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르쥬 뽕삐두 센터, 빠리 프랑스
걸어 다니는 것만큼 한 도시의 진상을 찾아내기에 좋은 방법은 없다. 발 닿는 대로 걸어 다니면 그 도시의 내면세계는 서서히 어떤 것을 통해서든지 외부로 그 정체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수백만 인구가 몰려 있는 큰 도시이기는 하나 빠리만은 어느 구역 에서든지 기분 좋게 산보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도시 전체의 지하 건설 개발로서 세계에 자랑하는 편리한 지하철과, 기능면에서 가장 우수한 하수구가 있으며, 지상 건물들은 미적(美的) 측면에서 타 도시의 추종을 불허한다.
빠리를 들르는 사람들에게 시간만 허락한다면 걸어서 다니라고 나는 항상 권한다. 빠리는 걸어 다녀야 한다. 남녀 한 쌍이 되어 여유 있게 걸어 다니면 더욱 낭만적인 거리들이다. 쎄느 강변의 젊은 연인들, 6-70을 살고도 젊은 연인들처럼 엷은 햇살을 받으면서 벤치에 앉아 다정하게 속삭이는 노인 커플들, 광장 주변, 가두 레스토랑, 까페의 테라스에서 사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 남녀들의 행복한 시간을 훔쳐보고 있으면, 파리에서만은 꼭 마음 맞는 남녀가 함께 있어야겠다 는 생각이 물씬 들게 된다. 파리는 유난히 혼자 있는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드는 도시다.
빠리만은 대도시이나 절대로 삭막하지 않다. 구석구석 영혼 같은 것이 깃들어 있다. 어느 구역을 가든지 특유의 개성이 있다. "훌륭한 조각가가 사람의 동체를 만들 때, 그가 나타내는 것 은 단지 근육만이 아니다. 그것에 생기를 주는 생명...생명 이상의 것, 그것은 바로 그것들의 형태를 이루고 그것들에게 의미를, 또는 힘을, 또는 황홀한 매력을, 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전달하는 힘입니다"라고 말했듯이, 빠리는 이런 의미에서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다.
그리고 모든 시대를 특정지울 수 있는 건축물이 어디에나 건재하면서도 도시 전체의 통일성 있는, 아름다움을 전혀 상실하지 않은 데에 그 특징이 있다. 가장 현대적인 감각을 갖춘 건축물 하나가 바로 빠리 시청에서 1킬로미터가량 북쪽에 있는 괴상한 건물로 소문난 죠르쥬 뽕삐두 센터(일명 보부르 센터라고도 함)이다.
이 건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약간 당황한 빛을 보이든지 아니면 충격적인 표정을 짓게 된다. 얼른 보면 미완성 건물이나 무슨 공장 같기도 하고 또 철근으로 엮어진 골격과 유리로 만든 내부 간막이, 원색 페인트 칠, 이런 것들은 인간의 오장육부가 해체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건물이 지어지기까지는, 1968년 빠리 구(舊) 중앙시장(Halles) 구역 재개발 계획을 거쳐, 1969년 전 대통령인 죠르쥬 뽕삐두의 착안으로 현대 예술 창작에 바쳐질 센터를 짓자는 계획이 결정되면서부터였다.
1977년 건축가 리샤르 로제와 랑죠 삐아노가 전위적인 테크닉으로 건물을 완성시켰다. 가로 166 미터와 세로 60미터에 높이 42미터나 되는 거대하고 괴상한 건물이 빠리 한가운데 들어 서자, 온 프랑스 국민들 간에 논란이 대단했다. “저렇게 보기 흉한 건물을 아름다운 빠리에 앉히다니..!"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빠리야말로 자유의 도시다. 중세 건물이 존재하는가 하면 미술이나 시에서만 시도했던 진짜 초현실주의 작품을 드디어 어려운 건축 분야에서 실현했으니, 이것은 예술의 승리이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완성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이젠 빠리의 또 하나의 새로운 명소로서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모든 빠리의 관광객 들은 거기를 간다. 그리고 세계 문화인들은 꼭 가 봐야 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그렇게 말썽 많던 공간이 제대로 잘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할 것이다. 한 줌의 공간도 놀리는 일 없이 이용되고 있는 데에서 '공간을 이용하는 프랑스 인의 치밀함과 천재성'이 드러 난다. 바로 이 공간은 빠리지엥들의 문화적 만남의 장소, 학교, 예술 행위의 실현 장소가 되고 있다.
책 · 슬라이드·녹음 테이프·비디오 테이프 등을 소유하고 있는 정보 서고, 음악과 음향 통합연구소, 시네마 테크(영화 필름 라이브러리), 국립 현대미술관...... 이런 중요한 시설들이 각 층마다 있다. 나의 개인적인 흥미는 3층과 4층이었다. 세계대전 이후 20세기 초기 작가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고, 특히 모딜리아니가 있어서 나는 좋아했다. 피카소, 브라끄의 세계와 칸딘스키와 샤갈이 빠질 수 없다는 듯이 버티고 있으며, 현대 미술의 구색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어서 누구나 구미가 당기는 곳이다.
진품을 공부하러 오는 세계 화가들의 발길이 그칠 날이 없다. 인간 해방에 대한 '반항'과 인간 무의식 세계의 도전인 '꿈'을 향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이상을 이해한다면, 이 건물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쉽게 이해될 것 같다. 이 건물을 사랑하는 데에는 많은 지식과 예술에 대한 조예가 필요 할 것 같다. 적어도 이 건물의 특수한 기능은 흥미롭다. 이 건물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창의력에 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나의 한 친한 서양 친구는 세계 여러 나라를 알고 있고 한국에도 자주 왔기 때문에 우리 문화에 대해 여러 가지 꽤 깊게 알고 있다. 그는 부처가 왜 아시아 어느 곳에서나 꼭 같은 표정을 하고 있고, 수백 년 동안 그 많은 조각가들은 왜 꼭 같은 부처를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일본 부처 나, 태국, 한국, 중국 부처들이 거의 비슷한 것 같다. 반면에 서양에서의 예수의 이미지는 확실히 예수 조각이나 그림에서 다른 표정, 다른 의상, 다른 시선... 확실히 예술가들의 개성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그러면 동양 예술가들의 창의력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개성이 없다는 얘길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 보면서 이 건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엇인가 많은 대답을 해주는 것 같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한번쯤 이곳을 어슬렁어슬렁 들렀다가 바로 옆에 있는 포롬 데 알(Forum des Halles)에 있는 조상들을 지나서 프낙(책 슈퍼마켓)에 들러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마냥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프랑스 어느 도시에나 있는 거리 이름인 레쀠블릭 (Republique)가(街)에 가기 전, 뽀르뜨 푸엥이나 씨몽 같은 좁은 길을 따라가면 빠리 기능공들이 좁은 아뜰리에에서 열심히 만들어 내는 값싼 목걸이 · 팔찌·벨트... 이런 액세서리 도매, 소매상들이 즐비하게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샹젤리제나 호화판 쇼 윈도와는 또 다른 빠리의 숨결이나 그것은 그것대로 언제나 정답고 사랑스럽다. 이 거리의 일반 기능공들의 손길마저도 유난히 나에게는 뽕삐두 센터의 피카소의 손길만큼 귀하게 느껴짐은 웬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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