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뮈의 무덤, 루마랭 프랑스
모든 어린애들의 탄생의 장소가 어머니의 뱃속이었던 것처럼 무덤은 모든 인간의 마지막 고향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에는 언제나 많은 이야기와 이미지들로 가득 찬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인간 고향'에는 그리워지는 얼굴들이, 사건들이 있어 주지 않아 쓸쓸하고 슬프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그곳을 꼭 가야 하며 조상들의 묘를 정성껏 돌보는 습관이 있다. 그 행위는 내 외로울 무덤도 후손들이 잘 보살펴 주기를 바라는 무언의 교육이고 부탁이 되기도 한다.
이유야 어쨌든 우리는 선인의 묘를 찾는 일이 가끔 있고 그 시간만은 적어도 숙연한 마음가짐으로 이루어진다. 서양 무덤과 한국 무덤은 그 형태가 너무나 달라서 그곳을 드나드는 느낌도 다르다. 흙과 잔디로 덮인 둥근 모양의 한국의 것은 오랜 풍화 작용으로 시신이 자연으로 동화되기에 더 유리한 조건이라고 하면, 돌로 된 서양의 것은 그런 점이 불리하다.
나는 서양 공동묘지에 처음 들렀을 때 어떤 아름다운 공원에 간 느낌을 받았다. 꽃으로, 조각으로 하도 멋을 부리고 있어서 도저히 불길한 '사자(死者)들의 고향집'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가 무덤 앞에 베토벤이라든지 발레리라든지 이런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는 무덤 앞에서는 시간을 넉넉히 할애하고 주변을 서성거리며 무엇을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긴 유학 생활 동안 가끔 찾아갔던 곳이 까뮈의 무덤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내가 살았던 대학 도시 남불 엑스와 30킬로 미터 지점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전생애를 외듯이 훤히 잘 알고 있었고 많은 문학도들이 그를 아쉬워하고 좋아하듯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알제리 대학을 졸업한 까뮈는 빠리 문단에서 인정받고 노벨상을 수상한 뒤 그의 여름집을 바로 프로방스 지방의 몇몇 붉은 지붕들이 다정하게 이웃하고 있는 루마랭 (Lourmarin)이라고 불리는 조그만 마을에서 하나 샀다. 루마랭은 한마디로 현대 문화니 문명이니 하는 거창 한 것들이 거의 생략되어 있고 남프랑스 특유의 황금빛이 누렇게 쏟아지는 작디작은 마을이며, 크고 맛있는 버찌가 늦봄에 많이 열리는 곳이라 엑스나 마르세이유 도시 사람들이 주말에 자동차를 몰고 주변 풍경을 즐기러 가는 곳이기도 하다. 만일 까뮈가 인연을 맺으려 들지 알았다면 나 같은 외국인이 잘 알 리 없는 예쁜 종각이 달린 옛날 성당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 한적하기 그지없는 시골에 불과하다.
프로방스의 하늘빛과 바람, 나무들은 유난히 자연의 원형 같은 맛이 있어 유럽 사람들이 모두 가 보고 싶어하고 살고 싶어 하는 곳에 까뮈가 누워 있다. 특히 산기슭을 따라 차를 몰고 가면 꾸불꾸불한 길 가에 삐죽이 튀어나온 소나무와 바위들은 한국 풍경들과 너무 비슷하여 부산 시민들이라면 범어사(梵魚寺) 가는 길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런 풍경은 세잔느 화집에서 여러 번 선보이기도 한다. 이 동네에 들어서서 아무나 붙들고 까뮈의 묘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가르쳐 준다.
그의 별장에서 남으로 우아한 성 하나를 지나 2백 미터 거리에 동네묘지가 하나 있다. 들어서서 왼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석관들이 즐비하게 널렸고 널렸고 돌로 된 성경책, 사진, 십자가, 천사, 화병들이 놓인 무덤들이 모여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허름해 보이는 것이 하나 있다. 그 앞에 놓인 조그만 석판에 'Albert Camus'라는 이름이 빠졌다면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질 수 없는, 눈에 띄지 않는 종류의 것이다.
무덤에는 로마랭이란 작은 향나무들이 자욱이 야생초처럼 자라고 있고, 질그릇 화병 하나가 꽃도 없이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다. 어떻게 보면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전혀 프랑스적인 취향이 아닌 것 같기도 했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대단히 호감이 가는 그런 무덤이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어느 호젓한 산기슭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마을에 잠시 내려 쉬고 싶은 마음을 가진 자는 이 무덤 앞에 오는 것이 적당하다. 별로 볼 것 없는 수수한 이 장소에 오게 되면 까뮈가 왜 여기에 누워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고, 대문호인 그가 자기의 글을 한 줄도 읽을 줄 모르는 한 여인(문맹인 그의 어머니를 가리킴) 에게 그의 책을 바친다고 썼던 이유도 함께 생각해 볼 만한 좋은 장소가 된다.
살아 있을 때에 죽음은 닫힌 문이라고 그렇게 싫어했던 그가 말 한마디 없이 고분고분하게 영원한 잠을 감수하고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차라리 '저항 없는 인간 해방, 인간 승리로 가는 멋진 죽음을 준비하는 삶만이 가치다'라고 느껴지는 곳이다.
루마랭 그의 여름집 가는 길 이름은 '까뮈'라고 붙어 있다. 동네 입구 식당 주인은 까뮈가 살았을 때 자기 집에서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담소도 즐겼다고 자랑한다. 인간은 누구나 일상에서 크고 작은 화려하고 신나는 때가 한 번은 있는 법이다. 특히 공인(公人)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하는, 이름 값이 높은 사람은 가끔 한가롭게 휴가 때 자연인으로 사는 모습을 옆에서 보게 되면 더없이 멋있어 보인다.
그것은 바쁜 일정이란 규칙적인 궤도를 벗어 나는 행복감이 있기 때문이다. 규칙적인 삶이 더없이 훌륭한 것이지만, 이미 규칙의 노예 상태가 되어 버린 사람이 있다면 탈선의 묘미도 함께 익혀 두는 것이 유익하다. 그러면 삶의 유연한 리듬 속에 스스로를 잘 가눌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까뮈의 사상에는 번쩍거리며 차가운 지성이 버티고 있는가 하면, 허물허물한 인심이 동시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좋다. 균형은 틀림없이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삶에서 균형이 깨어질 때 고통스러워 하고 슬퍼한다. 죽음은 예행연습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 삶의 균형을 영원히 깨어 버리는 부조리(不條理)다. 그래서 무서워하고 분노한다. 충격을 받는다. 종교인들이나 철학인들은 탄생의 문제 보다 죽음의 필연성에 더 골똘히 관심을 갖는다.
'죽음의 집'이 사치스럽고 화려한 것은 일반적으로 생전에 기세등등히 권력과 부를 넘치도록 가진 자 들 이어서 유치한 세속 근성을 죽어서까지 여실히 보여주 는 것 같아 때로는 기분이 상할 때도 있지만, 후세인이 추앙하여 지은 비엔나의 모차르트의 허총(虛塚) 같은 것은 눈물겹도록 애정이 가는 묘지이다.
비록 비극적인 그의 말로로 뼈도 찾을 수 없는 대예술가였으나 그의 음악을, 생애를 생각하게 하는 모차르트의 상징적인 무덤 같은 것은 얼마나 의미 있고 아름다운가. 까뮈의 작품을 공부하면서 나는 그의 소박한 무덤을 가끔 생각했고, 또 한국에서 친구들이 오면 그곳에 데리고 가 주변을 돌고 온 적 이 여러 번 있다. 누가 보아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를 생각할 수 있는 푸른 로마랭의 향기가 맴도는 까뮈의 '영원의 집'은 그의 일생처럼 겸허하고 당당하며 정직하게 느껴져서 좋다.
2023.06.15 - [詩·에세이] - 까뮈 묘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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