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정월
지난 12월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다.
땅의 냉기와 군중들의 열기가 맞물렸고 균형을 잃은 사람들처럼 온 나라는 구호를 외치는 이상과 현실 사이를 헤엄치듯 살았다. 연중 마지막달에는 누구든지 한 번쯤 지나쳐버린 뒤안길도 되돌아보고 잊혀진 이웃들도 생각해 본다. 지난해 아쉬웠던 것은 바로 그런 숙연한 시간을 빼앗겼던 점이다. 그러나 정월은 다르다. 모든 죄업에서 벗어난 것처럼 쾌유한 기분을 느끼며 환희 같은 그 무엇이 우리에게 선뜻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여름 태양처럼 뽐내지 않으며 바람이 실어오는 꽃향기와는 다른 겸허하면서도 곧고 그리고 정결함이 있다.
흰 옷과 흰 장호지에 익숙한 우리 한국인들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달이다. 젊은 세배꾼들이 어른들을 찾아다니는 마을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정월에 들었던 덕담을 우리는 보물처럼 오래오래 기억했다. 어른과 이웃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으로부터 한국의 정월은 밝아왔다. 늘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지는 옛 선비 정신으로부터 정초는 시작된다. 그중에는 세속적 물질적인 것들과는 멀리해야 된다는 은근히 우회적인 의미도 깃들어 있다.
서양인들의 "Happy New Year" 와는 좀 다른 뉘앙스가 있다. 그래서 정월은 즐겁되 중요한 출발의 시간이기에 자신을 절제하며 옷을 여미기도 한다. 이제 미쳐버린 바람처럼 밀어닥친 서구물질문명에 밀려난 우리의 것을 다시 찾고자 하는 음악 미술 각 분야의 각성이 일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이 범국민적으로 구체화되는 기본적인 언어와 행동양식에 있어야 한다.
올해부터는 제발 자신들의 권익을 위한 비정한 싸움 같은 거친 언어들의 횡포와 권력자와 졸부들의 거들먹거리는 행동거지가 한국인의 정월처럼 단아하게 변신되기를 빌어본다. 올해 나의 소원은 고운 말씨를 쓰는 아이들이 부드러움을 안으로 지니며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보는 일이며 정월을 닮은 청결하고 초연한 모습으로 자기 일터를 열심히 땀 흘리며 가꾸는 어른들과 함께 사는 일이다.
그리고 한 인간이 서서히 나이가 들어 세배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 있게 되면 어른 스스로도 모든 언행에 대해 책임을 더 많이 지려 드는 각성이 생기기도 하고 점잖고 초연해져 모범이 되려고 다짐하는 것도 흔히 정월에 생기는 정신이다. 그래서 반성이라는 것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참으로 좋은 생각의 일면이다. 그래서 정월에는 말도 호언장담, 큰소리, 잡소리 같은 것을 삼가한다. 사려 깊고 정중한 그리고 진실한 언어를 절제하며 사용한다. 아무 장소에서나 아무 앞에서나 마구 지걸이지 않는다. '시장바닥' 같은 사람들의 분위기를 거부하는 경향이다. 그렇다고 본래 우리 정월 전통 분위기는 전혀 권위적이 아니다.
높은 고층 아파트나 휘황한 부촌의 고급빌라가 아닌 모두가 겸허하고 소박한 한옥에서 2세대 혹은 3세대가 한상에서 음식을 먹고 또 아이들이나 부녀자들에게까지 음복이라는 명분으로 어른들이 술까지 권해주시는 그야말로 민주적인 분위기가 정초에 이루어짐을 볼 수 있다.
나는 인자하시고 덕성이 높으셨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정월과 같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돋보기로 책을 읽으시거나 흰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영선 못에 활을 쏘러 갔다 오시며 기침을 하시며 대문채에 들어서시던 모습, 그리고 언제나 깨끗한 하얀 동정이 · 달린 단정한 한복을 입으셨고 언제 만드셨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맛있는 상차림을 해내시던 할머님의 재빠른 몸놀림들은 설날과 보름을 전후해서 방문이 잦은 손님들의 모습과 유난히 생각이 난다. 이런 모든 영상은 나의 정초의 기억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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