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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드뷔시의 고향 (故鄕), 프랑스

by 이다인 202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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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의 고향 (故鄕), 프랑스

 

파리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 RER(급행지하철) 생제르맹--라는 역이름이 자주 눈에 뜨인다. 그 이유는 그곳이 파리 근교에 있는 마을이며 RERA선 종착역이기 때문이다.

 

드뷔시(1862~1918)의 생가를 찾아보고 싶으면 무조건 그 선을 타고 개선문에서 20분쯤 달리면 된다. 지하철 구멍에서 빠져나오면 파리와는 좀 다른 분위기의 마을 하나가 나온다. 인구 4만쯤 되는 이 마을은 프랑스의 쟁쟁한 왕들이 살았던 古城이 있고, 특히 지금도 빠비용 앙리 4세라고 부르는 특급호텔로 되었지만 루이 14세가 태어난 역사적인 건물도 바로 옆에 있다.

 

파리에서 서쪽에 위치한 높은 지역이라 생제르맹에서 파리까지 흐르는 저 발아래 보이는 센느강 풍경이 한눈에 다 보인다. 거기다가 넓은 공원은 아직도 깨끗이 손질되어 있고, 수백 년 전 왕가의 사람들이 산책을 즐겼을 거목 아래는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젊은 엄마들과 아이들이 주말을 즐기기도 하고, 노부부들이 팔짱을 끼고 산책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세느강 풍경
세느 강

 

큰 도시의 어느 공원과 다를 바 없다. 이 주변에서 어느 누구에게나 드뷔시의 생가가 어디냐고 물으면 저 큰길 건너 상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세요." 하고 가르쳐 준다. 이곳에는 여러 왕들이 살았건만 지금은 당시 가난한 도자기 가게 아들이었던 드뷔시의 고향으로 온 세계인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드뷔시 생가
드뷔시(1862~1918)

 

당시 대부분의 이렇다 할 음악가들이 독어권이나 이태리에서 태어나고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19세기말에 이르러 쌩-제르맹-앙-래에 드뷔시가 나타나 준 것은 프랑스의 자존심을 살렸고 거기다가 독창적이고 지극히 프랑스적(?)인 인상주의 음악을 생각해 내고 완성했다는 것은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기쁨이요 축복이다.

 

그의 음악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소리로 옮겨 듣는 것 같다고들 한다. Corot, Turmer, Renoir, Bizet, Ivan Tourgueniev 같은 화가, 소설가, 음악가들이 체류했던 곳으로 유명한 부지발 (Bougival) 일대는 인상파 화가들의 메카이기도하다. 바로 이들 인상파들의 공기를 같이 마시고, 그들 화가들이 그렇게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었던 햇빛 아래 태어났다는 자체가 그의 음악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

 

나는 몇 년 전에 뺑38번지에 있는 그의 생가에 들른 적이 있었으나 "드뷔시는 1862822일에 태어났다는 기념판만 초라하게 붙어 있을 뿐이었다. 건물은 4층이었고, 1층에는 그릇을 팔고 있는 가게였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에 와보니, 드뷔시기념관으로 개장되어 있었다. 위층들은 깔끔하게 모두 정돈되어 있었으나, 아래층은 마지막 정리 중이었다.

 

드뷔시 생가
드뷔시 생가

 

 

입구에 들어서면 Emma Bardac의 딸이며 드뷔시의 며느리인 Tinan부인의 유언으로 이 집을 공개하게 되었으며 그의 유품을 모두 진열하여 음악가에 대한 추억과 그의 삶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생제르맹市가市 배부하는 전단을 받게 된다.

 

그리고 역시 가 계획하고 시행하고 있는 하루 나들이 관광코스가 있다. 이 지역이 배출한 상징주의 선구적 화가이며, 샹젤리제 극장 천정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Maurice Denis가 살았던 Prieur와 Bolero로 너무나 친숙한 애호가들이 많은 Maurice Ravel이 체류했던 Montfort'Amaury(1920) 마을과 생제르맹 古城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불란서에서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조그만 마을에서라도 人物이 그것도 유명한 예술가와 인연이 한 번 닿았다 하면 그냥 놓치지 않는다. 꼭 기념관을 만들고 종이 한 장의 유품이라도 고이 보존하여 홍보하고 세계인들의 발길을 불러들이는데 천재적인 소질이 있다.

 

나는 드뷔시의 많은 유품과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는 방으로 올라가 차근차근히 훑어보았다. 그는 이곳에서 겨우 세 살까지만 살았고, 파리로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옮겼고, "로마상"을 받아 이태리에 유학했다. 파리 동남쪽에 있는 비생이란 소촌에서 쓴 그의 유명한 관현악곡 "바다의 새벽에서 정오까지", "바다의 장난", "바다와 바다의 이야기"는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드뷔시의 가족이나 즐거운 유년시절에 대한 것은 어느 페이지에도 침묵으로 일관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 지중해 휴양도시 깐느에 있는 그의 아주머니댁에서의 체류는 단 한토막의 행복한 추억이었다. "Arosa아주머니 집에서 드뷔시는 웃을 줄 알았고, 처음으로 기쁨과 행복, 그리고 섬세한 것들에 대한 애정을 알게 되었다.

 

최초로 예술과 음악에 대해서 얘기해 준 사람도 Arosa였다.”라고 Serolf는 쓰고 있다. 바로 깐느에서 본 지중해가 나중에 바다를 잉태하게 했다. 그리고 Cerutti라는 연로한 이태리 선생에게 피아노를 처음 배우던 것도 여기에서였다. 나중에는 쇼팽에게도 사사한 적이 있는데, 아마 이것도 당대 재기에 넘치는 상류사회 부인들이 드나드는 살롱에 출입했던 Arosa의 주선이었을 것이라고들 얘기한다.

 

이번 전시물 중에 내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20세기초, 러시아의 발레단을 유럽에 진출시킨 디아길레프(Diaghilev)니진스키(Nijinsky)들의 이름들과 사진들이었다. 말라르메(Mallam)"목신의 오후"가 드뷔시에 의해서 음악으로 되고, 다시 니진스키에 의해서 발레로 안무된 예술의 연계성과 천재들의 만남과 작업이 너무 좋은 감정으로 다가왔다. 비록 지금은 파리의 파시 공동묘지에 누워 있으나 그가 남긴 음악은 구석구석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다.

 

 

드뷔시 묘지
드뷔시 묘지

 

줄무늬 양복에 나비넥타이, 검은 턱수염을 덥수룩이 기르고 있던 드뷔시와 커다란 모자를 긴 머리 위에 눌러쓰고 있던 딸 Chouchou와 송림 속에 앉아 찍었던 사진을 나는 서재에 오랫동안 놓아두고 그의 음악을 들었던 적이 있다.

 

송림속 딸과의 한때
송림속 딸과의 한때

 

유난히 오늘은 그들의 묘한 표정이 생각난다. 기다리고 있으면 생제르맹-앙-래의- 그의 집에서 곧 문을 열고 나을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남은 그의 음악이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생 제르망 인근
생 제르망 인근


 

 Debussy: La Mer 바다/ Karajan · Berliner Philharmoni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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