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음료, 술
나는 술을 잘 마실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예쁜 술병을 좋아한다. 술의 여러 빛깔을 좋아한다. 우아한 만찬시간에 술이 곁들인 상을 좋아한다. 술에 적당히 취해서 멋진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말꾼을 좋아한다. 술에 취해 있으면서도 숙녀들에게 예의를 지키려고 애쓰는 남자에게 호감이 간다.
배우는 것은 모두 젊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 실감 난다. 나는 일찍이 술 마시는 것을 배우지 못해 지금도 술을 잘 마실 줄은 모르나 술 분위기는 누구보다 좋아한다. 우아한 술자리와 멋진 사람들이 마음을 활짝 열고 멋진 대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의 초대는 즐겁다.
술에 대한 역사나 존재가치 유무에 대한 진단을 떠나 술이 정도를 지나치면 인체에 해롭고 술을 과하게 마시면 인간이 추태를 부리고 마침내는 많은 불행을 초래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고 있으면서도 술과 인생을 격리시킬 수 없는 매력은 무엇일까.
유명한 꿈의 해석의 저자 프로이트의 학설 이전에는 꿈이란 것이 의미 없는 환각으로 알고 있었듯이 술이란 것이 좋아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밀쳐놓듯 과연 없어도 되는 음료일까. 모든 음식물, 음료수 중에서 술만은 유익하다. 해롭다고 한마디로 규정해 버릴 수 없는 음료임이 틀림없다.
그것을 마시고 나면 웃는 사람에게 우는 사람까지 그 진폭이 대단히 큰 반응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따지고 보면 술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술을 마시는 인간이 자기 경험에 따라서 좋다고도 하고 나쁘다고도 할 뿐이다. 술은 묵묵히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술과 더불어 좋은 경험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술은 상징적으로도 이중성 혹은 모호성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어떤 사람은 불꽃이 되어 타오르는 알코올의 성질을 생각하고 남성적이고 질적인 물질로 규정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들은 망각과 죽음으로 곧 잘 빠뜨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여 양적이고 여성적인 액체라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되 내 머릿속에는 술은 언제나 축제의 음료로 박혀있다. 세계 어느 문화권 속에서나 잔칫날에 술이 없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불(火)의 물, 타오르는 물”인 “알코올은 물과 불이란 상극의 두 요소의 결합인 것이다.” 그래서 강력한 생명력을 상징하면서 문학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한 테마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행가나 가요의 가사에서도 많이 쓰인다. 술주정뱅이를 남편으로 만난 여인들과 가족들은 술이라고 하면 천리만리 도망가리만큼 싫겠지만 다행히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어서인지 술이라고 하면 언제나 즐거운 분위기, 좋은 일들로만 기억에 남는다.
술분위기를 즐기게 된 것은 내가 성인이 되고도 한참 후의 일이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식사를 같이 한다든가 혹은 작은 가슴이 뛰는 랑데부를 할 때포도주 한잔쯤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림, 오페라, 연극, 문학에도 조예가 깊고 그런 것을 좋아하는 마음 맞는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 가볍게 술을 마시고 술잔을 앞에 놓고 있으면 나는 행복해지려고 한다. 거기다가 바다, 산, 나무가 그림처럼 아름다우면 더욱 좋다.
마음도 예쁘고 말귀도 잘 알아듣고 때로는 여성 본질적인 질투심도 발로하고 산뜻하게 모양도 잘 내는 멋쟁이 여자친구와도 좋지만 오랜 세월을 신뢰로 다졌고 오만할 정도로 자기 일에 실력 있고 남의 깊은 마음을 빨리 읽을 수 있어 불편하지 않게 유연한 언행으로 모든 것을 처신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남자 친구와 술잔을 부딪치고 밀도 있는 언어로 대화를 나누어도 행복하리라. 술은 말의 마술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색한 자리에 술은 강물처럼 말을 흘러내리게 한다. 술은 현재나 미래보다 과거란 시간을 미화시켜 향수에 젖게 하기도 한다. “임자 없는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이런 가사에서는 과거라는 시간이 앗아간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그리운 정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술은 인간의 마음을 결속시킨다. 유명한 뮌헨의 맥주 축제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술이 풍성한 장소에서는 모두가 친구 되어 서로 웃는 얼굴로 잔을 권한다.
“권해주는 그대 없어 오늘밤 술잔 못 비었네” 이것은 내가 옛날에 써놓은 시 구절 중의 하나이다. 술은 누구와 더불어 마셔야 제격이다. 내가 술을 잘 마실 줄 모르지만 술분위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곧 사람을 좋아한다, 혹은 대화를 즐긴다, 마음을 열고 사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도 된다.
서양에는 술의 종류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포도, 과일, 곡물로 된 수많은 알코올들은 저마다 독특한 향기와 색깔, 도수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것들을 마시는 양, 순서, 시간, 컵의 크기, 모양이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 서술의 성질도 알아야겠지만 주도도 익혀 두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술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있으면서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 또는 몸싸움하는 장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수백 명이 춤을 추고 밤이 새도록 술잔을 들고 있어도 대부분이 우아한 몸짓을 하거나 대화를 즐기고 있는 장면만을 보아왔다. 술을 혼자 마시는 것이 제격이 아니라고 얘기한 것처럼 그들은 술을 싫은 사람과 같이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친구끼리 마신다.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품위 없는 언행을 할 리가 없고 주도는 자연히 보기 좋게 익혀지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어릴 때 술을 마셨던 경험이 있다. 나는 4대 봉제사를 지내며 지방 유생들의 공간인 향교 관련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던 엄격한 할아버지를 모신 집안 분위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제사는 우리 집의 중요한 행사로 거의 매월 한 두 차례는 있었다. 사랑채에서 할아버지가 큰기침만 하셔도 우리 어머니는 긴장을 할 만큼 할아버지의 위엄은 대단하셨던 것 같다.
그런 영이 무서운 할아버지도 제사를 지내고 나면 야식을 하면서 할머니, 며느리, 손녀인 어린 나에게까지 소위 음복 (飮福)이라는 것을 하도록 권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음복이라는 것은 바로 젊은 사람, 아녀자들에게 주도를 정식으로 가르치고 술맛을 감식시키는 옛날식 교육이 아닌가 생각된다. 술이 내 인생에서 긍정적으로만 생각되는 것은 아직 술주정뱅이를 주위에 두지 않았다는 행운의 덕 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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