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의 본류 뮌헨에서, 독일
뮌헨으로 가는 기분이란 1930년대 격동기 속의 뉴욕으로 망명생활을 했던 레마르크나 토마스 만의 집과 요절한 노총각 카프카의 성체로 들어가는 듯했다. 오렌지, 올리브, 암산의 산들이 많은 라틴의 풍경이 이미 아니다. 위로 봐도 아래로 봐도 푸르다. 태양은 이제 드러내기를 꺼려하고 신비롭게 얼굴을 감추고 있다.
"어느 시대나 독일은 로마에 항의했다. 시저와 교황의 로마, 그리고 나폴레옹이라고 불렸던 최후의 황제에게. 1914년에 독일은 라틴적인 이상주의와 라틴적인 해체에 대해서도 반란을 이르켰다. 왜냐하면 게르마니즘이란 문화, 영혼이며 자유요, 예술이지 문명과 사회, 투표권과 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은 명확한 생각, 이성적, 율법적인 형식, 법전적, 응고된 덕(德)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리와 민족적인 천성, 의리감에 따라가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어떤 운명 앞에서는 순종하고 법학자들이 범죄들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그들의 영웅주의로 용서하는 비극적인 바탕 위에서 살고 있다."라고 제느뷔에브 비앙뀌 (Geneviève Bienquis)가 토마스 만을 위한 서문에서 쓴 말이다.
사실이다. 라틴계인과 게르만인은 서로 앙숙이면서 각자가 다 굉장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가장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다. 나에게는 게르마니즘이란 것은 말을 뱉어버리는 대신 말(語)을 머금고 있는 상태로 느껴진다. 베토벤의 월광(月光)도 아마 구름에 절반쯤 가리어졌다가 커튼이 쳐진 어느 창가로 스며 들어가는 그런 빛이었으리라.
게르만 사람들의 공간(空間)은 녹원 (緑園)이다. 습기가 축축한 토양에서 자란 영혼들이다. 그래서 나무도 싱싱하고 육체들도 건강하고 힘도 세고 크다. 풀이나 나무의 뿌리도 깊고 그들의 마음도 깊다. 때로는 그들의 우직성(愚直性)도 더 무거울 거다.
어느 날 독일어란 열쇠를 준비하지 않고 뮌헨에 도착했다. 그래서 나는 기가 꺾이기 시작했다. 호텔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 옆 작은 상에서 성경과 찬송가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놀랬다. 오래간만에 유럽에서 만나는 낯익은 책들이다. 역시 칼빈이 유럽 독일권에서는 성공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풀고도 금방 시내에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방 안에서 어쩔까 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성거리고 있었다. 같이 간 친구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호텔 카운터에 가서 영어 불어로 된 도시 약도와 설명서를 가지고 왔다. 읽어 놓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다른 도시에서처럼 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아마 무의식 적으로 믿는 데가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독일이라면 한국 사람이 꽤 많이 산다는 것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동창이나 아는 사람이 여기 살고 있지 않을까 하고 머릿속 컴퓨터가 찾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나를 만나면 반가워할 친구 하나가 있는데 주소를 잃어버렸다. 한국사람 한 사람쯤 만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심정이었다. 갑자기 기발한 착상이라도 한 것처럼 나는 책상 위에 얹힌 전화책을 뒤졌다. Lee 씨는 아일랜드 혈통의 서양 사람의 성이 많고 Kim 씨란을 훑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사람 아무개라고 부르는 사람인데 무엇을 좀 여쭈어 봐도 좋겠습니까. 혹씨 여기 살고 있는 ×××라는 분을 아시면 전화번호를 좀 알고 싶습니다.” “네, 잘 압니다. 그런데 그분은 방학을 이용해서 임시귀국을 하셨습니다. 처음 뮌헨에 오셨습니까. 제가 방학이라 바쁘지 않은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도와 드릴 수 있습니다." 이 것이 그날의 통화였다. 음성으로 보아 아주 점잖은 남자 어른 같았다. 다음날 오후 12시에 뮌헨 대학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바로 우리가 들은 호텔과는 아주 가까운 곳이었고 만나 뵈니 참 친절하고 자상하신 그곳 한국인 대학교수였다.
한나절을 재미있게 불편 없이 우리 일행은 뮌헨을 즐겼다. 참 아름다운 도시다. 올림픽타운도 갔었다. 유럽 좁은 고속도로에서 독일의 국력을 자랑하듯 달리던 BMW의 마천루가 바로 그 근처에 솟아 있었다. 이런 기능적이고 다이내믹하며 섬세성이 없는 데카당한 현대건물을 미국을 비롯해서 온 세계에서 만나게 되면 그로피우스(W, Gropi- us)나 마이어 (H, Meyer), 미즈반 데르로 (L, Mies van der Rohe) 같은 데싸우 (Dessau)의 바우하우스 (Bouhaus)의 현대 건축 거장들이 떠오른다.
어느 해 나는 미국 대륙 횡단을 하고 있었을 때 시카고의 미즈 반 데르로의 레이크 포인트 타워 (Lake Point Tower) 앞에서 그리고 그를 닮은 미국의 마천루들 앞에 설 때마다 이상하게 다시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생각하게 한다. 왜냐 하면 바우하우스 정신이란 예술과 도공의 사이를 좁힌 협동의 출발이며 자유의 이념과 사회주의적인 이상을 지향했던 것인데, 결국 꽃 피고 있는 곳은 물질이 눈에 보이게 안 보이게 사회 계층을 확실하게 하고 있는 대자본주의 국가 미국이란 곳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세상살이가 그러하듯이 꿈과 현실, 이론과 실제는 언제나 상반되기를 좋아하는가 보다. 독일은 현대와 고색창연함이 밉지 않게 적당하게 잘 어울려 있다.
과연 뮌헨은 10월 맥주의 축제가 벌어질만한 도시다. 프랑스 어느 도시에서나 물종지 만한 쪼끄만 잔에 탕약보다 더 시커먼 커피 한 잔씩을 앞에 놓고 낄낄거리고 종알종알하던 프랑스를 보다가 어디를 가나 뇨(床) 같은 맥주가 담긴 링거병 만한 컵을 놓고 마시는 품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갈증이 도망가는 것 같다. 서울 대형 한식점 비슷한 분위기에서 맥주와 돼지고기 요리로 유명하다는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먹고 있는 고기분량과 맥주 컵 크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음에 뮌헨에 들렸을 때는 옛날처럼 어리벙벙하게 굴지 않아도 되었다. 이번에는 독일과학 위력을 전시한다는 독일 박물관을 들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속에 있는 공예 전시들은 그들의 과학열과 두뇌를 아는데 충분했고 우리가 일상에 쓰는 현대식 모든 것의 할아버지들이 거기에 앉아 있음을 알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얼른 보기에 삼사 층높이나 되는 실이 왔다 갔다 하며 밥을 주며 지구의 회전 속도와의 관계를 이용하여 제작되었다고 하는 시계가 천정에 하나 붙어 있었다. 마치 "인간은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인 하나의 새끼줄이다"라고 자라투스트라가 말하여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을 시각적인 효과로 제공해 주듯이 그 긴 줄을 허공에 떨어뜨리고 있으면서 시간성이란 것을 대지에서 은퇴하기 전에 눈으로 좀 보고나 살아라는 듯 시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오후 나절 "영국식 공원"을 찾느라고 길을 물었다. 물론 불어도 영어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보고 독일어도 모르는 여자라고 하겠지만, 독일어는 못 알아들으니 미안하다고 인사를 끝냈는데도 칙칙하게 옆에 서서 내 걸음에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그제야 얼굴을 쳐다봤더니 약간 라면 머리에 갈색 얼굴인 터키인이었다. 가끔 독일에서 길 포장공사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면 이런 얼굴이 많다. 어느 나라를 가던지 사랑받지 못하고 경계를 당하는 집단이 있다.
영국의 인도인, 미국의 흑인, 캐나다의 프랑스인, 프랑스의 아랍인, 스위스의 이태리, 독일의 터키인들이다. 이들의 관계는 어떤 차원에서 해결되어 질지 모르지만 대개는 식민지 정책 이후에 파생된 후산물이다. 골치 아픈 후산물이다. 경계받는 쪽은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가난은 죄가 아니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가난만큼 죄와 부끄러움이 되고 있는 것이 드문 실정이니 이재(理財)에 밝은 배금주의자(拝金主義者)들은 이 함수 관계를 재빨리 터득한 똑똑한 사람들일까.
내가 간 공원 카페에는 모두가 청색 데이블과 청색 접는 철의자가 수백 개 놓여있었고 너 나 할 것 없이 소위 내 말로 "링거" 병을 하나씩 놓고 즐기고 있다. 이태리 말이 아름다울 때 오페라를 듣는 것 같다면 현대 독일어의 아름다움은 허스키로 부르는 노래를 듣는 것 같았다. 독일어가 전혀 밉지 않았다.
역시 공원에 나오니 노인들이 프랑스처럼 많이 눈에 띈다. 이것은 자유롭고 사회보장 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의 특징이다. 남들이 애써서 애 기르는 젊은 시간을 쓰고 있을 동안 스스로 만을 위해서 즐기는데, 혹은 일하는 데 다 쓰고 늙으면 밥을 먹여주고 집을 주고 병원 갈 수 있도록 하니 꼭 애를 양육할 필요가 있나, 심심하면 예쁜 개나 고양이 한 마리쯤 기르면 되지, 아니면 배 고프거나 땅 좁은 나라 아이 하나 양자 얻으면 된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막상 정치를 하는 독·프 두 행정부는 큰 걱정을 하고 있다. 노동력이 없는 늙은이만 많고 출생률은 저하되어 젊은이가 적으니 무작정 이민을 받을 수도 없다. 프랑스 경우는 과거 아랍 이민을 많이 받았으나 기하급수적으로 생산해 내는 아랍인의 인구번식이 이젠 겁도 나고 또 한때는 월남 피난민 캄보디아 피난민들이 막 쏟아져 왔으니 그들과도 같이 먹고살아야 하니 슬슬 이민의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며 독일은 저들의 우수성을 하늘 같이 믿는 터이라 피가 섞여 개종될까 봐 거의 이민을 안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이들은 이들대로 골치 아픈 문제들을 많이 안고 있는 것 같다.
독일어권에서는 어떤 기차를 타도 그들의 산천처럼 깨끗하다. 그런데 소위 대륙 국제열차를 타면서 이태리로 넘어가려고 이태리 기차를 타 본 사람은 같은 유럽에서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하고 의아해질 것이다. 독일권에서 이태리권으로 바꿔 타는 순간 명동 성당에서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더럽고 무질서하고 시끄럽다. 정이 떨어지지만 시간만 좀 흐르고 익숙해지면 "아, 이것이 인간 냄새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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