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지마할 (2), 대리석에 새겨진 황제의 애틋한 사랑. 인도
아그라의 새벽 공기는 차가우면서도 묘한 설렘을 머금고 있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 나는 드디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라 불리는 타지마할의 정문 앞에 섰다.
붉은 사암으로 된 거대한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마치 다른 세상의 문이 열리듯 순백(純白)의 환영이 안갯속에서 서서히 그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 안갯속에서 피어난 순백의 연꽃
처음 마주한 타지마할은 건축물이라기보다 거대한 대리석 조각품에 가까웠다.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투명한 백대리석의 질감은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한다.
이 눈부신 성전을 짓기 위해 샤 자한 (Shah Jahan,1592-1666 은 페르시아어로 '세계의 왕'이라는 뜻)
황제는 당대 최고의 천재 건축가 우스타드 아흐메드 라호리 (Ustad Ahmad Lahori)를 불러들였다.
라호리는 단순히 건물을 세운 것이 아니라, 황제의 지극한 그리움을 차가운 돌 위에 영혼으로 구현해 낸 예술가였다.
페르시아의 정교한 기하학적 미학과 인도의 화려한 장식미가 집대성된 그의 설계 아래,
22년이라는 긴 인고의 시간 끝에 이 거대한 대리석 연꽃이 태어났다.
중앙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수면에 비친 완벽한 모습에 다시 한번 경탄하게 된다.
그곳에는 오직 라호리가 계산해 낸 정교한 수학적 비례와 고요한 질서만이 지배하고 있었다.
■ 그리움이 빚어낸 찬란한 슬픔
타지마할은 샤 자한 황제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14번째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난 그녀를 잊지 못한 황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라"는 지엄한 특명을 내렸다.
2만여 명의 인력과 1,000마리가 넘는 코끼리가 동원된 이 대공사는,
사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눈물방울을 대리석으로 깎아 만드는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대리석 벽면을 수놓은 섬세한 '피에트라 두라' (Pietra Dura 이탈리아어로 '딱딱한 돌'이라는 뜻으로,
대리석에 홈을 파고 그 안에 유색 보석을 깎아 끼워 넣어 문양을 만드는 상감기법 )의 꽃무늬를 보며
나는 문득 프랑스 유학 시절 보았던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를 떠올렸다.
서구의 화려함이 빛의 예술이라면, 이곳 인도의 미학은 차가운 돌 위에 새긴 영혼의 기록이었다.
세월은 흘러도 돌에 새긴 무늬는 지워지지 않듯,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남은 기억들도 이처럼 선명한 문양으로 피어올랐다.
■ 황제의 눈물과 아그라 성의 비극
타지마할의 압도적인 화려함 뒤에는 잔인하고도 슬픈 서사가 숨어 있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성된 후, 장인들이 다시는 이런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그들의 손목을 자르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에게도 가혹했다.
말년에 그는 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하고,
지척에 타지마할을 둔 아그라 성에 유폐되었다.
그는 성벽의 작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죽는 순간까지 아내를 그리워하다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권력의 정점에서 오직 한 여인을 그리워하며 죽어간
그 고독의 무게가 아그라의 뜨거운 공기 속에 배어 있었다.

■ 여행을 마치며: 대리석 위에 핀 영원한 사랑
타지마할을 등지고 나오는 길, 붉은 석양이 대리석 위를 내리쬐고 있었다.
이 거대한 무덤은 누군가에게는 한 남자의 무모한 광기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전 세계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마음속 한구석에서 영원한 사랑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타지마할의 차가운 대리석 위에서 나는 과거의 나를 만났고, 서툴렀던 젊은 날의 사랑과 아픔들도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
인도의 흙먼지 속에 묻어두었던 나의 옛 기억들도 이제는 이 순백의 성전 안에서 평온하게 안식하기를 바란다.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 마음에도 작고 하얀 대리석 꽃 한 송이가 피어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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