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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바르셀로나의 바리오 고띠꼬, 스페인

by 이다인 2024.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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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바리오 고띠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쁘라짜 데까따루냐 근처에 호텔방을 정한 것은 내가 이번에 꼼꼼히 보고자 했던 중세 건축 구역이 가까이 있고, 또 주변에 널려 있는 중요한 기념물들이 멀지 않아서 나에게는 좀 비싼 곳이었지만 칼데론(Calderon) 호텔에 들기로 했다. 현관에 들어가자마자 영어, 불어, 독일어가 웅성거리는 것으로 보아 꽤 외화를 벌어들이는 숙소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리셉션 벽 전체를 덮고 있던 수채화들이 유난히 내 눈을 즐겁게 했다.

그리고 승강기를 타고 내 방 쪽으로 가는 도중 벽마다 붙어 있는 그림들도 모두 수채화였는데, 하나도 모조가 아닌 현관 것과 동일 화가의 사인이 든 진품들이었다. 꽤 괜찮은 호텔에도 보통 모조품을 근사한 액자에 넣어 놓는 것이 보통인데, 이렇게 진품 그림이 걸린 방에 묵고 있는 기분은 묘하게 좋았다. 주로 반 구상에 인물들의 여러 동작을 표출했는데 선의 부드러움과 붉은 주색(色)이 주는 복합적 이미지가 참 라틴적이었다.

 

라 람블라 (LaRambla)

짐을 풀고 어느 해 봄에 왔을 때 수없이 걸어 다녔던 라 람블라 (LaRambla)의 긴 거리를 따라 동상이 보이는 해변까지 갔다. 이 거리는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한가하게 우아하게 걸어 다니기를 좋아하는 거리다. 마르세이유, 제노바와 같이 지중해의 가장 중요한 항구 중의 하나가 바르셀로나이다. 항구로 발달된 대도시는 보나 마나 부산처럼 길게 뻗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해변을 따라 발달한 도시의 특징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 미로, 피카소, 콜럼버스와 같은 이름만으로도 상업·항구 도시 이외의 의미로 나 같은 사람의 발길을 끌 만하다.



바르셀로나가 가지고 있는 유물 중에 가장 잘 보존되고 그 시대의 부강을 증명하고 있는 바리오 고띠꼬 (Barrio Gótico, Barcelona, España 고딕 쿼터, 13~15세기에 지었음)는 지금도 그 당당함과 웅장함으로 주변을 압도하고 있다. 유럽 어느 곳이나 대성당 앞에는 크고 작은 광장이 하나쯤 있게 마련이다. 그날따라 바리오 고띠꼬 대성당 광장에는 '노천 시장'이 열리고 있어서 그들의 단면적이나마 한 생활 현장에 나도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바리오 고띠꼬(고딕 쿼터
바리오 고띠꼬(고딕 쿼터)

 

바리오 고띠꼬는 3,4층의 짙은 암갈색 건축물들의 연결이었다. 하늘을 찌르고 있는 대성당의 정면 첨탑과 박공지붕은 프랑스 루앙에서 온 건축가의 설계, 내부 장식은 까타란식, 석관은 이탈리아의 피사스타일…이런 국제적 예술 감각의 잔치 공간이다. 오랜 세월에 도전하여 지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니 건축을 이루고 있는 옛날 돌 하나하나가 진귀한 보석으로 보인다. 특히 9미터 높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직사각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육중한 담들은 바로 이 장소의 역사를 말해 준다. 즉 그것의 건축 동기가 4세기 때 외적의 침범에 대한 방어였다고 한다.

벽과 인간의 방어 심리는 항상 동반되고 있다. 그래서 낯선 곳에 가게 되면 나는 그곳이 위험스럽고 험악한 곳인지 아닌지는 건축물에 붙어 있는 창과 벽의 형태를 보고 대강 감을 잡는 버릇이 있다. 여기 창들은 2, 3층 높은 곳에 붙어 있고, 그것도 창가에는 형무소처럼 굵고 둥근 쇠막대기가 드문드문 붙어 유리를 보호하고 있다. 그 높은 벽은 빵조각이나 고기나 옷가지를 훔쳐가는 좀도둑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순백무구한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외적 집단을 방어했으리라는 본능을 건축 형태에서 보여주고 있다.

스페인의 예술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적어도 그들의 종교난과 기원전 711년 아랍 민족에게 점령당한 후 15세기까지의 민족적 우여곡절을 다시 한번쯤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벌써 수백 년이 흘러갔지만 스페인 어린애들의 생김새를 관찰하고 있으면 재미있다. 북아프리카 피가 섞인 아이들이 꽤 많이 눈에 띈다. 언행이나 의식에서 유럽 제국 중에 가장 동양을 느끼게 하는 나라다. 예를 들면 동네의 허름한 서민적인 카페에 한번 들어가 보라. 서비스하는 뚱뚱한 아줌마나 금니 박은 못생긴 아가씨를 제외하고는 거의 남자 손님만 우글거리는 곳이 꽤 있다. 공공장소에 남녀가 같이 나타나기를 꺼리는 것은 동양인들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인들이 유럽 진출의 첫발을 디뎌야 하는 땅이니 피와 예술과 문화가 섞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는 스페인 왕들의 이름이나 업적은 잘 모른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잊혀지지 않는 두 왕 페르난드이사벨 여왕이 지금 생각난다. 그들은 말을 타고 활과 칼을 휘두르며 전투를 하지 않고 통일을 이루었다. 그 젊은 두 왕은 서로 그리워하며 사랑에 빠져 1469년에 결혼식을 올리면서 카스틸랴 국(현재 마드리드 근처 이사벨 여왕 쪽)과 아라곤 국(현재 바르셀로나의 페르난드 왕 쪽)이 합쳐 가톨릭 국으로 종교, 정치 통일을 한 셈이다.

 

다시 남스페인 그라나다에서 회교도의 꽃을 피우고 있던 아랍 민족을 내쫓음으로써 근대 스페인의 통일, 부강을 이루어 놓았던 주역들이다. 하느님은 이런 계획을 지금도 좀 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남과 북의 남녀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묘약을 써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통일이 이루어졌으면…이런 것은 망상으로만 끝나는 것일까.

마드리드가 외교·정치·행정의 수도이고, 상업 · 산업의 중심은 바르셀로나가 맡고 있어서 그런지 도시 풍경이 번잡스럽고 거리에 다니는 여자들의 표정은 정돈되지 않았고 모두 굳어 있지 않으면 억센 이상한 표정들을 하고 있다. 깍쟁이 기는 하지만 상냥하고 애교 있고 멋을 부리는 프랑스 여성들보다 스페인 여성들은 무엇인지 모르게 거칠고 곱지 않다. 쇼윈도의 치장들도 프랑스나 스위스 같은 데 비하면 한참 뒤떨어지는 느낌이다.

 

바르셀로나 전경
바르셀로나 전경

 


부강했던 선조들의 보물, 유적을 많이 갖고 있는 스페인은 1975년까지 프랑코 집정 시대는 (물론 독재 정치로 비난받고 있지만) 세계 관광 천국이다. 지금은 사정이 좀 다르다. 바로 잘못된 ‘민주화의 사회적 위기' 같은 것을 피부로 느낀다. 도둑이 많고 시민이 도둑을 잡아 주어도 경한 벌을 받고 곧 풀려 나오기 때문에 나쁜 사람들이 늘어간다고 내가 탄 택시 운전사도 불평한다.

내가 당시 여행 중에 스페인에 대한 인상을 별로 좋지 않게 갖게 된 것을 금방 눈치라도 챈 것처럼 낮 3시경에 바리오 고띠꼬 광장 코너를 돌고 있는데, 아랍계 두 젊은 괴한이 나에게 덤벼들어 내 핸드백을 강탈해 달아났다. 너무 어처구니없어, “내 여권, 내 여권 돌려줘요”하고 소리 몇 번 지르다가 막이 끝나 버렸다. 너무 기가 막혀 식은땀만 쭉쭉 빼고 있다가 경찰서에서 연락받고 금방 와주신 명예 영사님 앞에서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생면부지인 나에게 돈을 빌려 주어 다시 프랑스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신 영사 님께 이 지면을 빌어 다시 감사드리고 싶다. 이번 사건으로 조국이 부모처럼 내 뒤에 항상 있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깊게 실감했다.

 


 

바리오 고띠꼬 대성당
바리오 고띠꼬 대성당

 


 

Barrio Gotico, Barcelona,


Barrio Gotico, Barcelona,



Barrio Gotico, Barcelona,
Barrio Gotico, 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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