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노천 시장 풍경/ 바젤, 스위스
오늘 아침 뉴스는 수십 년 만에 닥치는 혹한이라고 했다. 바젤은 들를 때마다 번번이 시간이 없거나 너무 지쳤거나 덥거나 하여 그냥 지나쳐 버린 곳이 많다. 오늘도 눈이 온 뒤이고 날씨가 이만저만한 추위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내가 꼭 보고 싶은 것들이 있기에 가지고 온 옷을 있는 대로 다 끼어 입고 호텔을 나섰다.
내가 묵고 있는 유럽호텔이란 곳은 라인 강으로 나누어져 있는 '작은 시가지'에 속해 있었다. 5분쯤 걸어서 아름다운 라인교(Mittlere Rheinbrücke)를 지나서 '큰 시가지'로 들어섰다. 약도를 보니 평지이고 볼만한 것들이 모두 걸어서 다닐 만한 거리에 있어 주어 다행이었다.
바젤의 매력은 자동차로 10분만 동북쪽으로 가면 독일이 있고, 10분만 서북쪽으로 가면 프랑스가 있어서 아침은 스위스에서 점심은 독일에서 저녁은 프랑스에서 먹는 재미를 볼 수 있는 점에 있다. 서로 교류가 가능한 인간과 땅은 인간들의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 바젤은 라인 강에 배가 드나들 수 있어서 그들의 교역 발전에 큰 이점이 있었다고 한다.
대성당, 홀바인 분수, 동물원, 쌩 삐에르 교회당, 미술관... 이런 것들이 이 도시의 큰 가치로 평가되지만 구가(街) 심장부에 들어서면 참으로 흥미로운 곳이 한 군데 있다. 바로 시장터(Marktplatz)라고 불리는 곳이다. 인간이 사는 곳이면 어디나 시장이 들어서는 법이다. 시장은 인간 생활에 꼭 필요한 조건이다.
그런데 내가 유럽에 살기 전까지는 시장이 재미있는 곳이며, 즐겁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짜증스러운 곳이었다. 어떻게 하면 빨리, 싸게, 덜 피곤하게 필요한 것만 사가지고 올 것인가, 그 목적만이 중요했던 곳이었다. 차라리 시장에 나서려면 약간의 각오를 하고 나서는 편이었다고 할까.
그러나 유럽에 살면서 나는 시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로 백화점, 슈퍼마켓은 어느 나라를 가든지 비슷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노천 시장만은 다르다. 이방인이 어느 지역에 도착하여 그곳 사람들의 진풍경을 보고 싶으면 일반 서민들이 드나드는 시장에 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시민들이 애용하는 시장만은 허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곳은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 놓는 장소이다. 일류 백화점의 판매원들과 나누는 대화와는 다르다. 그들의 행동거지도 다르다. 아직 여유가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윤기 있는 리듬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유럽에 살 때 토요일이면, 으레 시장바구니를 들고 아침나절을 거기서 잘 보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바젤 시청 앞 광장에도 그 전형적인 유럽시장이 서지 않겠는가. 이 시장(Markplatz)은 구시가지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고, 특히 1516년에 지었다는 눈에 띄게 짙은 암적갈색 고딕 건물이 하나 앞 광장에 있는데, 바로 이 건물이 바젤 시청이다. 정면에는 장식이 화려한 종루가 있고, 안마당에는 17세기 벽화가 운치 있게 그려져 있으며, 이 도시의 창시자인 무나티우스 프란쿠스(Munatius Plancus)의 조상이 있다. 시의회실 내의 목각, 유리 장식은 모두 16세기 때 것이라는 데도 지금까지 아무 손상 없이 아름답게 보존되고 있는 데 놀랐다.
바젤은 바로 이 건물과 앞 시장터를 중심으로 매일매일이 엮어져 간다. 유럽에서는 관(官)의 중요한 광장에 (예를 들면 법원이나 시청 긴 물) 주 3회 오전 중, 혹은 6회 오전 중, 이런 식으로 시장이 서는 도시가 많다. 나는 이 발상이 아주 재미있다고 늘 생각해 왔다. 시청이라든지 법원 같은 곳은 동양인들에게는 아주 엄숙한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사람들의 표정도, 행동도 흐트러져서는 안 되고 차라리 굳어 있는 편이고, 권위 있어 보이는 검은 세단들이 미끄러져 들어가며, 유니폼 입은 아저씨들의 호각 부는 소리와 마이크 소리가 들리는 곳인가 하면, 확 트인 넓고 깨끗이 정돈된 광장은 보통 때는 별 쓸모없이 텅텅 비어 있다가 무슨 행사 때만은 국기를 든 군중들이 양 떼처럼 몰려드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반면에 시장(주로 야채, 과일, 꽃시장일 경우가 많음)을 시청 광장에 들어서게 하는 데에는 유럽인들의 사회 심리적 의미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시장이란 장소는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남녀노소, 종족의 차이 없이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곳이다. 여기 시장은 평화롭다. 서로 친절하다. 손수레 위의 몇 단의 야채를 팔면서도 여유 있게 물건을 판다.
처음 나에게 아주 이색적으로 보인 또 한 가지는 많은 남성들이 부인들과 혹은 애인과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 보는 장면이었는데, 참으로 보기 좋았다. 시장은 사랑하는 남녀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이용되는 셈이다. 같이 물건을 사면서 서로의 기호를 파악하고 여자의 물건을 들어주는 남성의 기사도적 매력을 발휘할 수도 있으며, 자연스러운 산책(?) 중에 여러 면에서 여성의 호감을 살 수 있는 기회들을 갖게 되는 셈이다. 거기다가 노천 시장에는 대개 한두 군데 꽃집이 반드시 있으니까 장미 몇 송이, 혹은 들국화 한 다발쯤 사서 연인이나 부인에게 바친다든지 하는 섬세한 행복의 실습 장소도 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대화와 제스처는 긴장에서 벗어나 있다. 운이 좋은 아침 시장에는 또 이런 풍경과 잘 어울리게 가끔 거리의 악사들이 흥을 돋우기도 한다. 또 한쪽에서는 거리의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서 판다. 이들 모두는 이미 아마추어 경지는 넘어섰다. 이런 시장의 채소들은 싱싱하고 싸다. 그런 곳에서는 동네 아주머니, 우편배달부, 아이들의 학교 선생..., 이런 낯익은 얼굴들을 만나게 되고 서로 웃으며 인사한다.
이런 시민들의 일상의 한 면이 시청 앞 광장에서 행해지도록 한 것은 기발한 착상이다. 시청과 시민은 바늘과 실의 관계인데, 이들이 의식적으로 같은 공간에 접하도록 해놓은 것은 민주의 첩경이다. 시청의 관리들이 매일 아침 시청 광장에서 시민의 생활을 보고, 느끼며, 같이 호흡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들에게는 시민이 추상적인, 혹은 숫자적인 대상이 될 수 없다.
시민 한 사람의 하루의 삶이 바로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구체적인 대상으로 시장이 남게 되는 한 모든 시정은 소홀히 다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양처럼 평화로운 시장터 사람들이 어느 때고 불의나 부당한 관리, 혹은 행정 앞에서 사자 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유럽 '시청'들은 역사를 통해 이미 깊이 배워 놓은 것 같다.
내가 사는 우리나라 시청 앞에도 주 1회 오전만이라도 풍요로운 채소, 과일, 꽃시장이 들어설 수는 없을까. 후진 곳에, 밀쳐져 있는, 숨겨져 있는 작은 시장이 당당하게 시청 앞 광장에 들어설 수는 없을까... 상상해 보면서 나는 바젤 시장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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