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의 '씨떼 유니벡씨떼르' (cité universitaire/국제 대학촌), 프랑스
외국생활이라는 것은 누구나 철저히 '홀로서기'를 해야 되기 때문에 얼굴에 잔주름이 일기 시작하거나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다른 색으로 변해가는 나이에 오면 누구나 견디기 힘든다고 한다. 특히 직장과 가정에서 나이만큼 제대로 자리가 잡혀서 안일하거나 이미 느슨해져 버린 상태까지 온 사람은 더더구나 말이 아니다. 나는 바로 그런 상황의 주인공이 되기를 자청해 온 사람이다. 비록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자질구레한 군더더기 같은 일이나 인간에 대한 신경쓰임에서 벗어나,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열중할 수 있는 생활을 늘 꿈꾸고 있어야 그런 생활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1년간 연구비를 받은 교수니까 거기에 부응하는 알맹이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물론 대전제다. 우선 빠리에서는 방을 얻는 일을 해결해야 한다. 여름에 오지 않으면 방 얻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10월 말에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인정받아 마침 '씨떼(Cité)'에 방 몇 개가 11월에 빈다고 서류를 내라고 했다. 교수추천서, 연구비 증명서, 대사관 공증 등 6가지 서류를 내고 며칠 만에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방을 얻었다.
29년 전. 나를 비롯한 많은 한국유학생들이 여기 침대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 유학생들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공간이다. 세계에는 좋은 대학도 많고 훌륭한 기숙사도 많다. 그러나 국내외 그 어느 것도 빠리대학의 '씨떼' 만큼 국제성을 띠고 제대로 그 기능을 다하고 있는 대학기숙사는 들은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돌아가는 일상의 그 모든 리듬은 거대한 하나의 '지성의 총체'로 이상적이고 훌륭하게 움직이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뉴욕, 버클리, 시카고, 런던, 시드니, 한국의 E대학 등에는 특별히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International House가 있고 그 외 세계명문대학에도 자국학생 위주의 기숙사에 어느 일부를 외국인에게 내놓고 있기는 하지만 빠리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빠리에는 이념이나 정치체제와 전혀 관계없이 외국학생들이 가장 많이 몰려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방대한 규모의 국제기숙사촌을 순수하게 학생 위주로 운영해 가는 능력도 있다. 프랑스인들은 '시떼' 건축 발상 자체를 입을 모아 높이 평가한다.
'시떼'가 탄생된 경위와 그 규모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시떼'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언덕이 없는 어느 평평하고 배치한 골프장쯤으로 인상해도 될 것이다. 40헥타르의 씨떼와 바로 길 건너편 작은 호수가 있는 15.5 헥타르에 달하는 '수리' 공원에는 매년 이상된 1,200그루의 나무와 '씨떼'내 수천 그루를 합하면 파리 남부의 거대한 녹지대가 되는 셈이다. 이런 땅 위에 학생숙소와 부대시설 48동이 있다. 그중 37동이 순수 기숙사고 나머지는 교회, 종합병원, 7개의 테니스장, 축구장, 우체국, 은행, 행정관, 도서관, 수영장, 극장, 영화관, 실내체육관, 아뜨리에, 음악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큰 키를 자랑하는 거목들과 잘 손질된 잔디밭은 17세기 어느 귀족의 성안 정원을 연상시킨다.
'씨떼'에는 약 1만여 명의 학생들을 수용하고 있다. '씨떼'는 1920년 뽈 아뻴(Paul Appell) 총장과 빠리 아카데미가 대학촌 건설을 계획하면서 지어진 것이다. 때마침 그 당시 불란서의 한 실업가인 에밀 덧치 드 라 뫼르뜨(Emile Deutsch de la Meurthe)씨가 자기 부인의 이름으로 사회에 조그만 공헌을 하고 싶은 뜻을 보여 고급관료와 대사업가의 은밀한 협의가 이루어졌다. 대지 선택이나 허가 등 많은 우여곡절 끝에 당시 문교부장관이었던 앙드레 오노라(André Honorat)의 협조, 승인을 얻어지어 졌다. 그들은 학문, 우정을 통한 미래의 존경받는 세계적인 엘리트와 일꾼을 위한 문화의 도장을 꿈꾸면서 '씨떼 유니벡씨떼르'를 지었다.
화려한 낙성식을 가진 집이 1925년 7월 9일 'La FondationEmile et Louise Deutsch de Meurthe'였다. 계속해서 앙드레 오노라 장관은 국내외 유력한 실력자들과 외국대사들에게 이 사업의 중요성을 호소하고 문을 두드린 결과 1925~1939년 사이에 20개의 기숙사가 개관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행정관인 'Maison Internationale'은 1936년 미국의 거부 록펠러의 기금으로 지어졌다. 1차 대전중에는 군대가 점령하는 수난도 겪었다. 그러나 다시 그 사업은 재개되었고 16동의 기숙사와 종합병원이 또 개관되었다.
여기를 거쳐간 빠리대학 졸업생 중에는 Bourguiba튀니지 대통령, Senghor 세네갈 대통령, Pierre Elliot Trudeau 캐나다 수상이 있다. 현재 140여 개국에서 온 학생들이 살고 있으며 평균 학생 연령은 25세이다. 지역별로는 불란서 35퍼센트, 다른 유럽국가 23퍼센트, 북아프리카 16퍼센트, 북미 7퍼센트, 남미 5퍼센트, 열대 아프리카 6퍼센트, 아시아 8퍼센트이다. 또 학년정도를 보면 50퍼센트 이상이 석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방 신청자들의 서류심사에서는 국가, 종족, 문화, 성별, 연령, 학과 등을 다양하게 고려해 '혼합원칙'을 제일 존중하여 방을 주고 있다.
한번 방을 얻으면 학교시험만 통과되면 3년간 계속해서 주거할 권리가 주어진다. 한국학생들도 꽤 많이 살고 있다. 여기서 학생들은 공부만 하면 된다. 일주일에 두 번 내지 세 번 방청소를 아주머니들이 해주고 침구도 적당히 바꿔준다. 결혼한 학생들에게는 살림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방을 준다. 또 나처럼 공부하는 늙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이란관과 큐바관 두 개를 특별히 내놓고 있다. 이 두 관에는 세계 여러 나라 대학교수, 연구원, 의사, 작가, 변호사 등이 들어와 있다. 방학 동안. 빈방이 많을 때는 빠리에 잠시 머무는 사람들을 받는 제도도 있어 편리하다.
빠리의 건축물은 색깔이나 형태가 거의 통일성을 이루고 건물내부에 들어가서만 국민 개개인의 취향과 개성이 발휘하는데 비해 '씨떼'란 공간은 그 반대인 것이 특징이다. 내부는 거의 비슷비슷하나 건축외형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건축양식은 나라마다 지방마다 그 특징을 살리고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관은 이오니크식 둥근기둥이 받쳐진 대문을 달고 있다. 또 이태리관은 토스칸지방의 그 유명한 빛과 물냄새가 물씬 나는 개머루 나무를 온통 집에 올리고 있다. 동남아관의 오밀조밀한 동양적 감각, 빛이 풍부한 스페인관의 흰돌집, 영국, 스위스, 북구관들은 우선 색상부터 짙은 적벽이 주색을 이루고 눈이 잘 흘러내리도록 박공지붕을 얹어놓고 있다. 이것은 바로 본국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따놓은 상설 국제 건축 전시장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불란서 건축가 러 꼬르비지에 가 1932년 스위스관을, 화란의 월렘 마리쉬스 뒤도크가 1938년에 화란관을 설계했다. 학생들은 그 거장들의 예술작품 속에서 살고 있다. 또 '씨떼'에는 각관의 문화적인 연중행사가 거의 쉬지 않고 계속된다. 각국의 예술, 문화 전반에 걸쳐있고 독일관에서는 독어강좌까지 있다. 당시 나는 '씨떼'내 한국관이 없는 것이 늘 서운했다. 우리 경제보다 훨씬 못한 모로코니 튀니지 같은 나라도 자국의 집을 소유하고 유학생의 숙소를 해결해 나가는데 우리 정부도 우리 재벌들도 국격에 맞게 이런 것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아쉬워했다. 건축비만 우리가 담당하면 불란서 정부에서 대지는 그냥 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뒤늦게나마 2018년 우여곡절 끝에 260실 규모로 한국관이 완공되어 많은 유학생들이 거주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빠리 대학교. 기숙사촌은 단순한 기숙사가 아니다. 세계 제일가는 국제 청년들의 공동체이며 문화공간이며 숙소이다. 어느 날 시인 상고르 대통령은 "씨떼 생활은 나에게 편견 없이 모든 다른 종족과 대륙의 인간을 알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역사는 한 두 사람의 순수한 이상주의자들에 의해서만 발전하고 변모한다는 말은 아뻴 총장, 덧치씨, 이런 이름들과 잘 어울리는 말이다. 오늘따라 입구에 세워진 앙드레 오노라 장관의 동상 표정이 더없이 돋보이고 하늘만큼 높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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