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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야누스의 얼굴, 베니스 ( 1 )

by 이다인 202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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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의 얼굴, 베니스 ( 1 )

 

"바다를 향하여 열려 있는 햇빛 속에 전시되어 있는 베니스 곁에는 속을 알 수 없도록 꽉 닫혀 있는 베로나가 있다.”  쟝 그르니에의 설명을 되새겨 가면서 플로랑스(피렌체)에서 동북 고속도로를 달렸다. 잡초 같은 무성한 느낌을 주던 남이태리의 특유하게 키가 큰 유도화 풍경은 어디로 가 버리고 풀이 보이지 않는다. 나무가 없다.

 

남의 발상을 슬쩍 자기 것으로 만들어 꽃 피우는데 천재적인 소질이 있는 샘 많은 프랑스국민들이 베니스를 얼마나 부러워했으면 남불(南佛)뽈 그리모라는 수상 소도시를 세웠는지 알만한다.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지만 프랑스에도 손바닥만 한 수상동네가 하나 있다. 뽈 그리모는 시간의 때가 묻지 않고 상업적인 촉수가 뻗고 세속적인 것에 젖어 있지 않는 곳이 없어서 영 기분에 들지 않았던 곳이다.

 

 

그랜드 카날 대성당
그랜드 카날 대성당

 

서서히 다가서는 이 거대한 물의 도시는 나에게는 그저 신비로울 뿐이다. 일몰 직전에 물은 장밋빛이 감도는 진주를 방불케 했으며 때로는 자주색으로 물들어져 있기도 하다. 이따금 미풍이 지나간다. 고딕, 비잔틴식 걸작들의 집산,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돔, 원기둥과 돌림띠, 바로 돌의 예술, 이것 들은 건축가의 능력이 과시될 수 있는 최고 절정의 것이 아닌가 싶다. 대리석의 궁전, 교회들, 물 위에 수없이 걸려 있는 크고 작은 다리화분이 놓여 있는 창들,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조화로운 하늘과 바다의 화답. 어느 누구도 여기서는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새벽의 침묵이 깨어지면서 서서히 물 위에 떠오르는 궁전, 다리, 집들, 모든 삶이 출렁이는 물속에서 눈을 뜨고 있다. 베니스의 심장부 쌩 마르크 (St. Marc) 광장에 이르려면 우선 중앙 운하를 따라가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나 혹은 돈이 많은 사람들은 역시 곤돌라를 타고 베니스 뱃사공들의  안내를 받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쌩 마르크 광장
쌩 마르크 광장

 

 

그들은 검은 신사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빨간 머플러를 걸고 비스듬히 얹힌 수술이 달린 모자 아래 크락 케이블 같은 콧수염을 하고 유머까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중앙수로를 횡단하는 버스배가 있어서 육로와 똑 같이 시간에 맞추어 정거장마다 서는 배가 자주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플로랑스에서 이 골목 저 골목을 따라다니며 온 도시를 헤매고 다닐 때도 전혀 남의 나라에 온 것 같지 않고 너무나 친근하게 느껴져서 스스로 놀랐던 적이 있다. 플로랑스가 우정의 도시 같은 친근감을 느끼게 할 때 베니스는 사랑의 도시, 바로 그것이다. 다음날 아침 안갯속에 피어오르는 도시를 보고 나는 다음의 글귀를  베니스의 새벽이란 이름으로 적어 두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한국에 있는 친구 K에게 엽서를 띄웠다.

 


 

저녁마다 바닷속에 잠겼다가

검은 침묵을 돌아

솟아나는 눈부신

숨바꼭질

낯익은 길목에서

바다가 바람을 타고 놀고 있다.

행복한 섬이 춤춘다.

모래는 이슬과 석별의 情을 나누고

카페의 빵냄새

비둘기 아침잠을 쫓을 때

광장의 青馬들은

벌써 날고 있다.

죽고 싶도록

살고 싶은 여자는 와서

아드리아海 목덜미를 껴안으라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연분홍 하늘이

그대 가슴에

서서히 내릴 것이다.

 


 

이 도시에는 현대적인 것을 느낄 수가 없다. 기계문명을 느낄 수가 없다. 시간 밖의 도시다. 우선 세상 어느 곳에서나 다 만나는 자동차라는 것이 없다. 어디를 가나 걸어야 한다. 기계로 된 모든 교통수단에 익숙한 나에게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사방에서 몰려 온자동차는 물의 도시로 들어가기 전 모두 맡겨져야 한다. 쌩 마르크 광장을 가는 도중 수로 위에서 집과 집 사이 골목 입구에 이태리말로 된 표지판이 간간이 눈에 띄어서 무슨 뜻인지 물어봤더니 “일방통행"이라고 한다.

 

그제야 배가 아무 데나 여기저기 동동 떠 다니는 것 같지만 법적으로 약속된 교통질서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백열 여덟 개 섬 위에 세워졌다는 이 도시에 걸린 다리 만도 사백 개이며, 이백 개의 수로가 있다. 하지만 구석구석 내 발길을 다 놓을 수는 없으나 목적도 없이 이 모퉁이 저모퉁이를 흥얼거리며 마음 내키는 대로 눈을 돌리고 보면 다 즐겁기만 하다. 여기서만은 사느라고 움츠렸던 마음들도 마음 놓고 한번 풀어 흩트려 봐도 되지 않을까. 낮에는 관광객들 때문에 받들어 놓기가 힘든 장소도 많지 만 거 기 온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마음을 풀어놓고 있는 듯해서 보기 좋았다.

 

 

광장에서 나는 피곤한 다리를 좀 쉬고자 뮈쎄 (Musset)조르주 상드 (George Sand)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카페 플로리안 (Caffe Florian) 발코니에 앉아서 목이 말라 주스를 한잔 시켰다. 그런데 시켜 놓은 주스잔 보다 먼저 나타난 것은 베니스의 한 남성이었다. 인생이란 몸으로 사는 것이지 배우고 가르치고 하는 이론 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 베니스 사람이고 보면 관심(?) 있는 여성에게 자리를 같이 하여 대화를 서로 좀 나누자든지 말 친구가 되고 싶다든지 등의 솔직하고 어색하지 않은 인사로 시작한다. 삼십 분이 지나면 벌써 몇 년 전부터 서로 잘 아는 친구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들의 천부적인 재주다.

 

 

쌩 마르크 광장 까페
쌩 마르크 광장 까페

 

 

해는 중천에 떠 있고 걸어 다니기에 덥고 피곤하던 차에 간간이 저 발코니 앞에서 멋진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해 주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말 잘하는 레몽디라고 부르는 이 이태리 남자의 얘기를 부담 없이 경청하기로 결정해 버리고 몇 시간을 싫지 않게 앉아 있었다. 베니스의 역사나 문화의 배경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자기 아는 지식을 이 이방인 앞에서 모두 공짜로 풀어놓았다.

 

베니스 집은 생활공간이 작아서 빨래 널기에 불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빨래는 수로를 가운데 두고 이 집과 저 집 사이에 둘 혹은 네 줄로 매어 놓고 도르래식으로 한 줄을 당기면 다른 한 줄이 돌아가도록 장치해 놓고 빨래를 말린다고 설명해 줄 만큼 자상하다. 그러고 보니 주택가 한적한 곳에는 나폴리에서 처럼 빨래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풍경이 보였다. 특히 재미있었던 얘기는 베니스 카니발에 대한 것이었다.

 

베니스 사람들은 원래 축제를 좋아하는 기질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세기에는 한번 카니발이 시작되면 몇 달이 계속된 적도 있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사랑하는 일로 세월을 보냈다고 했다. 신부며 수녀, 수위, 귀족, 창녀, 아이들 할 것 없이 변장을 하고, 가면을 쓰고 즐겼다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에는 한 유부남이 자기 애인 집에 가서 식사하는데 불편이 없으며 부인은 자기 남편이 원하는 모든 것을 챙겨서 자기 남편 애인 집으로 보낸다.”

 

반대로 한 유부녀는 공개할 만한 심중의 한 남성이 없으면 일종의 불명예다.”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모든 사회의 기존질서가 파격적으로 무시되는 기간이며 모든 사람이 동등하고 완전한 자유를 추구했던 모양이다. 베니스의 중개업자, 염탐군, 외교관은 그 적성과 능력으로 이름이 높다.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랑을 하는데도 그들의 기민성과 섬세한 감각이 사용되고 있다. 그들의 그 감각은 일상생활에서까지도 고루고루 뿌리 내려져 있는 것 같다.

 

 

광장 앞 까페
광장 앞 까페

카니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세 도시는 프랑스의 니스, 브라질의 리오, 이태리의 베니스로 알고 있다. 카니발이 왜 도처에 존재하고 그것의 효과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레몽디의 얘기 줄거리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었다. 본래 카니발이란 가톨릭 국가에서 사순제 삼일 전 동안 잔치로 즐기는 것이라는데 항간에는 도처에서 행하고 있다.

 

가톨릭은 의식이 복잡하고 도덕, 윤리적으로 엄격한 규율이 요구되기 때문에  축제 동안은 가면을 쓴다.  하나님 눈감아 주십시오라는 애교의 기도를 올리면서 종교적인 규율을 벗어나는 인간들의 노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축제다 가장행렬이다. 축제기간에는 사회적으로 혹은 인간적으로 불편했던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서 자유의 몸짓을, 소리를 지르면서 해방의 기쁨 같은 것을 인간들끼리 나누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축제는 해방의 기쁨의 큰 뜻이 있다. 우리나라 농악놀이만 하더라도 일 년 열두 달 땀 흘린 농부들의 노고 끝에 풍성한 곡물을 거두어들이고 그 고역에서 벗어나는 수확의 기쁨이며 춤이요, 노래다. 대학 카니발도 혼신을 다해서 일 년 동안 공부를 끝낸 젊은 지식인들의 영육의 잔치이다.

 

 

가면축제
가면 축제

중앙수로를 끼고 오른쪽으로는 십오육 세기에 지었다는 꼬르네르 스삐넬리 (Corner-spinelli), 그리마니 (Grimani) 궁전이 있고 고딕으로 된 금의 집(C'a d'or)이 있다. 거기서 어느 해 스페인의 톨레도( (Toledo)에서 신 ()처럼 느껴졌던 그레꼬의 스승 티티언 (Titien)의 뷔너스와 반딕 (Van Dyck)의 초상화를 본 것은 가슴 떨리는 감격이 있었다.

 

아카데미 갤러리에 수없이 걸려 있는 성화(聖畵)들 앞에서 나는 성경이나 어떤 고전을 읽고 있는 기분을 가져야 했다. 좌편 궁전들 수많은 바로크식 가구들과 조각, 그림, 예술품을 보았으나 너무 많이 보아서 나중에는 무엇을 보았는지 알쏭달쏭했다.

 

베니스의 상징처럼 그림엽서에 잘 나타나던 대리석의 리알토 다리 (Ponte di Rialto)를 건너서 나는 수십 번을 쌩마르크 광장을 오고 가고 했다.

 

 

리알토 다리
리알토 다리

 

 

 

그런데 쌩 마르크광장 옆에 걸려 있는 다리 이름 하나가 내 눈길을 끌었다.  뽄떼 디 소스피리(Ponte di Sospiri ) 직역을 하면 “탄식의 다리인데 그 이유인 즉, 옛날 고등법원과 형무소를 연결하게 걸려있는 다리이기에 많은 죄수들이 형을 받고는 형무소로 들어가기 전 이 다리 위에 생과 사 사이에  서서  베니스의 아름다움이 원망스러운 듯이 한숨 쉬며 눈물을 지었다는 곳이다.

 

 

탄식의 다리
탄식의 다리

 


 

 

 

산 마르코 광장앞
산 마르코 광장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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