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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뭉크 미술관, 노르웨이

by 이다인 2023.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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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미술관, 오슬로 노르웨이

 
머리를 두 갈래로 얌전히 땋고 교복을 입었던 시절의 나는 대부분의 사춘기 여학생들처럼 사물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고, 확실한 대상도 없으면서 무엇을, 누구를 늘 갈망하면서 지낸 것 같다. 청년들의 꿈이나 갈망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다를 게 없었던지 나는 늘 미래의 시간을 꿈꾸면서 살았던 것 같다.
 
특히 여자로 태어난 나는 당시의 사회 인습이 꽤나 불편했었다.  '이것도 하지 말라, 저것도 하지 말라'는 금기 사항이 가정이나 학교에서 너무 많았음이 나로서는 늘 불만이었다. 밤에는 음악회에도 못 가고, 일요일 유년 주일학교에도 할머니 눈치를 보았으나 다행히 어머니가 갈 수 있도록 이것저것 소심히 살펴 주셨다. 그래서 고분고분한 아이들이 별 불만 없이, 별 불편 없이 학교에 오가고 일상에 만족하고 사는 것을 보면 삶에 너무 소극적이다라고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는 왜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것도 많았고 가고 싶었던 곳도 많았는지 모르겠다. 뚜렷한 이유 없는 불만과 대상 없는 갈증으로 이어졌고, 그 시절 나에게 음악 시간과 미술 시간만은 그래도 사뭇 가슴 설레던 시간이었다. 노래를 잘 부르고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니라 적어도 그 시간들만큼은 감성을 요하기 때문이었기도 했겠지만, 일방적으로 듣고만 있는 강의가 아니라 최소한 자기표현이 가능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미술부에 등록하여 학교가 끝나면 그림을 그린답시고 늦게까지 학교 교정에 남아 선배 언니들과도 사귀고 노닥거리기도 하며, 선생님들 흉을 보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우리 미술 선생님은 꽤 솜씨가 좋은 것 같았고, 소문에는 국전에도 입선된 분이라고 해서 학생들 사이에 존경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나는 그림도 잘 그리지 못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3학년 미술부장 언니를 이유 없이 편애했던 그 선생님의 불공평함이 싫었다. 모든 언행에 너무 대가(大家)인 체하는 자만심이 스며 있어서 어린 나이에도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몇 년 후 소식으로는 J 극장 간판부장으로 돈 많이 받고 일한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고 오랫동안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미술 선생님의 그 전직은 순수했던 내 나이에 배신감으로 남아 있었다. 바로 그 선생님방(미술실)에 들어가면 왼쪽벽면에 이상한 누드여인상(사진)이 하나 걸려 있었다. 지금쯤 그 그림을 보았으면 내 식견으로, 그것이 중요한 화가의 것이었다면 대강 누구의 것, 어느 시대의 것이리라는 것쯤은 가려냈겠지만, 그때는 선생님께 물어볼 생각도 못 했고 머릿속에서 왜 저런 그림을 학교에 걸어 놓았을까, 저것이 뭐 잘 그린 것이라고 걸었을까 하는 복잡한 의문이 늘 마음속에 일고 있었다.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서 미술사를 공부
하고서야 그것이 에드바르드 뭉크 (Edvard Munch, 1863~1944)의 작품인 것을 알았다. 사회인이 되어서 그림을 그릴 때, 미술관을 찾을 때마다 문득문득 그 누드상이 머릿속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에드바르드 뭉크; (Edvard Munch, 1863~1944)
에드바르드 뭉크; (Edvard Munch, 1863~1944)


물론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구경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나의 숙부님도, 나의 어머님도 그림을 잘 그리신다. 또 나의 동생은 프랑스에서 개인전도 열었다. 이렇다 내놓을 만한 화가는 없어도 그림을 좋아하는 DNA를 받은 탓인지, 나는 국내 무명화가의 개인전을 비롯해서 세계 중요한 미술관을 다니느라고 많은 시간과 돈과 정열을 기울여 왔다.
 
그런 나는 작년 여름 오슬로 시 교외에 있는 뭉크 미술관에 갔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8월의 오슬로는 여행자들에게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일기(日氣)였다. 오슬로에는 바이킹의 선박들을 비롯해서 시민 홀, 뷔즈랜드 조각 공원, 스키, 경기장, 대학, 오페라 등 여러 군데 볼만한 것들이 꽤 있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
했던 곳은 뭉크 미술관이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뭉크 미술관
뭉크 미술관


그날 뭉크관에 도착하기까지 나는 아침부터 땀을 좀 흘렸다. 이유인즉, 여행 중 피곤하여 늦잠을 자는 통에 호텔마다 돌아다니며 관광 예약 손님을 모셔가는 버스를 놓쳐 버려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하는 수없이 택시 신세로 겨우 늦게서야 그곳에 갈 수 있었다. 
현대건물로 된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게 되자 아! 하고 거의 신음 같은 소리가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그것은
여고 때 미술 선생님 방에서 보았던 < 마라의 죽음 >이라는 그림을 거기서 만났기 때문이다. 마치 찾고 있었던 미아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라의 죽음
마라의 죽음

 
노르웨이가 낳은 가장 위대한 이 화가를 나는 이미 소녀 시절부터개인적으로 잘 알고라도 있었던 것처럼 눈물겹도록 반가웠고 벅찬 감격을 받았다. 마치 오랜 갈증 끝에 물을 만난 것처럼. 내 눈짐작으로 5백여 평 되는 전시장을 단숨에 한 바퀴 휙 돌아본 다음 다시 작품 하나하나 앞에서 자문 자답하면서 주변을 오래 서성거렸다.
 
취리히, 슈투트가르트 등등 다른 나라에서도 가끔 그를 눈여겨보아 왔지만 이렇게 크고 많은 작품이 한 곳에 채워져 있는 '뭉크 공간'은 한마디로 나에게 행복한 충격을 주었다. 
크기와 양이 반드시 질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걸린 작품들은 거의 가로 세로 11미터가량 혹은 더 큰 대작들인 데 놀랐고, 하나하나가 뭉크의 생의 실현인 자기표현에 나는 엄숙함을 금치 못했다.

 
또한 < 그랑 카페의 입센 (Ibsen imKaffeewirthaus) >이라는 2미터쯤 되어 보이는 대작 앞에서 뭉크가 오슬로 개인전에서 물의를 일으켜 좌절하였을 때 입센이 찾아가 위로와 격려를 했다는 예술인들의 뜨거운 우정을 생각했고, 5살에 어머니를 폐병으로 잃고 14살에 누나 '소피'를 같은 병으로 잃었던 슬픔을 겪어야 했던 어린 뭉크를 상상하면서 한참 동안 그의 고독과 아픔을 생각해 봤다.
 

그랑 카페의 입센
그랑 카페의 입센


주로 사랑, 번뇌, 죽음 등 인생의 어두운 테마들로 엮어진 벽면의 많은 인물들은 상을 입은 남녀처럼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특색이었다. 특히 < 병든 아이 (Das Kranken Kind) >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 앞에서는 병마에 시달리던, 불행했던 뭉크의 가정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슴이 저려올 만큼 슬퍼진다. 
 

병든 아이
병든 아이


또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뭉크는 그의 걸작품 < 절규 (The Scream) >에서 찌든 삶으로부터의 고통과 불안,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외마디 비명을 질러 폭발하고픈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나 아우성으로 표현하여 우리들에게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절규
절규


누구나 한 번은 죽게 마련이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죽음 그 자체가 슬픈 것이 아니라, 정든 얼굴들과 익숙한 주변 모든 것들과 헤어져야 하는 이별이 슬픈 것이리라. 나는 오랫동안 입원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런 장면을 보면 비록 그림이나 작품에서라도 예민한 반응을 곧잘 일으키는 버릇이 있다. 나는 어느 슬픈 사람, 외로운 사람을 위해서 가끔 기도한다. 
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행복을 돌려주시라고 하느님께 기도한다.

 
그때 뭉크의 미술관 방문은 단순한 그림 관광이 아니었다. 그날 나는 일상 보다 좀 다른 세계에 몰입했고, 그 넓은 스칸디나비아 대륙을 종횡무진하며 고삐 풀린 말처럼 돌아다니던 객이었다. 나는 잠시 동안이라도 엄숙한 시간의 주인이 되어 뭉크의 심오한 세계에 젖어 있었다. 호텔에 돌아와서도 그 그림들의 무거운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다음과 같은 몇 자로 시(詩)를 써 보았다.
 


병자를 위한 기도
 

하느님, 내 누이 당신 곁으로 가야 하는 날은
개나리 피고 난 다음으로 해주세요.
그리고. 복사꽃이 떨어진 후에
마음 좋아 보이는 모란이 만발하고
착한 목련이 그 길에 서 있을 빛 밝은
오월 어느 날로 정해 주세요.
모두가 잠깐 머물다 가는 곳이지만
이곳에서는 불구의 몸으로
서럽게 살던 누이였습니다.
 
무덤에 잔디가 빨리 덮일 오월에 떠나면
우리 어머님 마음이 혹시 덜 서러울까요?
하느님, 내 누이가 당신 곁으로 가야 하는 날은
나사렛 예수가 타던 조랑말을 꼭 좀 빌려 주세요.
우리 어머님 혹시 눈물 덜 지우실까요?
내 착한 누이 그곳에 닿으면
작은 두 날개 돋게 하셔서
밤이면 어머님 꿈길에 한 번쯤
다녀가게 허락해 주세요.

 



늦가을 깊은 밤에, 작년 여름 뭉크의 세계에 빠졌던 시간을 상기하면서 나는 이 글을 썼고, 또 그런 세계를 가상하면서 밤늦게까지 그림을 그렸다. 머리 언저리에 배회하던 생각들과 마음에 엉켜 있던 찌꺼기들을 어설프게나마 글로 혹은 그림으로 퍼내고 나면, 나는 속을 비운 것 같이 후련하기도 하고 허허(虛虛) 롭기도 한 그런 시간을 즐긴다. 그런. 시간들은 누구나 더불어 누릴 수 없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시간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것을 고독한 시간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고독'을 사랑한다. 고독은 자유와 '형제'이기 때문에 나는 더욱 사랑한다.
 
 


  ​***        현재 뭉크미술관은 2021년 10월 22일에 개관했다고 보도되었다. 과거 오슬로 외곽에 있던 것을 도시  중심부 수변구역에 아름다운 곡선건축물로 세계최고의 미술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곳이 소유하고 있는 뭉크작품이 26,000 개라고 해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건축설계자 - Juan Herreros, Jens Richeter)

 


 
 

 뭉크 미술관 내부
뭉크 미술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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