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세계 문화 예술 기행
  • 세계 문화 예술 기행
  • 셰계 문화 예술 기행
유럽

빠리 오페라 극장, 프랑스

by 이다인 2024. 12. 5.
반응형

빠리 오페라 극장, 프랑스

 

아주 오래전 어느 겨울 일이다. 나는 대학 기숙사의 외국학생들과 함께 사감 인솔 하에 5프랑짜리 새둥지 같은 학생좌석 꼭대기에 앉아 작은 가슴을 두근거리며 "백조의 호수"를 구경한 적이 있다. 그때가 나의 최초의 오페라 극장 출입이었다.

내 딴에는 꽤 성장했고 분과 입술연지도 곱게 발랐다. 그런데 롱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어깨가 반쯤이나 파인 옷을 입고 쓱쓱 지나가는 그 넓은 층층계를 오르는 순간 나는 삽시간에 촌닭이었음을 강하게 느꼈던것 같다. 그 날 내 옆의 태국친구는 그 높고 화려했던 천정을, 일본서 온 K는 로열박스에서 왕녀처럼 꾸미고 망원경을 들고 있던 여자들과 이 삼 세기 전 궁중기사처럼 우아한 동작을 하고 있는 남자들을 보느라고 정신을 빼앗겼는가 하면, 한 미국아가씨는 건물 내장의 호화스러움에 감탄을 하는 가운데 끼여 나도 몇 번이나 촌닭 일원으로 두리번거렸는지 모른다.

그러고 나니 하루저녁이 다 가버리고 곧 막이 내려와 버려 꿈을 꾼 것 같은 서운함을 안고 귀가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에도 여러 번 가 보았으나 그 장소만은 언제나 꿈의 궁전인 채 아름다운 시간의 절정을 엮고 싶은 인간들의 욕구에 아낌없이 주어지고, 열린 공간임을 실감했다.

 

오페라 하우스 (그랜드 오페라; 오페라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 (그랜드 오페라; 오페라 가르니에)


지금 나는 그 장소에 대해서 쓰고 싶다. 오페라극장은 문화선진국치고 없는 곳이 없다. 빠리에만도 여러 개가 있고 다른 도시에도 크고 작은 것들이 있다. 그중 세계에서 오페라공연장이 가장 많은 곳이 역시 불란서이다. 꽃 중의 꽃처럼 빠리 오페라 극장만은 '세계적'이란 말을 붙여야 하고 대표적인 문화공간임을 누구나 인정한다. 우선 오페라광장은 쌩라자르, 북, 동역, 중앙증권소, 루브르, 화려한 상가, 극장가들과 연결되는 통로, 그리고 센터이며 산책자들의 행복감을 고취시키는 거리다.

오페라야말로 인간이 표현해 낼 수 있는 모든 종합적인 예술이고 보면 공연장은 두말할 것도 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느끼고 그것을 차질 없이 작품화한 것이 '빠리 오페라'라고 말할 수 있다. 세계 유명 오페라좌인 이태리의 스칼라, 러시아의 볼쇼이, 빠리오페라 이 모두의 전신극장들은 이상하게도 화재란 재난을 겪는 공동 운명을 가지고 새로운 장소와 건물을 모색하여 모두 오늘과 같은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 극장은 나폴레옹 3세 때 콩쿠르에 응모한 171개의 작품 중에서 당선된 무명이던 젊은 건축가 갸르니에(Charles Garnier)의 작품이다. 그 육중한 돌건축을 하기에 처음의 난관은 국가가 선정한 대지밑에 지하강이 흐르고 있어서 1년간 난공을 겪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몇 년간 공사를 중단하는 가운데 1875년, 기어코 개관식을 올리는 기쁨을 가졌다고 한다.

당시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과거 고전형식을 답습할 때 그리스식도, 루이 14세식도, 루이 16세식도 아닌 소위 “나폴레옹식"이라고 작가 자신이 말하는 복합적인 미의 총체 같은 것을 내놓아 당대 사람들의 경탄과 비난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다. 극장의 면적은 11,000평방미터이고 무대는 450명을 수용할 수 있고, 홀 천정에는 6톤이나 되는 거대한 등이 달려있으나 관람석은 2200석밖에 되지 않는다.(참고:스칼라 극장은 3600석, 바스티유극장이 4000석)

앙그레 말로 문화장관시절 샤갈로 하여금 천정화를 그리게 하여 현대화가의 참여도 있는 집이며 또 입구에 있는 '춤'이란 조각작품은 원래 까르뽀(Carpeaux)의 것이나 그것이 세워지자 대중도덕성을 모욕했다고 비난을 받게 되어 데모자들의 잉크병 세례를 받아 지금도 그 자욱이 지워지지 않은 채 루블박물관에 피신했다가 옥쎄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대신 볼벨몽드에 의한 모조품이 본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페라 입구 까르뽀의 조각 작품 "춤"
오페라 입구 까르뽀의 조각 작품 "춤"

 

 

현재 이 극장에 소속된 인원은 1000명이다. 1974년 경우에는 2428벌의 무대의상을 재봉실에서 지었고 38,500 평방킬로미터의 무대장치실에, 무대장치를 위한 그림이 1300킬로그램, 사용된 회반죽이 10톤이었다고 한다. 예술가로는 10명의 전속 솔리스트, 100명의 합창단, 루돌프 노리브(Rudolf NouReiev)가 이끄는 160명의 무용수 그리고 정부에서 임명받은 20명의 스타급, 콩쿠르를 거친 146명의 교향단원으로 구성된다.

이상의 기록들을 대강 참고하고 이 속에 들어가면 광장 앞 건물 입구에 있는 헨델, 바그너 등 일련의 거장들의 조각 표정 하나하나까지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이며 이리 휘어지고 저리 휘어진 건물 내 곡선들은 음악이나 물결을 느낄 만큼 유연함에 놀라게 된다. 도저히 대리석이나 광물성의 견고함이나 무게를 상상할 수 없다. 기둥, 벽, 천정, 발코니의 조각, 그림, 조명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이 구석구석이 예술의 극치일 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기능면에서도 특급 건축구조 같다.

입구의 대로같이 넓은 층층계가 양가로 갈라지면서 계속 굽이 굽이 오르게 되어있는 곳을 곱게 치장한 처녀들이 가고 있는 뒷모습이라도 보고 있으면 황홀경에 빠지기 일쑤다. 또 “Grand Foyer"이라고 불리는 어느 궁중무도장을 연상시키는 방은 지금도 국가 차원의 외교사절단 파티나 불란서 엘리트 양성을 위한 특수대학 및 학교 학생무도회(턱시도를 입는)를 위해서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도서관과 작은 박물관이 부속되어 있어서 1669년부터 공연된 모든 오페라작품의 악보들을 보관하고 있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프랑스인들의 예술 애정이나 운영에 더욱 신뢰를 느끼게 한다.

그들은 이런 보물을 가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싸게 지불했는가를 보게 된다. 매일매일 갈고닦으며,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 중의 하나는 공간 사용법에서도 볼 수 있다. 생업을 하는 장소, 휴식을 하는 장소가 따로 필요하듯이 우리들에게 문화공간이 꼭 필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과거에는 빠리 오페라극장 입장에는 반드시 정장한 남자와 롱드레스를 입은 여성에게만 허가되었다. 프랑스인들에게 있어서 오페라 출입은 음악과 춤을 감상하는 일면의 필요 이외에 아름다운 모습, 대화, 동작을 서로 보여주고 서로 보는 만남의 장소라는 뜻이 강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장미 한 다발을 안고 마음에 드는 한 여성에게 오페라 초대장을 들고 데이트를 신청하는 남자들의 출현이 과거 19세기 소설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도 흔한 일이고 보면 이 공간은 그들 선조들의 격조 높은 삶에 대한 배려 깊은 유산임에 틀림없다. 우리들도 이런 극장으로 어느 멋진 남성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초대를 한 번쯤 받아볼 기회가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웃고 있는데 일본 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들어오는 소리가 나의 감미로운 공상을 깨뜨리고 말았다.

흔히 외국인들은 까페 이름도 모르고 식당 이름도 모를 때는 약속 장소를 오페라극장 앞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저기 층층계에 서있는 사람들 중에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누구를 기다리는 표정들이 많이 보인다. 이 무대에서 대성공을 거둔 이태리무용가 따끌리오니 (Taglioni), 프랑스의 쇼비레(Yvette Chauvire), 가수 카루소(Caruso), 러시아의 샬리아삔느(Chaliapine),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들의 모습들을 상상하며 내 작은 숙소에 돌아와 프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의 콤팩트디스크를 오랫동안 들었다.


 

그랜드 로비 인 팔레 가르니에, 파리
그랜드 로비 인 팔레 가르니에, 파리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