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나라, 음악의 향연장
(饗宴場)/ 오스트리아
스위스가 나는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나라인 줄 알았는데 최근 스위스 사람들이 “요즈음 젊은 아이들은 무질서해졌고 쓰레기도 아무 곳에나 슬쩍 버리려 들고 못 쓰겠어, 정말 오스트리아는 어디를 가나 깨끗해..."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과장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가 보니 정말 깨끗했다. 그런데 비엔나 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한 가지 불편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공항 안내 팻말이 거의 영어나 불어가 아닌 독일어이었기 때문이다. 어디가 짐 찾는 곳인지 어디가 출구고 입구인지 우리는 당황했다.
우리는 유명한 스테판 성당 광장에서 얼마 멀지 않은 구가(舊家) 조그만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날 하늘은 약간 무거웠다. 거무스름한 회색하늘과 비엔나의 고옥들과는 한 짝이 되기에 알맞은 것 같다. 나의 선입견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동구국가 (東歌國家)들의 이념의 영향인지 사람들의 표정이 약간 무겁고 신중해 보였다. 뮌헨에서 미국화되었던 대형 호텔에서 지냈던 것을 상기하고 혹시 그런 우뚝우뚝한 것이 있나 중심가에서 눈여겨보았으나 내가 못 보았는지 숨겨졌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대개 이 삼십 명 손님을 받고 그들에게 최선의 편리와 친절을 베푼다는 오스트리아의 조그만 호텔이 마음에 들었다. 내 손에 쥐어진 오스트리아 안내서 중에 언제나 수백만명의 관광객을 받을 침대가 준비되어 있다는데 저윽이 놀랬다. 그러니 굉장한 관광국이라는 뜻이다. 칠팔월에 유명한 모차르트 고향 잘츠부르크의 음악제, 오뉴월에 비엔나 축제, 정월에 키츠 뷔헬의 세계 스키대회 이런 수많은 잔치들은 누구에게나 입맛을 돋운다.
거기다가 핀란드, 스웨덴만 빼면 유럽 제일의 숲의 나라다. 파리에 갈 때는 깨끗한 눈으로, 비엔나에 들어설 때는 귀를 정갈하게 하라고 했다. 하기야 예술을 이해 감상하는 데는 한 감각만이 소용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모든 감각, 지식이 동원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때로는 성적 촉수까지도 동원하라고 했다지만 차라리 나는 눈도 귀도 닦지 말고 현대 사회와 대도시에서 지칠 대로 지친 몸과 정신을 그냥 그대로 가지고 이 “숲의 나라”에 오면 될 것 같다. 그러면 다뉴브강의 두 팔 아래 넓게 누워있는 녹원 프라터 (Prater)가 그대들의 심신을 위로할 것이며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온천수가 피로를 풀어 줄 것이다.
나는 이런 지상에서 무혜한 도시의 아침을 만나고 싶었다. 공원을 밟고 있을 때 이슬들은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바이올린 켜는 동상을 지나서, 나는 새들의 노래를 경청했다. 11시쯤 되니 공원 속의 카페에서 벌써 커피 냄새가 났고 꽤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악사들이 두서너 명 손님들 테이블 앞에서 왈츠를 현악으로 켜 주고 있었다. 이미 라틴국에서처럼 기타나 꽈뜨로의 열정적이고 혹은 절규하는 듯한 그런 음악의 지역이 아니다. 고전음악과 게르만의 영토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빈, 슈베르트, 브람스, 말러 이런 거성(巨星)들의 중요한 삶의 공간임을 새삼스레 기억하니 이 거리 저 거리가 모두 다정하고 친숙한 눈길을 보내주는 듯했다.
사람은 흔히 매일매일 가고 있는 길이 어딘 가를 잊어버리고 산다. 그런데 나이가 마흔 고개쯤 넘어서게 되면 이십 대 삼십 대 자주 있었던 결혼식, 돌잔치 초대 참석에서 거의 회갑 진갑 영결식으로 슬슬 바뀌게 되면서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가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우울증에 빠져 병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매일매일 가고 있는 곳은 한 장소이다. 바로 그 장소에서 말(言語)이 뭉개지고 있을 따름이다. 너는 잘 나고 나는 못났고, 너는 영어를 나는 한국어를, 너의 노래는 아름답고 나는 음치고 이런 말이 없다. 나는 바로 그런 장소에 와 있었다.
지도를 보고 비엔나 동남쪽 분데스슈트라쓰 (Bundesstrasse) 9 에 찾아 간 중앙공동묘지는 바로 한 도시 같았다. 묘지 구역약도를 입구 수위가 주었다. 물론 거기에는 내가 아는 몇 사람들이 누워 쉬고 있었다. 베토벤, 브람스, 그릭크, 슈베르트, 휴고볼프가 한 “동네”에 있었고 바로 옆 “동네”에 왈츠의 할아버지 두 분 슈트라우스와 란너가 쉬고 있었다. 불란서에서는 씨프레 나무가 애도의 상징이고 공동묘지를 지키는 나무인데 여기 비엔나 묘지에는 수양버들이 음률처럼 늘어져 있고 마치 푸른 머리를 풀고 흐느끼고 있는 상중(喪中)의 여인 같기도 하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내 죽으면
무덤에 수양버들
한 그루 심어 주셔요
눈물에 젖은 잎을
나는 좋아합니다
잎들의 창백함이
감미롭고 정겹습니다.
그러면 내가 잠들 대지에
나무 그늘이
엷게 드리워질 것입니다.
뭐쎄가 이미 무덤과 수양버들의 관계를 이렇게 노래했다. 버드나무를 보고 있으면 나는 외롭게 겨울에 피고 있는 울릉도 동백꽃이 떠오르고 이 두 나무를 같이 떠올리면 이태리의 그 번창한 유도화가 생각난다. 이 두 외로워 보이는 것을 접목 (接木)시켜서 된 것 같은 이태리 키다리유도화 말이다.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를 합하면 풀러스가 된다더니 유도화에는 고독이 없다. 밝다, 마냥 즐거운 분위기이다.
비엔나 묘지에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소리꾼”들은 생전에 그들의 일과 재주 와는 달리 무거운 침묵의 장소에서 소리 없는 화음(和音)으로 가지런히 모두 이웃하고 있다. “소리꾼”이 소리를 못 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국토의 40%라는 숲 속에서는 신(神)의 보살핌으로 언제나 수많은 새들이 왈츠를, 교향악을 연주하고 있으니까. 흐르는 물과 새들의 노래가 천천히 귀에 익혀지면 우수(憂愁)가 감도는 조용한 이 고도의 품에서 향유로 적셔진 마음으로 비엔나 오후 5시를 즐겨야 제격이다.
귀족이나 부르죠아의 피로 소위 상류사회라고 하는 것은 어떤 도시를 가나 잠시 쉬어가는 나그네에게는 속속들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생활 일부를 즐겨 흉내 내는 시민들을 비엔나 오후 카페에서 만날 수 있다. 깨끗하고 분위기 있는 찻집에는 5시가 되면 직장 일이 끝나는 대로 한 잔과 한 조각을 나누며 우아하게 말을 내뿜게 하는 공간이 된다. 손님들을 서비스하고 있는 사람들의 섬세한 마음가짐과 자연스럽고 조용한 태도는 말 그대로 놀라움이다.
여기서는 삼세기 전의 비엔나를 침략하려다 도망간 터키 군인들의 보따리 속에서 발견된 커피가 그곳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비엔나의 자랑인 케이크에 곁들이는 중요한 검은 음료수가 되었던 것이다. 세계의 요리를 석권하고 있는 중국과 프랑스 이외도 나라마다 그들 가정주부의 솜씨를 뽐내는 음식 하나쯤 다 있는 것 같다. 스위스의 퐁디와 초콜릿, 독일의 쏘세이지, 북아프리카의 꾸스꾸스, 일본의 생선회, 스페인의 빠엘라, 월남 근처 나라들의 냄, 한국 불고기 하는 식으로. 오스트리아에서 맛본 케이크는 정말 혀에서 녹는 것 같았다.
케이크와 커피를 천천히 들면서 내가 낮에 돌아보았고 모차르트가 여섯 살에 아버지를 따라 들어갔다는 쎈부룬 (Schönbrun) 성 을 한번 머리에 떠올려 보기에 좋은 장소다. 궁의 마룻바닥이 너무 미끄러워 넘어진 모차르트를 일으켜 준 마리 앙뚜아넷뜨 공주 (나중에 불란스 혁명 때 처형된 루이 16세의 부인)에게 "내가 크면 너에게 장가갈까"라고 어린 음악가가 약속을 해 놓고 지키지 못했다는 그곳의 일화들, 그리고 공주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를 우리 신라의 여왕들과 함께 한 번 상기해 보는 것도 전혀 나쁘지 않다.
호프부르그(Hofburg) 궁, 쎈부룬(Schönbrun ) 성과 공원은 바로 대여걸이며 오스트리아를 세상에 강대국으로 등장시킨 장본인,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의 일터요 휴식의 장소였다는 그곳을 한나절 눈으로 공부한 다음에 이런 찻집에서 그들의 역사를 음미해 보면 그녀의 당당한 초상화와 남다른 한 여인의 일생이 보이는 듯할 것이다. 1717~1780년 생애에 16명의 아이를 낳고 길렀다는 사실과 열명의 딸의 출가시키는 일, 즉 한 딸은 나폴리국의 왕녀로, 두 딸은 파르마의 공작부인으로, 어느 딸은 네덜란드의 통치자로 혹은 프랑스의 왕녀로, 네 딸은 자국에, 수출과 내수?에 열을 올린 그 여인, 그리고 불란서 문화를 좋아하였고 천문대와 도서관을 세우며 예술가를 극진히 보호했으며 정치적으로 황금시대의 업적을 평가받고 있는 그 여걸을 기억하면 놀랍기만 하다.
이런 명상에서 깨어나고 커피잔이 비게 되면 조용히 일어나 좁은 구가(舊家) 포도 위를 걷고 있으면 신의 석공들이 빚어 놓은 구름탑과 다리가 가끔 하늘에 걸린다. 어둠이 연기처럼 깔리는 무렵 내 마음에 초대된 비엔나는 “음악”의 물결로 출렁거린다. 그러면 아! 과연 나는 비엔나의 가슴에 안겨 있구나 하는 나직한 속삭임 같은 것을 듣게 된다.
왕실 초대로 왔던 볼테르도 렘브란트도 비엔나에서는 오후 5시에 나처럼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면서 문학을, 미술을, 여걸 마리아 테레지아 를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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