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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안달루시아의 집시, 스페인

by 이다인 2023.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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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루시아의 집시, 스페인



인도 북서쪽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는 세계의 방랑인들을 우리는 집시족이라고 불러왔다. 누구나 집시에 대한 호기심을 다소 갖는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안달루시아 지방에 내려오면서 간간이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그들의 집합 장소를 보았다. 특히 안달루시아는 집시촌들이 있어서 관광객들이 몰려가기도 한다.

안달루시아는 스페인의 영남 지방 격이다. 가장 재래적인 스페인 풍물의 요람이다. 고르도바, 세빌, 그라나다에 산재되어 있는 옛 풍류를 현대화된 지금도 어느 거리, 어느 골목에서나 느낄 수 있다. 캐스터네츠 박자에 맞춰 플라멩코를 추듯 거리를 걷는 아가씨들에게서도 묘한 율동을 느낀다.

 

안달루시아-지방
안달루시아 지방

 

내가 찾아간 집시촌은 시내와 꽤 떨어진 곳에 있었고, 마을 입구에는 17,18세쯤 되어 보이는 청년들 대여섯이 길모퉁이에서 담배를 피우며 장난 섞인 행동을 하면서 서성거렸다. 겉보기에 전혀 생활의 질서가 없어 보이는 한 집시 집 뜰 안으로 안내되었다.

뜰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나무 의자에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한두 사람을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제법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폭넓은 치마를 입은 뚱뚱한 여자들이 창 너머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인다. 드디어 실내로 안내되었다. 우리 일행은 토굴 같은 긴 홀(약 20평쯤) 양가에 쑥 놓아둔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칼멘 같은 여자와 그의 파트너가 홀 한가운데로 들어서면서 노래를 부르며 몸을 움직였다. 그들의 가락은 때때로 폐부를 찌르는 듯했으며, 삶과 죽음이 혼합된 순간의 짐승의 울음 같은 소리가 담겨 있었다.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는 노래지만 치렁치렁한 넓은 치마폭과 얼룩얼룩한 격렬한 색채는 언젠가 내가 마르세이유에서 보았던 폴랑쁘띠 (프랑스  1급 안무자)의 <칼멘>을 연상시켰다. 춤추는 방 천장에는 붉은 놋으로 된 국자, 냄비등 유기그릇들이 수없이 걸려 있고, 벽에는 춤추는 집시들, 그리고 그들 사회를 이끌어 온 명인들의 사진들이 통일성 없이 온 벽면을 채우듯이 걸려 있었다.

 

플라맹고
플라맹고

 

그날 유난히 감동적이고 측은했던 것은 여섯 살 난 꼬마 집시의 춤이었다. 나는 형용할 수 없는 착잡한 마음으로 1시간쯤 구경을 하고 일행들과 함께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요카이(M. Jokai)의 작품으로 요한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집시 남작(Der Zigeunerbaron)>이란 연애 이야기를 엮은 오페레타와 메리메의 〈카르멘>을 기억했다. 파란만장한 그들의 사랑을 재미있게 무대를 통해 즐기고 감상할 때와는 달리 자꾸 무엇인가 슬프게 내 가슴에 밀려왔다.

 

프랑스에서 나는 가끔 집시들이 광장이나 지하도 입구에서 뚱뚱하고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불쑥 나타나 앞으로 다가오면서 “부인, 손을 펴 보세요. 내가 당신의 운명을 보아드리겠습니다" 할 때마다 깜짝 놀라서 물러섰던 기억이 있다. 안 보이겠다고 하면 저주 비슷한 말을 중얼거리면서 위협하던 프랑스 집시들을 본 적이 있다. 그럴 때는 몇 프랑쯤 집어 주고 총총걸음으로 가기도 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그때의 집시들은 나에게 전혀 관계가 없고 피상적인 사람들이었으나, 오늘 본 여섯 살짜리 꼬마 집시는 나에게 같은 지구촌 위에 살고 있는 이웃임을, 친구임을 느끼게 했다.

5백만 가까이 된다는 집시 중에는 아직도 이동 집시들이 상당하다고 한다. 그래서 선진 유럽 국가들은 집시의 국적 문제로 골치를 앓는다고 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이곳저곳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여권과 동일한 증명서를 주기도 했고, 또 교육·병역 문제를 둘러싸고 지혜를 수렴했으나 큰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한 개인과 삶의 차원에서 볼 때 그들은 운명적으로 슬플 수밖에 없다.

 

집시의 생활은 방랑의 멋이나 낭만, 가무를 즐기는 예술인의 생활이 아니다. 집시의 자유는 환상이다. 현실적으로 가난하고 무지하며 불쌍한 사람임을 알았다. 전쟁과 내전 등으로 이국만리 타국으로 탈출해온 국적 없는 사람들이 병역, 교육, 사회보장 제도를 강렬히 희구하면서 유럽에 머무는 반면, 모든 안정과 정착을 거부하는 이 방랑자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어느 날, 안달루시아에서 본 그 꼬마 집시의 행복을 빌어 본다.

 

아람브라-궁전
아람브라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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