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즈(Eze) 빌리지, 프랑스
코로나 팬데믹이 창궐하면서부터 지난 일 년 반 동안 거의 나는 방콕상태로 살았다. 몸도 마음도 허약해졌고 알게 모르게 우리들 삶에 많은 변화가 온 것은 나만이겠는가. 특히 노인들 감염우려가 높다고 파리(Paris)에 사는 아이들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초기에는 한국 정부의 방역 상태가 우수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한국 마스크가 제일 안전하다고 국제우편으로 주문해 주기도 했다.
우리 들은 옷과 소지품들을 자주 빨고 닦고 씻고 햇볕에 말리고 집안 청소, 삼시 챙겨 먹는 일로 하루하루 보내면서 매우 단조로운 일상에 익숙해져 버렸다. 특히 작년에는 유럽 여러 국가들의 병균 확진자 수가 아주 높을 때라 한국에 비해 거의 모든 외출이 금지되고 철저히 규제되고 있었다. 거리에는 행인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경찰들이 거리마다 구역마다 온종일 지키고 있었다. 혹시 병원, 식료품 구입을 위한 허가된 외출은 국가에서 발행된 서류에 외출기간 <약 1시간>을 적어 싸인 된 종이를 제시해야만 했고 만일 그런 서류를 불참했을 경우 누구를 막론하고 비싼 벌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확진자 수치를 비교하면 한국보다 비교가 안 될 만큼 위험한데 지난 5월 깐느 국제 영화제를 시작으로 지방별로 시간대를 두고 규제를 슬슬 풀기 시작하더니 공공장소 출입에만 마스크작용을 요구하고 거리의 많은 군중들은 거의 마스크 끼지 않는 상태로 활보하고 다닌다. 특히 칠팔월에 몰려든 외국 관광객들의 두둑한 주머니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지중해 해안 도시들은 거의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정상적인 일상이 재현되고 있다.
특히 칠팔월 서너 번 개최되는 유명한 깐느 해변 국제 불꽃놀이와 야외 시니어 댄스파티가 정상적으로 열리는 것을 보고 나는 많이 놀랐다. 그동안 뭉쳤던 스트레스 풀기 대회라도 하는 것처럼 온시민 수천 명이 칠흑 같은 하늘 아래 모래사장에 옹기종기 몰려 앉아 마이크로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음률에 맞춰 깜깜한 하늘에 휘황찬란한 불빛잔치에 모두 넋을 잃은 듯 행복해하는 시민들의 일치감에 나도 그 날밤 삶의 묘한 한순간을 느꼈다. 내가 좀 불안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도 감지했는지 같이 갔던 친구 설명으로는 현재 프랑스 백신주사 두 번 다 맞은 확률이 높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주기까지 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할 만큼 충격적인 좌절로 난감해진 자영업자들과 노동자들의 한숨 소리를 곳곳에서 들리게 한다. 반면에 칠팔월 바캉스철이면 으레 세계적 부호들, 특히 많은 유전을 가진 아랍 귀족들은 자국 국기를 너풀거리는 호화 선박들을 꼬뜨 다쥐르의 출렁이는 물결 위에 띄어놓고 명품 가게들이 몰려있는 크로와제뜨 대로에서 넘치도록 사넣은 쇼핑물들을 들고 오성급 호텔 앞에 세워둔 수억 원을 한다는 람보르기니 같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친구 가족 연인들과 더불어 해변 고급 식당에서 악사들의 연주나 볼륨 조절 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을 즐기며 밤늦도록까지 춤을 추는 것이 현재 지중해 휴양지의 풍경이다.
이런 모습이 얼마동안 계속될지 모르지만... 불안하다. 세계는 지금 전쟁 아닌 코로나 위협 속에 살고 있다. 오랫동안 며칠간 바깥 세계를 보고 소득 양극화의 비극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많이 혼란스럽고 내면에서 가치관의 균형이 흔들리는 것 같아 우울하고 불안하고 슬퍼지기까지 했던 며칠이었다. 어디로 훌쩍 좀 떠나고 싶어도 갈 때가 없다. 몹쓸 병균이 세상 어디서나 우리를 노리고 있다 하니... 참기 힘든 유배 생활이라도 하는 것 같은 어느 날 갑자기 '아! 에즈(Eze)가 있지.' 혼자 중얼거리며 옷을 주섬주섬 바꿔 입고 핸드백을 들고 별생각 없이 자동차를 운전하며 누가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였다. 여느 때 같으면 많은 관광객들이 오가는데 이상하게 입구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입장료 판매하던 젊은 부인이 "아침에 비가 내렸고 코로나가 주춤하기 시작한다고는 하지만 찾아오는 분들이 거의 없다"라고 일러주었다. 프랜치 리비에라는 아름다운 풍광이 뛰어난 곳으로 파노라마의 연속이다. 해발 429미터 되는 가파른 절벽에 얹혀있는 에즈마을 정상에서 쪽빛 지중해, 강열한 태양, 노래되어 지나가는 바람에 묻어오는 바다 특유의 냄새가 함께 어울려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으면 마침내 이 모두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이요. 시가 되어 우리에게 머물러준다.
에즈는 니스와 모나코 사이에 있으나 모나코와 더 가까운 거리에 있다. 겨우 주민 이천이백여 명이 살고 있는 아주 작은 중세 시대 마을이다. 차를 세워놓고 몇 걸음 가면 입구 가까이 "니체의 오솔길" (Sentier Nietzsche)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니체가 스위스 교수 생활 할 즈음 이미 젊었을 때부터 건강 문제로 시달렸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기후 좋은 이태리나 프랑스에서 집필하며 머문 적이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니체는 니스와 에즈를 오가며 지낼 때 작품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의 영감을 여기서 얻었고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에즈를 "니체의 마을"이라고도 하며 또 이 마을의 위치와 외형을 두고 "독수리 둥지"라고 하기도 한다. 그때는 아마 거의 인적이 드물고 나무들이 많이 우겨졌을 이 오솔길을 오르내리면서 외로운 순례자 되어 진정 처절한 고독만 씹었을까. 아니다. 그가 마을 정상에 오른 순간 하늘과 바다가 하나 되어 있는 초월성 같은 철학적 환희를 만끽하고 "신은 없다" 외치며 행복했을 사진에서 보아오던 니체 모습을 내 마음대로 상상해 보았다.
초입부터 경사가 심하고 헛갈리기 쉬운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길을 따라 시끌벅적하던 관광객들이 없어 호젓한 이곳 정취를 음미하면서 오랜만에 묘한 해방감을 느끼고 나는 "코로나"가 덮친 세상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발끝까지 긴장감이 풀어진 산책을 하고 있었다. 에즈는 기원전 220년경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있는가 하면 이미 일세기 때부터 로마인들은 침략 방어로 요새를 가졌다고도 한다.
스페인과 전쟁을 치를 때는 루이 14세는 이곳 12세기에 축성했다는 성을 작전상 무너뜨려버렸고, 18세기 때 화재로 인한 빌리지 재건축.. 겹겹이 쌓인 세월을 말하듯 그대로 남아 있는 흙까지도 이제는 귀중한 역사적 가치로 시간과 문명이 멈추어 버린 듯하나 만인의 사랑하는 고장 에즈! 아름답다 못해 요염도 화려함도 아니면서 매력이 넘쳐 한낱 지나가는 나를 뭉클거리게까지 했다.
여기 올 때마다 정해진 코스라도 되는 듯 둘러보는 곳이 이태리 건축가 앙뚜안느 스베넬리가 세운 성당이 있다. 이 건물의 특징은 겉보기로는 수수한 듯하나 내부는 이태리 냄새가 은근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로마나 밀라노쯤 와 있는 기분을 느끼게도 했다. 또 바로 가까이는 산과 강의 균형이 첫 조건이라는 배산임수의 한국적 풍수지리 원칙을 적용하면 그 방면에 무지한 나도 아마 세계 최고로 아름다울 것이라는 60여 개의 대리석 무덤이 있는 작은 공동묘지가 하나 있다.
거기서는 “나를 잠자게 두십시오. 그러려고 태어났어요"라고 한 시 구절로 유명한 묘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시인이요 배우 예술가로 우리 세대가 굉장히 좋아했던 파리(Paris) 태생 프랑시스 블랑슈와 그의 둘째 부인이 거기 누워 있었다. 마치 잘 아는 친지를 만난 듯 반가웠고 잠시 그의 시를 상기하면서주변을 한참 동안 어슬렁거렸다. 처음 파리에 갔을 때 같은 기숙사 외국 친구 서너 명과 어느 일요일 함께 우리가 책에서만 알던 작가들과 예술가들의 무덤이 많이 있다는 프랑스 3대 시민 묘지 중의 하나인 14구의 몽파르나스의 것을 방문했던 기억이 새롭다.
문학을 공부하고 그림을 그려왔던 나는 세계 유명 작가와 예술가들의 무덤을 많이 가보았다. 그날 싸르트르와 보부아르, 보들레르, 베게트, 모파상...등을 둘러보았다. 마치 살아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묘지를 찾았으나 작품 속에서 읽었던 한 문장도 한 단어도 … 다 허구나 허상으로 채워진 시간들이었다. 물론 죽음이란 것을 경험해보지 않아서 그런 줄 알았지만 돌아올 때는 뭔가 많이 허허로웠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나이가 들만큼 들어서 그런지 오늘 에즈의 무덤을 둘러본 기분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구불구불하고 좁은 길을 따라마을 정상을 향해 오르다가 거의 내 나이 또래쯤 된 한 부인을 만나게 되어 '봉쥬르'로 시작해서 우연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날 가벼운 길동무를 한 사람 만나게 된 셈이었다. 그는 바로 에즈 마을 중턱에 살면서 벌써 몇 대째 작은 기념품 가게 겸 공방을 하나 가지고 평생을 살아왔다고 한다. 에즈에 대해서 시시콜콜 한것까지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부모님들로부터 전해 들은 것들은 언제부터인지도 잘 모르지만 원래 조상들은 백 퍼센트 이태리 태생들이었는데 몇백 년 전 흑사병이 창궐할 때 남 프랑스에 피난 와서 공기 좋고 오염 없는 아름다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여러 차례의 혹독한 흑사병이 아시아 내륙으로부터 실크로드를 거쳐 지중해 해운망을 따라 유럽 전역에 창궐했고 당시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이 거의 희생되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아마 이 부친의 가족사가 그 무서운 흑사병과 직간접으로 관련 있어 보였다.
아직도 흑사병 후손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라움과 호기심이 범벅된 시간을 가지고 하산했다. 오늘은 참으로 이상한 하루였다. 벌써 2년 가까이 "코로나" 예방에 시달려 하루쯤 위로받고 싶은 심정으로 풍광 좋은 이곳으로 달려왔건만 이야기는 코로나로 시작해서 공동묘지 들르기, 과거의 흑사병으로 끝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후회스럽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은 고속도로를 달려오다가는 짬짬이 남불 해변도로로 바꿔가면서 내가 모르는 과거 시간을 마음대로 상상하면서 자유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 에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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