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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지중해의 자연주의자들 (1)

by 이다인 2024.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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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자연주의자들 (1)


남불에 위치한 항만 뚜우롱, 르라방두, 이에르 (Toulon, Le Lavandou, Hyères)등 이런 곳에서 삼십 분 내지 한 시간 남짓하게 배로 미끄러져 가면 뽀끄롤 (Porquerolles), 뽀크로와,  러방, 그림 같은 섬 세 개가 가지런히 나타난다. 이미 이 섬에 여러 번 가 본 적이 있다. 뙤약볕이 내리던 여름날, 아프리카 토인처럼 화상을 입을 것 같은 모래 위를 맨발로 걸어 다닌 적이 있다.

겨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이미 막이 내렸을 섬(島) 뽀끄롤이 왠지 몹시 보고 싶었다. 헝커러진 실이 풀리지 않는 듯 세상살이를 피해서라든지 혹은 문학적인 성찰을 위해서라든가 하는 그런 어떤 의미를 주지 않고 내가 잘 알고 여름이면 허물없이 터놓고 사는 친구 집에 가듯이 곧잘 떠나는 지중해, 지중해의 겨울바다를 소유하고자 훌쩍 며칠 전에 떠나와 버렸다.

처음 이 섬에 도착했을 때 몇년 전 그 감회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멀고 긴 우회(迂廻)와 방랑에서 내 마음이 닻을 내리고 정착해 주어야 할 것 같은 친화력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었다. 아마 미술, 음악, 문학, 극장, 박물관, 대학, 수도 없는 문화적인 유산을 안고 있는 유럽의 마력에 끌려다니던 이방인인 내가 오랫동안 여기서 살다가 소위 문화의 냄새가 배제된 한 장소를 만나 오랜만에 재회하는 시골 어머니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곱게 자라고 있는 세 자매 같은 이 섬들과 사귀려며는 인내와 시간을 꽤 할애해야 할 각오로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자라면 날 것이라도 좋다는 남자, 남자에게 쉽게 취해버리는 여자 이런 성급한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이다. 땀을 흘리고 걸어서만 다녀야 한다. 다른 관광명소들처럼 마이크가 구비된 버스와 설명을 해주는 안내자가 있어서 따라다니기만 하면 풍물이, 역사가 눈에 들어오는 그런 문화적인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나는 길을 잃어 숲 속을 헤매다가 작은 짐승을 만나 깜짝 놀라기도 했고 물가에 포개져 있는 바위를 걷다가 발이 찍혀 피를 흘린 적도 있다. 어떤 때는 은빛 백사장에 드리워진 일몰의 찬연함에 넋을 잃었고 물속에서는 눈을 감고 배영하고 있으면 눈부신 하늘이 내려와 주기도 한다. 둥둥 떠내려 가도록 내버려 두면 피부에 스쳐가는 가벼운 물살로 관능적인 즐거움 같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 삶에 대한 새로운 그리움을 발견하기도 했던 곳이다.

지금 물새들이 보이지 않는 겨울바다 앞에 서 있다. 이윽고 파도가 몰려와 흰 이빨을 드러내 놓고 쏴쏴 울부짖으며 무엇을 삼킬 것 같은 공포를 던지고 갔다. 작고 예쁜 보트들은 부두에 매어 달린 채 멀미를 하듯 괴로워했다. 섬은 언제나 세계와는 유리된 듯하지만 우주의 법칙과는 예외 없이 늘 순종하고 정직하다.

섬은 늙은 대륙처럼 상습적이고 겉치례가 없다. 그리고 행동거지가 허둥지둥하는 사람에게만은 속속들이 드러내놓지 않으려고 한다. 겨울에 이 섬을 더 단순화시키면서 장려한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게 할 눈(雪)이 없는 것이 유감이다. 은세계 (銀世界)의 뽀끄롤을 한번 상상해 보는 것은 덧없는 환영(幻影)에 지나지 않지만 전혀 나쁘지는 않다. 만일 지금 흰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면 뽀끄롤은 그 화려했던 여름제에 역행하여 원초적인 장려한 풍경으로 남아 후조 인간들이 몰려들지 않는 겨울에 찾아오는 나그네에게 섬의 심오한 정신, 줄기찬 생명력을 여름보다 더 크게 돌려줄 것 같았다.

여름이면 잠시 잠시 와서 묵고 갔던 호텔 흘래 드 뽀스뜨 (Relais de poste)도 문이 잠겼다. 그뿐 아니라 주위의 카페도 일체 식당도 입을 다물고 있다. 참 이상한 침묵이었다. 자그마한 공지 (空地)가 있는 우체국 앞에 자주색 넝쿨 장미 같은 부겐베리아가 유난스럽게 온 호텔을 덮고 있었던 것이 하도 좋아서 선듯 발을 들여놓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댕그러니 병든 것 같은 줄기만 붙어 있다.
 
테라스에서 비취색 박하수를 빨며 거창한 젖무덤을 내놓았던 여자, 동양여자의 눈에는 짐승인지 사람인지 알송달송할 정도로 온몸에 털을 달고 다니던 남자도 떠나 버렸고 한국기술 고문으로 자주 서울을 드나든다는 쏘삐똥씨 초대를 받았던 여름 한나절, 선창가 웃음들도 가버렸다. 여름 사람들이 다 떠나버린 후라 허허로움과 적막함이 있긴 하지만 섬 중심부에서 삼십 분쯤 걸어 노송과 히이드, 도양금이 우거진 별장들을 끼고 가면 쁠라즈 다르장(은빛 해변)의 파도는 낯익은 목소리가 되어 마지막 믿음처럼 “기다림"이란 것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Porquerolles
Porquerolles

다음 날 아침 일찌기 나는 묵고 있던 집주인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노트르담 (해변 이름)과 꾸르따드 해변까지 돌아서 왔다. 길을 떠나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보면 어떤 도시에서는 자전거가 유난히 눈에 많이 뜨이는 곳이 있다. 나는 지방 풍수를 볼 수 있는 안목은 없지만 예를 들면 도시에 들어서자 말자 자전거가 많이 사용된다든가 물이 항상 흐르는 분수가 많다든가 하면 일단 그 도시는 대개 길게 늘어졌다든가 퍼지지 않고 둥근 편이며 개미 쳇바퀴 돌듯 몇 바퀴 돌고 나면 다시 쉽게 제자리에 올 수 있는 그런 도시이기 쉽다.
 
즉 달팽이형 도시랄까. 그러고 대개는 인심이 괜찮고 아름답다. 고유의 아름다움도 지녔다. 그것은 논리적이다. 산업사회의 중요했던 기계복제가 온 거리를 휩쓸고 있는 이 시대에 누구나 탈 수 있는 자전거가 완전히 포드, 피아트, 르노, 벤츠들에게 함락당하지 않은 길이라면 아직 인간 냄새가 버틸 줄 아는 땅이 아닐까 싶다.
 
“네덜란드는 꿈입니다. 낮엔 연기가 묻히고 밤엔 더욱 금빛을 띠는 황금과 연기의 꿈입니다. 그리고 그 꿈속에는 밤낮으로 이 사람들 같은 로앙그랭 (Lohengrin)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핸들의 높직한 검은 자전거를 타고 꿈꾸면서 달리는데 그 불길한 흑조 같은 자전거들은 바다둘레로 운하를 따라 국내를 쉴 사이 없이 돌고 있습니다. 그들은 구릿빛 구름 속에 머리를 박고 꿈꾸며 빙빙 돌아 다니며 안개의 금빛 향운속에서 몽유병자처럼 기도를 드립니다.” 세계 굴지의 상업도시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돈을 세고 주판알을 굴리면서 살지만 인간의 유일의 속성인 꿈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꾼다.

유럽의 “북베니스" 격인 암스테르담 거리를 아니 차라리 다리(橋)를 자전거를 세내어 그들처럼 돌아다닌 적이 있다. 안네프랑크 기념관속에 진열되여 있던 전 숙희 씨의 번역판인 한글을 거기서 만났던 감격, 식사시간은 멀었고 배는 출출하여 거리마다 눈에 뜨이는 감자튀김 장사 앞에 가서 한 봉지 사서 그들처럼 거리를 걸으면서 먹었던 일, 이것들은 모두 내 기억의 창고에 남어 있는 암스테르담과 나의 자전거이다

이 섬은 걸어만 다녀도 가장 먼 거리가 이십리 정도이니 매일 아침 걷기에는 아주 좋은 길이다. 대륙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너절한 일은 뒤로 물리고 군더더기 없는 맑은 영혼으로 천천히 걸어보라. 나무가 수액(樹夜)을 나르는 소리, 새들의 밀어, 바람의 몸짓들이 일상의 좌절이나 상처를 전혀 건드리지 않은채 하나하나 친화력으로 시사해 줄 것이다. 그러니 섬은 언제나 다 드러내 놓고 사는 생리를 가졌나 보다. 도시는 지붕으로, 벽으로 다 숨기기를 좋아하는데 섬은 이미 물 위에서 솟아 나와 스스로를 드러내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 같다. 섬은 드러내기 위해서 파도와 싸운다. 오랜 표류 (漂流) 끝에 지치고 지쳐서 지나가는 배들에게도 손짓한다. 숨기지 않는다.

숨기지 않는, 덮지 않는, 입지 않는 대목을 얘기할려면 어느 해 내가 본의 아니게 발을 들여놓게 된 H섬에 갔던 경험을 나는 지금 고백해야 된다. H섬은 불란서 전역에서 정부가 허가하는 80여 개의 나체 해변 중의 하나였다. 나체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아닌 내가 어떻게 해서 그곳에 당도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쑥스러우나 밝혀야 할 것임은 동양여자인 나에게는 스스로에게도 설명이 필요할 정도로 그런 노출(露出) 문화와는 거리가 멀고 멀기 때문이다.
 
어느 여름날, 수은주 기둥은 40도 가까이 오르고 바람 한점 없었던 염천아래 엑스에 있던 몇몇 되지 않던 한국 유학생들까지도 다 떠나버리고 나는 꼭 할 일이 좀 있어서 혼자 남아 있어야 했을 때였다. 갑자기 누가 초인종을 눌러 문을 열었더니 빠리에서 온 친구 엘렌과 도라가 싱글벙글 웃으며 장난기를 얼굴에 담고 있었다. 그들은 뽀끄롤 섬에 가는 길에 들른 것이며 지금 자동차 자리도 있고 호텔방도 예약되었으니 같이 가서 며칠 태우다가 오자는 것이었다.
 
뽀끄롤 섬이라면 언제나 나설 준비가 되어 있을 정도로 나는 그 아름다운 섬을 늘 사랑하고 있었다. 간단히 짐을 꾸려 두말없이 따라나섰다. 자동차 속에서 비로소 엘렌이 왜 전화도 없이 갑자기 빠리에서 들이닥쳤는지 그 이유도 알게 되었다. 도라는 불란서 여자치고는 몸집이 좀 크고 경쾌한 리듬으로 살고 있는 중견 건축가이다.
 
자기 손님 중의 한 사람이 H섬에 별장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가을에 전면적으로 증축, 수리를 의뢰 맡아 자기 직업상 꼭 거기를 가야 될 입장이었고, 엘렌은 원래 엑스 대학에서 학위를 마치고 간 지중해 사람인데 지난봄 갑자기 직장에서 승진되어 빠리 본사로 갔으나 남불의 햇볕이나 친구들이 그리울 때면 주말을 혹은 휴가를 받아 내 작은 아파트에서 며칠씩 같이 지내다 가는 친한 친구인데 도라로부터 뽀끄롤 동행(同行)을 제안받고 같이 나를 데리러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 시간 반 넉넉히 달려서 배를 타고 오후에 섬에 도착했다. 그런데 부두의 모습이나 풍경이 내가 잘 알고 있던 뽀끄롤의 것이 아니다. 이상한 일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흰 거품이 따라오는 뱃전의 소금 냄새, 엘렌과의 밀린 얘기들. 그런 감미로운 것 때문에 아무것에도 신경 빼앗기지 않고 도라가 안내하는 데로만 따라갔다. 그런데 내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다. 드디어 “도라, 어떻게 된 거야, 여기는 뽀끄롤이 아니잖아!"  "으응 그래 아니야, 호텔에 가서 천천히 설명할게."
 
너무 덥고 언덕길이 가팔라서 숨이 차고 해서 그냥 아무 말 않고 그녀 뒤를 따라갔다. 선창가에서 150미터쯤 올라가니 언덕 중턱에 소위 우리가 묵게 될 호텔이 나타났다. 이름이 호텔이지 방 열개쯤 있는 작은 숲 속에 묻힌 별장에 불과하다. 이 섬에는 육지의 호텔 격식을 갖춘 것은 거의 하나도 없었다.정오 뙤약볕이 세도를 부리는 오후 나절이라서 그런지 부두가를 제하고는 오는 도중에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호텔에 들어서서도 손님이 안내라고 쓰인 곳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려야만 겨우 주인이 나왔다. 예약된 방들 열쇠를 들고 나오는 주인, 청동색으로 구워진 남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고 옷 입은 우리보다 더 자연스럽게 짐을 들어주고 열쇠를 건네주고 돌아갔다. 당황하고 놀래버린 것은 그들 중에 나밖에 없었다.
 
방에 들어가서야 도라와 엘렌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에 바캉스를 꼭 너하고 같이 지내고 싶은데 너는 뽀끄롤을 너의 지상 천국만큼이나 사랑하니 여기를 거기로 이름을 잠깐 바꾸었을 뿐이야, 그리고 한국여인이란 전통적으로 버선, 속바지, 속치마, 처네까지 감추는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데 이 섬에서 처럼 벗고 벗어버리는 장소에 온다는 것을 네가 알게 되면 결코 나설 것 같지 않아서 본의 아닌 거짓말을 했으니 용서해 줘, 친구야"  이상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참 기가차는 일이였고 난처했지만 화를 낼 수도 욕을 할 수도 없고, 신경질을 부릴 수도 없어 소리 내어 차라리 한바탕 웃어버렸다.

호텔방은 바로 동남쪽으로 향하는 작은 창이 하나 있어 그 아래는 중천에 떠 있는 불볕 때문에 바다가 아니라 한 거대한 물고기가 등을 드러내 놓고 누워있는 것처럼 물은 은빛 비늘되어 깔려 있었고 돛배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듯이 움직이지 않는 채 떠 있었다. 이 정적(靜的)인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자기가 어디에 와 앉았는지도 잊어버린다. 이윽고 도라가 와서 바다로 내려가자고 했다. 수영복을 입고 약간 고통스럽게 따라나섰다. 그때가 오후 네시쯤 된 것 같았다. 모두 점심을 먹고 다시 물을 찾고 있을 때라 그런지 골목골목마다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옷을 입은 사람은 육지에서 도착하는 사람들이고 옷을 걸치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여기서 얼마의, 혹은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었다. 눈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나는 좀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르렀던 그곳은 큰 바위가 많이 있었고 바위 위에는 보통 해수욕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들끓는 것이 아니라 드믄드믄 일광욕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물속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옆에 누가 있는지 어떻게 벗었는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호기심 어린 시선을, 몸짓을 하는 사람은 하나 없다. 나 혼자 촌닭이다. 옷을 입은 촌닭이다.
 
이 섬의 규율이 적힌 팻말이 서 있었다. "물속에서는 그 아무도 수영복을 입을 권리가 없다. 그리고 사진촬영 금지" 수영복을 입고 물속에 뛰어들면 지키는 사람이 어디선가 나타나 반칙이라고 호각을 불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수영을 할 수 없는 자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바위 위에 누워서 엘렌과 도라가 용감하게 벗어젖히고 수영을 하는 동안 눈 위에 이따금 떠다니는 구름이나 쳐다보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때만큼 지루했고 엉거주춤했던 때는 없었다. 이 난처한 입장이 단순한 문화의 차이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라고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불란서 정부에서 합법적으로 해변을 나체인들에게 제공해 줄 때는 무엇인가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나체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았고, 바로 이것이 노천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여겨졌다. 그들은 옷 입은 모든 문화를 거부한 채 아담과 이브의 실낙원의 향수를 가진 자들인 것 같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문명, 문화세계의 때가 묻을 대로 묻은 늙은 대륙 사람들이지 동양인이나 흑인이나 중동인들이란 눈을 닦고 볼래도 없다. “수많은 나체들이 모여 있는 해변에는 아주 새로운 사회가 마련된다. 거기서는 아직까지 서로 해라를 하지 않는다. 베일에 가린 어떤 지역이 있는 것처럼 아직까지 어떤 형식이 있다. 하지만 벌거벗은 신사와 숙녀 사이에서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부인'  따위를 듣는 것은 사람을 놀라게 하기 시작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의사, 화가, 사창가의 단골손님들만이 저마다 자기 일 때문에 나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연인들도 어느 정도로 그걸 애용했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반드시 술을 정말 애호하고 잘 아는 사람은 아니다. 취기는 지식하고 아무 관계없다. 살아있는 상태의 그것은 매우 싫어한 엄숙한 사람들도 대리석의 나체는 찬양하였다. 모두가 국가도 재판도, 교육도, 종교도, 진지한 어떤 것도 진실이 눈에 뜨이게 되면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을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판관에겐, 사제에겐, 훈장에겐 옷을 입혀야 한다. 옷을 벗기면 추상적인 모습을 한 사람 속에 있어야 하는 완전하고 비인간적인 것이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체는 결국 정신에 두 가지 의미 작용만을 한다. 하나는 미(美)의 상징이고 또 하나는 외설이다." 이렇게 발레리드가론에서 나체를 미 아니면 외설이라고 규정했는데 지금 이 섬의 나체는 어느 것에 해당될까. 내가 보기에는 미(美)도 외설도 아닌 좀 더 진지한 삶의 의미가 저변에 깔려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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