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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야누스의 얼굴 , 베니스 ( 2 )

by 이다인 2023.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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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체류 중에 또 하나의 좋은 기회는 바로 베니스 비엔날레 (Venice Biennale)가 열리고 있어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니스의 매일은 문화행사의 매일이 기도 하지만 많은 나라가 참여하여 대대적인 관람을 시키는 이 행사를 우연히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대개 전위적인 작품을 많이 내놓고 있었는데 그중에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리스관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벌써 건물 근처에 가니 이상한 지린내가 나고 오물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자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모두 찌푸리는 듯한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이번에는 이상한 짐승 소리가 나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속으로 들어가니 양 떼들이 한 울 속에 수십 마리씩 몰려 있고 옆에는 짚단들이 아무렇게나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다.

 

전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난 뒤에야 비로소 짚단이며, 냄새, 양 떼, 목자, 이 모두가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임을 알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흰 양들 등에 빨강 파랑 초록등 여러 가지 색갈이 칠해져 있어서 양들이 움직일 때마다 얼른 보면 그림이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지개가 땅에서 서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스 작가는 바로 이 효과를 노린 것 같다. 까뮈는 모든 감각이 다 예술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으나 후각만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했는데, 그가 이 그리스 전시장에  나타났다면 그 말은 취소했을 것 같다.

 

양 울타리에서 풍기는 지린내도 이제 예술일 수 있는 시대임을 나는 뒤늦게서야 알았다. 전시장을 구경하고 나오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들을 읽고 있으면 더욱 재미있는 것은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예술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쯤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떤 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땅을 차든가 아니면 하늘을 의미 있게 한 번씩 쳐다보기도 했다. 모두가 내면의 탐색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미술관에서 받은 이상하게 가슴에 담기는 감동들을 깨고 싶지 않아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을 피하고 싶었다. 한적한 뒷길을 산책하고 있을 때 갑자기 동네 애들의 터지는 웃음소리와 재잘거리는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참오랜만에 듣는 귀에 익은 친근한 소리였다. 유럽의 아이들은 인형 같이 예쁘게 차려 입힌다. 학교 가고 올 때는 대개 어떤 나이까지는 꼭 모셔 가고 모셔 온다. 단정하다. 귀엽다. 그리고 지루하다는 말을 곧잘 한다.

 

반드시 성인의 보호아래 무균상태인 공원이나 옥내에서 놀게 된다. ! 그런데 오랜만에 베니스가 방목하는 노루새끼 같은 어린 천사들을 만났다. 단추를 잘못 잠그거나 옷을 제대로 입지 않아 흰 살을 삐죽이 내놓고도 마냥 즐겁기만 한 아이들의 천진스러운 행복을 침범자처럼 훔쳐보았다. 자동차라는 기계가 제거된 베니스라는 낙원을 아직 잃지 않은 아이들! 이 작은 천사들에게는 어른인 나는 질주하는 자동차만큼이나 무서운 괴물로 느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감히 말 한마디도 걸어보지 못했다. 내 유년의 향수를 달래면서 다시 가던 길을 계속했다.

 

 

 

베니스 조형물
베니스 조형물

 

베니스에 오는 사람은 이틀밤쯤 지나고 나서 군중이나, 미술관, 광장, 음악회, 연극 이런 것을 벗어나는 노력을 한 번쯤 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면 고독, 침묵, 밤 이런 단어들이 줄을 서서 저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존재가치를 익히게 해 줄 것이다. 나는 그 뻑적지근하게 화려한 예술 기념물들 사이에서 시간을 날리느라고 참으로 내가 흥미 있게, 섬세한 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베니스의 우물들을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조용한 마음, 맑은 눈을 가지고 베니스 뒷거리를 서둘지 말고 걸어 다니면 여기저기서 우물이 눈에 띌 것이다. 물속에 잠겨서 살면서 동시에 갈증을 느끼며 살아야 했던 이율배반속의 옛날 베니스 인들을 이 우물은 그대들에게 침묵과 시심(詩心)으로 잘 설명해 줄 것이다.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물의 공간은 이제 나에게 바다라는 낯선 큰 물이 아니라 호수처럼 느껴졌다. 모든 별들이 떠오르고 지는 것이 보이는 호수 같은 친근감이 있다. 출렁이는 물소리를 오래오래 듣고 있노라면 침묵만큼이나 작은 소리로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 착각을 느끼게 된다. “괴테, 샤또 브리양, 스다엘, 지오노, 셰익스피어… 이런 사람들을 아시죠. 그들은 한결 같이 여기를 지나가면서 이 도시와 결혼하여 작품이란 아이를 배고 갔어요. 그들은 여기서 행복했지요.” 이런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갑자기 물속에서 흑인 무어인 오델로의 얼굴이 불쑥 나타나며 순결했던 부인의 애정을 오해하고 목을 졸라 죽였던 장군의 얼굴로 나는 아내를 너무 깊이 사랑하느라고 아내를 현명하게 사랑할 줄을 몰랐습니다.”하고 울부짖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이같이 남녀 관계는 어느 누구도 정답을 못 내리도록 신(神)은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그래서 라신느 셰익스피어 같은 비극의 천재들은 신의 계획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남자와 여자의 애증의 갈등을 비극으로 엮어 관객을 울리고 슬프도록 하는가 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파도는 하나하나 참을성 있게도 보이지 않는 동쪽에서 오고 있다. 우리 있는 데까지 와서는 참을성 있게도 하나하나 미지의 서쪽을 향해 다시 떠나간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기나긴 전진 내와 강은 지나 만 가나 바다는 지나가고 또 머무른다. 그래서 충실하면서도 덧 없이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바다와 결혼해야 한다 "

 

오래전에 남산 드라마 센터 무대 위에 섰던 한국배우 오델로와 데스데모나의 열연이 눈에 선하다. 어느 극단인지 지금은 잘 기억이 잘 나지 않으나 오델로의 흑인분장이 아주 인상에 남고 유명 여배우가 데스데모나 역을 아주 잘 소화해 낸 것 같아 손이 붓도록 박수를 보냈던 것 같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연극의 이해가 적었던지 한국 연극인들은 가난해야 했고 표 판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던 한 친구를 알던 나는 한 사람의 애호가로서 안타까웠다. 외 길을 걷는 예술가들을 사회는 보호해 주어야 한다고 속으로 수없이 말했다.

 

이러는 동안에 나는 눈부신 백사장을 끼고 있는 리도 섬에 이르렀다. 파도가 이는 대양으로부터 호수의 물결을 만드는 역을 맡아 베니스를 보호하고 있는 듯하다. 그때 바다는 살아있는 사람의 몸처럼 따뜻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움직인다. 호흡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영생(永生)이며 인간이 갖는 죽음 같은 것은 없는 생명이기에 진선미요, 자유다." 정말 나는 말을 하는 바다를 느꼈다.

 

바다는 나에게 언제나 절실한 스승이었던 기억을 했다. 거품을 밟고 가는 나에게 파도가 와서 다리를 때리고 다시 나를 버리고 떠난다. 이런 되풀이로 계속되는 석양으로 충일된 바다는 비단 같은 윤기가 돌았고 행복감으로 아드리아 바다에 안겨 울고 싶었다. 우리는 살면서 행복은 얼마나 눈물과 가까이 있는가”를 느낄 수 있다.

 

 

리도 섬
리도 섬

 

 

 

이윽고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란 조개들이 불평을 하며 움츠리는 모습에 나는 무뢰한 침범자 같은 죄스러움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한걸음 물러서는 겸손한 제스처를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작은 개체를 업신여기고 그들의 공간을 파괴하고 질식시키는데 얼마나 익숙해 있는가. 작은 마음을, 조그만 정직을, 작은 약속을 대단히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한 청년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는 젊다. 입신출세의 야심이 만만하다. 부호의 아들이다. 권모술수에 비상한 두뇌도 가졌다. 유쾌하다. 작은 일을 해놓고 크게 생색내기를 즐겨하며 스스로를 술에 절여진 몸이라는 표현으로 거드름을 피우기 시작하여 자기 집의 재력과시를 그런 식으로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쓴맛을 가지게 하는 딱한 사람이다. 작은 것에 대한 성실(誠実)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 청년 앞에서는 모두가 쩨쩨한 인간으로 왜소되거나 과민성환자 취급을 당해야 하는 부당함이 있다.

 

한 개인의 사생활을 어떻게 자기 나름으로 영위해도 나에게는 무방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흠은 작은 정직을, 작은 약속을 지키지 않아 남에게 피해를 줄 때가 문제다. 그래서 번번이 주위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슬프게 했다. 인간이란 누구나 안일에 쉽게 유혹되는 약점을 가졌기 때문에 스스로 끊임없이 점검하는 파수꾼이 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쉽게 작은 개체를 침범하게 되는 것 같다.

 

리도 섬의 작은 조개가 이런 성찰(省察)의 시간을 제공해 주어서인지 나는 이삼 킬로미터 떨어진 건너편 베니스에서 한참 동안 고삐 풀어진 말처럼 늘어지고 흐느적거리는 정신을 한번 가다듬게 되었다. 어느새 리도 섬 한 복판 교회 앞에 이르렀다. 나무들이 둘러진 집들이 보인다.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시간이지만 이미 문명 속에 와 있음을 안다. 꿈의 공간이 아니라 허기증을 막아주어야 하는 이미 현실의 공간에 나는 서 있었다.

 

 

리도 섬 정경
리도 섬 정경

 

 

나의 시선도 동작도 반사적으로 재빨라졌다. 다시 쌩 마르크 광장으로 가는 배를 타야 했다. “밤은 바다 위에 내리지 않는다. 반대로 이미 잠긴 해가 제 두꺼운 재로 차츰차츰 검게 물들이는 물바닥으로부터 아직 창백한 하늘로 올라간다. 금성은 잠시 검은 파도 위에서 외로이 있다. 눈을 감았다가 뜨는 시간, 별들은 액체 같은 밤 속에서 삽시간에 늘어난다.” 달이 떠오르며 나를 따라왔다. 리도여 안녕!!

 

유명한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중편 베니스의 죽음을 읽었던지, 비스콘티 (Visconti, Luchino 이탈리아 영화감독 1906~1976)의 영화를 본 사람은 베니스를 떠나고자 하는 날짜를 정한 다음에 그 작품을 다시 상기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곤돌라는 죽음을 이끄는 사자(死者)의 관으로 보여 불쾌한 예감이 들 것이고 흐르지 않는 것 같은 잔잔한 물에서 시궁창 냄새를, 대시인(詩人)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처럼 느끼게 되면 아직도 온 유럽의 밀월 여행지로 많은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꿀 같은 도시가 나같이 모처럼 얻어진 기회에 한순간이라도 죽음을 상상하고 우울해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몇 시간 후면 나도 떠나야 한다. 한 순간 이 도시 속에서 갑자기 스스로 빛이 퇴색한 생명감이 없는 초라함이 느껴진다. 멜랑꼴리 한 기분으로 다리 밑에 흐르는 물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시커먼 물밑 아래서 영화, 베니스의 죽음의 배경음악으로 선을 보였던 말러 (Malher)의 교향곡이 갑자기 파리 시네마떼끄에서 처럼 퍼져 나오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비스콘티가 모아 준 말러 애호가들 중에 한 사람으로 등록된 셈이다. 콜레라가 이미 진을 치고 있었던 그 도시에서 아센바흐의 혼을 송두리째 뺏고 있었던 열네 살짜리 폴란드 소년 타찌우에 대한 사랑, 그리고 화면에서 감독이 애써서 나타 내고자 고심을 했을 죽은 시체의 썩어가는 냄새, 이런 것을 나도 떠나는 직전에 의식적으로 한번 가상해 봤다. 아름다움(예술)과 죽음의 딜레마를 추적했던 토마스 만은 살아있는 베니스에서 죽음의 베니스라는 우주의 이중성을 절감했던 것일까.

 

 

그랜드 캐널 대성당
그랜드 캐널 대성당

 

 

 

소설 속에서 관광 수입으로 살아야 하는 그들에게 콜레라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도시 한가운데 이미 번지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허위, 부정해야 함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으리라. 지금도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은 도시가 물에 언젠가는 잠길 가능성이 있다는 위협이 전문가들에 의해서 신문잡지에 보도될 때이다. 그러나 베니스는 사랑과 죽음, 아름다움과 죽음 이런 표리(表裏)의 야누스 같은 이미지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히 숨 쉴 것이다.

 

 


2023.03.24 - [유럽] - 야누스의 얼굴, 베니스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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