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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마르세이유 항구, 프랑스

by 이다인 2024.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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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이유 항구, 프랑스

 

대학을 졸업하던 그 해 한 달 동안 배를 타고 난생 처음으로 유럽 땅에 발을 디딘 곳이 마르세이유 항구다. 그때 내 시야에 들어왔던 풍경들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나는 미지의 망망대해를 향하고자 하는 정열과 호기심을 잠재우지 못해 프랑스로 가는 방편으로 비행기를 타지 않고 선박을 선택했다.

 

인도양을 건널 때 무서웠던 폭풍우와 산더미 같은 파도가 몰아칠 때 배 한구석에서 공포에 떨며 기도를 했던 생각이 난다. 아마 나는 그때 시인적인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다. 항구는 지금도 공항보다 더 큰 매력이다. 항구는 출발과 이별이 있고 눈물과 기쁨이 있어 인간들의 삶이 우리들 피부에 아주 쉽게 와닿는 공간이다.

 

 

구항에서 바라본 마르세이유
구항에서 바라본 마르세이유

 

 

이프 성

마르세이유가 유럽의 다른 중요한 항구들보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그 역사·규모·기능의 중요성도 있지만, 계란 노른자 같은 지중해 연변이라는 온화한 기후와 지리적 조건과 유명한 작가들의 관심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르 뒤마<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이프 성>이 있는 작은 섬이 있는 곳이고, 마르셀 빠뇰의 작품의 땅이며, 많은 작가들이 아프리카나 소아시아 같은 곳으로 여행을 할 때 발을 디뎠던 곳이다.


이 항구에 도착한 사람은 영국 신사의 걸음걸이나 언어를 쓰지 않아도 되고 빠리지앵의 옷매무새를 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을 움츠리지 말고 사방으로 열어 버리고 시선이나 관심은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자기 좋을 대로 해도 무방하다. 말은 속삭이듯 작은 소리보다 오히려 좀 큰 소리로 몸짓을 해 가면서 하는 것이 이 장소에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낙천적인 라틴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다.

항구로 발달된 대도시의 성격에는 거의 비슷한 점들이 있다. 거리나 사람들이 우아하지 못하다든지 범죄가 수시로 일어난다든지, 외국인들이 들끓어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가 없고 언제나 들떠 있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 도시에 도착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지나야 하는 동맥로 깐느 비에르(La Canebiére)는 취향 있는 사람에게는 매력 없는 거리다. 수백 척의 예쁘고 작은 요트, 유람선, 초계정들이 마치 호수에 띄워 놓은 종이배처럼 평화롭게 저마다 뽐내며 사랑받고 떠 있는 구항(Vieux port)이 동맥로 서쪽 끝에 있어 주어 다행히 마르세이유의 매력을 유지한다.

 

 

구항 생선장수들

물과 하늘의 구별이 어려운 푸른 지중해가 문득 그리워지는 날이면 유학 시절 나는 구항에서 출발되는 J. F. 케네디 해변 도를 따라 마치 어느 영화의 장면처럼 차를 몰고 가끔 산책을 해보았다. 또 어느 한가한 일요일 새벽에는 마르세이유식 자갈치 시장에 가서 펄펄 뛰는 생선을 친구들과 한 바구니 사서 생선 요리를 해 먹고 즐겼던 기억도 있다. 그런 날은 대개 유학 생활의 단조로움에 못 견디어 책도 타이프 라이터도 덮어 버리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생활의 궤도를 벗어나는 탈선을 시도해 보고 싶은 욕망이 슬며시 일어날 때다.


구항 부둣가의 그런 시장에 가면 유명한 빠뇰의 <마리우스〉라는 희곡의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 생선 장수의 딸과 뱃사람들이 드나드는 카페 주인 아들의 청춘의 고뇌, 돈과 사랑, 바다와 사랑의 갈등, 청순한 사랑을 매수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돈 많은 영감, 이런 얼굴들을 생각해 본다. 그러면 유난히 마르세이유의 허물허물하고 소박한 부둣가의 인정들을 그렸던 빠뇰의 세계가 그 푸른 바다 위에 파도처럼 밀려갔다가 다시 밀려오는 것 같다.

부야베스

여름밤에 구항을 산책하고 있으면 짝을 지은 남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는 흐뭇한 풍경을 쉽게 보게 된다. 구항뒷골목 광장 식당가에는 초저녁부터 악사들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손님들은 노천 테이블에서 부야베스 (마르세이유 특유의 생선 요리)를 즐기고 있다. 인간들의 식생활에는 ‘필요의 단계’ ‘행복의 단계’라는 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경우는 장소와 때·동반자 같은 것과는 무관하며 배만 채우면 되지만, 행복의 차원이란 분위기·장소·식탁 매너·대화의 질... 등등이 요구된다.


이 노천 식당에 모여 앉은 회식자들은 행복의 단계에서 미식하고 있다. 그들의 대화의 색깔은 거의 핑크빛이고 그들의 음성은 거의 음악적이다. 어느 날 나도 훌쩍 찾아온 서울의 한 친구와 그곳에서 고추장만 풀면 생선찌개 같은 부야베스를 시켰다. 우리도 그들 틈에 끼어 포도주 잔을 부딪치며 행복한 재회에 대한 한여름 밤의 자축을 벌인 적이 있다. 이 행복한 장소에서 귀가하려면 나는 언제나 이민객들이 운집해 사는 아랍 구역인 쌩 샤를르 역을 지날 것이 걱정이었는데, 그날은 서울서 온 친구의 보호를 받고 있어서 이 동네를 지나면서도 마음 웅크리지 않고 보란 듯이 즐거운 귀로를 가졌다.

이 구역은 마르세이유의 가난, 더러움, 범죄의 얼굴이다. 18세기 초엽 시리아에서 올라온 선박의 귀착으로 발생된 전염병 페스트의 불행한 하선이 2년 동안 10만의 생명을 앗아갔다. 환자로 초만원이 된 병원들의 소동, 이웃과 가정으로부터 버림받은 환자들이 거리거리마다 시체로 쌓여 갔던 생지옥의 진통을 겪었던 이 도시는 그 후 모든 프랑스 인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곳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백수십만이라는 명실공히 프랑스 제2의 도시이나 음악, 미술, 예술 전반에 걸친 문화가 부재하다고 할 정도로 미흡한 도시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아랍의 이민층에게는 이 도시가 꼭 필요하다. 태양이 있고, 막노동의 일자리가 있으며, 아프리카 산 열대 과일이나 아몬드·올리브·호두·향료들을 취급하는 교역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들 동족의 대집단이 몰려 살기 때문에 꼭 프랑스를, 프랑스문화를 몰라도 살 수 있는 이점이 있는 도시다.

프랑스 가족이 단출한 데 비해 아랍 인들은 가족이 많은 것이 아주대조적이다. 10 명의 아이를 낳은 여자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4,5명 정도는 보통이며, 한 남자가 두서너 명의 여자를 거느리는 돈 많은 남자가 있는가 하면, 가난한 남자는 일생 동안 한 여자를 얻는 것도 어렵다고 하니 문제라고 한다. 아직도 그들에게는 여자는 물건처럼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런 것을 아는 나는 머리가 곱실곱실 하고 골격이 멋지고 거무스름한 가난한 젊은 아랍 청년을 보게 되면, 정욕을 억누르고 자학하며 아름다운 여자를 차지해 보지 못하는 그들의 열등감과 불행이 상상된다.

그래서 쌩 샤를르 근처 여자를 데리고 오지 못한 이민 온 남자들이 일요일 같은 날, 거리나 허름한 카페에 쏟아져 나와 무엇인가 갈망하는 눈빛으로 지나가는 여자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불쌍한 남자들이 가장 많은 곳이 마르세이유다. 그러니 그런 울분과 불평등의 저항은 자연히 범죄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각종 보험료만 하더라도 마르세이유가 가장 비싼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하느님은 공평하게도 이런 못 가진 자의 우울한 마음도 씻어 줄 수 있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화려한 바다를 선물로 남기셨다.

 


 

 

깐느비에르
깐느비에르

 

 

Vieux Port (구항)
Vieux Port (구항)

 

 

쌩 샤를르 역
쌩 샤를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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