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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시벨리우스의 기념관, 헬싱키 핀란드

by 이다인 2023.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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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의 기념관

 
몇 년 전 핀란드에 들렀을 때 짧은 체류로 얀 시벨리우스(1865~1957)가 만년 50년 동안이나 살았고 부인의 이름을 딴 야르벤파지방의 '아이놀라'  (Ainola,  핀란드 말로 Aino의 집이란 뜻) 집에 가보지 못했던 것을 늘 후회했다. 오랫동안 즐겨 들어왔던 그의 교향시곡 "핀란디아의 나라" 를 상상하면서 나는 다시 그곳을 찾아갈 것을 계획해 놓고도 몇 년을 흘려보내버렸다.

얀 시벨리우스 (1865~1957)
얀 시벨리우스 (1865~1957)

드디어 파리에서 헬싱키행 비행기를 탔다. 마치 누가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빨리 그곳에 가고 싶었고 마음은 설레기만 했다. 햇빛이 점점 엷어지는 북구의 풍경들을 비행기창으로 내려다보면서 나는 그의 음악을 되새기며 소리 내지 않고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헬싱키의 볼 것들은 뒤로 미루고 호텔에 짐을 풀자 다음날 아침에 시내에서 북쪽으로 38km 떨어진 야르벤파에 가기 위한 교통편을 알아보았다. 다행히 버스가 시간마다 있다고 했다. 역 주변은 물론이고 거리 여기저기 해가 가장 긴 여름이고 헬싱키 페스티벌 시즌이라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꽤 붐비고 있었다.

내가 '아이놀라'로 향하는 버스를 탔던 시간은 북구 특유의 여름빛이 은은히 흘러내리던 부드러운 아침나절이었다. 도시를 빠져나간 뒤 40여분 달리는 동안 거의 건물들이라고는 특별히 없었고, 장신의 나무들과 들판들이 널려 있었을 뿐이다. 버스가 잠시 머물며 나에게 내리라고 하던 주차장에는 손님이라고는 나 혼자 뿐이었다. 약간 어리둥절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농부 같아 보이는 행인에게 시벨리우스 기념관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네 말로 설명했지만 나는 대강 방향을 잡을 수가 있었다.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넓은 들판에 멀리 완만한 작은 언덕바지로 된 빽빽한 숲 동산이 하나 보이고 나무들로 울타리가 쳐진 곳이 보인다. 그 속에는 빨간 지붕과 흰 벽면이 부분적으로 보이는 집 한 채가 간신히 보인다. 그 앞에는 국기가 높게 너풀거리고 있어 여염집이 아님을 시사했다.
 

'아이놀라'(Ainola,핀란드 말로 Aino의 집이란 뜻)
'아이놀라'(Ainola,핀란드 말로 Aino의 집이란 뜻)


시벨리우스는 아이놀라에서 50여 년을 살았고 1957년  91세로 이곳에서 영면했다. 부인 아이노는 시벨리우스사망 후 12년간 이곳에서 혼자 살다 1969년 병원에서 98세로 영면했고 1974년 이 집이 박물관이 되었다고 한다. 허허벌판에 시골길을 따라 거의 30분쯤 걸어 숲동산 발아래 이르니 꽤 넓은 마당 하나가 보이면서 먼지가 뽀얗게 덮인 자동차 2대가 세워져 있었다. 드디어 사람들을 좀 만나겠구나 하는 반가움으로 나는 '아이놀라' 안으로 들어갔다. 사를 잘 이용해서 집을 앉혔기 때문에 정면에서 보면 3층이고 뒷 현관 쪽에서 보면 2층이다.

아래층에 방 4개, 위층에 3개의 방이 있는데 어떤 부분에는 작은 금지구역도 있었다. 집 내부는 널찍널찍하고 질 좋은 나무가 흔한 나라라서 그런지 카펫이나 벽지를 부분적으로 사용한 방을 빼고는 원목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특히 서재나 응접실의 분위기는 바로 통나무집의 독특한 맛 그것이다. 3000여 권의 책이 진열되어 있는 서가를 마주하는 작은 창들은 사철 변하는 풍경화의 액자가 되고 있다.

서재 한가운데 놓은 4개의 의자와 작은 유리탁자, 천정에서 길게 드리워진 전등, 2개의 조각, 이런 것들은 마치 이 대 음악가가 친한 친구들과 은밀한 예술에 관한 담소를 즐기다가 잠깐 현관으로 배웅 나갔다가 돌아올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정도로 살아 숨 쉬는 방이다. 응접실은 가장 현대적인 냄새가 나는 방이기도 했다.

 

서재
서재


그의 50회 생일 때 친구들이 선사했다는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한쪽 구석에 있는가 하면 창아래 놓은 날렵하게 디자인된 응접세트, 천장에 달린 2개의 크리스털 장식이 많이 드리워진 피아노 쪽 등벽면의 5개의 그림, 책과 서류가 잘 정돈된 낮은 책꽂이들이 있는 방은 그렇게 높은 안목으로 이루어진 조화로운 방 같지는 않았으나 딸 다섯이나 낳았다는 다산 부부가 살기에는 편안했을 것만 같았다.

응접실내 그랜드 피아노
응접실내 그랜드 피아노


반대로 시벨리우스의 작업장은 화려하지도 고급스럽지도 않았으나 통나무가 전혀 드러나 있지 않고 바닥, 천정, 벽이 모두 한벌옷을 입은 것 같이 카펫과 벽지가 덮여 있다. 투박해 보이면서도 묵직한 그의 책상과 뒤등판이 꽃문양으로 장식된 의자 한 벌이 내 마음에 꼭 들었다. 옆에는 일인용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작곡을 하다가 피로로 잠시 잠시 쉬곤 한 모양이다. 시벨리우스는 소리에 너무나 민감하여 집안에 물 받는 소리도 싫어하여 그 부인은 수도꼭지를 옥외로 내놓았다고 안내자는 설명했다.

핀란드는 국토의 3분의 2가 소나무, 잣나무, 참나무, 느릅단풍 등으로 덮인 숲의 나라이며 60,000개 이상의 호수가 있는 나라, 연중 4개월이 흰 눈으로 덮인다는 설국의 대자연 바로 그런 곳이다. 나는 때때로 위험까지 느껴지는 검푸른 숲 속을 걸으면서 또 호수와 섬을 만나면서 인간인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절감했다.

핀란드 인들은 대국 틈에서 한국처럼 갖은 고통을 겪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바로 유명한 교향시곡 "핀란디아"는 그 나라의 국가이상으로 국내외에 사랑을 받고 있는 곡으로 억압된 민족의 울분과 애국심을 음악에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그의 바이올린과 첼로곡들을 특히 많이 듣고 있다. 어둡고 무겁되 단순한 낭만적인 우수가 아니며 장려하게 깔려있는 저음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는가 하면 깊숙한 영혼의 축을 마구 뒤흔들어 놓을 것 같은 힘이 뻗혀있다. 내게 전해오는 강한 메시지 때문에 잠 못 이루었던 밤이 있었다.

시벨리우스 음악원을 졸업하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유학했던 젊은 작곡가는 일 찌기 출세하여 30대 초반 (1897)에 이미 정부가 인정하는 종신연금을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온핀란드 사람들이 존경하고 사랑했는지 알만하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시벨리우스에 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더듬으면서 기념관 입구에서 팔고 있는 시벨리우스 아카데미 첼로교수인 R.Sariola Hui-Ying Liu라는 대만 태생인 동교교수의 반주로 된 C.D 한 장을 사가지고 밖으로 나와 그의 넓은 뜰에 두 내외가 잠들고 있는 얀 시벨리우스라고만 쓰인 묘 주변을 한참 돌아보았다.

그와 그의 아내의 묘지
그와 그의 아내의 묘지


91세까지 살았던 장수의 비결은 가히 짐작할 만하다. 무공해 대자연 속에 이미 초년에 남들이 평생을 바쳐 수대에 걸쳐 이룩해야 할 일을 다 완수해 버리고 이렇게 유유자적하게 사랑하는 여인과 자연 속에 살았으니... 주변에 이웃 한 채 없고 헬싱키 시내와 꽤 떨어졌는데 그 당시 교통수단과 겨울에는 영하 40도 넘나 든다는 혹한을 감안할 때 이렇게 매일 쓰는 생필품이 어떻게 조달되었는지 궁금하다.

야르벤파의 침묵" 이라고들 하는 후기 28 년 동안 작업공백 기간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가지기도 하고 얘기들을 하는데 아마 그는 흔히 보통사람들이 은퇴하는 시기에 자기도 스스로 은퇴하여 보통 사람들의 삶을 실현해 보려고 작정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참으로 성공적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고 간 예술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집은 그의 작품의 산실이다. 전혀 세속적인 욕심이나 불행했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존경과 부러운 마음으로 터벅터벅 오리쯤 걸어오는 동안에 그의 “슬픈 왈츠"와 "낭만의 왈츠" 대조적인 두 곡이 번갈아 떠오른다.

그때 내 머리 위에 비행기 한 대가 날고 있어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의 생전에는 작업 중에 악상을 떠올리는 것에 방해받지 않도록 국법으로 그 집 주변 하늘에 비행기를 띄우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아마 다 같은 소리라도 아름다운 음률과 소음은 천국과 지옥만큼 큰 차이로 둔 것 같다. 1967년에 제작한 그의 이름을 딴 기념물이 있는가 하면 시벨리우스음악원이 있다. 거기서 60킬로미터쯤 떨어진 하멘린나라는 곳의 그의 생가를 가려고 계획했다가 다시 오고 싶은 곳이기에 미련이 남도록 고의로 그곳은 가지 않고 남겨 두기도 했다.

 

사진으로 가본 생가


이번 방문 덕으로 그가 그토록 사랑했고, 전 작품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핀란드의 자연이 어떤 것인가 더 많이 알았기 때문에 비록 한국에서 오디오를 통해서 들을망정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이젠 더 크게, 더 가깝게, 아름답게 내 영혼에 와닿을 것 같다.

 


 

 

Jean Sibelius: Finlandia-hymni/ 헬싱키 필 하모니 합창단

 


 

핀란드 설경
핀란드 설경


기념공원 인물 조각상
기념공원 시벨리우스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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