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고르드>의 양치기 집
깊은 산속에 사는 스님, 약초를 캐는 사람, 양을 치는 사람... 이런 인적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머리에 떠오르면, 나는 언제나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 있는 뤼베롱 산이 생각나고, 알퐁스 도데 의 풍경들이 뇌리를 스쳐 간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별>이란 단편 소설에서 한 양치기가 주인집 딸 스테파네트를 짝사랑하던 이야기는, 사춘기를 거쳐 온 우리 많은 어른들이 이미 읽어서 잘 알고 있는 바이다.
나는 그 뤼베롱 (64킬로 미터의 산맥)을 늘 보고 싶어 했고 문화니 문명이니 하는 것과 는 아랑곳없는, 그 호젓하다 못해 외로운 곳을 내 젊은 날의 꿈의 하나로 남겨 놓았다. 이상하게 그곳에는 아직도 숨겨진 아름다운 비밀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늘 들었는데, 어른이 된 나는 어느 날 한국의 가을처럼 높고 푸른 프로방스의 하늘과 전원 풍경이 한 덩어리 되어 마치 천국의 정원을 떼어 놓은 것 같은 그곳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바로 고르드(Gordes)라는 동네이다

여기에는 16세기에 지은 고풍스러운 성채가 하나 있고, 이곳 사람들의 예술의 걸작이고 긍지인 세낭끄(Senanque) 수도원이 있으며, 400 년이나 된 물방앗간이 있어 프랑스 사람들이 대단히 사랑하고 아끼는 곳이며 유럽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 마을을 약간 벗어나 4킬로미터쯤 내려가면 보리 마을 (Village des Bories: 옛날 남불 양 치던 목자들이 거처하던 돌로 된 움막 비슷한 집들이 있는 마을)이 있다고 일러준 미슐랭 (안내책)을 들고, 나는 먼지가 뽀얗게 덮인 올리브 나무들의 도열을 따라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오면 보리 마을을 꼭 봐야 한다기에 도대체 어떻게 생겼기에… 하고 내 나름으로 상상하면서 한참 걸어갔다. 이상한 동네 하나가 눈앞에 드러났다. 참으로 이상한 동네이다. 아직도 이런 종류의 집이 프랑스에 존재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경주의 천마총에 가서 왕릉을 보고 있을 때 과거라는 시간을, 과거 사람의 사고와 생활을 상상해 보느라고 골몰했던 것처럼, 나는 바로 이 마을에 옹기종기 서 있는 보리(Bories)의 주인들을 그려 보았다.
수백 년 전에 단순하고 원시적인 돌로만 교묘하게 쌓아 올려 지은 움 같은 집들이지만 외관상 지금 보아도 전혀 밉다고 생각되지 않으며, 일종의 소박한 아름다움마저 깃들여 있다. 나무 한 조각, 시멘트 한 포 들지 않은 순 이 지방산, 우리나라 재래식 구들돌 같은 것만으로 묘하게 쌓아 올려졌지만 역학적으로 계산된 것 같은 치밀한 작업과 그 내부에 들어갔을 때의 빛 처리, 공기 유통 문제 같은 것은 자연 을 최대로 이용한 인간 지혜여서 나는 몇 번이고 탄복했다.

아마 <별>에 나오는 주인공 양치기도 바로 이런 거처에서 잠을 잤을 것이다. 자기가 그렇게 사랑했던 처녀가 도시락 바구니를 들고 왔다가 비가 온 뒤 갑자기 강물이 불어나 다시 아랫마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산속에서 하루저녁 같이 밤을 지내는 장면에서
“... 하느님도 아시지만 내 애틋한 사랑의 불꽃은 내 피를 끓어오르게 하도록 격렬했지만 나쁜 생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울타리 안쪽 구석에서 아가씨가 잠자는 모습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는 양들 바로 곁에서 주인댁 아가씨가 다른 어떤 양보다도 더 귀중한, 더 순결한 양으로서 내 보호를 받으며 마음 놓고 쉬고 있는 데 대한 자랑스러운 마음이 있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보리마을 사람들은 틀림없이 이 단순한 집의 형태, 용도, 소박한 아름다움 같이 건강한 정신, 평화로운 휴식감을 맛보며 <별>의 이 양치기처럼 커다란 신뢰, 행복, 긍지로 생을 누렸으리라 생각하니 우리 들의 성냥갑 같은 아파트, 호화스러운 물질적 풍요가 모두 거추장스러운 불행의 씨앗같이 느껴짐은 왜일까?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거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거처가 갖는 다양한 기능과 사회적 의미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만약 이 양치기들의 순백무구한 삶이, 아름다운 심상이 이런 단순화된 물질적 조건에 기인한다면 복잡하고 피곤한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적어도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존하고 있는 유명한 빅또르 바자레리 (1908년 헝가리 태생 화가. 1930년부터 빠리에 살면서 단순한 화가로서의 활동보다는 건축에 관계되는 공간과 볼륨 전반에 대한 작품 활동이 더 많음)는 이미 매일매일 몸담고 살고 있는 공간에서 깊은 철학을 깨달았는지 그의 노년의 별장은 고르드 어느 낡은 보리를 사서 그 내부를 재구성하고 정비하여 멋있게 살고 있다고 들었다.
그는 아마 그의 이름값, 물질적 풍요, 낡은 문명... 이런 것들에 신물이 났던지 아니면 그 소박한 양치기 집에서 건축적인 미라도 발견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고르드의 여러 사람들에게 바자레리의 집이 어딘지 물어보았지만, 모두들 여기 어디에 산다는 말은 들었지만 모른다고 했다. 방문객의 방해를 피하고자 그랬겠지만, 그 유명한 사람이 크지도 않은 동네 주변에 사는 데 모두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직도 이상스럽다.
나는 고르드의 보리를 보면서 어느 날 제주도에서 보았던 나지막한 돌담들이 생각났다. 그 담은 비바람, 곧 자연과 싸우며 살았던 제주민들의 표상이기도 했으나 나에게는 그들의 고달픔, 그들의 도전 정신 이전에 원초적인 행복의 담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고르드의 보리는 인간 최초의 창조의 장소로, 깊은 명상과 사색의 공간으로 벽난로 주변에 모인 민주적인 행복한 담소의 공간으로 살아 있다.
우리는 이따금 문을 박차고 밖으로 발을 옮겨 보는 것이 필요하다. 경주에 가서 첨성대와 다보탑을 보고, 해인사에 가서 팔만대장경을 보고 있으면 무엇인가 그 공간들은 우리에게 무언의 언어로 쉴 새 없이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나도 스스로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이런 소리 없는 은밀한 대화를 할 줄 아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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