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하모니, 독일
5월 1일과 12월 24일만 문을 닫고 연중 필하모니 방문이 가능하다는 것은 읽어서 알고 있다. 사진이나 책에서만 보아오던 그곳에서 명연주가들의 생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행복하기만 했다. 나의 체류기간은 해가 짧은 겨울이었고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라 온도시는 벌써 어둠이 짙게 묻어 있었다. 선명하지 않은 것 같은 물체들의 진열들이 이 고도의 풍경과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라틴계의 풍채가 크지 않은 불란서 사람들 틈에 익숙해 있던 나는 우선 독일인들의 큼직큼직한 모습에 또 다른 이국을 느껴야 했다.
호텔에 도착하자 다음날부터 시작할 관광일정을 짜고 예약이 필요한 것은 미리 표시해 두었다. 우선 시내 약도를 한 장 얻어서 방향감각을 익히고 꼭 가고 싶은 곳들은 대강 표시해 두었다. 베를린은 400만이 사는 대도시이지만 질서 정연하고 조용하고 깨끗하다는 것을 첫눈에 알 수 있었다. 축척되어 있는 문화적 냄새가 물씬 풍기며 많은 것이 아름다움으로 엮어졌다. 고색창연한 역사적 건물들, 수많은 교각, 나무들이 어울려 멋을 잔뜩 부리고 있었다.
베를린은 매해 가을에 있는 "Berliner Festwochen"라고 부르는 연극, 음악 페스티벌을 비롯한 질 높은 예술 문화 활동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있다. 수준급으로 들 수 있는 십여 개의 공연장들은 쉴 새 없이 예술 물들을 쏟아낸다. 그중에도 베를린 건축원의 원장으로 있었던 건축가 Hans Scharoun(1893~1972)에 의해서 설계된 필하모니아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대개 사람이 주거하는 생활공간이란 것이 균형을 잃거나 시나 그림처럼 불균형의 미를 추구하는 경우들은 드물다. 균형건축에만 익숙한 사람에게는 필하모니 홀의 외관을 보고 약간 의아하게 느끼며 당황하게 된다. 마치 거대한 텐트를 쳐놓은 것 같기도 하고 파도 같기도 한 그 모양에서 나는 어떤 음률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그곳 공연 표가 다 매진되어 살 수 없다고 해서 몹시 실망했다. 하는 수 없다. 이럴 경우 최후의 방편은 현장으로 빨리 가보는 수밖에 없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일행들이 쉬고 있는 틈을 타서 혼자 슬쩍 빠져나와 재빠르게 지하철,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쉽게 필 하모니아까지 갈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처럼 "표 한 장을 사렵니다.”라고 써 들고 입구에 서 있었다. 어떤 노신사가 내 옆에 와서 표를 팔겠다고 했다. 너무 고마워서 감격했다.
얼른 내 자리를 찾아 앉자마자 촌닭처럼 나는 두리번거리며 홀 안을 훑어보았다. 나는 음악회장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마치 큰 첼로나 콘트라베이스 같은 큰 현악기 속에 들어온 작은 난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외형도 범상치 않더니 실내는 더욱더 특이했다. 마치 독일이 언덕 중턱에 층층으로 질서 정연하게 잘 가꾸어 놓은 포도밭들 같았다. 넓은 테라스 모양인 관객석으로 사방 둘러싸인 거의 한가운데 있는 오케스트라석과 연주석은 처음 보는 나에게는 신기하기만 했다.
천정에서 늘어 뜨러 진 수많은 조명들은 현대적이면서도 게르만적 낭만의 분위기를 쏟아낸다. 모든 관객들은 서로 손짓하는 듯 마주 보도록 설계된 발코니에서 우정적, 민주적 화합분위기로 앉아 조용히 감상하게 되어 있다. 특히 꽤 길었던 휴식시간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2200명이 모이는 파티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거의 모두가 바깥으로 나와 서로 소개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대화를 즐기고 혹은 마시고 있었다.
과연 듣던 대로 세계 제일의 음악회장답다고 찬탄했다. 내가 거기를 찾았던 날은 세계적인 젊은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Katia와 Marielle LABEQUE 자매의 듀엣 연주였다. 두 대의 그랜드 피아노 앞에 나타난, 거의 남장을 한 이 두 미녀 자매에게 보내는 진지한 갈채는 곧 홀 안을 뜨겁게 달구고도 남았다. 그녀들은 이미 필립사에 의해 Brams, Gershwin, Bizet의 작품을 콤팩트 디스크로 내놓았기 때문에 내가 예전에 들어보았던 연주가들이라 더욱 친숙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훌륭한 연주공간에서 이렇게 수준 높은 청중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는 그녀들이 참으로 행복하게 보였다. 선진 유럽국 어느 음악회장에서나 늘 느끼는 바이지만, 한 도시의 클래식 음악회의 청중의 연령을 보면 그 도시의 문화적 수준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빠리, 런던, 로마, 베를린, 더블린 등의 중량감 있는 클래식 음악회장에는 언제나 청중의 연령이 높았다.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직업과 물질적으로 안정된 커플 청중들이 많은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은 많이 달라지고 수준 높은 외국악단, 오페라단이 오면 비싼 좌석을 차지하는 연령층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음악을 즐기는 여유 있는 성인 남녀들이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음악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는 심성이 나쁜 사람들이 적어질 것이 틀림없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순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는다.
그날따라 슈퍼스타인 우리의 카라얀의 멋진 지휘봉과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유감이다. 1882년 발족했고(현 필하모니의 전신은 20년 전부터 있었던 빌제 악단이 있었다) 국립 혹은 사립재단법인도 아닌 自生적 악단인 세계 최고의 “베를린 필하모니"는 연간 입장료 수입만도 수십억 원이라고 하니 (국가로부터 연간 보조 별도) 그 규모는 짐작할 만하다.
오케스트라를 오늘까지 키워온 지휘자들의 이름을 보면, 루투비히 브렌나, 한스 폰 뷜로, 레비, 바인가르트너, 리히아르트 슈트라우스, 아르투르 니키시, 푸르트벵글러, 그리고 카라얀이 1954년 11월 30일 자로 30여 세의 젊은 나이로 상임지휘자겸 예술감독이 되면서 지휘자의 제왕이라고 하는 20C 슈퍼스타가 되었다. 81세까지 세계를 누비며 1억 장의 레코드를 세상에 깔아놓고, 무대 위에서는 인기 여배우 이상으로 신경을 썼고, 자신이 허락한 사진, 모든 영상의 모습도 엄격한 조건 하에서 계약하고 그 값도 엄청나게 비쌌다고 하는 수많은 일화를 남긴 예술가다. 바로 이 필하모니 홀은 카라얀의 예술과 삶의 공간이며, 세계적인 사람을 끌어들인 장소이다.
그리고 특히 필하모니와 아웃을 하고 있는 몇몇 건축물들을 둘러보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1968년에 개관한 Mise Van der Rohe의 국립 화랑이 있고, 필하모니를 설계한 Hans Scharoun의 신 국립도서관, 1939년까지 세계평화를 위해서 외교관들이 기도를 올렸다는 St.-Mattaus 교회등이 있다. 필하모니아 건축양식을 보고 있으면 기까이 "Hans 쿼터"에 세워진 20세기 최고 건축가들의 작품들이 함께 떠 오른다. 브라질 수도를 설계한 Oscar Niemeyer, 핀란드의 Alvar Aalto, 바우하우스의 창시자인 Walter Gropius, 이태리의 Baldessari, 스웨덴의 Samuelson과 Janicke 같은 이런 거장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신구가 함께 건재하는 문화 예술도시에서 체류한 나의 시간들이 참으로 귀중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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