 느낀다면 여기 폐허의 유적들은 순면, 순모, 순명주실로 짠 천의 질감이랄까...‘순(純)’이라는 말을 꼭 부쳐야만 될 것 같은 건축을 나는 느꼈다. 땀을 흘리면서도 피라미드 정상까지 올라가서는 층계에 걸터앉아 태양, 바람, 돌, 신에 대한 철학적인 명상을 잠시라도 해보는 시간이 거기에서는 필요하다.
여기 오는 동안에 차창에 비치는 멕시코시에 있는 북구주민들의 주택이나 거리 모습에서 전쟁 후 참담했던 우리나라의 모습을 상기하고 그들의 실상에 연민을 느끼고 우울했다. 지붕 없는 집들과 식수난에 고통을 겪으며 물통을 들고 가는 산동네 여인들의 표정, 먼지 속에 눈만 반짝이던 얼굴, 남루한 옷을 걸친 대부분 사람들의 풍경은 과연 멕시코만의 것일까? 한국의 달동네 사람들, 점심도시락을 가져갈 수 없다는 배고픈 아이들을 함께 생각하니 슬프고 가슴이 저려왔다.
다음날은 시 중심가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거리인 남구에 있는, 20만 명의 학생을 수용하고 500헥타르의 캠퍼스를 가지고 있는 그들의 자랑인 멕시코국립대학(등록금은 기숙사비는 거의 무료 수준)과 올림픽촌과 El- Pedregal이라는 부자촌을 찾아다녔다. 특히. 멕시코에서 권력을 행세하는 고관이나, 예술가, 부자들만이 산다는 이 동네에 들어섰을 때 누구나 부러움과 낭만과 여유를 느끼기 전에 일단 놀라고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시민들의 노골적인 불평등 삶에 대한 인간 본연의 분노와 저항감에 공감할 수 있었다.
모두 이국의 유럽취향으로 만들어진 집들은 건축가들의 이름이 새겨진 작품이고 현대궁전들의 집단이라 함이 어울리는 말이다. 차고까지 예술조각으로 장식하고 수영장이 여러 개 있는 집이 있는가 하면 벤즈차들이 여러 대 집뜰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기사나 시중드는 사람들만이 묵묵히 일을 하거나 오브제인양 집뜰에 있는 것이 보이고 황금빛 햇살이 누렇게 내리는 가운데 시내의 그 무질서하고 혼잡스럽던 자동차행렬 사람공해, 북구지역의 가난과는 아랑곳없이 평화스럽고 유유자적하게 누리는 이 지역 사람들에 대해서는 인권의 이름으로라도 비판해야 된다고 생각된다.
가난은 나라의 임금도 막을 길이 없다는 이 구호를 묘하게 편승하며 털끝만큼의 양심도 없는 인간쓰레기들이 내 나라에는, 내 주변에는, 내 속에는 없는가. 낙원과 같은 남구와 수많은 사람이 지치고 병들고 깡마른 북구의 얼굴들을 비교하고 나는 비에 젖은 듯한 축축한 마음으로 돌아왔던 하루였다. 이렇게. 도시 하나를 두고 불과 두어 시간 거리에 있는 남과 북은 천국과 지옥만큼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것 같은 거리에 산다.
마침 하루종일 같이 다니게 된, 우연히 만난 아르헨티나에서 온 Q라는 여기자는 남미전반에 걸친 빈부문제, 정경유착, 부패문제에 대해서 일가견을 펴면서 멕시코가 일차 자원과 인력이 풍부한데도 불구하고 가난을 면치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치가들과 상류지식인들의 책임이라고 수없이 구체적인 지적을 한다.
동시에 과거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정복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끌어모아 어느 날 금의환향하는 식의 한탕주의 부도덕한 정신유산이 라틴의 피 속에 알게 모르게 깊숙이 스며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 데에 충분히 수긍이 갔다. 멕시코는 우리나라처럼 휴전선으로 남북이 나뉘어 있지는 않으나 분명히 그것보다 더 두꺼운 벽이 눈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며 그것이 허물어지지 않는 한 비전이 없는 나라로 여겨짐이 과연 나만의 생각일까.
인류박물관 소장품들과 국민궁의 벽화는 이 나라의 긴 역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박물관의 그림들을 통하여 멕시코시가 과거에 큰 호수 속의 섬이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15세기 때 24톤이나 되는 돌로 만든 아즈텍들의 달력이 있었다는 것도 나에게는 신비로울 뿐이었다. 그 유명한 벽화에는 인디언들의 전설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중요한 사건, 스페인정복의 일화, 일상의 풍경을 모두 그려 넣고 있었다. 대단한 작업이며 멕시코의 가장 중요한 예술품임이 틀림없다.
너무나 짧은 시일에 너무 많은 것을 보아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을 채우는데만 급급해서 지낸 며칠 후 휴식이 가능한 곳에 좀 가고 싶어 졌다. 아메리카 대륙의 파라다이스라는 아카폴코(Acapuloge = 한국의 해운대)에서 보낸 3일은 드물게 주어진 나의 사치스러운 시간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수영을 겨울에 즐길 수 있었다. 끈적끈적한 기름때 같은 것이 정신에 끼어있을 때 말끔히 씻을 수 있는 곳이다. 여기는 유명한 해안절벽 다이빙과 투우, 두 구경거리가 있지만 너무 잔인한 놀이라서 싫었다.
돌아가기 전날밤 일찍 짐을 꾸리고 자기 전 잠깐 TV를 틀어놓았다. 내가 자주 듣던 Placido Domingo의 노래가 들려왔다. 그는 마드리드에서 태어나서 유럽에서 맹활동을 하고 있지만 1961년 멕시코 Monterry Opera에 데뷔하기 전까지는 멕시코에서 성장하고 살았다.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전설의 테너 미남가수는 멕시코 국민 전체의 긍지이었다.
Tortilla라는 옥수수 밀떡에 고기를 넣어 말아서 먹던 그들의 주식과 60종류나 된다는
고추 중에 손바닥만 한 고추(Chili)에 치즈를 넣은, 한국사람에게도 매웠던 음식들이 비행기 속에서 갑자기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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