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서(戀書)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사랑의 편지를 한 줄도 보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싶다. 그래서 나도 연서를 써 본 경험이 많다. '많다'라는 말은 보다 인간적이라는 말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무엇을 소유하면 꽁꽁 뭉쳐 깊은 곳에 숨겨 놓지 못하고 써 버리는 헤픈 성격,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형, 느끼는 대로 무엇을 표현해 보고 싶어 하는 천성 등으로 풀이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래서 누구에게 정을 느끼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표현했던 것 같다. 물론 그중의 어떤 부분은 안 했어야 좋았을 걸 하는 후회도 따르지만. 특히 답장이라는 메아리가 제격이 아니었을 때 허탈하고 하나밖에 없는 자존심이 설 자리가 없이 당황해하고 속상 해 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나온 나는 과연 연서 부재로 살고 있는가.
연서라는 것이 이성이라는 특정한 대상에 대한 자기표현의 글이라면, 연서를 쓰는 마음으로 나를 표현해 가는 행위를 나는 언제나 그림을 통해서 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나는 행복한 아픔을 겪는다. 캔버스라는 하얀 공간에서 마음이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허탈감과 실패작의 연속이면서도 누가 시키지도, 꼭 해야 할 의무도 없는 도전을 계속 시도하는 것은 젊은 날 써 놓은 연문(戀文)의 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찢고 또 찢고 하던 것과 흡사하다.
나는 늘 연서를 쓰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며 산다. 그린다는 행위 이전에 나의 머리나 마음속에는 한 대상이 크게 자리 잡혀 있다. 그 대상은 상상 속에서 화려하게, 초라하게 혹은 불 같은 사랑으로, 얼음 같은 냉담으로 형체화되기도 해체되기도 한다. 때로는 산산이 부 서진 시간의 때가 묻은 어느 성의 폐허가 되기도 한다. 거기서 나는 혼자 울고 있는 외로운 소녀가 되기도 하며, 열 두 자 치마가 끌리는 화려한 궁전의 도도한 왕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세속적인 인간이어도 연서를 쓰는 시간만은 천사의 시간이다. '연서'를 쓰면서 권력을, 돈을, 이권 사교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하느님께 기도를 할 때 어머님의 영생을 빌고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일상이 순조롭도록 도와주시라고 하지만, 연서를 쓸 때 그런 '세속의 구걸(?)'을 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사랑의 마음을 끝없이 표현하며 살고 싶다. 나의 표현이 설익은 과일처럼 떨지 않고, 나의 색깔이 평화롭고 성숙하기를 기도하며, 나의 형체가 온당하고 아름답기를 소망하며, 그런 색과 형체가 보기 좋게 어울려 뿌리 깊이 내리고 숲이 되어 가는 사랑으로 표현되는 연서를 매일매일 쓰리라.
흰 눈이 가지마다 덮이고 삭풍에 시달려 고엽 자욱이 덮인 겨울 나무 되어도, 뿌리의 수액을 나르는 일을 잠시도 멈추지 않으리라. 용케도 버티어 봄을 맞으면 성급하게 뛰어오는 아지랑이까지도 활짝 문을 열고 환한 웃음으로 맞으리라. 여름이면 우거진 숲이 되어 아름다운 젊음들이 다정한 말을 나누도록 그늘을 드리울 것이며, 오곡이 무르익는 계절에는 벗 들과 함께 행복해 보리라.
나는 사계(四季) 연서를 쓰는 챔피언이 되고 싶다. 그 시간만은 적어도 가장 순수함이 있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했나 보다. 모든 예술가들이 다 그렇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란 대개 외골수로 한 구덩이만 파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줄 것과 받을 것을 저울질해 가면서 챙길 줄 모르는 것이 흠이다. 차라리 주고만 사는 사람들이라고 함이 무방하겠다. 다행히 주고 되돌아오지 않는 데 대해서 별로 서운해할 줄 모르는 체질을 하느님은 이미 선물해 주신 것 같다.
나는 중학교 때 대머리 화가였던 미술 선생님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그분은 딴 세상에서 온 사람같이 행동하셨다. 그림도 잘 그리셨지만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말수도 적었고 행동도 재빠르지 않았으며 학생들에게 큰 소리로 야단치는 법도 없었다.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이 이색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매료되었다기보다 늘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 기억이 있다. 그분은 확실히 무엇인가에 골똘히 빠져 계셨던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학교 생활은 전혀 재미가 없었고 그의 그림 세계만이 전부였던 시기였으리라 미루어 생각된다.
나는 지금 연서를 쓰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나에게 허락한 신의 배려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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