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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지중해 몰타 섬

by 이다인 202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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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 흐르는 물이 있어도 그릇이 없으면 담지 못하듯,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 돈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여행을 해도 머리에 든 것이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담기지 않는 것을 우리는 쉽게 경험한다. 몰타여행이 바로 쉽게 그럴 수가 있는 곳이다.
 
지중해 한가운데 둥둥 떠있으면서 눈부신 태양이 쏟아지는 하늘을 이고 있는 섬, 아쉬울 것 없는 상쾌한 일상을 누리며 오수를 즐기는 어느 귀부인 같은 우아한 자태를 지닌 몰타... 그러나 그 내면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역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땅. 그 자체이기도 하다. 선사, 중세, 현대가 함께 부딪치지 않고 현존하며 시간이 마치 뚝 멈춰 있는 것 같은 섬이다.
 
몰타 섬은 면적이 제주도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으며, 그리스 바브도스 섬 다음으로 유럽 연합의 최남단에 있는 한 작은 섬이다. 6개 섬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 군도로서 인구는 50여 만 명이나 몰타와 고조, 코미노에만 사람이 살고 있어서 서유럽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다.
 
이미 기원전 3,600년에 인류 최초로 수렵이나 생계를 위해서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타르시엔(Tarexian) 신전을 지었으며, 페니키아와 그리스 성요한 군단을 비롯해서 프랑스, 영국 등 10여 개국의 침략과 지배를 거쳐 1964년에 겨우 독립한 나라이다. 그 기나긴 투쟁은 주변국의 부러움을 사는 천혜의 자연조건이 그 큰 이유가 되었지만 고대 지중해 해상 교통의 요지였으며 유럽과 북아프리카의 경계점에 위치해 있어 나폴레옹과 영국의 경우에는 군사 전략적 요충지로 적절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몰타섬 지도
몰타섬


스위스처럼 중립국이 되기 위해 많은 외교적 노력을 했으나 현재러시아만 승인을 한 상태라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이곳은 비록 로마 교황청처럼 작은 나라이지만 국제적인 일에 여러 가지 참여하기를 즐기고 있는 나라이기도하다. 오늘날영토 없는 국가이기도 한‘기사군단’의 유적들을 보며 십자군전쟁을 되새기고 미로 같은 꾸불꾸불 좁은 길을 따라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어야 제격인 도시, 걷다가 지치면 마차와 건장한 마부들이 손님을 느긋하게 기다리는 곳을 찾아가도 좋은 곳이다.
 
도시 전체가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볼거리와 알 거리의 보고이니 인문학 똑똑이가 아니라도, 몰타는 누구에게나 훌륭한'대학'이다. 국민의 대부분인 96%가 페니키아 후손들, 몰타 인들이고 나머지는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인이며 그들의 종교는 97%가 가톨릭이고, 나머지가 이슬람교 등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들의 피와 땅은 북아프리카 정신과 삶은 유럽이라는 복합 양상을 띠고 있고, 영국이 마지막으로 통치를 했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유럽 알파벳의 모체가 된 페니키아어와 영어를 쓰고 있다.
 
일찍부터 와 보고 싶었지만 한니발의 도시 카르타고를 수년 전에 갔을 때 리비아의 로마 유적과 비교할 수 있도록 같이 묶어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에 카다피가 문을 열 때까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카다피의 개방이 선언되었다. 2008년에 프랑스에서'클럽 매드 2'가 관광 상품으로 나오자 그 선박의 이름값 때문인지 아니면 수십 년 동안 꽁꽁 폐쇄되었던 사회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되었는지 모두들 서둘러 예약들을 했다. 귀찮은 비자 문제와 모든 안전 문제도 리비아 관광청과 합의를 본 상태라는 소문도 있고 해서 이왕이면 나도 그 선박을 택하기로 했다.
 
5개의 드높은 돛대가 바람을 싣고 펄펄 휘날리는 배였다. 400명 승객과 200명의 승무원을 태울 수 있는 큰 배에 돛이 달려 있었다. 바람이 불면 돛을 사용하고 평소에는 엔진을 돌리고 또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연료 절약만이 이유가 아니고 프랑스 인들의 심미안에 더 연유된 것 같았다.
 
훤칠한 미녀 같은 선박이 그랜드 하버에 서서히 다가선 시간은 일몰직전이었다. 거기서 바라보는 붉게 물든 하늘과 정지해 있는 듯 고요한 바다는 장대한 한 편의 서사시였다. 바라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터너만 년의 최대 걸작 <Yacht approaching the coast >가 생각이 났다. 그가 베니스 체류 중에 수도 없이 그렸다는 물과 하늘빛을 상상하며 드디어 섬에 발을 디뎠다. 불어에서 섬은 여성으로 표기한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몰타 섬의 지형은 들어갈 곳과 튀어나올 곳, 높낮이가 모두 제자리에 잘 놓인 팔등신 '미녀'이다.
 
수도 발레타는 선착장이나 물속으로 쭉 빠져 있는 곳, 또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언덕에 견고한 구조의 성곽과 요새들이 바둑판 모양으로 조성된 계획도시이다. 세 개의 만을 묶어 붙인 이름 'Three city', 바라카 정원, 바다를 향해 놓인 대포들까지도 모두가 제자리에 잘 놓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발레타
발레타


요한 기사단이 16세기 그리스 로도스 섬에서 이슬람교도들의 침공에 멀리 떠돌이 신세가 되었을 때,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배려로 매년 '몰타 매' 한 마리를 조공한다는 조건으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기독교들은'지중해 해상에서 널빤지 한 조각에 매달려 있는 꼴'이었고 지중해는 이슬람의 바다로 되어 가고 있었다.
 
청빈과 복종, 순결을 서약한 700명의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의 귀족 자제들과 용병 8,500명으로 이루어진 전투 집단인 몰타의 기사단의 무스타파가 이끄는 강력한 이슬람의 침략을 받았다. 그때 불리한 군력으로 이 섬을 기어코 지켜 낸 지휘자가 바로 프랑스 프로방스 귀족 출신인발레트란 기사 단장이었다.
 

기사단
기사단


수도 이름은 바로 그 영웅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전승 이후 도시 만들기에 그 프랑스 귀족 출신의 안목이 단단히 밑거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어쩌다 어느 골목에 들어서면 내가 지금 인상 프로방스 구 시가지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다. 오늘날 그 많은 십자군 역사가 스며 있는 발레타 보물들은 우리가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공은 그 기사에게 돌려야 할 것 같다.
 
일단 시티 게이트를 지나 '어퍼 바라카 가든' 에 올라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섬 풍경을 조망하는 것으로 방향 감각을 익힌 뒤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기로 했다. 섬 전부가 박물관이니 어디를 가도 상관이 없다. 한참 걷다 보면 갑자기 구멍이 뚫린 듯 파란 바다가 보이기도 한다. 그 방향으로 가면 땅의 끝자락이 있다는 예고인 셈이다.
 
300여 개나 되는 성당이 있는 나라, 그중에서도 “여기 영원한 명예를 지닌 발레트가 누워있다. 그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공포였으며 유럽의 방패였으며...”라는 비문이 새겨진 성 요한성당은 겉보기에는 매우 수수하다. 그러나 아치형 내부, 기둥, 천장, 바닥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그 중후함과 예스러움, 금은가루로 채색된 눈부신 벽면, 섬세한 조각가의 손길, 바로크 양식의 그림들은 세계 속의 보물임을 확실히 보여 준다.

 

 

특히 이탈리아 성화의 거장 카라바조의 <참수당하는 성 요한>과  <성 히에로니무스>를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은 귀중한 행운이었다. 그리고 몰타 건축가인 제롤라모 카사르가 설계한 황금빛의 기사단의 수도원 세인트 존 대성당(1573-1578), 철갑옷을 입은 모형 기사들의 도열, 완성도 높은 작품인 당시 기사단장의 궁전이었던 현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사당, 기사들의 숙소였던 교육부와 문화부청사, 국립박물관, 총리관저, 국립미술관들은 카사르의 건축 전시관처럼 느껴진다.

 

 

세인트 존 대성당
세인트 존 대성당

 

이곳으로부터 반대방향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고도메디나는 3,000년 전 수도였고 주로 귀족들이 살았다고 해서 귀족 도시로도 불린다. 반면 가까이에 있는라벳(Rabet)이라는 도시는 서민층이 살았다고 하는데, 바로 이곳이 성경에 나오는 곳이다.
 
바울이 로마로 끌려가던 중 배가 난파되어 이곳에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있는 곳. 당시 이 지역 수장의 아버지가 열병으로 죽기 직전이었는데 바울의 안수기도로 기적이 일어나면서 바울은 체류 기간 동안 기독교 전파를 쉽게 할 수 있었고, 그것이 오늘날 가톨릭이 몰타의 국교가 되도록 하는 데 초석이 되었다고 한다. 성 바울 대성당은 해마다 거창한 부활 행사로 널리 알려져 불타 관광 산업의 중요한 수입원이 되어 있다.
 
다시 발레타로 돌아와 2차 세계 대전 중 영국 육해군기지가 있다는 이유로 독일과 이탈리아로부터 280번이나 항공기 폭격을 받았다는 그때 전사자들의 위험 종탑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 있는 주변을 거닐었다. 지금도 매일 정오에 종이 울린다고 하니 역사의 뒤안길에는 영화와 부귀, 빛이 늘 어둡고 우울하고 처참한 것들과 함께 뒤엉켜 뒹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조 섬은 멀지 않지만 발레타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든다. 범죄도 세금도 없다니 평화롭기만 하다. 느긋이  작은 식당 하나를 찾아 이곳에서 유명한 참치 한 접시를 시켜 놓고 낮에 찾아온 거석사원을 생각하며 땀과 마음을 식히고 앉았으니 더없이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살기 좋은 이곳에도 온 국민의 걱정거리가 물부족이라고 한다. 섬 안에 강이나 호수가 없어서 거의 지하 100미터나 되는 깊은 곳에 수로를 복잡하게 건설해 두고 있으나 수요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물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물이 부족하다니 이상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고조섬; 교회
고조섬; 교회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율리시스가 체류했다는 블루라군으로 유명한코미노 해변에서 좋아하는 수영을 한바탕 신나게 즐기고 돌아가면 좋으련만....하는 아쉬움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든다.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동안 거리 모퉁이,가게 등에서 한국말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내가 잘못 들었을 것이라고 지나쳤는데 그게 아니었다.상당히 많은 한국 젊은 학생들이 이곳 영어 학교에 등록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다니다 보면 가끔 실력을 담고 있는 멋진 한국 젊은이를 만난다.그럴 때마다 한국의 훤한 미래가 보이는 듯해서 든든한 기분이 든다.

 

 

몰타 정경
몰타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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