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뉴욕, 런던
런던만 하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비하면 북쪽 나라이다. 수십 년에 걸친 학교생활에서 배운 영국에 대한 지식을 실제로 내 눈으로 보고 내 몸으로 느낀다는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며 내가 바라던 기회이다. 도버 해협을 건너자 곧 기차로 런던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누구와 더불어가 아니라 혼자만의 자유로운 여행이다.
역 근처에서 아침 식사 할만한 곳에 아무 데나 들어가서 그들 방식대로 아침을 먹고, 오고 가는 사람들을 멍청하게 바라다보며 피곤해서 좀 쉬고 있었다. 웬일인지 일자리를 찾아서 무작정 상경(上京)한 여자 같은 처량함이 들었다. 창가로 쓱쓱 지나가는 이상하게 생긴 차들이 자주 보인다. 알고 봤더니 택시였다.
그리고 지저분하고 짙은 적벽돌 건물이 보였다. 지나가는 남자들은 대부분 키가 크고 정중하다. 나무랄 데 없지만 얼른 정이 들 것 같지는 않았다. 지하철은 천식 환자처럼 씩씩거리는 소리를 내고 말쑥하고 상냥한 맛이 전혀 없다. 뉴욕 지하철이 너무 지저분했던 생각이 떠 올랐다. 두더지처럼 지하로 다닐 곳이 못 된다. 정이 가지 않아서인지 다시 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버스와 택시를 주로 타고 다녔는데 택시도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블랙 캡 오스틴 택시이다.
운전수와 손님 사이에 칸막이가 엄격히 있고 모양도 옛 유물 같았고 시커먼 색깔에 국화꽃들만 얹어 놓으면 죽음을 나르는 영구차 같다는 생각이 들어 별로였다. 런던의 교통수단 중에 나는 빨간 버스가 그래도 마음이 내켰다. 이층으로 되어 있어서 올라가야 할지 내려가야 할지 얼떨떨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런던에서는 버스가 좋은 것 같았다. 그런데 꽤 비싼 편이다. 나중에는 주로 지도를 들고 걸어 다녔다. 그런데 너무 넓다. 유럽 제일의 큰 도시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숙소를 정하고 하루 밤을 푹 쉬고 도시탐색에 나섰다. 참으로 넓다. 흔히 영어를 쓰는 인도나 과거 식민국가 같은 나라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이 지루하고 혹은 가혹한 인습에, 가난에 시달리기라도 하면 막노동 일이라도 얻고자 하여 런던으로 향하던 소설이나 영화의 작중 인물이 많을 듯하다.
햇빛이 서쪽 하늘에 엷게 드리워진 오후에 대영 박물관 넓은 전시장들을 서성거리다가 터너 (Turner)가 그린 안갯속에 아물거리는 배가 그려진 엽서하나를 사서 그림과 건축을 공부하는 동생에게 부쳤다. 세계 굴지의 박물관에 가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특히 루브르, 대영 박물관, 푸라도 같은 것은 식민지에서 실어다 나른 것들이 너무 많이 눈에 띄어 나쁜 것들하고 노비문서가 왔다 갔다 하던 시대의 수탈당하던 자들의 서러운 마음을 불러봤다.
이곳 수많은 미라의 컬렉션은 가관이었다. 채광창 밑에서 부서져 내리는 각종의 빛이 작품에 와닿아 영혼 같은 것을 불어넣고 있다. 국립 화랑 (National gallery)에서 세잔느의 검은 성 (Chateau noir)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고도(孤島)에서 고향친구를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웠다. 세잔느는 말년에 이 성(城)과 주위의 자연을 부둥켜안고 마지막 예술의 세월을 보냈다. "검은 성"이란 제목이 붙은 그림이 여러 개 있으며 나는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도 같은 크기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이 작은 성은 이름이 성이지 넓고 큰 언덕바지에 숲으로 자욱한 폐원에 서 있는 어설프기 그지없는 삼층건물에 불과하다.
남불 엑스시에 있는 세잔느 아틀리에에 비해서 세상과는 정말 외진 곳이다. 성 빅뚜와르 암산을 그리기에는 명당자리임에 틀림없다. 집 뒤를 돌아서 돌층층계를 몇 개 올라가면 세잔느의 흉상이 하나 있고 바로 그 이름이 새겨진 아뜰리에가 나타난다. 그 아틀리에는 젊은 미국화가 모리스라는 사람이 세잔느와 꼭 같은 풍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었다. 이 성은 엑스의 부호요 그림 애호가인 떼쎄에 라는 주인이 열다섯 개의 아틀리에 (전부 건평 150평 정도)를 전부 젊은 화가들에게만 아주 싼 값으로 빌려주는 일종의 문화 사업의 장소가 되었다.
오래전 미술 공부하러 유학 왔다가 그 나라가 공산화된 이후 가족들이 모두 참형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로지 그림에만 정열을 쏟고 몰두하며 천애고아의 고독을 달래던 캄보디아 청년 화가, 내가 잘 아는 찬도 거기에 아틀리에를 가지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엑스 근교에 똘로네라는 아주 아늑하고 아름다운 동네가 있어 바로 나의 중요한 산책길이기도 한 곳이다.
그래서 한 순간 런던 갤러리 속에서 나무들이 무성하고 바위들이 고여 있는 프로방스 특유의 남향 바른 그 집을 보면서 땡과 로리에, 라방드 향기가 그림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느껴야 했다. 찬의 고독과 아픔을 잘 아는 나는 그가 어려운 고학 끝에 미대(美大)를 졸업하고 첫 그림이 팔려가던 날 나도 모르게 더운 눈물 이 확 솟아올라 글썽거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독일, 스웨덴, 프랑스 여러 도시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림으로 생활을 하고 있어 여간 보기 좋지 않다.
미술관을 빠져나오자 사원(寺院)과 탑들을 둘러보았으나 역시 런던은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던 하이드, 그린, 성 제임스니 리이전트니 하는 공원들이 마음에 들었다. 최고다. 특히 하이드 공원의 연설코너를 둘러본 다음에는 영국 정치가 성채와 상류사회의 구성원으로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슴을 토할 수 있는 시민의 광장이 뒷 받침되어 있는 것을 쉽게 보게 된다. 시민이 말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놓고 있는 현명한 영국인은 옛날 그리스 로마의 웅변의 광장을 가치로 인정하고 시민이 논쟁하며 성숙할 수 있는 사회공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연못에서 뱃놀이하는 젊은이들, 잔디 위에 뜨개질하는 노인, 여기저기서 일광욕을 하는 사람, 시내 한가운데 있는 공원이라도 전혀 혼잡하지도 않고 평화로웠다.
런던의 동맥 격인 옥스퍼드 스트리트 (Oxford Street)와 피카디리 (Piccadilly)를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면서 가게, 동상, 술집, 사람을 눈으로 쫒았다. 특히 하이드 공원에서 피카디리를 가노라면 나 같은 뜨내기 외국인들의 무리를 수 없이 만나게 되고 저마다 호기심을 가지고 런던을 공부하고 있는 거리에 나선 학생들 격이라고 할까. 그 어느 책에서 보다 세기 초 런던시가지의 풍경이 구석구석 잘 묘사되어 있었던 "델러웨이" 부인 이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이 생각났다. 국회의원 부인이 된 클러리서 델러웨이가 남편이 구축해 가는 영국 상류사회 인사들을 모아 저녁에 있을 파티를 위해 손수 꽃을 사러 나가던 날 바로 그 거리를 나는 할 일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 그녀를 묘사할 때 여러 번 반복되는 '똑 바른'이란 형용사가 있는데 영국 귀부인답게 꼿꼿한 자세로 걸었다고 그러져 있다. 곧은 자세에 대해서 운운하려면 우리는 붉은 선을 친 검은 바지와 붉은 윗도리에 박 바가지보다 더 큰 검은 털모자를 쓴 버킹검이나 윈저궁의 궁전근위대를 먼저 얘기함이 옳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사람을 저렇게 훈련시키고 옛 전통을 이어 나가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본드가에 들어선 나는 문득 외로운 생각이 들었다. 바로 화려한 군중 속에 도사리고 있었던 고독의 얼굴이다. 그리고 빅 벤은 시간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울리고 있었다. 쥬네브의 자랑인 유명한 꽃시계 앞에서는 전혀 느낄수 없었던 시간의 엄숙함 같은 것이 런던 시계탑 앞에 서 엄습해 옴은 웬일일까, 나는 순간적으로 시간에 칭칭 감겨 있는 것을 느꼈다. 즉 유한(有限)된 존재이란 것을 느꼈다. 시간을 벗어난다는 것은 우주의 질서를 벗어난다는 것이기에 그것은 육체적인 생명감을 잃는다는 말이겠다. 불귀의 순간순간 이란 것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인생이 초조해진다. 그리고 머릿속이 어지러워진다. 시간 자체 가치관에 대해서도 혼란이 일어난다.
내가 경험한 많은 용기와 인내, 노력과 극기(克己)가 과연 우리 인생살이에 무엇을 가져다주며 무슨 큰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의문이 잔잔한 파도처럼 일어날 때 이미 수많은 시간을 살아 세상살이에 훤한 도사가 된 빅 벤이 "너희 인간들의 고뇌는 네가 인간이고자 하는 한 피할 수 없는 것을 나는 알고 있노라"하면서 꿰뚫어 보듯이 더 커져서 곰처럼 굼실굼실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난쟁이처럼 왜소 해져서 비실비실 도망가고 있는 듯했다.
공원, 박물관, 대학, 셰익스피어 이런 것을 빼놓으면 그 아무도 영국을 상상할 수 없으리라. 그것은 마치 문자를 빼고 문화를 생각하라는 것과 같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와 8년 연상인 그의 부인 앤 집을 둘러보는 것은 나의 즐거운 숙제였다. 셰익스피어 생가는 런던 서북향 버밍엄 방향으로 스트레이트포드 어픈 에이본 (Stratford- upon-Avon)에 위치하고 있다. 그 동네에 들어서면 누구에게 물어도 그 위치를 정확하게 가르쳐준다. 길을 찾을 때는 언제나 그 동네 오래 살았을 법한 장바구니를 든 할머니에게 물으면 대개는 틀림없다.
내가 갔을 때는 세계에서 몰려온 "문화인"들이 입구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몇 백년 전 두 집다 그 시대의 중류사회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지만 소박한 품위가 있어 보이고 굴뚝을 빼고는 거의 목조로 된 집이었다. 이층 방으로 올라가자면 가끔 삐꺽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침대며 의자, 가구들이 그대로 다 잘 보관되어 있었고 나무로 이루어진 이 가옥(家屋) 내부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정감 (情感)은 글 읽기를 좋아하시던 나의 자애로우시던 외할머님이 안전하게 한복을 여미시고 거기 의자 위에 앉아 시 (詩)를 구상하고 계서도 썩 잘 어울릴 것 같고 동화 속 램프 같은 빛이 흘러들어오는 우리의 천재가 태어났다는 그 방에서 우리 할아버지가 먹을 갈고 계셔도 좋을 법한 누구에게나 무리 없는 그런 방들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동양인인 나는 목조(木造)의 체질인가 싶다. 사실 나무에 대한 테마라면 동양뿐만 아니라 선사 시대 때부터 이미 전 인류의 최초의 신앙의 하나이기도 했다. 남미(南美)의 마야인들은 아직도 나무를 생활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늘과 땅(즉 신과 인간)의 가교(架橋)로 믿고 있으며 우주 만물의 중심이 나무라고 믿고 그 앞에서 제전을, 향연(饗宴)을 벌이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나무는 생명이요 신앙이다. 하기야 나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언제나 나무는 아름다움이요 진실이요 착함이요 자유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특히 앤 생가 지붕에는 넝쿨 박과 빨간 고추만 널려 있으면 영락없이 한국 어느 시골 지붕이다. 그 뒷 뜰에 널린 울긋불긋한 화초들은 눈치 볼 필요 없는 들에서처럼 싱그럽게 노래하고 있었다. 있으나마나한 낮은 울타리를 넘나드는 범나비는 그때 셰익스피어 집에서라도 보낸 전령(傳令)이었을까. 천재는 살아 숨 쉬고 있는 지상인(地上人) 보다 더 생생한 음성으로 "한여름밤의 꿈" "리어왕" "햄릿"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사랑받는 얘기꾼으로 남아줄 것이다.
후속 글/ 2024.05.16 - [유럽] - 런던 문화 산책, 영국 ( 2 ) (feat. 대학도시 옥스퍼드와 켐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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